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작이 인생작이 되다.

빨간 머리 앤은 창고에서 잠자고 있었다.

by 발검무적

1874년 캐나다 세인트로렌스만(灣) 안의 프린스 에드워드 섬 클리프턴에서 태어났다.

2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캐번 티시에서 우체국을 경영하는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10살 때에 '가을'이라는 시를 쓰고,

15살 때에는 샬럿타운 지역 신문에 시를 발표하여 작가로서의 재능을 보였다.

루시 모드 몽고메리(Lucy Maud Montgomery)의 이야기이다.

사진을 보고, 이름을 얘기해줘도 누군지 갸웃할 여성이다. 하지만 아래 사진을 보는 순간, 모든 사람은 그녀를 알아본다.

맞다. 그녀가 외로운 소녀시절의 경험을 소재로 창작한 《빨강머리 앤 AnneofGreenGables》(1908)의 작가이다.

그녀가 평생 발표한 전 작품 22편 가운데 앤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이 10편에 이른다.

그녀의 데뷔작이자 인생작은 결국,

이 한 편인 셈이다.

몽고메리는 소설 <빨간 머리 앤>에 등장하는 사범 학교인 퀸즈 학교의 모델이 되는 샬럿타운의 프린스 오브 웨일즈 대학교와 핼리팩스의

댈하우지 대학교를 졸업한 뒤 교사생활을 하게 된다.

그리고, 24세 때인 1898년 외할아버지가 별세하자 외할머니가 꾸리던 우체국 일을 돕기 위해 캐번디시로 돌아간다.

신문과 잡지에 글을 써서 이름이 어느 정도 알려진 루시는 <데일리 에코> 석간신문 기자로 일하기도 했다.

이 한 편의 작품으로 그녀는, 프랑스 예술원 최고 메달과 대영제국 훈장까지 받게 된다.

그녀의 삶이 빨간 머리 앤 같았으면 바라는 소녀팬들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녀의 삶 자체는 꽤 불행한 편이었다고 한다.

신문기자를 할 때는 연애도 몇 번 하고 활기 있게 지냈으나 외할머니를 부양하기 위해 돌아와 우체국 일을 돕는 결정을 하면서 결혼은 포기한다. 포기했던 결혼은 결국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당시로서는 너무 늦은 나이였던 37살에 목사와 했다.


남편 맥도널드 목사는 그녀의 처녀적 성이 쓰인 팬레터를 받고 불쾌감을 표시하거나 그녀의 소설을 읽지도 않았다.

부부관계보다 그녀의 성격 자체가 타인의 시선에 매우 민감했다고 한다.

자녀 중 제일 애정을 쏟았던 장남 체스터가 유급을 하는가 하면 사회적 지위가 낮은 여자아이를 만나 임신시켜서 비밀 결혼을 한 사실을 알고 매우 절망했다고 한다.

사람들의 구설수에 오르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기 때문에 목사 부인인 자신의 아들이 그런 짓을 저지르자 사람들의 눈총을 받게 될까 그랬다고 하니 꽤나 남을 의식했던 것 같다.


결국 68세를 일기로 숨을 거둔 그녀의 사인은

음독자살 혹은, 약물중독이라고 알려져 있다.

작가로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후에 찍은 사진

작가와 삶이 불행한 것과 상관없이 작품은 영원히 오래간다.

<빨강머리 앤>이 1908년에 발표된 소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어린 소녀들은

간혹 깜짝 놀란 표정을 짓기도 한다.

앞서 보았던 것처럼 책보다는 일본 애니메이션을 통해 더욱 유명해진 이 작품은 자칫 세상에 나오지 못할 운명이었다.


외할머니를 부양하며 우체국 일을 돕는 무료한 생활에서 글쓰기는 그녀에게 너무도 행복한 일이었다.

아마추어적 글쓰기의 모태인 '자전적 소설'을 써 내려가며 매우 행복했다.

그렇게 완성된 처녀작을 책으로 출판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는, 곧바로 출판사 몇 곳에 원고를 보낸다.

하지만 모든 출판사는 그녀의 원고가 책으로 출간될 정도가 아니라며 모두 거절한다.


그녀는 할 수 없이 원고를 모자 상자에 담아, 창고 깊숙이 넣어 놓았고, 자신이 그 원고를 내팽개쳐둔 사실조차 잊어버렸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 창고에서 다른 물건을 찾던 몽고메리는 우연히 모자 상자를 열고 그 원고를 발견하고 다시 한번 출판사에 투고한다.

그리고, 마침내 출간 제안을 받게 된다.


전 세계에서 수백 년에 걸쳐 사랑받아온 이 베스트셀러는 한때 창고에서 숨죽이며

다시 빛을 발할 때를 기다린 것이다.


우리는 이와 유사한 이야기를 많이 들어 알고 있다.

애 딸린 이혼녀였던 조앤 롤링의 '해리포터'도

카페에서 탄생하였으나 거의 모든 출판사에게 거절당했다.

사람들의 눈은 거의 비슷하다고 하고

흥행이 될만한 작품은 모두 다 알법한데도

아직까지도 이런 일들은 비일비재하다.


브런치에 보면 '작가 지망생'을 표방한 이들의

글을 많이 보게된다.

가끔은 가르쳐주고 알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만 괜한 오지랖이다싶어 생각을 접곤한다.

글을 쓰고 싶은 정도가 아니라 자신의 책을 출간하고 싶어 하는 참 많은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다.

그리고 실제로 책을 출간한 아마추어 작가들도 제법 늘고 있다.

브런치가 그 가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느낌이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글을 쓰고, 책으로 출간을 한다고

다 작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사실 어느 정도 자신이 돈을 내면

그리 크지 않은 돈으로

책을 출간하는 것은 할 수 있다.


문제는, 팔리는 책이 급격하 줄어들고 있다.


내가 책을 처음 출간하던 1990년대 초반에는

판매부수 100만 부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신문에 오르내렸다.


나 역시 가장 안팔렸다고 묻혔던 책도

10만 부 정도의 판매고를 올렸었다.


그런데 시대가 바뀌었다.

한국에만 등록된 출판사 중에서 1년에 단 1권이라도 출판을 하는

출판사는 5%도 되지 않는다고 한다.


팔리는 않는 책은 만드는 것이 의미가 없다.

그저 혼자서 원고지에 쓰고 읽으면 그뿐이다.

책으로 출간한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읽힌다는 것을 전제한다.


음악은 다른가?

그렇지 않다.

음원시장으로 대체된 음반시장은 더 심각하다.


처음부터 프로인 자는 없다.

당신이 글을 쓰던 음악을 만들던

대중들에게 많이 읽히고 듣고 싶게 작품을 만들려면 수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자신의 극적인 삶의 체험을

그저 일기처럼 쓰는 것은

작품도 뭐도 아니라도 출판사로부터

편집자로부터 코웃음을 치고 봉투째 폐기되어버릴 수 있다.


그런데, 그렇다고 포기할 것인가?

부족하면 부족한 것을 채우면 되고

실력을 키우고 싶다면 매일 매시간

그것을 위해 노력하면 된다.

문제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서

당신이 요행을 바라듯이

적당히 조금 끄적거리는 수준의 작품을 내밀고서는

'왜 나는 안되지?'라고 실망하는 데 있다.


세상에 거저 얻어지는 것은 없다.

당신이 들인 시간 그 이상의 노력과

피와 눈물이 들어갔어도

선택되지 않을 가능성이 더 크다.

몽고메리는 사적인 글쓰기의 대표였던

일기에서부터 시작해서

기자생활을 하면서까지

다양한 글쓰기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그런 그녀의 작품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처음 투고하였을 때는 가차 없이

모든 출판사에서 거절을 당했다.


그녀가 그 한 번의 실패에 글쓰기를 접었더라면

그리고 더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연구하고 노력하지 않았더라면

그저 우연히 다시 내려간 창고에서 그 옛날 원고를

그대로 발견하여 던지듯 투고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쉽게 실망하고 포기하는 이들의 특징은

그리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글쓰기가 그렇고

삶이 그렇다.


당신에게 글쓰기와 삶이

그리 가볍게 툭툭 던질만한 것이라면

할 말 없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렇지 않다고 목에 핏대를 세우고

대들 용기가 있다면,

지금 그 작은 실망감 따위에

함몰되어 패배자 코스프레 따위 하지 마라.


실망을 하려면

제대로 무언가에 모든 것을 다 쏟아부은 후

실망하라.

그때가 되면 내 말의 뜻을 이해하고

정작, 실망하지 않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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