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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Sep 22. 2022

굳이 정예군을 위해 7년이나 가르칠 필요가 있겠는가?

그렇다면 7년이나 백성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子曰: “善人敎民七年, 亦可以卽戎矣.”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善人이 7년 동안 백성을 가르치면 또한 군대(싸움터)에 나아가게 할 수 있다.”     

선인(善人)이 일정 기간 정치를 베풀게 된다는 가정에 대해서는 본편 11장에서 이미 언급된 바 있다. 선인이 백 년 동안 나라를 다스리게 되면 잔학한 사람을 감화시키고 사형제도를 없앴을 수 있다고 한 내용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리고 그 뒤에 바로 이은 12장에서는 만일 왕도(王道)로서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반드시 한 세대가 지난 뒤라야 세상이 인(仁)하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백 년이나 한 세대(30년)도 명확하게 구체적 시간의 의미로 사용된 것은 아니라고 공부하긴 했지만, 이 장에서는 굳이 7년이라는 숫자의 개념이 등장한다.     


아울러 이 장의 독특한 또 한 가지 부분은 전쟁에 나가 싸우는 방법을 가르친다는 내용을 궁극적인 목표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평화롭게 법을 어기지 않게 사는 법이나 농사를 지어 풍요롭게 할 수 있다는 내용이 아닌 전쟁에 나가 싸우게 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이 갖는 의미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먼저 주자의 해설을 참고하면, 이 장의 가르침은 방점이 그 기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하기 위함인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부분에 방점을 찍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백성을 가르친다는 정확한 내용을 파악하기 위해 주자의 주석을 먼저 살펴보기로 하자.     


백성을 가르친다는 것은 孝悌忠信(효제충신)의 행실과 농사를 힘쓰고 무예를 익히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卽(즉)’은 나아감이요, ‘戎(융)’은 兵(병, 전쟁)이다. 〈백성들을 가르치면〉 백성들이 윗사람을 친애하고 官長(관장)을 위하여 죽을 줄 안다. 그러므로 싸움터에 나아가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주자의 해설에 따르면, 궁극적인 목적이 싸움터에 나가는 것이 아니라 싸움터에 나가게 할 만한 기본 교양을 가르치게 되면 孝悌忠信(효제충신)의 행실과 농사를 힘쓰고 무예를 익히는 법까지 통합적으로 교육하게 되어 사리분별을 할 수 있으며 자신보다 노약한 이들을 위해 목숨을 걸고 지키려는 전쟁에 스스로 나서게 된다는 의미로 풀이하고 있다.     


위정자의 입장에서 백성이 귀한 것은 다양한 의미로 해석될 수 있겠으나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힘의 논리로 국가 간의 전쟁이 많았던 당시의 상황에 비추어보면, 농업생산력의 기반임과 동시에 전쟁이 터졌을 때 바로 백성이 군사력을 의미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의 본업이 직업군인이 아닌 농민이나 일반 백성이라는 점에서 전문적인 군사훈련을 받은 적도 없고, 그렇기 때문에 언제든 군인으로 불려 나오기는 하지만 전쟁터에서 효과적인 군인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기에 무리가 따른다는 점이 위정자들에게는 해결해야만 하는 숙제이자 지나친 군역을 통해 백성들이 이탈하거나 도망가는 것으로 인한 국력 쇠퇴가 골칫거리였다.     

평상시 농사를 짓거나 자신의 생업을 통해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것이 중요한 백성들에게 급작스러운 군역에 동원되는 것은 당연히 달가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그저 군사훈련을 받고 군 복무를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전쟁터는 자신의 목숨을 내놓고 죽고 죽이는 일이 다반사였기 때문에 평상시 싸움에 익숙한 건달들이라 할지라도 전쟁터에 나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긴급하게 군사를 꾸려 군사훈련이라는 것을 하기는 하지만 소년에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급조된 오합지졸을 하나부터 열까지 군사훈련을 시킨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인 상황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장에서 중요시하는 것은 백성들에게 가르치는 군사기술이나 무기를 사용하는 무예보다도 왜 내가 목숨을 바쳐 싸워야 하는가에 대한 동기부여를 더 강조하고 있음을 주자는 주석을 통해 역설하였다. 돈을 받기 위해 직업으로 군인 일을 하더라도 자신이 죽으면 어떤 금은보화나 영예도 아무런 가치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 대해 인간은 본능적으로 인지하고 있다.      


때문에 전쟁터에 나가 싸우는 군인이든 급조된 백성이든 그들이 필사적으로 나라를 지키기 위해 싸우든 다른 나라를 정복하기 위해 싸우든 그들이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는 동기부여는 사실 그 어떤 실질적인 무예나 군사훈련보다 중요한 정신교육에 다름 아니라는 의미이다.     

공자가 이 장을 통해서 굳이 전쟁터에 나가 싸우게 할 만한 수준으로 백성들을 가르친다는 것은 그 동전의 양면을 모두 다각적으로 조명한 것이다. 위정자의 입장에서는 현실적인 군사력을 갖추는 것이 급선무일 테지만 무엇보다 백성들이 나라를 위해 혹은 자기 군주를 위해 목숨을 바쳐 싸우기 위해서는 자발적인 동기부여가 충분한 자기 이해로 자리 잡고 있어야 한다는 아주 기본적이면서도 가장 중요한 사실에 대해, 진정한 배움과 가르침의 의미를 통해 강조한 것이다.     


위정자의 정치적인 의도로서만의 군사력뿐 아니라 외세의 침략이나 유사시 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지키기 위해 남자들이 무예 능력을 배우는 것은 본래 선비(士) 신분 이상의 이들이 활쏘기(射)나 말몰기(御)를 기본적으로 배우는 것과 무관한 것이 아니었다. 칼이나 활, 혹은 고대 중국의 군사운용에 따른 창술이 일반 병졸들이 익힐 수 있는 무예였다. 중요한 것은 군사로 동원된 백성들이 소모품이라 한 번의 전쟁에 모두 잃는 존재라면 일회성 전쟁이 없는 것을 차치하고 전쟁이 끝나 나라를 유지할 목적인 백성 자체가 없어지는 것이니 훈련은 위정자에게는 물론 백성들 자신에게 필수적이었을 것이다.     


앞서 공부한 내용에서 선인이 선정(善政)의 기반을 닦기 위해서 최소한 3년이 걸린다고 하였으니, 적어도 그 두 배 이상되는 7년 정도는 선인이 백성들을 잘 가르칠 경우에 한해, 전쟁에 나가게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어 그들을 살아남을 수 있는 최소한의 수준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고 한 것이다.     

이 7년이라는 기간에 대해 의문을 가진 배우는 이들을 위해 정자(伊川(이천))는 다음과 같이 그 의미를 풀이한다.     


“7년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聖人(성인)이 이 시기이면 可(가)할 것이라고 헤아리신 것이니, 朞月(기월)과 3년, 백 년, 한 세대, 큰 나라는 5년, 작은 나라는 7년과 같은 따위들은 모두 마땅히 그 시행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하여야 비로소 유익함이 있을 것이다.”     


이 주석의 의미를 한 마디로 정리하면, 공자가 언급한 7년은 앞서 언급했던 선인(善人)의 선정(善政)을 위한 3년에 대비하여 설정한 것으로 구체적으로 나라에 따라 다르고 상황에 따라 다르니 그 기간으로서의 의미는 크게 의식할 필요가 없음을 풀어준 것이다.  

   

여기서 역설적으로 알게 되는 이 장의 본연의 의미를 우리는 다시 깨달아야 한다. 실질적으로 전쟁에서 살아남을만한 혹은 정예병을 만들만한 훈련으로 필요한 물리적인 시간으로 7년은 너무 길다. 게다가 7년이나 생업을 내팽개친 채 군사훈련을 받은 이들은 그야말로 전문 직업 군인이 되어있을지는 몰라도 그렇다면 그것을 생업으로 삼아야지 농부이거나 백성일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7년은 구체적인 시간을 의미하지 않지만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님을 대비시켜 단순한 육체적 군사훈련을 받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명확하게 표방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니 처음 굳이 왜 전쟁터에 나가 싸울만한 수준으로 만들 수 있다는 표현을 썼는지에 대한 의문이 자연스럽게 풀리게 된다. 7년을 자신의 생업을 유지하면서도 정신적인 교육을 받고 육체적인 군사훈련을 농번기를 피해 받으면서 갖춰야 한 필수적인 것이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게 설명한 것이다.     

공자의 학당에 그 유명한 성인 공자의 제자가 되겠다고 소정의 예를 갖추고 찾아온 이들은 구름같이 많았을 것이다. 공자가 노나라를 떠나 천하를 주유하는 과정에서도 공자의 명성을 듣고 공자의 제자가 되겠다고 한 이들도 적지 않았을 것이며, 무엇보다 천하를 주유하는 그 기약 없는 떠돌이의 삶을 함께 하겠다고 한 제자들 역시 적지 않았다.     


그들에게 성인이 스승의 문하에서 공부했다는 재학증명서나 졸업은 하지 않았지만 수학 증명서 같은 추천을 통해 위정자의 가신(家臣)으로 중용될 것을 염두에 둔 이들이 적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제대로 된 위정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다는 스승의 평가에 맞춰 평생 그 누구의 가신으로도 가지 않고 스승을 모신 제자도 있었다.     


중요한 것은 정말로 깨달음을 얻어 배움을 위해 스승을 따르는 제자에서부터 자신의 부귀영화를 책임져줄 동아줄의 역할로서 공자학당에서 배움을 지속했던 제자들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배움에 대한 의지가 명확했다.     

그런데, 일반 백성들은 배움에 대한 갈망이나 자신의 몸을 지키고 가족들을 지키기 위한 무예를 배워야겠다는 갈망이 그리 큰 사람들이 아니었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들은 그것이 자신에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평생을 가도 입어볼 일이 없는 비단옷과 같은 것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루하루 먹고살기 어려워했던, 배움에 대한 갈망이나 동기부여조차 가질 의식이 없는 백성들을 왜 가르쳐야만 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이 장에서는 명확히 풀어주고 있다.     


공자가 본래 주장한 유학의 가르침이란, 단순히 허례허식을 위해 지식을 입으로만 떠들며 고담준론(高談峻論)을 떠벌리는 가짜 지식인들이나 학자들이 되기 위해서가 결코 아니고, 정치 운용을 위한 사상적 통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유교(儒敎)’라는 이름으로 포장하여, 가진 자들만의 논리로서 백성들과의 차이를 확고히 하는 데 사용하며 고리타분한 유학으로 전락시켜버린 조선시대의 성리학 따위와는 완연히 다르다는 모습을 이 장은 여실히 입증하고 있다.     


시시비비(是是非非)를 제대로 알기 위해 배우기 시작하고 시비(是非;옳고 그름)를 구별할 줄 알게 되면 당연히 올바름을 지향하고 부정을 보았을 때 그것을 바로잡으려고 노력하고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 공자가 끊임없이 강조한 배움의 시작이다. 배우지 않으면 무엇이 옳은 것인지 무엇이 옳지 않은 것인지 알 수 없으며 제대로 사안을 파악하고 알려고 노력하고 분석하지 않으면 어떤 근거로도 자신의 옳고 그름에 대한 세계관을 유지할 수 없게 된다.     

마지막 한 장을 남겨둔 ‘자로(子路) 편’에서 이 장에 앞서 무관한 듯하면서 앞서 언급했던 내용들은 바로 그 기본적인 공자의 학문(學問)에 대한 일관된 세계관에서 조금도 어긋나 있지 않다.     


내가 깨닫고 올바르게 행동하고 부정한 것에 대해 지적하고 바로잡으려고 노력하는 것도 물론 어려운 일이자 가장 기본적인 일이지만, 군자이자 선비를 지향하는 배우는 자의 목표는 그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아직 그것을 깨닫지 못한 이들을 일깨워 함께 그 방향으로 가도록 이끌고 공감할 수 있도록 가르쳐줘야만 한다.      


앞서 공자를 찾았던 제자들을 언급했던 이유는 한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그들은 저마다 목적은 달랐지만 배움에 대한 갈망과 목적의식이 분명했다. 하지만, 백성들은 그렇지 못하다. 지금 아침마다 자신은 그래도 학문적인 가치가 있고 세상을 바꿔나가기 위한 깨어있는 지식인이라는 자기만족을 위해 이 글을 읽는 학도들이 있을 수도 있겠다. 세상에 가장 어려운 일 중에 하나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그가 자발적인 의지를 가지고 행동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 장은 그것을 전쟁터에 나가 싸우게 할 만한 경지로 완곡하게 돌려 말했다. 완곡하다고는 하지만 이미 전면에 모두 드러내고 표현해버렸다. 자신의 목숨을 내놓아야 할 상황만큼 절체절명의 상황을 자발적으로 결정하게 만들고 결사적으로 행동하게 만드는 것만큼 더 명확한 행동화는 없을 것이다.     

그 목적이 무엇인지가 더 중요한 것은 굳이 강조할 필요도 없다.

브런치에 <논어 읽기> 시리즈를 쓰기 시작하고, 이제 책의 3분의 2 분량까지 매일 아침 함께 공부한지도 벌써 1년 하고도 반년이 넘어간다. 처음부터 일관되게 내가 브런치 글쓰기와 공부를 통해 함께 하는 이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충분히 전달되어 행동화로 이어지게 하는 데에는 부족하기 그지없는 시간이었음을 올초 시작했던 캠페인을 통해 충분히 깨달았다.


칠순을 훌쩍 넘기면서도 세상을 바꾸지 못했던 성인 공자가 세상을 떠나가기 전 모든 것을 내려놓고 서적을 집필하는 것과 제자들을 양성하는 것에만 에너지를 집중했던 것은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아마도 내가 선인(善人)이 아니기에 7년을 더 시간이 있어도 부족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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