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을 챙길 수 있는 자가 챙겨줘야만 하는 것이다.
師冕見, 及階, 子曰: “階也.” 及席, 子曰: “席也.” 皆坐, 子告之曰: “某在斯, 某在斯.” 師冕出, 子張問曰: “與師言之道與?” 子曰: “然. 固相師之道也.”
師冕(樂師인 冕)이 뵈올 적에 섬돌(계단)에 이르자 孔子께서 “섬돌이다.” 하셨고, 자리에 이르자 孔子께서 “자리이다.” 하셨고, 모두 앉자 孔子께서 “아무개는 여기에 있고 아무개는 저기에 있다.”라고 말씀해 주셨다. 師冕이 나가자, 子張이 묻기를 “樂師와 더불어 말하는 道理입니까?” 하였다.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그러하다. 진실로 樂師를 도와주는 도리이다.”
드디어 길고 길었던 ‘위령공(衛靈公) 편’의 마지막장이다. 마지막 장치고는 생각보다 조금 긴 상황의 설명이 나와 있는데, 늘 편의 마지막장에서는 그 장의 의미를 정리하는 듯한 내용을 담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편의 의미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논어(論語)>를 여기까지 공부한 이라면, 많진 않지만 가끔 초심자들이 이 장을 접할 때 늘 범하는 가장 어이없는 오독의 실수가, 악사(樂師)를 그저 음악인정도로 이해하는 경우이다. 그래서 너무도 당연한 사실에 대해 주자는 다음과 같이 악사(樂師)가 갖는 의미와 그에 대한 공자의 배려가 왜 그렇게 나왔는지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해설한다.
‘師(사)’는 樂師(악사)이니 봉사이다. 冕(면)은 그의 이름이다. ‘某在斯(모재사)’라고 두 번 말씀하신 것은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일일이 들어서 그에게 말씀해 주신 것이다.
당시에 악사(樂師)들은 대개 봉사(장님)이었다. 음악에 예민한 능력을 집중하기 위해 일부러 그랬던 것인지 아니면 그런 집중력으로 인해 악사(樂師)를 했던 이들이 자연스레 많아졌는지에 대해서는 확인할 수 없지만, 최소한 이 장의 내용을 통해 악사(樂師)에 대해 공자가 세심한 배려를 했던 이유가 음악인이라는 비중보다는 눈이 보이지 않는 장애를 가진 이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공자가 이와 같이 실천으로 보여준 장애를 가진 이에 대한 배려는 앞서 공부했던 ‘자한(子罕) 편’의 9장과 ‘향당편(鄕黨篇)’의 15장에서도 살펴본 바 있다. 공자는 예복을 입은 사람, 상복을 입은 사람, 눈이 먼 사람을 만나게 되면 늘 예의를 갖추고 격식을 갖춰서 대하는 것으로 자신이 배우고 가르친 이른바 ‘공자의 예(禮)’를 몸소 실천으로 보여준 바 있다.
그래서 스승 공자의 그러한 예의범절에 대해 제자 자장(子張)이 “樂師와 더불어 말하는 道理입니까?”라고 되물은 것인데, 그 이유에 대해 주자는 다음과 같이 해설한다.
聖門(성문)의 배우는 자들은 夫子(부자)의 一言一動(일언일동)에 대하여 마음을 두어서 살피지 않음이 없음이 이와 같았다.
이것이 본래 도제방식의 가장 큰 장점임을 주자는 다시 한번 강조하며 스승을 곁에서 모시는 자들이 어떻게 스승의 일거수일투족을 보며 공부하고 익혀야 하는지에 대해 그 사례로 삼아야 할지를 설명한 것이다. 즉, 자장(子張)은 몰라서 물은 것도 아니고 자신이 그간 듣고 알았던 것을 직접 스승의 모범을 통해 확인하고 재확인하는 질문으로 자신이 제대로 이해했는지를 되물은 것인데 그것이 바로 ‘도리(道理)’라는 단어에 축약되어 있는 것은 중급자 이상의 눈에만 읽히는 고급 어법에 다름 아니다. 이에 공자는 그것이 맞다고 확인해 준다.
그 칭찬의 의미는 ‘진실로’라는 한 글자로 확실한 방점을 찍는다. 주자는 공자의 칭찬이 묻어있는 그 대답에 대해 다음과 같은 해설로 행간의 의미를 부연한다.
‘相(상)’은 도움이다. 옛날에 瞽(고)는 반드시 도와주는 상이 있었으니, 그 방법이 이와 같았다. 성인이 이에 대해 마음을 일으켜서(억지로 마음을 두어서) 하신 것이 아니요, 다만 그 도리를 다하셨을 뿐이다.
장애를 가진 이에 대한 진실된 배려란 어떤 것인지에 대한 설명은 ‘도리(道理)’라는 말로 반복된다. 그 의미에 대해 주자는 다시 풀어 설명하면서 그 특징이 억지로 의도하여 행하는 것이 아님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그저 본래 배우고 익힌 바대로 도리에 맞게 평상시의 행하는 것, 그것이 바로 ‘위령공(衛靈公) 편’의 군자가 보여야 할 모습임을 공자는 이 장에서 역설한다.
그래서 그 의미를 제대로 읽어낸 윤씨(尹焞(윤돈))는 다음과 같이 이 장의 핵심을 정리한다.
“성인이 자신을 처하고 남을 위함에 그 마음이 일치함(똑같음)은 그 정성을 다하지 않음이 없기 때문이다. 배움에 뜻을 둔 자가 성인의 마음을 찾으려 한다면 여기에서도 또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주석은 이 장의 전면에 구체적으로 적시한 악사(樂師)가 장애를 가진 이여서 그들에 한정된 배운 자의 배려가 나와야 함에 진의(眞意)가 협소하게 갇혀있지 않음을 열어준다. 즉, 자신이 아닌 대상 모두를 예를 갖춰야 할 전부이고 그것이 바로 사회를 바루는 행동의 시작임을 여과 없이 설명해주고 있는 것이다.
‘위령공(衛靈公) 편’의 전반에 깔려있던 주제의식과 메시지는 결국 군자가 자신이 아닌 다른 이들에 대해 어떻게 대하는 것이 진정한 배우고 익힌 자로서의 자세이고 보머인가 하는 것이었다. 마지막 장에서 굳이 장애를 가진 악사(樂師)를 등장시킨 이유는, 장애를 가진 사회적 소회된 이들에 대한 배려가 전부가 아님을 이 마지막 주석은 주목하라고 다시 외치고 있다.
맞다.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이가 사회의 모든 이들, 자신을 제외한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것 자체가 난센스이고 모순임을 우리는 잊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주석의 첫머리에 강조한 바와 같이 자신에 대한 의식이 다른 사람에 대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에서 모든 공경과 배려, 융합이 잉태된다. 그것이 단 한 사람에 의해서 사회를 변화시킬 수 없지만, 그 주변의 다른 이들을 감화시켜 변화시킬 수 있는 키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며 범씨(范祖禹(범조우))는 이 장의 가르침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 준다.
“성인은 홀아비와 과부를 업신여기지 않고, 호소할 곳 없는 이를 괄시하지 않으셨음을 여기에서 볼 수 있으니, 이것을 천하에 미룬다면 한 물건(사람)도 제 살 곳을 얻지 못함이 없을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회의 문제는 언제고 불공평에서 유발된 불만을 통해 곪고 썩다가 터지고 불거지며 혁명의 씨앗을 낳았고, 고여서 썩어가는 정권을 새로운 물로 갈아치우는 일을 반복하였다. 고이면 썩는다는 자연의 진리를 언제나 권력을 가진 이들이 그것을 움켜쥐고 끝없이 영위하고자 하는 욕심을 부리면서 처음 그들이 세우고자 했던 새로운 세상과는 전혀 다른 복마전을 만들어내고 늘 무너지고 말았다.
그런데 그 불공평이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신기하게도 그 흔한(?), 빈부의 격차에서부터 넘을 수 없는 신분격차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었다. 봉건신분제가 확고하던 시절에 신분 격차는 불만의 대상조차 되지 못했다. 그들에게는 그것이 당연한 천부적인 것이었기에 그것을 불만이라고 느낄 수조차 없었다. 빈부격차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은 훨씬 더 심해졌지만 봉건신분제가 확고하던 중세에 농부가 갑자기 부농(富農)이 되는 경우가 없는 것과 같이, 땅과 노예를 가지고 있는 귀족층이 부와 명예를 갖는 것은 어찌 보면 불만을 가질만한 것도 아니었다.
사회가 발전하고 신분이 고귀하지 않더라도 상공업의 발달로 부를 얻게 된 이들이 늘어나고 그렇게 신분제가 흔들리기 되었을 때조차 빈부격차나 신분격차가 그들에게 혁명을 일으킬만한 불만을 잉태하고 그것이 혁명으로 싹을 틔우지는 못했다는 것을 역사적 사실을 보면 알 수 있다.
결국 사회를 뒤집을 정도의 불만을 잉태하게 만든 것은 그렇게 가진 자들이 벌인 부정한 행위들이었다. 그것은 그들이 평상시에 하는 언행이 만든 사회 속에서 그들이 보여준 민낯 때문이었다. 그들이 사회적 약자를 특별히 배려하는 모습까지 보이지 않았더라도 그들이 가지고 있는 부와 명예를 통해 주변의 이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자신의 안정을 충분히 더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개돼지라며 백성들을 마음대로 해도 괜찮다는 그들의 만용이, 그들의 몰지각함이, 그리고 그들의 후안무치함이 그들을 결국 벼랑 끝으로 내모는 자충수를 차곡차곡 쌓아가는 결과를 초래하고 만 것이다. 그들은 더 많은 것을 갖겠다며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이들의 고혈(膏血)을 쥐어짰고, 그것을 유흥처럼 즐기고 자신보다 가지지 못한 이들의 고통을 비웃었고 그것을 조롱거리라며 비아냥거리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것은 그들이 자신의 목을 스스로 조이는 막장까지 치닫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공자는 어느 위정자의 엄중한 법령으로 그 나라나 사회가 바로잡힐 것이라는 기대는 아예 처음부터 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천하를 주유하며 중국 전역에 퍼져있는 위정자들의 가식으로 점철된 민낯을 직접 목도하고 확인하면서 천하를 바로잡는 것에는 어느 한 사람의 기적적인 등장만으로 사회의 불만과 불공평과 부조리가 바로잡힐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공자가 그 모든 지식과 경험을 통해 유일하며 가장 효과적이라고 확인한 방법이 교육이고 저술이며 솔선수범이었다. 글줄깨나 읽고 공부했다는 자들이 자신의 성현이라 인정한다면 자신의 제자에서부터 시작하여 자신의 앙망하는 모든 배우는 자들을 일깨우는 것에서 파급하여 그들의 주변이 무 젖어가며 사회를 변화해 나갈 수 있다고 믿었기에 그 방향으로 노년의 모든 노력과 공력을 기울였다.
이 마지막 장을 읽으며 작년부터 시끄러웠던 출근길 지하철의 전장연 시위가 자연스레 떠올랐다. 먼저 한 가지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전장연이 왜 그 만원의 출근지옥철길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민폐를 주면서까지 그 시위를 하는지에 대해서 나를 비롯해서 그 의도를 이해하는 사람들도 제법 적지 않다는 점이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전장연의 시위에 앞서 벌어진 민주노총의 화물연대 시위가 국민들에게 어떤 인식을 받았는가에서부터 찬찬히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결과적으로 민주노총의 시위를 불법시위로 규정하고 마치 중동 어느 테러리스트 집단들을 미국이 대하듯이 어퍼컷으로 상징되는 대통령의 정부는 단호하게 말했다. ‘불법과 타협은 없다.’
미국이 결코 테러리스트들과 협상하지 않겠다는 캐치프레이즈를 연상시키듯 그들은 강건한 대처를 기조로 여론을 살폈다. 빨간당을 지지하며 유튜브를 보는 대다수의 노년층은 물론, 코로나로 인해 경기가 안 좋아진 흐름을 타면서 그들로 인해 국내 물류의 운송에 빨간불이 들어온다고 변죽을 울리는 기레기언론들까지 가세하면서 졸지에 민주노총의 시위는, 국민들 모두가 어려운 시기에 배에 기름이 껴서 아직 배가 덜 고픈 귀족노조로 역공을 받기 시작했다.
그 결과 민주노총의 내부에서조차 시위 자체의 동력(아마도 그들도 그 동력이 국민들의 공감과 지지에서 나온다는 것쯤은 인지했을 것이다)을 잃었음을 인정하고 정부의 강수에 백기를 들고 자진 복귀라는 허망한 성적표를 들고 저마다의 운전석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얼떨결에 계속해서 자살골을 넣던 정부와 빨간당은 그간 30% 이하의 지지율에서 겨우 회복세로 돌아섰다는 청신호를 받았다.
그들이 그것을 청신호로 받아들였다는 증거는 이후 나온 귀족노조들의 민낯을 까발리겠다며 그들의 돈 운용상태의 치부를 수사하기 시작해서 간첩, 빨갱이 등등의 그 옛날 공안검사들을 이용해서 사회를 얼어붙게 만들던 방식으로 민주노총을 한껏 쫄아 오그라들게 만드는 방식으로 이어지는 것을 보며, 뭔가 80년대의 불편함과 찝찝함이 가시질 않았다.
전장연의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민주노총의 실패한 화물연대 시위를 먼저 분석한 것은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다. 단 한 가지에 주목할 필요가 있음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정부가 그것을 어떻게 다루는지에 있어 가장 주요한 요인이 바로 국민의 여론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전장연의 출근 지옥철의 시위가 그들에게 아무리 대의명분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그들만의 결사이고 그들만의 목소리로 국민들에게 울림을 주지 못하게 된다면 지금 그들이 빨간당 출신의 서울시장에게 얻어터지고 있는 것과 같은 일의 반복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는 당연한 수순을 국민들이 간파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한 외교적 말실수가 잘못된 것이라고 조언하고 바로잡기는커녕, 그 말이 외교적으로 문제가 될지는 몰라도 일단, 사실을 말한 것이라며 드러내놓고 실드를 쳐주는 저급하기 그지없는 수준의 여당이라면, 당분간 사회적 약자를 위한 배려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