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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Aug 26. 2022

부조리를 바로잡아 세우는 것을 왜 남이 해주길 바라나?

당신이 하지 않으면서 도대체 누가 그걸 할 거라 여기는가?

子曰: “如有王者, 必世而後仁.”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만일 王者가 있더라도 반드시 한 세대가 지난 뒤에야 백성들이 仁해진다.”     

이 장에서는 앞에서의 논의와 마찬가지로 얼마의 기간을 거쳐야만 정치가 어질게 바로잡힐 수 있는가에 대한 언급이 이어진다. 앞에서는 선인(善人)을 지칭하여 인용 어구를 사용했다면 이번에는 왕자(王者)라는 단어로 단순한 위정자를 지칭하는 것을 넘어, ‘천명을 받아 정치를 하는 성인(聖人)’이라고 독특하게 표현하였다. 이 표현은 왕도(王道)와 패도(覇道)를 구분하는 이후 맹자의 개념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겠으나 맹자 시대 이전에 이미 ‘완전한 도덕성을 구현한 군주’라는 개념으로 사용되었다는 방증으로도 공자의 언급은 인용된다.   

  

왕자(王者)의 개념을 어떻게 해석하는가 와는 별개로 역시 주요하게 보아야 할 것은 기간에 대한 언급이다. 제대로 왕 노릇 하는 자가 있다고 하더라도 결국 백성들이 공효(功效). 즉, 그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은 한 세대가 지나야 한다는 설명이 이 장의 핵심적인 가르침이다.     


먼저 새롭게 등장한 용어들에 대한 명확한 이해를 돕기 위해 주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王者(왕자)’는 聖人(성인)이 천명을 받고 일어남을 이른다. 30년을 一世(일세)라 한다. ‘仁(인)’은 교화가 흠뻑 젖음을 이른다.     


단순한 위정자가 아닌 천명을 받고 일어난 성인(聖人)이 다스리더라도 30년이 지난 이후에야 그 공효(功效)를 볼 수 있다니, 전술했던 1년 만에 모양새를 갖추고 3년이면 완성한다고 했던 말과 배치되지 않느냐고 의문을 제기할 이들이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말장난으로 오해될 여지가 있어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굳이 명확하게 그 이유와 차이에 대해 설명하자면, 앞선 설명에서는 공효(功效)에 대한 부분을 말하지 않고 그 체제에 대해 갖추는 기간을 말한 것이고, 여기서는 강조하는 설명은 그렇게 갖춰진 체계를 통해서 백성들에게 적용하더라도 그 공효가 나오는 것은 즉각적이지 않음을 설명한 것이다.     

그래서 그 의미를 명확하게 이해한 정자(明道(명도))는 주 나라의 사례를 들어 다음과 같이 부연하였다.     


“주나라는 문왕 · 무왕으로부터 성왕에 이른 뒤에야 禮樂(예악)이 일어났으니, 바로 그 효험이다.”     


주자는 이미 내가 앞서 말했던 의문을 제기할만한 학도들의 기미를 보았던 탓인지 아예 별도의 주석을 통해 이 장에서 의미를 명확하게 설명한 정자의 문답을 붙여, 이어지는 세 장의 기간에 대한 설명이 결코 모순되는 것이 아님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혹자가 묻기를 “3년이라 하기도 하고 반드시 한 세대가 지나야 한다고도 하시어 더디고 빠름이 똑같지 않은 것은 어째서입니까?” 하니, 정자(伊川(이천))가 대답하였다. “3년이면 이루어짐이 있다는 것은 법도와 기강이 이루어지고 교화가 시행됨을 이른다. 仁(인)으로 백성을 젖게 하고 義(의)로 백성을 연마하여, 仁義(인의)가 피부에 젖고 골수에 스며들게 하여 禮樂(예악)이 일어날 수 있게 하는 것이 이른바 ‘仁(인)’이란 것이니, 이것은 오랫동안 쌓지 않으면 어떻게 이룰 수 있겠는가.”     


이 문답을 이룬 정자의 설명이나 이것을 통해 배우는 자들의 의문을 해소하려고 마지막에 주석을 붙인 주자나 그저 성인(聖人) 공자의 말씀이니 무조건 모두 옳은 것이라고 포장하려고 든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먼저 확실하게 문면을 통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공자가 똑같은 질문에 대해서도 사람에 따라서 모두 그 설명을 다르게 하는 눈높이 설명법인 이른바 방편(方便) 설법을 구사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앞에서 처음 설명했던 1년이면 체계가 갖춰지고 3년이면 거의 완성된다고 자부했던 것은 엄연하게 구(苟)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이루어질 수 없는 가정을 통해 자신에게 그런 기회가 주어지기만 한다면 그럴 수 있다는 것이었지 그 공효가 퍼진다는 설명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이 장에서 강조하는, 그렇게 갖춰진 체계를 통하더라도 결국 백성들의 실생활에서 행동화로 공효를 얻기까지는 한 세대나 필요하다는 것을 더 강조하려고 한 것임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때문에 주자의 주석이 아니라면 왕자(王者)에 대한 해석을 그저 왕 노릇 하는 자, 혹은 왕 노릇 하려는 자라고 폄하했을지도 모르지만, 주자의 주석을 통해 그 의미가 ‘하늘의 천명을 받은 성인(聖人)’이라고 설명한 것이다. 즉, 그 사이에 나왔던 선인(善人)이 백 년이나 다스려야만 한다고 설명한 것과는 확연하게 구분되는 내용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어진 세 장의 기간과 상관없이 이 장에서 방점으로 확대된 개념인 ‘인(仁)’의 등장에 대해서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앞서 처음 설명에서 누가 다스려야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통해 자신이 그렇게 할 수 있음에도 그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자신이 등용되지 못하게 하는 부조리한 환경에 대한 한탄이 위주였다면 두 번째 설명에서 굳이 선인(善人)이 언급된 다른 말을 인용했던 것은 그것을 누가 하는가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부분도 중요하다는 점에서 은근히 자신과의 비교를 넣은 것이었다면, 이번 장에서는 가장 궁극적인 그렇게 하더라도 혜택을 보는 백성들의 온전한 움직임이 자리잡기까지는 한 세대가 걸린다는 설명을 한 것이다.     

 

공자가 쉽게 허여 하지 않는 궁극의 지향점이자 개념이라고 할 수 있는 ‘인(仁)’이 백성들에게 무 젖듯이 스며들어 공효를 본다는 의미는, 이미 그 이전의 다스린다는 행위가 정치로서의 의미가 아니라 아무것도 배우지 않고 알지 못하는 백성들의 행동화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는 개념으로 오히려 한 세대(30년)만에 그것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단언하는 것이 너무 짧은 기간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가져야 할 정도로 여겨진다.     


사실 이 장의 설명은 실제 정치에서도 공자가 천하를 주유하며 보았던 폐해와 실현 가능성에 대한 부분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라는 후대 학자들의 견해도 적지 않다. 


자신을 등용해준다면 1년만이라도 체계를 거의 갖출 수 있으며 완성하는데 3년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한탄한 것은 그저 될 대로 되라는 식의 탄식에서 뱉은 말이 아니었다. 공자는 여러 가지로 자신이 실제로 등용되었을 경우를 상정하고 시뮬레이션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의 개혁 드라이브에 가장 문제가 되는 요소들을 수 없는 시뮬레이션 과정을 통해 걸러내 보았을 것이다.      


‘개혁’은 말 그대로 완만한 변화가 아니다. 완전히 바꾼다는 의미는 기존의 세력들에게는 기득권을 침해당한다는 의미에서 거부를 할 수밖에 없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현재 기득권 세력에게 개혁까지는 아니더라도 새로움으로 향한 변화라는 것 자체는, 자신들이 가진 것에 대한 박탈까지는 아니더라도 안정을 위협하는 빨간불임에는 변함이 없다.       

이 장에서 공자가 굳이 한 세대(30년)를 콕 집어서 의미한 것은 말 그대로 기존에 활약하던 기성세대들이 모두 물러나 체계를 갖춘 왕자(王者)의 새로운 방식에 의해 새롭게 교육받은 이들로 채워지는 시기를 의미하기 때문에 그 공효의 시기를 지정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기존의 세대들이 갑자기 모두 죽거나 사라질 리가 없고, 그들의 기득권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세대를 이어 세습하여 더 많은 사리사욕을 챙기기 위해 탐욕의 눈을 부라리며 침을 질질 흘린다. 그 모습을 노나라의 삼환 대부들로부터 보아왔고, 어느 나라를 가던 그런 자들이 자신들의 누리던 사리사욕을 혜택이라 당연히 여기는 모습을 보아왔다. 그것을 알고 있는 공자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세대로 기간을 한정한 것은 그 개혁 드라이브의 주체가 왕자(王者)라는 단서를 달고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도 설명했지만, 이 단어 자체가 만능 치트키로서의 능력을 부여받았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해, 이미 앞에서의 두 설명을 통해 말했던 누가 그것을 실행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누차 강조했기 때문에 ‘천명(天命)을 부여받은 성인(聖人)’이라는 설명만으로도 ‘개혁의 주체가 능력적으로나 대의명분상으로도 완벽할 경우’를 (이미 불가능하다는) 가정을 염두에 둔 것이다. 그런 사람이 개혁을 하게 되더라도 그 개혁의 성과가 30여 년이 지난 후에야 이루어진다는 것은, 결국 이 장에서 일깨워주려는 가르침의 방점이 인(仁)이라는 것이 모든 백성들에게 무젖듯 전해져 자연스럽게 전파되기까지 얼마나 어려운 과정을 거치고 시간이 필요한지를 역설적으로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나라를 대표한다는 대통령의 아내라는 이가 학위를 받은 논문이 모두 표절이고 짜깁기라고 하는데, 로스쿨 교수까지 했다는 법비가 뜬금없이 인문학 쪽 논문은 표절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헛소리로까지 해대며 변명인지 궤변인지를 내뱉는 것을 보고 역시나 법비로구나 싶었다. 그 와중에 정작 자신의 논문을 베꼈다고 커밍아웃했던 교수까지 자신의 학교에서 학자들이라고 하는 동료들이 그것을 바로 잡아줄 것이라고 기다리고 있다가 뒤통수를 맞았다며 격분하는 인터뷰를 보게 되었다.     


평생의 업이라고 대학에만 있었던 입장에서 대학교수라는 직업을 가진 이들을 동료라고 두둔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들이 대학교수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정치적인 인물들이었는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게 더더욱 그들에게 비난의 회초리를 들면 들었지 그들이 하는 궤변에 그럴만하다고 두둔하는 것들까지 포함하여 그 말을 읽는 것만으로도 구역질이 난다.     

학자가 아닌 일반인이 읽어보기에도 그 학위를 ‘yuji’하기에 심각한 문제점이 발견된다는 것은 이미 대한민국 국민들의 주지의 사실이다. 현 법무장관의 말을 비틀어 인용하자면 어차피 그 학위를 가지고 대학교수를 하겠다고 한 것도 아니고(한때 경력을 위조하여 겸임교수라는 타이틀이라도 거머쥐고 싶어 그리했다손치더라도) 지금 그걸 근거로 학자로서 밥을 먹고살지 않으니(대통령의 부인으로 여사 소리를 들어가며 부와 권력의 정점에서 미소를 짓고 있다 하더라도) 괜찮다는 식의 논리의 궤변을 지껄이며 똑똑하다고 인정받고 싶어 한다면 더 논할 가치도 없는 문제겠다.     


하지만, 내가 주목하고자 한 것은 그 일을 벌인 자들이나 그걸 말도 안 되는 멍멍 소리로 변호하고 덮어보겠다고 설치는 정치꾼들이 아니다. 내가 주목했던 것은 그 문제에 대해 자신들의 학자로서의 양심이 도저히 용납되지 않는다면 명문대는 아닐지언정 삼류대로 폄하되는 굴욕은 당하고 싶지 않다며 들고일어났던 그 대학 교수회가 벌인 블랙 코미디에 시선이 더 쏠렸다.     


앞서 그 대학의 교수회장이라는 방송에도 자주 얼굴을 내밀던 자는, 지난 투표 결과를 공개하면서 "우리의 결정이 어느 방향이라도 그것은 우리 교수회의 집단 지성의 결과"라며 "이번 안건에 대해 찬성하신 분들이나 반대하신 분들이나 모두 우리 국민대의 명예를 존중하고 학문적 양심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밝혔다고 한다.     

이게 한국말인가 싶어 다시 읽어보았다. 아니, 내가 지적능력이나 문해력이 떨어져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인가 싶어 또다시 읽어보았다.      


본래 화상회의를 통해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했던 교수회의 일원들은 정작 화상회의에 참석한 교수들이 정족수를 채우지 못했기 때문에 정식 교수회의 투표로 진행하는 방식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 교수회의 투표를 그렇게 진행된 것이었다.     


투표에는 전체 교수회원 407명 중 314명이 참여했다고 한다. 투표 결과 해당 논문을 자체 검증하기 위한 위원회 구성에 61.5%(193명)가 반대했고, 38.5%(121명)가 찬성해 반대율이 더 높게 나타났다. 행간에 가려 일반인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슬쩍 넘어간 내용을 언급하자면 자체 검증을 하게 될 경우 박사논문만 검증해야 할 것인지 문제가 되는 논문을 모두 검증할 것인지를 물은 별도 질문에 무응답인 자들이 무려 183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아무리 메이저 대학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소위 ‘인 서울’이라는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교수님’ 소리를 듣는 자들이 자신들도 논문 심사라는 것을 받아보았을 텐데, 어떻게 그런 무책임한 결론을 낼 수 있었을까?      

이 장의 가르침에 비추어보건대, 이 사회가 곪아 썩어 들어가는 것이 정치꾼들의 분탕질 때문이라 남 탓하며 손가락질하는 당신들이, 꼴에 학자라며 곡학아세(曲學阿世)하며 연명하는 저 대학교수들과 무엇이 다른가,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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