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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Aug 29. 2022

결국은 나를 바로잡는 것이 모든 일의 시작이자 끝이다.

나 하나도 바로잡지 못하며 뭘 하겠다는 것인가?

子曰: “苟正其身矣, 於從政乎何有? 不能正其身, 如正人何?”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爲政者가〉 참으로 자신을 바르게 한다면 정치하는 데에 무슨 어려움이 있겠으며, 자신을 바로잡을 수 없다면 어떻게 남을 바로 잡을 수 있겠는가.”  
   

여러 가지 세부론적인 위정자의 솔선수범을 비롯해서 많은 이야기를 거듭했지만, 이 장에서는 다시 근본으로 돌아와 모두이자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이자 일갈이고 나지막한 듯 하지만 그것을 겪어본 자만이 말할 수 있는 아주 묵직한 인생의 한 마디가 담긴 가르침이다.     


주자의 주석도 다른 이의 주석도 달리지 않았다는 것은 원문에서 말하는 것 이외에 도대체 무엇을 더 말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냐고 역설하는 듯한 장이다. 앞서 ‘안연(顏淵)편’ 17장과 ‘자로(子路)편’ 6장에서 구체적으로 위정자의 솔선수범을 반복해서 말했던 것의 궁극적인 대상이 이 장에서 정리되는 느낌을 갖게 한다.     


전술했던 두 장의 내용에서 공자는 명확하게 가르침을 주는 대상을 언급하지 않고 있다. 질문을 한 사람이 명확하게 드러나거나 누군가에게 말하는 것이 명확한 장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장도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대상이 명확하게 드러나 있지 않은 경우란, 일반적인 모두를 향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공자 특유의 눈높이식 교유, 이른바 ‘방편(方便)설법’이 효과를 보기 어려울 수도 있다.     

앞서 삼환(三桓)의 대부들 중에서도 계강자(季康子)가 자주 등장하고 언급되긴 했지만 노나라에서 공자에게 이런 말을 들을 수 있는 위치의 있는 위정자라면 당대의 실력자였던 삼환(三桓)이 가장 유력한 이들이기는 했을 것이라는 추정은 가능하다. 이 이야기가 나왔을 것으로 추정되는 시기는 공자가 노나라로 돌아온 애공 11년, 이미 공자의 나이가 칠순을 2년 정도 남긴 노년의 나이였다. 삼환(三桓)의 바로 윗 세대인 정공(定公), 계환자(季桓子), 맹무백(孟武伯)은 공자에게 정사에 대해 구체적으로 물었다는 내용은 <논어>의 어디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처음 공자를 등용했던 정공(定公)은 공자와의 유대관계를 생각하더라도 여러 가지 조언을 구하고 이야기를 했을 가능성이 있지만 시기적인 차이였는지 구체적인 문답이나 대화의 내용이 보이지 않는다. 등용했지만 결국 공자가 노나라를 떠나게 만든 계기를 만든 것도 정공(定公)이었기에 그랬던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맹무백은 <논어>에 두 번이나 등장하지만 한 번은 ‘위정(爲政) 편’ 6장에서 효에 대해서 묻고, 다른 한 번은 ‘공야장(公冶長) 편’ 7장에서 공자의 제자들에 대해서 묻는 부분이 나온다. 정공(定公)도 ‘팔일(八佾) 편’ 19장에서 임금이 신하를 부리고 신하가 임금을 섬기는 법에 대해서 물은 바 있고, ‘계로(季路) 편의 15장에서 한 마디 말로 나라를 융성하게 하고, 나라를 잃게 되는 경우에 대해서 묻고 있다.     

그 윗 세대들이 공자와 같은 시기를 보냈고 결국 공자에게 실망감을 안겨주어 고국을 떠나게 만들었다면 다음 세대들은 공자가 노 나라를 떠난 이후에 왕위에 오르거나 집권을 하거나 아니면 너무 나이가 어렸기에 공자와 독대하며 다스림에 대해 논하거나 물을 계제가 아니었다. 그렇게 윗세대들을 통해 명성만을 들어왔고, 정작 자신의 나라 출신에서 나온 살아있는 성인(聖人)이라 불리는 공자에게서 실질적으로 독대하며 직접 가르침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그들에게 있어 상당히 큰 기회이자 이벤트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나마 공자의 제자가 그를 모시는 가신이었다는 이유로 계강자(季康子)가 무려 10회 이상이나 많이 등장하기는 했지만, 애공은 5회, 맹경자는 1회 등장한다.      


굳이 내가 그렇게 공자에게 거슬림의 원인이었고 노나라를 좀먹는 주체였던 삼환(三桓)의 대부들 간에 두 세대에 걸쳐 공자와 어떤 인연이 있었는지를 구체적인 <논어>의 내용까지 언급하며 되짚어본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다. 공자가 노나라를 떠나던 시기의 그 윗세대들과의 이야기와 천하를 주유하고 14년간의 긴 외유를 끝내고 돌아온 공자가 다시 그들에게 다스림에 대한 궁극적인 이야기를 누구라고 말하지 않으면서 이렇게 허심탄회하게(?)할 수 있었던 배경과 이유가, 앞서 설명했던 것처럼 이제 칠순을 앞둔 나이에 공자가 더 이상 자신이 직접적으로 등용되어 세상을 바꾸는 정치를 행하겠다는 마음을 내려놓았던 그 시점이기 때문에 그랬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나 개인적으로는 생각한다는 점을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이 장의 해설을 시작하면서도 언급했던 바와 같이 공자는 그 모든 것을 직접 몸소 경험하고 이제 세상을 모두 겪은 뒤에 돌아와 나이로는 손자뻘 되는 애공, 계강자, 맹경자의 세상을 잘 모르고 그저 권력자의 위치에 있는 이 파릇파릇한 이들에게 모든 것을 경험한 선생의 입장에서 에둘러 말하지 않고 하지만 구체적인 어느 하나를 짚어 말하지 않고 그 근본을 바로 짚어준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 장은 너무도 당연한 내용을 뻔한 말로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리고 조선의 성리학이 모두 비틀어놓은 내용을 어설프게 알고 있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늘 원시 유학에서 말하는 수신제가(修身齊家)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의 그 기본을 말하는 것이라고 껍데기만 이해하고 넘어갈 수도 있겠다. 물론 그것이 잘못된 것이고, 오독(誤讀)이라고 폄하하거나 무시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공자가 이 장에서 궁극적으로 말하려는 것은 그가 칠순이 다되도록 몸소 겪은 내용을 말한 것이기 때문에 똑같은 말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담고 있는 내공의 깊이나 무게가 판연히 다르다.     

똑같은 내용의 글이나 내용을 말하더라도 그가 언제 그 이야기를 하였는지 어떤 경우에 그 이야기를 했는지를 알고서 그 행간의 의미를 파악한다면 의미가 확연히 달라지는 경우가 있다.     


앞에서 ‘만약에’라는 의미에 구(苟)가 갖는 의미에 대해 설명한 바 있다. 실현될 가능성이 희박한 경우에 사용한다고 했던 그 의미가 이 장의 원문에서도 듣는 이들의 뼈를 때린다. 그들이 그렇게만 한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나 현재 그럴 가능성이 지극히 희박하기 때문에 그런 말을 다시 꺼내는 것이다. 다시 말해, 십수 년을 천하를 주유하게 만들었던 이전 윗세대에도 그렇게 말했건만 듣지 않았던 그 상황이 세대를 거듭하여 뒷 세대가 권력을 이어받았음에도 바뀐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대놓고 후려친 것이다.


이 장의 내용은 누군가 물은 것에 대해 대답하기보다 그 질문을 하기도 전에 무언가를 좀 생각하고 자신을 되돌아보라는 선제적 가르침이기도 하다. 사실 두 문장으로 나뉘어져 있는 내용 중에서도 앞의 내용보다 뒤의 내용에 방점이 강하게 찍혀 있다는 것도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대놓고 외치고 있다.      


“자신을 바로잡을 수 없다면 어떻게 남을 바로 잡을 수 있겠는가.”     


유독 정치에 한한 이야기라고 할 것이 아니라는 울림이 느껴지는가? 정사(政事)를 풀이할 때마다 내가 일부러 ‘다스림’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을 인지한 학도도 몇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다스림에 있어 가장 큰 다스림이 바로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라는 공자의 궁극적인 다스림에 대한 생각을 반영하기 위해 ‘정치’라는 용어 대신 풀어쓴 것이었다.     


‘정치’라고 하면 공자의 그 시대부터 이미 백성들을 다스리는 것이며 다른 사람을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것이라고 여겼기에 어떻게 정치를 해야 천하가 안정되고 사람들이 따르냐고 묻는 질문을 수많은 위정자와 권력자들이 공자에게 던졌던 것이다. 그런데 결국 이 장에서 공자가 말하는 것과 같이 공자에게 다스림, 즉 그들이 그렇게 물었던 ‘정치’는 남을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나의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라는 우문현답이 나오게 된 것이다.     


그것은 공자가 그들을 그저 비난하기 위해 꺼내놓은 일침이 아니라 공자가 책으로만 그리고 지식으로만 배우고 익혔던 문학, 역사, 철학을 통해 얻었던 30대 중반의 완성된 학문에서 끄집어낸 답이 아닌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고 평생에 걸쳐 힘을 써왔지만 결국 고국을 떠나 천하를 십수 년 주유하면서까지 얻은 정치에 대한 해답이었던 것이다.     

전술한 바와 같이 공자는 이미 천하 주유를 마치고 노나라에 돌아올 즈음에 자신이 직접 정치에 등용되어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는 마음을 접었을 것으로 보여진다. 그래서 자신의 남은 인생을 제자들을 양성하고 저술활동을 마무리하는 것에 진력을 다했던 것이라 설명한 바 있다. 만약 공자가 그런 깨달음을 통해 직접적으로 천하를 바로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미망을 버리지 않았더라면 노나라로 돌아온 이후 나왔던 사이다 발언들은 지금의 우리들이 만나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이 그저 당연한 내용이라고 슬쩍 흘려넘겨들었을 내용에 대해 정말로 당신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핵심을 물어볼 수밖에 없겠다. 공자는 왜 그렇게 자신을 다스리는 것이 모든 다스림의 기본이자 핵심이라고 했을까? 그리고 자신을 다스린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었을까?     


사실, 이 정도의 질문을 던질 정도의 수준이라면 굳이 새삼스럽게 공자의 의도에 대해 의문을 가질 것도 아니겠지만 그와 비슷한 언저리의 질문을 아주 가끔 받을 때면 내가 늘 해주는 답변 방식이 있다. 궁극적으로 정치행위를 하는 목적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하는 질문식 답변이다.     

작금의 대한민국처럼 부와 명예와 권력을 위해 사리사욕을 채우는 이들이 하는 그 정치행위 말고 진정한 정치행위라는 것이 인류에게 왜 생겼는가 하는 근원적인 질문을 하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걱정거리가 있다. 먹고사는 것에 대한 걱정부터 자신에게 닥칠 위험에 대한 걱정, 그리고 상대적으로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는 걱정 등등이 있다. 사람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 행복해지기 위해 산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반대로 걱정이 없어지면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나 무언가 두려워져서 해야 하는 다른 이들과의 다툼이 없어지게 된다. 그것이 세계 미인대회에서 늘 외치고 외치는 세계평화로 가는 길이 된다.     


궁극적으로 걱정을 없애기 위해, 그리고 행복하기 위해 정치행위가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누군가 내 걱정을 없애주길 바라는 것이 백성과 국민들이 정치행위를 하는 이들에게 바라는 것이다. 그런데 공자가 아니어도 공자의 가르침을 통해 깨달음을 얻은 자들만이 아니어도 자신의 걱정을 없어줄 사람이 다른 이들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같은 의미에서 모두가 만족하고 모두가 걱정이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지한다. 이유는 한 가지이다. 그것이 사람이 모여있는 곳에서 보면 상대적인 것에서 발생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모두가 행복해지기 위한 정치행위란 어쩌면 불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할 수 있다고 공자는 이 장에서 말한다. 다른 누군가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 그럴 수 있다면 가능하다는 말이다. 너무 형이상학적인 설명으로 흘러 오늘 설명방식이 다소 생소할 수도 있겠지만 공자가 의도했다시피 구체적인 누군가를 위한 구체적인 사안이 아닌 궁극적인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 이 장에서만이 가능한 설명법이라 하겠다.     


주변을 깨끗하게 만들어주는 청소를 하는 이들은 먼지투성이일 수밖에 없다. 죽고 싶을 정도로 우울한 사람을 정상적인 사람으로 만들어준다는 정신과 의사들이나 카운슬러가 더 많은 우울을 겪고 직업적인 이유로 정신적인 힘겨움을 겪는다는 것은 이제 숨길 수 없는 공공연한 비밀이 되고 말았다. 같은 원리라면 국민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주기 위해 그리고 그들의 걱정거리를 해결하기 위해 뛰어다닌 정치인들은 실제로 민생현장에서 그런 일들을 위해 쉼 없이 뛰어야 한다.      


하지만, 지역구 사무실을 통해, 그리고 여의도에 있는 국회의원실에 민원인들이 자유롭게 드나들며 국회의원과 면담을 하는 것은 고사하고 그 곁에 있는 그 대단한 보좌관과도 제대로 상담을 하지 못하는 현실은 그들이 궁극적으로 정치행위를 직업 행위로 혹은 자신의 부와 명예 그리고 권력을 쌓기 위해 이용하는 것뿐이라는 것을 방증하는 사실이다.      

어제 드디어 파란당의 당대표가 결정되었다. 그 당원들을 포함하여 대부분의 국민들이 별로 관심을 가지지도 않던 최고위원이라는 이들이 결국 민생을 챙기기보다는 자신들의 한 자리를 챙기기 위해 대회를 열고 어린이 웅변대회 수준의 외침을 떠들어대는 것을 보면서 한심하기 그지없었다. 그들이 최고위원이 되겠다고 그 유치한 웅변학원의 코흘리개 코스프레를 하는 동안 그들의 사무실에서 혹은 그들의 보좌관이 아니 정작 그들이 민생을 해결하기 위해 뛰어다니고 단 하나의 민원이라도 더 해결하기 위해 전화를 돌리고 사람들을 만나고 다녔을까?     


그들이 최고위원이 되어서 그들이 하고자 하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공자가 이 장에서 말한 자신을 다스림이 가장 근본이고 기본이라 함은, 자신이 납득할 수 없는 것을 결코 다른 이들에게 억지로 납득시킬 수 없다는, 지극히 당연하지만 어느 정치꾼도 이제껏 달성하지 못한 바로 그 가르침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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