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라면 반드시 있어야 할 것
믿음이 가는 것과 성실하다는 것의 연관성
子曰: "人而無信, 不知其可也. 大車無輗, 小車無軏, 其何以行之哉?"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으로서 성실성이 없다면, 그 가함을 알지 못하겠다. 큰 수레에 소의 멍에 걸이가 없고 작은 수레에 말의 멍에 걸이가 없다면, 어떻게 길을 갈 수 있겠는가?"
어려운 해석은 없다.
그런데 어려운 해석이 없는 게 함정이다.
'信'을 그저 '믿음' 혹은, '신뢰'로 해석하는 경우가 90%인데, 나는 그것을 '성실함'으로 해석한다.
그 이유는 뜬금없이 '신뢰가 가지 않으면'이라고 해석하는데 위화감이 들기 때문이다.
'믿음'이라고 해석할 경우,
다짜고짜 믿음이 가는 사람을 어떻게 구분한다는 말인가?
신뢰를, 믿음을 쌓기 위해서는 성실함이 필요하다.
그래서 아래 그림을 보면 한 글자를 더해서
그 설명을 명확히 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믿음이 아닌, 성실함으로 판단하는 두 번째 이유는,
수레에 반드시 있어야 할 멍에 걸이에 비유하여,
사람이라면 반드시 있어야 할 것으로 설명하는 부분 때문이다.
믿을만한 사람을 당신은 어떻게 판단하는가?
그 사람의 지위? 그 사람의 약속? 누군가의 추천?
아니다.
그것은 세월이 보증해준다.
그 사람을 알고 지낸, 사귐의 기간이 짧아서는
그가 믿을만한 사람인지 확인할 길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信'을 '성실함'으로 해석한다.
세 번째 근거는 뒤에 나오는 판단의 근거,
'그가 가함을 알지 못하겠다'라는 것이다.
공자의 논법에서 '알지 못하겠다'라는 것은
폄하의 최고 강조에 다름 아니다.
'그놈은 몹쓸 놈이다'보다 조금 더 강한 정도랄까?
그러한 종합적 인성 판단을 하는 데 있어
믿음과 신뢰로 해석하게 되면
결과만을 두고 그 사람을 평가한다는 의미가 되는데 공자는 그 정도 가벼운 레벨의 인물이 아니다.
비유부터 곱씹어보면,
단순하고 뻔한 비유가 아닌
의미심장한 완곡어법임을 확인할 수 있다.
수레는 사실 부품이 없어도 수레이다.
그런데, 수레의 멍에 걸이가 없으면
수레의 역할을 할 수가 없게 된다.
그저 밀거나 끌뿐 소나 말에게 걸어 사용할 수 없으니 본래의 의도대로 사용할 수 없는 것이다.
필수불가결은 아니지만 필수적인 부품인 셈이다.
성실함은 꾸준함을 의미한다.
무언가를 꾸준히 하는 사람에게는
다음에도 그 일을 묵묵히 계속할 것이라는
무언의 약속이 성립된다.
그것이 오래도록 지속되면 그를 판단할 때
중요한 근거로 작용하게 된다.
매일같이 출근길의 휴지를 줍는 이는
누가 보든 안보 든 휴지를 줍는다.
심지어 그가 다른 길을 가더라도
그가 휴지를 줍고 치울 것을 예상할 수 있다.
그것이 그의 인성에 믿음이라는 코드를 부여해준다.
당신은 지금 당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해
얼마만큼의 꾸준함을 쌓아왔는가?
당신에게 꾸준히 하고 있는 어떤 것이 있는가?
공자는 배우고 익힘에 있어서도 꾸준함과 성실함에 대해 늘 강조해온 스타일이다.
새가 처음 알을 깨고 나와 날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날갯짓을 움직여야 하고
그래야만 떨어지지 않고 날 수 있는 것처럼
학문을 꾸준히 연마해야 한다고 하였다.
소위 '2만 시간의 법칙'도 그런 의미에서
설명이 가능하다.
그것은 그저 성실하다거나 능력을 갖추는데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단순한 설명을 넘어
그것을 해낸 사람은 '믿을만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신이 사람으로서 반드시 갖춰야 할 것이
다른 사람에게 받는 믿음이라는 인정이라면
먼저 당신이 갖추고 보여줘야 할 것은
당신의 성실함이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누가 지켜보고 있지 않아도
묵묵히 꾸준히 뭔가 지속적으로 하는 사람은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뜻을
아주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행간을 감추고 있는 것이
위 장의 본뜻이다.
당신은 지금 어떤 꾸준한 행동으로
믿음을 쌓아가고 있는가?
혹여 그런 꾸준한 노력이 없었다면
당신은 사람으로서 아직 꼭 필요한 것이
갖춰지지 않은 자이니
사람이라고 불리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사람이 사람이라고 불리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이라고 똑같은 사람이 아니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