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천 년 후가 어떨지 궁금한가?

우리 시대를 어떻게, 다음 세대에게 넘겨줄 것인가?

by 발검무적
子張問: "十世可知也?" 子曰: "殷因於夏禮, 所損益可知也; 周因於殷禮, 所損益可知也. 其或繼周者, 雖百世可知也."


자장이 "열 세대 이후의 일을 알 수 있습니까?" 하고 여쭈어보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은나라는 하나라의 예를 따랐으니, 무엇을 폐지하고 무엇을 늘렸는지 알 수 있으며, 주나라는 은나라의 예를 따랐으니 무엇을 폐지하고 무엇을 늘렸는지 알 수 있다. 혹시라도 주나라의 뒤를 잇는 자가 있다면 설사 백 세대 이후라고 할지라도 알 수 있을 것이다."

1세대가 30년이니, 10세대는 300년이다.

자장이 뜬금없이(?) 공자에게 300년 후의 일도

알 수 있냐고 묻는다.

아무리 성인이라지만 300년 후의 미래를 알 수 있을 리 없지 않냐고 황당해할 만하다.

그러나 공자가 누군가, 절대 주저하거나 머뭇거리지 않고 대답해준다.

그런데 그 대답이 묘하다.

왜 미래를 알 수 있냐고 묻는데 갑자기 과거타령을 하는가?

거기에 이 장의 방점을 콱 찍는다.


300년 후 미래뿐만 아니라 3000년 후의 미래까지도 아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고 대답하는 공자.

조건을 단다.

그것이 조건이 아니라, 제대로 세대를 발전시키는 방법이자 다음 세대에 제대로 된 세대를 물려주는 방법임을 완곡하게 하지만 강력하게 후려친다.


구체적인 방법은 행간이 깊어 조금 어려울 수 있으나 그 원리는 매우 간단명료하다.


나라를 발전시키는 데 있어 기본이 되었던 것을 계승하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며 잘못된 부분은 버린다.

하, 은, 주 세 나라를 기본으로 삼은 것은 유교의 전통적인 발상이기는 하나

이것이 그저 고리타분한 유학의 이야기가 아닌

전 세대를 관통하는 조언임에는 의심이 여지가 없다.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아진 요즘,

그린피스가 오래전부터 강조했던

'지금 우리가 누리는 환경은

우리가 다음 세대에게서 빌려온 것입니다.'는

윗 장에서 공자가 말한 것의 변형버전에 다름 아니다.


이전 세대에서 제대로 세웠던 원리와 원칙에 맞게

나라를 다스리고 발전시키되

시대가 바뀌어 보완이 필요한 부분을 고쳐나가되

기본적인 본의를 거스르거나 바꾸지 않는 범위에서

적용해나가면 몇 세대가 지나든

그 범위에서 크게 바뀌거나 벗어날 일이 없으니

3천 년이 지나도 쉽게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의 정책이 조변석개한다고 난리를 친다.

강남 아파트 재건축 조항에 실거주 조건을 달았더니 세입자 내쫓고 낡아빠진 아파트라 몇 천만 원을 들여 인테리어하고 들어갔더니

다시 그 정책이 전면 백지화되었다고 하여

정부를 성토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뉴스를 보았다.


내 눈에는 그 정책을 세우고 백지화한 이들이나

세입자 내쫓고 그 정책에 눈 가리고 아웅 해서

재건축 후 분양권을 인정받으려고 생쇼를 한 이들이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부동산 정책이 실패니뭐니 하는 말을 들으며

지금의 정부가 새삼 무슨 엄청난 실책을

한 것인가 생각해보면

역대 정부가 잘했다고 칭찬받은 일이 있었던가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만든다.


당신들이 그렇게 욕하고 촛불까지 들고 난리를 치며 욕했던 이들은 버젓이 아직도 야당이라는 이름으로 마치 새 사람인 양 자리를 지키고 있고

썩은 정부라고, 개차반으로 나라를 만들었던

공무원들은 청와대의 주인이 바뀌었다고 해서

싹 바뀌지 않았다는 것을 감안해보면

그들은 이제까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좌고우면 하면서 살아온 이들인 것이다.

그 따위로 해서는 정말로 앞으로 몇백 년이 지나도

뻔하겠다는 말이 윗 장의 악화 버전으로 적확하겠다 싶다.


대학을 다닐 때 한 여름 더위를 피하려 학생회관 옆에 있던 기념품 판매 매점을 들어갔다.

기념품이랍시고 마우스 패드에 학교 마크가 크게 찍혀 있고, 이런 유치한 캐치프레이즈가 있었던 것이 기억이 난다.


누군가 조국의 미래를 묻거든, 고개를 들어 관악을 보게 하라.


풋! 어딜 가나 그놈의 잘난 관악 동문들께서 다 말아먹어서 나라가 지금 이 모양 이 꼴이 되었으니 어쩔 것인가?

남을 기만하고 지 배 불리기라고 그렇게 공부한 게

아님을 그들이 모를 리 없을 텐데 말이다.


당신이 당신의 자식이

보다 나은 세상에 살기를 바란다면

당신부터 고치면 된다.

지금 내 옆에 있는 이들이 잘못하고 있는 것에 대해

분노하고 지적하며 바꾸어 나가면 된다.


그런 놈들이 사회를 움직이는 위치에

올라서 있지 못하게 하면 된다.

그들이 당신의 주머니에 몇 푼 찔러준다고

당신이 침묵하는 순간,

당신의 자식들은 다시 당신이 욕지거리를 했던

그 상황으로 데자뷔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