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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Jul 04. 2022

비록 시한부 인생이라는 공식적인 통보를 받았지만 - 1

끝내지 않은 자신의 음악여정을 결코 포기하지 않다.

241번째 대가의 이야기.     


1952년 도쿄 나카노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출판사의 편집자였으며, 장서와 클래식 LP를 많이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당시 다녔던 유치원에서 피아노를 배웠고, 이것이 즐거워서 이후에도 계속해서 피아노 학원을 다녔다고 한다. 4살에 작곡을 시작해서 11세 때인 1963년 도쿄 예술대학의 마츠모토 교수에게 클래식 작곡을 배우기 시작할 만큼 천부적인 재능을 발휘하였다고 한다.  

   

그렇게 건실하게 자신의 음악세계를 쌓아가던 중 우연히 중학교 때 포스트모던 연주회에 가서 자신이 전혀 모르고 있던 새로운 세계를 접하게 되면서 문화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고등학교 때는 당시 일본의 사회주의 운동에 영향받았었다고 하며, 백남준의 작품 등 다양한 포스트 모던 아티스트들의 작품에 매료되어 있었다고 한다.     


1971년 도쿄 예술대학 음악학부 작곡과에 입학하였다. 당시 주어진 조건대로 곡 하나를 작곡해야 하는 시험을 고작 1시간 만에 끝내고 가장 먼저 시험장을 나가 버렸다고 한다. 그렇게 입학한 후 작곡과는 전형적인 클래식 분위기 일색이라 어울리지 못하였고 오히려 전공이 멀리 떨어져 있던 미술학부 친구들과 주로 어울렸다고 한다. 대학에서 본격적으로 자신의 전공 바깥에서 놀기 시작해서 아르바이트 형식으로 피아노 연주를 하며 다른 아티스트들과의 교류를 넓히기 시작했다.

일본의 작곡가이자 세계적으로도 높은 인지도를 가진 뮤지션이자, 특히 영화 음악계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인기를 구가하며 골든글로브상과 그래미 어워드를 수상한 인물이자 아시아 최초 아카데미 음악상을 수상한 사카모토 류이치(坂本 龍一; Ryuichi Sakamoto)의 이야기이다.    

 

실험적인 음악을 선보이며 세계적으로 주목받아온 아티스트이자, <마지막 황제>(1987) 오리지널 사운드트랙 작업으로 아카데미, 골든글로브, 그래미를 석권했던 그는 ‘암은 편도선 안쪽, 3기 판정. 림프절까지 전이될 수 있다, 현재 3개 있음.’이라는 의학적 판정을 받자마자 모든 활동을 중단한다.      


하지만 평소 존경하던 이냐리투 감독으로부터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의 작업 의뢰를 받게 되고 다시 작업을 시작하게 된 류이치 사카모토는 치료로 중단했던 새 앨범 역시 다시금 준비하기 시작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대학 때 방황 아닌 방황의 장르 확장 시기의 흔적으로 전위파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타카하시 유지(高橋悠治)가 쇤베르크와 베르크, 베베른의 피아노곡 전곡을 1977년에 일본 콜럼비아에서 녹음할 때 쇤베르크의 초기 습작인 ‘여섯 곡의 피아노 연탄곡 집’에서 타카하시와 함께 피아노를 연주한 것이 있다.     


솔로 데뷔전인 1976년부터 슈가 베이브 출신의 오오누키 타에코, 야마시타 타츠로 등 여러 아티스트들의 세션으로 활동하였고, 같은 해 츠치토리 토시유키와 같이 녹음한 <Disappointment-Hateruma>가 연주자로서는 처음으로 공식적인 그의 이름을 올린 앨범이다. 솔로 데뷔 이전에 1978년 도쿄에서 열린 우주 박람회의 기념 앨범인 <宇宙>(1978)를 제작했으나, 신시사이저 음색과 다큐멘터리 멘트를 조합해 하나의 분위기를 만들어낸 작업물에 가깝고, 수록된 곡도 자신의 곡이 아닌 Joe Meek의 ‘Telstar’라는 곡을 커버한 것이었다.  자신의 이름도 앨범 한 구석에 조그맣게 올리는 데 그쳤다.      

이후 1978년, 제대로 된 솔로 앨범인 <Thousand Knives>를 공개하며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타이틀 곡인 ‘Thousand Knives’는 이후에도 각종 YMO 라이브 버전이나 YMO 앨범 버전, 피아노 연주곡 버전 등으로 마니아들에게 끊임없이 재생산되며 그를 알리기 시작한 명곡으로 인식되었다.     


이 앨범을 발매한 뒤, 당시 이미 일본 대중음악계에서 유명세를 쌓고 있던 호소노 하루오미, 타카하시 유키히로(高橋幸宏)와 알게 되었을 때, 사카모토 본인은 팝에 문외한이었던지라 그들과 어울리면서도 왜 그들이 유명한 지조차 전혀 몰랐었다고 한다. 원래 친했던 둘의 앨범에 참여를 하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오가다 우연히 앨범을 만들자고 이야기가 나와 함께 음악을 만들게 되었는데 만들고 보니 바로 그게 저 유명해했던 ‘Yellow Magic Orchestra’였던 것이다.     

YMO 활동 당시 사진. 왼쪽부터 호소노 하루오미, 사카모토 류이치, 타카하시 유키히로

지금에서야 유명하다고 쓰긴 했지만, 사실 당시 일본에서는 큰 반향이 없었다. 하지만, 레코드 회사에서 이들의 음악을 본격적으로 밀어주었으며 미국을 비롯한 영국 등 서구 각지에서 콘서트를 열었다. 당시로써는 매우 진보적인 전자음악이었고, 음악 전반에 깔린 팝과 락큰롤의 느낌, 동양인이 하는 최신 현대 음악에 대한 신비감이 섞여있었기 때문인지 서구에서 대히트를 치며 졸지에 스타로 등극하게 된다.      


밖에서 사고를 치고 일본에서는 이러한 소식을 계속해서 자국민에게 뉴스처럼 전했고, 몇 달 후 일본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그들은 국민 아티스트가 되어 있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이때 자고 일어나니 스타가 되어버려 국민적 인기를 얻게 된 탓에 인기에 대해 아무런 인식조차 없던 YMO 멤버들은 집 밖에만 나가도 알아보는 사람들 때문에 엄청 시달렸다고 하는데, 그게 어느 정도였는가 한, 사카모토 류이치는 그 여파로 대인기피증까지 앓았었다고 한다. 호소노나 타카하시야 YMO 이전에도 언론에 자주 노출되는 인지도가 높은 편이었으니 그렇다 쳐도 Technopolis를 작곡하며 YMO 데뷔를 성사하였던 사카모토는 YMO로 말 그대로 자고 일어나 보니 하루아침에 유명세를 날리는 슈퍼스타가 된 느낌이었다고 한다.     

당시 가장 큰 히트를 친 곡은 단연 ‘Behind the Mask’과 ‘Rydeen’, ‘Tong Poo’였다. ‘Behind the Mask’는 마이클 잭슨이 가사를 덧붙여서 앨범에 리메이크되어서 들어가기로 되어 있었다고 하나 알 수 없는 이유로 이후에 녹음에서 누락되었고, 이후 에릭 클랩튼이 락버전으로 리메이크하게 되면서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된다. 마이클 잭슨 사망 후 유작으로 발매된 앨범에 댄스풍으로 어레인지 된 버전이 들어가면서 이 비하인드 스토리도 세간에 겨우 알려졌다. 전자음악과 마찬가지 당시 막 인기를 끌기 시작하던 전자게임을 뮤직비디오로 활용한 ‘Computer Game’도 유명하다.

    

YMO 막바지에는 J-pop 분위기의 가벼운 곡들을 많이 냈으며 보컬로도 활동하여 당시 일본에서 요즘 가장 귀여운 아저씨들로 불릴 정도로 대중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다양한 리메이크가 된 ‘君に、胸キュン’의 오리지널 뮤직비디오를 보면 상당히 몽롱한 느낌으로 역시 천재라서 저런 분위기가 나는 건가 싶을 정도로 묘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노래 자체가 흥겹고 귀엽기에 이후 여러 차례 리메이크되기도 한다. 이 곡 외에도 YMO 뮤직비디오 대부분이 말 그대로 사이키델릭 한 느낌을 준다.     

YMO 활동으로 유명해지자 그는 깔끔한 외모를 무기로 작곡가, 피아니스트, 키보드 연주자에서 영화배우, 광고 모델로 활동영역을 넓혔다.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1983년 작품 <전장의 크리스마스(戦場のメリークリスマス; Merry Christmas Mr. Lawrence)>에서 주연과 OST를 맡기도 했다. 영국의 뮤지션 데이비드 보위와 공동으로 주연한 이 영화에서 그는 일본군 장교로 나오는데, 데이비드 보위와의 격렬한 키스신(?)도 등장하여 충격을 준다.      


이 영화의 주 테마곡인 ‘Merry Christmas Mr. Lawrence’는 영화보다 훨씬 유명해져서 사카모토나 이 영화는 몰라도 이 노래만큼은 그의 대표곡으로 모두가 알고 있을 정도로 유명해졌다. 한국의 경우에는 영화 내용이 문제가 되어서 정발조차 되지 않았기에 이 영화에 대해 아는 사람들이 거의 없지만, 음악 자체는 여러 차례 대중매체에서 연주곡으로 대중들에게 워낙 사랑받는 곡으로 자리 잡았다.   

  

<전장의 크리스마스>

그리고 그 흐름을 이어, <마지막 황제>의 OST를 통해 오스카상을 수상하면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으며 일본을 대표하는 아티스트로 확고한 자리매김을 하게 되었다. <마지막 황제>에서도 직접 극 중 인물을 배우로 참여하여 연기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배역은 푸이와 만주국을 배후 조종한 아마카스 마사히코 예비역 일본 육군 대위로 아는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는 매우 비중 있는 배역이었다. 이 영화의 테마곡 ‘Last Emperor’와 ‘Rain’은 지금까지도 사랑받는 곡으로 유명하다.     

<마지막 황제> 로 오스카상을 받을 당시 사카모토 류이치

스페인 사람이 아니었음에도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테마곡을 의뢰받아 작곡할 정도로 세게적인 인지도를 자랑하기도 했다. 그런데 의외로 월드 클래스 뮤지션치고는 전혀 의외다 싶을 정도로 게임 음악에 여러 차례 참여했는데, 89년도 PC엔진판 <천외마경>을 비롯한 여러 게임 음악을 맡았고, 드림캐스트를 처음 구동하면 골뱅이 로고와 함께 흘러나오는 오프닝 콘솔 뮤직도 그의 작품으로 유명하다. <L.O.L.: Lack of Love>에서는 OST와 함께 시나리오 라이터도 맡았다.      


애니메이션 작업에 참여한 일은 거의 없으나, 단 한 편, 가이낙스의 <왕립우주군>에서는 이례적으로 참여해 음악을 맡았다. 위에서 설명한 YMO 시절 ‘君に、胸キュン’의 수많은 리메이크 곡 중 하나는 마리아 홀릭 1기 엔딩에도 쓰였고, 이로 인해 오타쿠들에게까지 YMO가 새롭게 주목을 받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다.   

   

2013년 5월에는 도쿄 필하모닉 교향악단과 함께 16년 만에 오케스트라 협업 공연을 선보였다. 약 1년 뒤인 2014년 4월 역시 <Playing the Orchestra 2014>를 성황리에 마쳤지만, 같은 해 7월 10일에 기자회견을 통해 인후암 진단을 받고 투병 중이며 당분간 음악활동을 중지할 것을 밝혔다.     

2015년 암 투병 이후 첫 복귀작을 발표했다. 야마다 요지 감독의 영화 <어머니와 살면>의 OST였다. 2015년 8월 30일 일본 국회 앞에서 아베 신조 정부가 추진 중인 안보법안 반대 시위에 참가하며 오랜만에 다시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연설을 통해 시위에 나선 사람들을 격려하고, 헌법과 민주주의를 되찾기 위한 아주 중요한 시기에 함께 행동하겠다고 선언하며 상징적인 일본의 양심을 표방하였다. 위안부 관련해서도 사과해야 한다는 입장을 지지한 바 있는데, 이에 대해 일본 극우단체에서는 그에게 ‘재일’이라고 비하하기도 했다.     


이후 사카모토 류이치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의 영화 <레버넌트:죽음에서 돌아온 자(The Revenant)>(2015)에서 음악을 담당해 골든글로브상 최우수 작곡상 후보에 올랐으며 독일의 음악가 알바 노토와 수상을 놓고 경쟁했다. 알바 노토와 사카모토 류이치는 이전부터 공동으로 앰비언트 뮤직을 작업하며 앨범도 여러 장을 발표할 만큼 음악적 교류가 활발한 편이었다.     


2021년 1월 21일 본인의 웹페이지를 통해 직장암 투병 사실을 밝혔다. 두 번째 암투병이며 성공적으로 수술은 마쳤으나 앞으로 자신의 활동으로 인한 장거리 여행은 어려울 것이라 언급하였다.      

2022년 6월 7일, 문예지 <신초>에 자신이 시한부 상태임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문예지에 류이치는 직장과 간 두 곳, 림프로 전이된 종양, 대장 30cm를 절제했다고 밝혔다. 암 판정 후, 치료하지 않으면 남은 시간이 6개월이라는 통보를 받았다고 하며, 수술은 예정시간 8시간을 넘은 20시간에 달했다고 한다. 류이치는 이 글을 통해 다음과 같이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수술이 아닌 투약 방식으로 통원 치료를 하며 음악 활동을 이어갈 것이며 남은 시간 속에서 음악을 자유롭게 하며 내 인생을 다시 돌아보는 시간을 갖겠다.”     

그는 여러 인터뷰에서 클로드 드뷔시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동시에 많은 공부를 했다고 밝혔다. 자서전에서는 한때는 진지하게 자신이 드뷔시의 환생이라고 믿었을 정도였다. 실제로 그의 다큐멘터리를 보면 바흐의 곡으로 피아노 연습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으며 그의 기악곡 여러 곳에 바흐와 드뷔시의 음악적 구조가 발견된다.


다음 편은 여기에...     

https://brunch.co.kr/@ahura/1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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