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자가 두려워하는 세 가지는 무엇인가?

당신이 진정 두려워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by 발검무적
孔子曰: “君子有三畏: 畏天命, 畏大人, 畏聖人之言. 小人不知天命而不畏也, 狎大人, 侮聖人之言.”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君子는 세 가지 두려워함이 있으니, 天命을 두려워하며 大人을 두려워하며 聖人의 말씀을 두려워한다. 小人은 天命을 알지 못하여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大人을 함부로 대하며 聖人의 말씀을 업신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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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에서는 군자가 두려워해야 할 것, 세 가지를 설명하고 있다. 물론 그 가르침의 주제의식에는 ‘계씨(季氏) 편’의 저변에 공통적으로 흐르고 있는 군주에게 신하 된 자가 갖춰야 할 마음가짐을 군자라는 단어를 앞세워 표현한 것임은 앞에서의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이 장에서 나오는 단어들이 갖는 의미가 그저 현대 해설서에서 대강 설명해버리고 마는 현대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서는 그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기는커녕 오독(誤讀)해버리기 십상이라는 점이다. 그것은 과거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인지 주자는 그 오독의 출발점을 밟으려는 초심자들을 위해 공자가 선택한 단어가 갖는 정확한 의미부터 다음과 같이 해설한다.


‘畏(외)’는 엄히 여기고 두려워하는 뜻이다. ‘天命(천명)’은 하늘이 부여해준 바의 정리이니, 이것이 두려워할 만한 것임을 알면 곧 삼가고 두려워하는 마음이 스스로 그만둘 수 없어서 부여받은 소중한 것을 잃지 않을 것이다. 大人(대인)과 聖人(성인)의 말씀은 모두 천명에 마땅히 두려워해야 할 바이니, 천명을 두려워할 줄 알면 이것(대인과 聖言(성언))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여기서 ‘畏(두려워하다)’의 개념은 두려워하여 꺼리고 멀리하려는 마음이 생기는 것을 지칭하는 의미가 아니다. 결론부터 정의하고 설명을 시작하자면, 여기서 두려움이라는 것의 대상은, 자신이 제대로 된 삶을 영위해나가지 못할 것에 대한 두려움을 말하는 것이다.


즉, 그것은 늘 삼가고 조심스러워야 한다는 의미로 사용된 것으로 그 이유가 자연스럽게 첫 번째 천명(天命)에 대한 개념으로 이어진다. 즉,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것이라 자신이 멋대로 그냥 포기해 버릴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잃지 않고 소중히 해야 할 것이기에 그렇게 하지 못할까 봐 두려워한다는 표현으로 사용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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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명은 인간이 하늘로부터 부여받았다고 여겨 자율적으로 실천해 나가는 바로 그 도덕 내용이다. 주자는 이 천명(天命)에 대해, ‘하늘이 부여해 준 이치로 心性에 稟賦(품부)하여 인간으로 하여금 善으로 나아가고 惡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것’이라고 해석한 바 있다. 하지만, 다산(茶山; 정약용)은 주자의 해석이 미비하다고 비판하면서, ‘나날이 인간을 굽어보아 선악을 가려서 복이나 재앙을 내려주는 존재’도 천명(天命)이라고 부연설명한 바 있다.


그에 대해 이 장에서 주자가 천명을 두려워함을 ‘嚴憚(경계하고 꺼림)’으로 해석한 바와는 조금 다르게 ‘戒愼恐懼’라고 해석하였다. 배우는 자로서 자기완성을 위해서는 도덕실천의 의미를 완결시키는 것이 기본전제임과 동시에 결코 두 가지를 따로 떼어 볼 수 없음을 강조한 설명이라 하겠다.


그다음으로 주의해서 살펴봐야 할 단어는 바로 ‘대인(大人)’이다. 본래대로라면 그저 덕이 높은 사람을 가리키는 단어 정도라도 정리하고 넘어갈 수도 있겠으나 그렇게 되면 3단계로 이어지는 두려워야 할 대상들이 어떻게 연계되고 있는지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된다.


여기서 공자가 말하는 대인(大人)은 천명(天命)의 현전을 깨달은 사람으로서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 내가 굳이 작은따옴표로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라는 단어에 방점을 찍은 것은, ‘계씨(季氏) 편’의 전편을 가로지르는 주제의식을 간과해서는 이 장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다는 실마리를 일러주기 위함이다. 현대중국어를 포함하여 고문(古文)에서 ‘대인(大人)’이라는 단어가 갖는 의미는 기본적으로 신분이 높은 사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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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신분과 지위의 최고 정점은 당연히 천자를 의미한다. 세 가지 두려워할 것의 연결고리의 시작을 천명(天命)이라 한 것은 사람모두가 가져야 할 소명의식이기도 하지만, 중세봉건제에서 이미 신분과 지위가 정해져 있는 것을 은미 하게 가리키는 용어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두려워해야 할 것으로 제시한 성인의 말씀 역시 뜬금없이 나온 것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


성인의 말씀이란 바로, ‘禮樂과 道德의 원리나 祥瑞(상서)와 災殃(재앙)의 사실을 통해 천명의 실재를 가르쳐 주는 책이나 글’을 말한다. 성인의 말씀을 온전히 따르지 못하고 보존하지 못할까를 두려워해야 한다는 것은, 본래 알고 있는 천명(天命)에 대해 누구나 명확하게 파악하기 힘들기에 성인의 해설을 통해 스스로를 깨닫게 하는 과정으로 배우고 익히는 것인데 하늘이 본래 부여한 그 예악과 도덕의 가르침을 거스르고 참람된 언행을 하게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하게 언질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하늘이 이미 정해서 부여해준 천명(天命)에 대해 군자라면 반드시 덕이 높은 大人을 경외(敬畏) 해야 하고, 도덕의 기준이 되는 옛 성인의 말씀을 경외(敬畏) 해야 한다는 연결고리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논리구조로 세 가지 두려움의 실체를 설명한 것이다.


그런데, 이 장에서는 기존 세 가지 항목화 설명방식과 달리 군자와 대별되는 소인을 등장시켜 일종의 부연설명을 한다. 이것이 앞서 내가 설명했던 이 장의 가르침이 단순한 군자의 마음가짐이나 공부방식을 가리키는 것이 아님을 증명해 주는 또 다른 증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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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위에 설명한 군자로서의 방식을 따르지 아니한 소인(小人)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부러 그 역행하는 사례를 언급한 것이다. 이것은 설명이 아니라 당시 현실을 강렬하게 지적하는 일갈에 다름 아니다. 이것 역시 위의 세 가지 두려워해야 할 사안이 분리된 것이 아니라 연결되어 있는 연쇄적인 요소임을 다시 한번 강조하는 방식으로 활용한 것이기도 하다.


소인(小人)은 천명(天明) 자체를 알지 못하니 그것을 잃을까 두려워하지도 않고 그러한 이유로 大人을 함부로 대하는 것이고, 천명(天命)을 설명해 주고 일깨워주는 聖人의 말씀조차 업신여기게 된다는 설명이다. 이 과정을 주자는 다음과 같이 깔끔하게 정리한다.


‘侮(모)’는 희롱함이다. 천명을 알지 못하므로 의리를 알지 못하여 꺼리는 바가 없음이 이와 같은 것이다.


공자의 이와 같은 가르침을 읽은 윤 씨(尹焞(윤돈))는 이 장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세 가지 두려워함은 몸을 닦는 성실함에 당연한 것이다. 소인은 몸을 닦고 자신을 성실하게 함을 힘쓰지 않으니, 어찌 두려워함이 있겠는가.”


자고로 무지(無知)한 자는 두려울 것이 없다. 아무것도 모르는데 두려움이라는 것 자체에 대해서도 알 리가 없다.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존재하기 위한 기본 전제 중에는 그 대상에 대한 인지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이 있다. 때문에 두려움은 무언가를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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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예의 고수가 이른 경지가 얼마나 살벌한 것인지 올라보지 못한 서툰 허풍쟁이에게는 고수에게 시비를 걸면서도 자신이 조금 얻어들어 익힌 기술이나 자신의 알량한 힘이 최고라고 착각하며 스스로 망신을 자처한다. 단 한 번이라도 고수의 호된 가르침을 통해 대낮에 별을 본 경험이 있는 자라면 함부로 아무에게나 자신의 힘자랑을 하겠다며 시비를 걸지 못할 것이다.


시골 촌동네에서 천재소리를 들으며 학교에 들어간 이라도 대처에 나가 중학교,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자신보다 훨씬 더 똑똑하고 공부를 많이 한 친구들을 보면서 자신이 얼마나 범범한 존재였는지를 깨닫게 된다. 그런데 그런 대단해 보이는 친구들조차도 전국시험의 등수 안에 들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좁은 세상에서 세상을 모르고 살았는지에 대해 깨닫고 자신도 모르게 겸허해지게 된다.


눈에 보이는 학교성적이 그러할진대, 눈이 보이지 않는 도덕수양과 실천의 정도는 어떻게 깨달을 수 있을까? 앞서 예를 든 학업성적의 사례로 확장하여 살펴본다면, 공부를 잘하고 성적이 좋아 전국에서 수위에 달하는 학생들은 자칫 자신이 세상에서 모든 것을 다 얻을 수 있는 존재라고 우쭐할 수 있다. 공부만 잘하는 것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는 시대는 공자의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크게 달라진 것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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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정말로 공부만 잘하고 전국에서 1위를 하고 전국수석을 하고 사법고시 수석을 하고 의대 수석졸업을 한 이들이 최고의 삶을 영위하며 성공한 삶을 살아가는가에 대해서는 이미 세상을 먼저 살아본 인생 선배들이 그 답을 충분히 경험한 바 있다. 물론 공부를 잘해서 명문대학을 나온 이들이 그렇지 못한 이들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은 그 어느 누구도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이미 가로지를 정도의 것인가, 그리고 성적대로 사람들의 삶이 그리 쉽게 정해지던가?라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선뜻 답할 수 있는 사람은 많이 않을 것이다. 가장 대표적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재벌들은 어느 한 사람 전국수석을 했다는 둥 경성제대 수석입학이나 졸업이라는 둥의 뛰어난 성적을 자랑하지도, 아니, 가질 생각조차도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런 인재들을 돈으로 ‘부린다’.


멀쩡하게 훌륭한 성적으로 괜찮은 대학을 나온 사람들이 대기업까지 들어갔다가 다시 마흔이 넘어서 의대에 편입하기 위해 대치동 성인반에 몰려드는 것이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사회현상이기는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멀쩡한 의대를 때려치우고 자신이 하고 싶은 전공을 하겠다며 지방대 수학교육과로 입학한 사람도 있다. 사람마도 원하는 것이 다를 뿐이지 모두가 부와 명예를 거머쥐겠다고 바둥거린다는 생각을 당연한 상식이라고 항변하는 무지한 자가 되지 않길 바란다.


나는 이 장에서 공자가 말한 천명(天命)을 깨닫고, 그것을 제대로 알기 위해 성인의 말씀을 통해 그것을 공부하고 시비를 가리고 대인을 두려워하라는 가르침이 중세봉건제의 정해진 신분에 의문을 품지 말고 그저 자신의 윗사람을 섬기라는 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단언컨대, 공자 역시 그런 단순하고 무식한 의도로 이 가르침을 설파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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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상식이라고 말할 수 있는 천명(天命)은 어른을 어른으로 섬기고, 약자를 보호하고 잘못된 강자의 잘못된 논리에, 그것은 잘못된 것이라 일침을 가할 수 있는 배운 자로서의 마음가짐이자 삶의 자세일 것이라 나는 확신한다.


이 장의 말미에 대조적으로 원용된 소인이 군자와 정반대로 표현된 이유는, 소인으로서의 삶의 모습을 보이는 자들이 워낙 많았고, 그런 자들로 인해 세상이 오염되고 잘못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라는 공자의 판단에서였을 것이라 조심스럽게 짐작해 본다.


부모가 자식을 교육하면서 교과서를 펼치고 가정교육을 하지 않는 이유는, 가정교육이라는 것이 그렇게 가르칠 수 없는 것이기도 그렇지만, 그렇게 가르친다 한들 평상시 보여지는 것들이 그것과 다르다면 아무런 교육의 효과를 거둘 수 없기 때문에 그러하다. 공자의 평상시 가르침에 의거하자면, 가장 기본이 되어야 할 교육은 이미 가정에서 모두 이루어졌어야만 한다.


일타강사에게 수능을 만점 맞을 수 있는 시험 요령을 배울 수 있을지언정, 어른을 보고 공손하게 인사를 하는 것이나 가족 모두가 식사를 할 때 어른이 먼저 숟가락을 들지 않았는데 내가 바쁘다고, 공부해야 한다고 먼저 식사를 하는 것을 양해하는 것은 결코 배려도 사랑도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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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으로서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교육은 빨간펜으로 밑줄을 긋고 형광펜을 그으면서 가르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하루하루 매일같이 얼굴을 대하는 이들이 생활 속에서 보여주고 습관처럼 쌓이는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권력을 쥐고 있다는 자들이나 더 많은 권력을 쥐어보겠다고 아등바등거리는 자들이 그들의 부모에게 ‘네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서는 거짓말을 하거나 남을 해해도 된다’고 배웠을 리가 없고, 권력의 홍위군이 되어 방송에 분칠하고 나와 죽창을 휘두르 듯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떠들어대면서 제 자식들에게 ‘내가 이렇게까지 하는 게 다 너의 미래를 위한 거란다.’라며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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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당신의 보모님에게, 그리고 자식에게, 무엇보다 당신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마음가짐으로 그것을 잃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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