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은 그저 콩고물만 챙겼다며 피라미를 자처하는 것들에게.
季氏將伐顓臾. 冉有·季路見於孔子曰: “季氏將有事於顓臾.” 孔子曰: “求! 無乃爾是過與? 夫顓臾, 昔者先王以爲東蒙主, 且在邦域之中矣, 是社稷之臣也. 何以伐爲?” 冉有曰: “夫子欲之, 吾二臣者皆不欲也.” 孔子曰: “求! 周任有言曰: ‘陳力就列, 不能者止.’ 危而不持, 顚而不扶, 則將焉用彼相矣? 且爾言過矣. 虎兕出於柙, 龜玉毁於櫝中, 是誰之過與?” 冉有曰: “今夫顓臾, 固而近於費. 今不取, 後世必爲子孫憂.” 孔子曰: “求! 君子疾夫舍曰 ‘欲之’ 而必爲之辭. 丘也聞有國有家者, 不患寡而患不均, 不患貧而患不安. 蓋均無貧, 和無寡, 安無傾. 夫如是, 故遠人不服, 則修文德以來之, 旣來之, 則安之. 今由與求也, 相夫子, 遠人不服而不能來也, 邦分崩離析而不能守也, 而謀動干戈於邦內. 吾恐季孫之憂, 不在顓臾, 而在蕭牆之內也.
季氏가 전유(顓臾)를 치려하였는데, 冉有와 季路가 孔子를 뵙고 말하였다. “季氏가 장차 顓臾國에 전쟁을 벌이려 합니다.”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求(冉有)야, 이것은 너의 잘못이 아니냐? 저 顓臾國은 옛날에 先王께서 東蒙山의 祭主로 삼으셨고 또 우리나라 안에 있으니, 이는 社稷의 신하이다. 어찌 정벌할 필요가 있겠는가.” 冉有가 말하였다. “夫子(季孫)께서 하시려 할지언정 저희 두 신하는 모두 하고자 하지 않습니다.”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求야, 周任이 말하기를 ‘능력을 펴서 대열(지위)에 나아가 능히 (제대로) 할 수 없으면 그만두라.’고 하였으니, 위태로운데도 붙잡아 주지 못하며 넘어지는데도 부축해 주지 못한다면 장차 저 相(도와주는 신하)을 어디에다 쓰겠느냐. 또 네 말이 잘못되었다. 호랑이와 들소가 우리에서 뛰쳐나오며, 龜甲(거북의 등껍질)과 玉이 궤 속에서 훼손됨이 누구의 잘못이겠느냐.” 冉有가 말하였다. “지금 저 顓臾國이 〈성곽이〉 견고하고 費邑에 가까우니, 지금 취하지 않으면 後世에 반드시 子孫의 憂患이 될 것입니다.”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求야, 君子는 그것을 갖고 싶다고 말하지 않고 굳이 변명하는 것을 미워한다. 나(丘)는 들으니, 나라를 소유하고 집을 소유한 자는 〈백성이〉 적음을 근심하지 않고 고르지 못함을 근심하며, 가난함을 근심하지 않고 편안하지 못함을 근심한다고 한다. 고르면 가난함이 없고 和하면 적음이 없고 편안하면 기울어짐이 없다. 이와 같으므로 먼 지역 사람이 복종해 오지 않으면 文德을 닦아서 그들을 오게 하고, 이미 왔으면 편안하게 해야 하는 것이다. 지금 由와 求는 夫子(季氏)를 돕되 먼 지역 사람이 복종해 오지 않는데도 오게 하지 못하며, 나라가 분열되고 무너지는데도 지키지 못하고, 그런데도 창과 방패를 나라 안에서 움직일(사용할) 것을 꾀하니, 나는 季孫의 근심이 顓臾國에 있지 않고 병풍 안(집안)에 있을까 두렵노라.
이 장은 ‘계씨(季氏) 편’을 여는 첫 장이다. 앞서 공부한 바와 같이 노나라의 계손씨(季孫氏)는 맹손씨(孟孫氏), 숙손씨(叔孫氏)와 더불어 삼환가(三桓家) 중에서도 세력이 가장 막강했으며 실권도 가장 오래 쥐고 있던 가문이었다. 공자가 누차 강조하고 지적했던 것은 군주를 우습게 여기고 자신들의 부와 권력으로 나라를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전횡하던 그들의 참람함이었다.
그런데 거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공자가 그들을 비판할 때 사용하는 방식이다. 결코 공자는 단순한 뒷담화 방식을 취하지 않는다. 항상 그들에게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자들, 특히 자신의 꾸짖음을 통해 부끄러움을 깨달을 수 있는 자들에게 우회적이지만 굉장히 묵직한 한방을 날리는 방식을 택한다. 특히 이 장에서 살펴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자신의 제자이면서 그들의 가신(家臣)으로 그들의 잘못을 일깨워줘야 할 위치에 있는 이들이 그 직분을 다하지 못함을 꾸짖는 방식이 주를 이루는데, 그것은 단순히 잘못된 위정자 한 사람만의 잘못으로 그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공자의 신조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공자는 이미 출세(?)하여 각기 다른 위치에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제자들에 대한 A/S(?)의 방식을 빙자하여 어떻게 세상을 바꿔야 하는지에 대한 현실적인 방안을 일러준다. 그렇기에 이 길고 긴 첫 장의 비판방식을 통해 공자가 어떻게 그들을 재교육하는지 그리고 어떤 내용으로 참람됨에 대해 지적하는지를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야기는 계강자가 전유(顓臾)라는 작은 나라를 치려는 일에서 비롯된다. 주자는 다소 생소한 전유(顓臾)라는 나라에 대해 다음과 같이 해설한다.
顓臾(전유)는 나라 이름이니, 魯(노) 나라의 附庸國(부용국)이다.
계씨(季氏)와 염유(冉有)의 관계는 이미 앞서 ‘팔일(八佾) 편’의 6장과 ‘선진(先進) 편’의 16장에서 이미 충분히 공부한 바 있다. 두 장에서도 역시 염유(冉有)는 이 장에서와 같은 이유로 스승에게 지적받고 꾸지람을 듣는다. 이 장에서는 그 가신으로 있던 계로(季路; 자로)와 함께 자문을 구하러 스승을 찾은 것이다. 실제로 자로(子路)보다 20살이나 어린 염유(冉有)의 이름을 자로(子路)보다 앞에 둔 것 역시 실제로 가신에서 서열이 있어 염유(冉有)의 지위가 약간 높아 정벌계획에도 좀 더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위치였음을 의미한다.
이 상황에 대해 주자는 다음과 같이 해설한다.
<春秋左傳(춘추좌전)>과 <史記(사기)>를 살펴보면 두 사람이 계씨에게 벼슬한 것이 시기가 똑같지 않은데, 여기에서 이렇게 말한 것은 아마도 자로가 일찍이 공자를 따라 위나라에서 노나라로 돌아와 다시 계씨에게 벼슬하다가 오래지 않아 다시 위나라로 가서 벼슬한 듯하다.
자문을 구하는 두 제자를 두고 그렇게 공자는 바로 염유(冉有)의 뺨을 후려칠 정도로 강하게 직설적인 비판을 날린다. 그 이유에 대해 주자는 다음과 같이 해설한다.
염구(冉求)가 계씨를 위하여 세금을 많이 거두어서 더욱 用事(용사, 권력을 행사함)하였으므로 夫子(부자)께서 유독 그를 꾸짖으신 것이다.
그러고 나서 제자들이 본래 의견을 물었던 정벌계획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정벌이 역시 참람된 행위임을 지적한다. 가장 큰 대의명분은 전유라는 나라 역시 社稷의 신하이기에 그렇다는 대통(大統) 의식을 전면에 표방한다. 다소 애매모호하고 고리타분한 정통론인 듯 보이지만 실상 그것이 어떤 배경에서 나온 깊이 있는 이야기인지에 대해 주자는 다음과 같이 상세히 해설하여 공자의 말이 단순한 의도가 아님을 보여준다.
東蒙(동몽)은 산 이름이다. 선왕이 顓臾國(전유국)을 이 산 아래에 봉하여 그 祭司(제사)를 주관하게 하였으니, 노나라 땅 7백 리 안에 있었다. ‘社稷(사직)’은 公家(공가, 국가)란 말과 같다. 이때에 노나라를 넷으로 나누어 季氏(계씨)가 그중 둘을 차지하고 孟孫(맹손)과 叔孫(숙손)이 각각 하나씩을 차지하였으며, 오직 附庸國(부용국)만이 아직도 노나라의 공신이 되었는데, 계씨가 또 이것을 취해서 자신에게 보태려고 하였다. 그러므로 공자께서 ‘저 전유국은 곧 선왕께서 봉한 나라이니 정벌할 수 없고, 노나라 안에 있으니 굳이 정벌할 필요가 없고, 社稷(사직)의 신하이니 계씨가 정벌할 수 있는 것(대상)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는 사리에 지극히 당연하고 바꿀 수 없는 정해진 大體(대체)인데, 한 마디 말씀으로 그 曲折(곡절)을 다하시기를 이와 같이 하셨으니, 聖人(성인)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그런 설명이 이어졌음에도 염유(冉有)는 실제로 자신과 자로가 그 의견에 동의하지도 지지하지도 않았다며 스승의 매서운 회초리를 피하려는 변명을 끄집어낸다. 여기서 원문에 夫子라고 한 것은 당연히 공자가 아닌, 季孫을 의미한다. 그 배경에 대해 주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夫子(부자)는 季孫(계손)을 가리킨다. 염유가 실제로 모의에 참예하였으나 父子(부자, 공자)께서 이것을 나쁘다 하셨으므로 계씨에게 허물을 돌린 것이다.
당연히 공자는 아직도 정신 차리지 못하는 염구(冉求)를 꾸짖기 위해 주임(周任)의 말을 인용하여 결국 잘못된 마음가짐을 먹은 주군을 위해 그를 살찌우고 그의 잘못을 바로잡지 못한 것만큼 큰 잘못이 없음을 다시 한번 일깨운다. 그렇게 하지도 않고 그렇게 해서 정말 효과가 없었다면 미련 없이 그 직을 버리고 결별해야 함에도 그렇지 못한 잘못을 꾸짖은 것이다. 이에 대해 주자는 다음과 같이 해설한다.
周任(주임)은 옛날의 어진 사관이다. ‘陳(진)’은 폄이요 ‘列(열)’은 지위이다. ‘相(상)’은 瞽者(고자, 봉사)의 相(상, 길을 인도해 주는 사람)이다. 두 사람이 하고자 하지 않는다면 마땅히 간해야 하고, 간해도 듣지 않으면 마땅히 떠나야 함을 말씀한 것이다.
그러면서 재미있는 비유를 곁들인다. 호랑이와 들소가 우리에서 뛰쳐나오는 사고나 龜甲(거북의 등껍질)과 玉이 궤 속에서 훼손되었다면 그것 역시 맡아두고 있던 이의 책임이라는 설명이다. 이 비유에 대해 주자는 다음과 같이 해설한다.
‘兕(시)’는 들소이다. ‘柙(합)’은 우리이고 ‘櫝(독)’은 궤이다. 우리에 있다가 뛰쳐나오고 궤 속에 있다가 훼손되었다면 맡아 지키는 자가 그 잘못을 사양할 수 없음을 말씀한 것이니, 두 사람이 지위에 있으면서 떠나지 않았으면 계씨의 악행을 자신들이 책임지지 않을 수 없음을 밝히신 것이다.
그러자 염유(冉有)는 그제야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며 정복에 대한 계씨의 의견에 자신이 적극 동조했음을 감추지 않는다. 자신이 지금 섬기는 주군의 최대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신하의 역할이지 않겠냐는 일종의 항변인 셈이다. 이에 대해 주자는 다음과 같이 해설한다.
‘固(고)’는 성곽이 완고함을 이른다. 費(비)는 계씨의 私邑(사읍)이다. 이것은 염유가 꾸며서 한 말이다. 그러나 또한 그가 실제로 계씨의 모의에 참예하였음을 볼 수 있다.
그러자 공자는 그의 시커먼 속내의 중심에 예리한 칼끝을 이렇게 꽂아 넣는다.
“君子는 그것을 갖고 싶다고 말하지 않고 굳이 변명하는 것을 미워한다.”
공자의 의도를 바로 알아차린 주자는 아주 짧게 그 핵심만을 주석으로 대신한다.
‘欲之(욕지)’는 그 이익을 탐함을 이른다.
그리고 공자 자신의 목소리이자, 아직도 부족하기 그지없는 제자들에 대해 쓴소리를 넘어선 가르침을 전해준다. 백성을 많이 늘리고 이미 가지고 있는 재부(財富)가 더 부족함을 걱정할 것이 아니라 그것이 고르게 분배되고 있는지, 그로 인한 불공평은 이루어지지 않는지에 대해서 끊임없이 걱정해야 함을 모범으로 제시한다. 이 가르침이 갖는 정확한 의미에 대해 주자는 다음과 같이 해설한다.
‘寡(과)’는 백성이 적음을 이르고, ‘貧(빈)’은 재물이 궁핍함을 이른다. ‘均(균)’은 각기 분수를 얻음을 이르고, ‘安(안)’은 상하가 서로 편안함을 이른다. 계씨가 顓臾國(전유국)을 취하려고 함은 〈백성이〉 적음과 가난함을 근심해서이다. 그러나 이때에 계씨가 나라를 차지하고 노나라 임금은 백성이 없었으니 고르지 못한 것이요, 군주는 약하고 신하는 강하여 서로 혐의와 틈이 생겼으니 편안하지 못한 것이다. 고르면 가난함을 근심하지 않아 和(화)하고, 화하면 〈백성이〉 적음을 근심하지 않아 편안하고, 편안하면 서로 의심하거나 시기하지 않아 나라가 기울고 전복될 근심이 없게 된다.
백성들이 자연스럽게 찾아들게 해야 한다는 의미에 대해서도 주자는 다음과 같은 해설로 공자의 의도를 풀어준다.
內治(내치)가 닦여진 뒤에야 먼 지역 사람이 복종해 오는 것이다. 복종해 오지 않는 이가 있으면 덕을 닦아서 오게 하여야 할 것이요, 또한 먼 곳에 군대를 수고롭게 출동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위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그 근본적인 바탕에는 힘쓰지 않으면서 당장 눈에 보이는 이익만을 찾겠다고 정벌을 택한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에 대해 설명하기 위함이다. 그 설명에 대해 주자는 다음과 같이 해설해 준다.
자로는 비록 모의에 참예하지 않았으나 평소 義(의)로써 보필하지 못하였으니, 또한 죄가 없다고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아울러 꾸짖으신 것이다. ‘遠人(원인)’은 顓臾國(전유국)을 이른다. ‘分崩離析(분붕리석)’은 公室(공실)을 넷으로 나누고 家臣(가신)이 여러 번 반란함을 이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벌계획을 세우고 작은 나라를 치겠다는 것이 얼마나 어이없는가에 대한 설명에 주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干(간)’은 방패이고 ‘戈(과)’는 창이다. ‘蕭墻(소장)’은 병풍이다. 고르지 못하고 和(화) 하지 못하여 內變(내변, 내란)이 장차 일어날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뒤에 애공이 과연 월나라의 병력으로 노나라를 쳐서 계씨를 제거하려고 하였다.
이 긴 장의 가르침과 공자의 일침이 어디를 향하는가에 대하 사 씨(謝良佐(사양좌))는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이때를 당하여 三家(삼가, 계손씨 · 맹손씨 · 숙손씨)는 강하고 公室(공실)은 약했는데, 염구가 또다시 전유국을 정벌하여 그에게 덧붙여주려 하였으니, 夫子(부자)께서 깊이 꾸짖으신 것은 노나라를 수척하게 하여 三家(삼가)를 살찌우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홍씨(洪興祖(홍흥조))는 공자의 가르침이 실제로 이 정벌을 막았다고 유추하며 그 근거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두 사람이 계씨에게 벼슬하면서 계씨가 하려고 하는 일을 반드시 부자에게 아뢰었으니, 그렇다면 부자의 말씀으로 인해 〈계씨를〉 만류하여 중지시킨 것이 또한 많았을 것이다. 전유국을 정벌한 일이 經傳(경전)에 보이지 않으니, 아마도 부자의 말씀 때문에 중지하였는가 보다.”
워낙 긴 내용이라 평소의 분량이 넘쳐 그 상세한 내용을 공부하는 것으로 오늘의 논평 부분은 생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