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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Aug 25. 2022

고개만 끄덕이지 마라, 그 가증스러움대신 실천을 보여라

당신이 고상한 척 책을 읽고 글을 읽은 결론이 무엇인가?

子曰: “‘善人爲邦百年, 亦可以勝殘去殺矣,’ 誠哉是言也!”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善人이 나라를 다스리기를 백 년 동안 하면 殘虐한 사람을 교화시키고 死刑을 없앨 수 있다.’라고 하니, 참으로 옳다, 이 말이여.”     

바로 앞 장에서 자신에게 단 1년만 주더라도 정치를 안정시킬 수 있다고 아쉬워하던 내용과 비교하면, 잔학한 자를 교화시키고 사형을 없애기 전에 100년이면 그들이 이미 늙어서 죽을 것이 아닌가라는 우문(愚問)을 던질 정도로 100년이라는 세월을 언급한 부분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말이다.     


주자는 공자가 왜 이 말을 인용했는지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해설을 붙여 배우는 자들이 오해하지 않고 그 진의(眞意)를 다시 한번 곱씹게 한다.     


‘나라를 다스리기를 백 년 동안 한다.’는 것은 서로 이어 오래함을 말한다. ‘勝殘(승잔)’은 잔인하고 포악한 사람을 교화시켜 악한 짓을 하지 않게 하는 것이요, ‘去殺(거살)’은 백성들이 善(선)에 교화되어 死刑(사형)을 쓰지 않을 수 있음을 이른다. 옛날에 이러한 말이 있었는데, 夫子(부자)께서 이것을 칭찬하신 것이다.     


이 주석의 첫 문장이 갖는 묘한 해설이 갖는 의미를 파악했는가? 앞서 배우는 자들이 우문을 던질 수 있을 법한 100년이라는 단어가 갖는 의미를 주자는 명확하게 긴 기간 동안 다스림을 지속한다는 말로 바꾸어 설명했다. 언뜻 듣기에는 큰 차이가 없는 듯 하지만, 훌륭한 정치를 100년간 하는 것으로 세상의 도를 바로잡는다는 의미가 아님을 주자는 다시 한번 일깨워준다. 즉, 이 말은, 그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이 100년간이나 지속할 수 있었던 상황을 의미한다. 이것은 100년 동안 역성혁명이든 반란이든 해당 왕조가 뒤집히지 않고 지속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하나의 다스림으로 정해진 방향으로 그 나라가 존속되는 것만으로도 정치가 안정되었음을 인정해줘야 한다는 분석을 전제한 말이다.     


그 왕조가 썩었든 아니면 그 왕조의 백성들 중에서 악한 자가 있어 역성혁명이나 반란을 주도했든 그 왕조가 뒤집힌다는 것은 해당 왕조가 썩 훌륭한 정치를 하지 않았다는 반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자가 인용한 그 말의 핵심에는 훌륭한 위정자가 나와서 제대로 된 정치를 만드는데 100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의미가 아닌, 위정자가 어떤 자질을 갖추고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 왕조가 100년 동안 하나의 형태로 지속되었다면 그것은 안정된 정치가 지속되었다는 것을 증명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정자(明道(명도))는 100년 이상 하나의 왕조로 이어 나왔던 한(漢) 나라의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배우는 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한고조 유방

“한나라는 고조 · 혜제로부터 문제 · 경제에 이르기까지 백성〔黎民(여민)〕들이 醇厚(순후)하여 거의 형벌을 폐하여 쓰지 않음에 이르렀으니, 거의 이에 가까울 것이다.”     


그 의미를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했을 이들을 위해 윤 씨(尹焞(윤돈))는 왜 공자가 다른 말을 인용하였는지 선인(善人)이라고 언급된 이의 레벨과 성인(聖人) 공자의 레벨이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구분하여 정리해준다.     


“殘虐(잔학)한 사람을 교화시키고 사형을 없앰은 惡(악)을 하지 않게 하였을 뿐이니, 선인(善人)의 功效(공효)는 이와 같을 뿐이다. 聖人(성인)으로 말하면 굳이 백 년을 기다리지 않고, 그 교화가 또한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이 주석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단어는 ‘백 년을 기다린다’라는 표현이다. 공자가 이 장에서 인용한 선인(善人)이 어떤 경지인지 구체적인 레벨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지 않지만 그것이 궁극의 지향점이 아닌 것은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윤 씨는 앞장에서 공자가 1년만 주면 안정시킬 수 있고 3년만 있으면 완성시킬 수 있다는 내용을 의식한 듯 성인(聖人)의 경지에서 보면 100년이나 기다리지 않을 것이며 그 교화의 정도도 잔학한 사람을 교화시키고, 사형을 없애는 결과로 보이듯이 악을 하지 않게 하는 것을 뛰어넘었을 것이라 확신한다.     

어설프게 조선의 유학으로 수박 겉핥기 공자의 유학을 오독한 자들이 이런 주석을 보고, 성인(聖人) 공자에게 절대적으로 아부하는 후대 학자들의 공치사라고 해설하는 글을 본 적이 있다. 그들이 오독(誤讀)한 부분이 있다는 것을 그들은 여전히 알지 못하고 있을 뿐, 그들이 이 주석에 담긴 그리 깊지도 않은 진정한 의미조차도 파악하지 못한 것에서 나온 오독(誤讀)이고, 헛다리일 뿐이다.      


마지막 윤 씨의 주석은 그렇게 간단하고 쉽게 이해하고 매도할만한 수준의 내용이 아니다. 공자가 이 장에서 굳이 인용을 하면서 그 말이 훌륭하다고 한 의도에는 앞 장에서의 내용이 이어져 있음을 윤 씨는 읽은 것이다. 다시 말해, 공자는 정말로 이 말이 훌륭하다고 한 것이 아니라 이 정도의 평가를 받는 선인(善人)도 인정받는데, 자신에게는 앞서 말했던 것과 같이 불과 1년에서 3년이면 이루어질 수 있는 상황이 100년이 걸리더라도 훌륭하다고 평가하는 세태를 풍자하는 뉘앙스를 풍기고 있는 것이다.     


공자의 의도를 읽은 윤 씨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시간의 문제뿐만 아니라 성인이 제대로 천하를 다스리게 되면 잔학한 자가 교화되고 사형이 없어지는 정도의 교화에 그치지 않는다며 그 수준이 비교할만한 수준조차 되지 않는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당 태종의 초상

실제로 이 장에서 공자가 그대로 인용한 내용은, 이후 당나라 太宗(태종)이 다시 언급한 바 있다. 태종은 “난리 뒤라 나라를 다스리기 어렵다”라고 탄식하면서 “善人이 나라를 다스려 백 년이 돼야 잔악한 사람을 감화시키고 사람 죽이는 사형도 없앨 수 있다고 하지 않는가”라고 말하며 중신들에게 나라를 제대로 다스릴 방안을 물었다. 이에 신하 위징(魏徵)이 “난리 뒤에 오히려 다스리기 쉽습니다. 허기지면 음식을 잘 받아들이는 것과 같습니다”라 하고 “聖哲(성철)이라면 제왕은 한 해 만에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라고 간하며 仁義의 정치를 권했다.      


그 의견에 대해 반대의견을 가지고 있던 신하 봉륜(封倫)은 法治(법치)를 강화하고 패도(霸道)를 써야 한다고 하면서, 위징은 書生(서생)이라서 時務(시무)를 모른다고 비판했다. 결국 당 태종은 위징의 말대로 인의로서 나라를 다스렸고, 봉륜(封倫)이 죽은 후 백성들을 인의로 다스린 효과가 나타나자, 봉륜이 그 사실을 보지 못해 애석하다는 말을 남긴다.     


어느 변두리 구석에 기생하는 교수랍시고 10년이 넘도록 SCI급 논문을 한 편도 못쓰는 자와 매달 한 편씩 그런 논문을 쓰는 교수가 똑같은 교수라고 불리는 것 자체가 불공평(?)한 언사인 것처럼 낙서인지 일기인지 수준의 글인지 넋두리인지 모를 글을 쓰는 이와 매일같이 정련된 글을 수십 장씩 쓰는 이를 똑같은 브런치 작가라고 부르는 것에는 어폐를 넘어서 참람됨이 있다는 말이다.     

이 장에서 공자의 숨은(실제로는 대놓고 했으나 배우는 자들이 제대로 읽어내지 못할 뿐인) 의도는 또 있다. 당대 위정자들의 정치라는 것이 칭송받을만한 수준은 고사하고 그 형태를 유지하고 100년은 고사하고 제대로 이어지지도 못하고 뒤바뀌는 것을 꼬집는 말이다. 앞서 설명에서는 하나의 왕조라고 설명했지만, 하나의 왕조라고 하더라도 성씨가 같거나 그 왕통을 계승했다고 껍데기만 그럴 뿐 왕이 다르고 그가 지향하는 바가 다르다면 그것은 하나의 왕조라고 말하는 것도 부끄러운 일이다.     


중국에 비하자면 짧다고밖에 설명할 수밖에 없는, 조선왕조 500년을 ‘이 씨 왕조’라고 하지만 그 이 씨 성을 가진 모든 임금들이 위인전에 등장할 만큼 훌륭한 성군이지 않았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이른바 어진 정치를 지속하여 100년이나 이어지게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공자는 충분히 알았고, 대단한 선정(善政)이나 훌륭한 덕치(德治)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온전하게 나라를 안정시키는 것만도 제대로 하지 못한 이들에 대해 죽비를 내리치는 일갈이기도 하다.     

공자가 천하를 주유하며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았던 그 수많은 위정자들을 통해 공자는 다양한 인간 군상을 직접 경험하였다. 아예 말귀를 못 알아듣는 저급한 수준의 위정자에서부터, 자신을 만나는 것 자체를 경계하는 무식하기 이를 데 없는 권력자나 자신을 테스트하고 간 보기를 먼저 했던 가벼운 위정자들에 이르기까지 저마다 특성을 가진 이들을 보며 많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공자가 가증스러워 견디기 어려웠을 상황은 천하에서 성인(聖人)이라 자신을 우러르는 듯 칭송하며 결국 자신을 불러 천하를 경영하겠다는 가르침을 청하는 모습을 보이고서는 자신이 그의 눈높이에 맞춰 가르침을 주고 나면 아이컨택을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모든 것을 감읍하며 이해하는 듯한 그들이 보인 민낯을 보았을 것이다.     


그들이 공자를 중용하기 어렵다며 내놓는 변명들은 그야말로 버라이어티 했다. 아무런 연락을 취하지 않고 시간을 보내는 것은 다반사였고, 자신은 너무 중용하고 싶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다는 시답잖은 핑계에서 자신의 도량이 작아 공자를 담을 수 없다는 개똥철학에 이르기까지 어느 하나 논리라고는 찾아보기 어려운 허튼소리들뿐이었다.     


이 장이 앞장의 논리와 이어진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임에도 <논어> 해설서를 표방하는 자들은 결코 이 장의 의미를 풀어주면서 앞장에서 느꼈을 공자의 울분과 회환과 그 안타까움이 이 완곡한 풍자에 담겨 있음을 연결하여 설명해주지 않는다.     

가만히 원문을 들여다보라. 앞서 묘하게 거슬렸던 ‘100년’이라는 과장된 표현에 보자. 중국 고문에서부터 시작해서 한국의 고전이나 일본의 문헌에 이르기까지 구어체에서 100년을 언급할 경우 그것은 강조의 의미이지 실제가 아니며 대개는 풍자의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은 언어학을 공부하지 않은 이들이라도 충분히 알 수 있을만한 내용, 아닌가?     


조금 더 깊이 있게 이 장이 가리키는 바를 보게 되면, 앞서 설명했던 공자의 살아있는 경험에서 우러나는 위정자들의 그 추악한 민낯이 그 나라를, 그리고 그 사회를, 더 나아가 천하에 도가 통하지 않게 만드는 아주 작지만 기본적이고 가장 중요한 부분임을 에둘러 후려치고 있다.      


<논어 읽기>를 탐독하며 제대로 된 고전 공부를 한다며 과분한 칭찬을 하며 공부하던 몇몇 열혈 학도들이 있었다. 글을 통해 읽을 수 있었지만 그들은 나름 자신이 속한 조직에서 임원급의 인물들이었고, 적지 않은 부와 명예를 이루고 자신이 그 위치에서 제법 올바르게 조직을 이끌기 위해 노력해왔다며 지나간 세월을 돌아보는 노년기에 접어든 이들이었다.      

그들이 인문학 고전에 뒤늦게나마 취미를 보인 것은 그들이 젊은 날부터 꾸준한 독서를 통해 더 나은 무언가를 추구하고 배워나가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음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정작 그들이 내 하찮은 글을 통해 공부를 하다가 뜬금없이 내가 하려던 사회를 바로잡자는 실천 캠페인을 만났을 때 보여준 민낯은, 공자가 천하를 주유하며 만났던 그 허접한 위정자라는 가면을 쓴 이들의 민낯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혼란스럽다고 했다.


<논어 읽기>를 통해 공부할 때는 그렇게 옳다고 끄덕이고 잘못된 정치인들의 행태가 나오면 함께 성토하고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 한 목소리를 내는 듯했다. 하지만 아주 작은 실천의 문제가 언급되고 실천하지 않고 배움을 현실에 적용하지 않으면 무슨 의미가 있냐고 하자 혼란스럽다고 민감한 이슈라는 둥 수천 년 전 공자의 앞에서 멍멍 소리를 내던 인간이 아닌 듯한 족속들이 했던 동물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수천 년 전의 중국에 있던 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수천 년이 지난 대한민국 브런치의 작가라는 자들, 모두 장성한 자녀를 키워낸 부모라고 하는 자들, 심지어 할아버지 할머니가 된 그들이 브런치 작가라며 여름휴가에 읽을 책을 고르고 그 책의 내용을 통해 인문학의 진수를 읽어내고 즐겁다고 있어 보이는 척 글을 끄적이는 것을 보면서 구역질이 나올 것만 같았다.     

핫 뜨거워라 하며 걸음아 날 살려라 풀섶에 고개를 박듯 도망친 그들을 쫓아가 그 등에 손가락을 톡톡 두드리며 묻고 싶었다.     


“당신이 그렇게 거들먹거리며 읽고 배우고 익히는 것이 도대체 무엇을 하기 위함입니까?”     


대답하지 못하고 또 눈만 껌벅거릴 그 후안무치한 민낯을 대할 자신이 없어 묻지 못할 뿐이다. 인생의 선배들이라는 자들이 이럴진대 아직 나이도 젊은 자들이 브런치 작가입네하며 벌이는 꼴에 대해서 말에 무엇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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