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가 그냥 시(詩)가 아니었던 이유
子曰: “小子何莫學夫『詩』? 『詩』可以興, 可以觀, 可以群, 可以怨. 邇之事父, 遠之事君, 多識於鳥獸草木之名.”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小子(너희)들은 어찌하여 詩를 배우지 않느냐? 詩는 意志를 흥기시킬 수 있으며, 〈정치의 득실을〉 관찰할 수 있으며, 무리 지을 수 있으며, 원망할 수 있으며, 가까이는 어버이를 섬길 수 있으며, 멀리는 임금을 섬길 수 있고, 새와 짐승, 풀과 나무의 이름을 많이 알게 된다.”
이 장에서 공자는 제자들에게 왜 시를 배우지 않느냐고 일갈한 뒤, 시를 배우게 되면 어떤 공효가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조목조목 설명해주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시(詩)’는 앞서 몇 번 설명했던 바와 같이 <시경(詩經)>을 의미하는 대표명사로 사용되는 단어이다.
주자는 주석에서 ‘小子(소자)’가 ‘제자’를 가리키는 단어임을 설명하는 것으로 이 장의 해설을 시작한다.
詩가 意志를 흥기 시킬 수 있다는 공자의 설명에 대해 주자는 다음과 같이 해설한다.
의지를 感發(감발)하는 것이다.
‘관찰할 수 있다’는 공자의 설명에는, 위 원문을 해석하면서 내가 괄호 안에 부연한 것과 같이 ‘정치의 득실’이라는 목적어가 들어가는 것이 훨씬 자연스러움에도 불구하고 은미 하게 감춰둔 것을 알 수 있다. 본래 고문(古文)에서 ‘觀’이라는 단어가 갖는 의미는, 풍속의 성쇠를 보아 사태의 得失을 考見(고견)함을 뜻한다.
이 부분에 대해 주자는 다음과 같은 해설을 덧붙인다.
득실을 상고해 보는 것이다.
‘무리를 지을 수 있다’는 공자의 설명에서, ‘群’은 많은 사람과 調和하되 방탕한 데로 흐르지 않는다는 의미인데 주자는 다음과 같이 부연하였다.
和(화)하면서도 방탕한 데로 흐르지 않는 것이다.
한편, 이 내용에 대해 다산(茶山; 정약용)은 빈객과 붕우를 善으로 인도한다는 뜻으로 풀이하였다.
이어, ‘원망할 수 있다’는 공자의 설명에 대해서 주자는 다음과 같이 해설한다.
원망하면서도 노여워하지 않는 것이다.
여기서 ‘怨’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정치를 諷刺(풍자)하여 원망하되 성내지 않는다는 뜻을 의미한다. 다산(茶山)은 이것을 원망의 의미를 알고 원망하는 법을 알게 된다는 뜻으로 풀이하기도 했다.
한편,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이는 ‘가까이는 어버이를 섬길 수 있으며, 멀리는 임금을 섬길 수 있다’는 설명에 대해서는 시(詩)에 담겨있는 다양한 메시지를 강조하며 다음과 같은 해설을 덧붙였다.
인륜의 도가 詩(시)에 갖추어지지 않음이 없으니, 이 두 가지는 중한 것을 들어서 말씀한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새와 짐승, 풀과 나무의 이름을 많이 알게 된다.’고 한 문학적인 설명에 대해 주자는 다음과 같이 해설한다.
그 緖餘(서여, 부수적인 것)가 또 많은 지식을 자뢰할 수 있다.
실제로 <시경(詩經)>에는 풀이 50종류, 나무가 52종류, 새가 36종류, 짐승이 24종류, 물고기가 14종류, 벌레가 18종이 구체적인 고유명사로 언급된다고 분석되어 있다.
<시경(詩經)>을 공부하는 것이 필수라는 강조는 이미 앞서 공부했던 ‘계씨(季氏)편’의 13장에서도 살펴본 바 있다. 공자는 자신의 아들 백어(伯魚)에게 시를 배우지 않으면 말을 할 수 없다고 가르쳤고 다음 장에 이어서 주남(周南)과 소남(召南)을 공부하지 않으면 담을 정면으로 마주 서 있는 것과 같다고 쓴소리를 한 바 있다.
<시경(詩經)>에 대한 공자의 정의이자 설명은 이미 ‘위정(爲政)편’의 2장에서 “시경 삼백 편을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생각함에 사특함이 없다(思無邪)’는 것이다.”라고 확실하게 방점을 찍은 바 있다. 그래서 ‘태백(太伯) 편’의 8장에서 시(詩), 예(禮), 악(樂)에 대한 공자의 교육관을 정리하면서도 “시에서 일으키고, 예에서 서며, 악에서 완성한다.”라고 한 것이다.
공자가 그렇게 강조에도 마지않았던 <시경(詩經)>이 어떤 책인지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있는 이들은 많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여 <시경(詩經)>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겠다.
<시경(詩經)>은 고대 중국의 시가를 모아 엮은 오경(五經)중 하나로, 본래는 3,000여 편이었다고 전하나 공자에 의해 305편으로 간추려졌다. <사기(史記)>의 기록에 의하면, 공자가 311편을 가려냈는데, 이 중 여섯 편은 제목만 전하기 때문에 305편이라 정리하여 말하는 것이다. 일일이 그것들의 가치를 평가하고 직접 자신이 편찬한 책이기에 공자의 편찬의도가 고스란히 반영되었기에 그 의미를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거니와 왜 그렇게 공자가 <시경(詩經)>공부를 강조하는지에 대한 배경도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될 것이다.
이 책에 담긴 노래들은 철기(鐵器)의 보급으로 농경문화가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봉건제가 정착되어 사상과 예술이 처음으로 활짝 피던 주왕조 초에서 전국(戰國) 중기에 불려졌다. 분포 지역은 황하(黃河)를 중심으로 한 주나라 직할 경역이었으리라 추정된다.
공자가 직접 천하를 바로잡는 것을 포기(?)하고 고국으로 돌아와 만년에 제자를 가르치는 것에 모든 것을 올인했을 시기, 공자는 커리큘럼 중에서 육경(六經) 중에서 바로 <시경(詩經)>을 가장 우선으로 삼았다. 시는 인간의 가장 순수한 감정에서 우러난 것이므로 정서를 순화하고 다양한 사물을 인식하는 데는 그 만한 전범(典範)이 없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시경(詩經)> 305편은 풍(風)·아(雅)·송(頌)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풍(風)은 ‘국풍(國風)’이라고도 하는데 여러 제후국에서 채집된 민요와 민가들이다. 사랑의 시가 대부분으로, 남녀 간의 애틋한 정과 이별의 아픔 등이 아주 원초적인 목청으로 소박하게 그려져 있다.
아(雅)는 대아(大雅)와 소아(小雅)로 나누어진다. 궁궐에서 연주되는 곡조에 붙인 가사로 귀족풍을 띠고 있다. 송은 종묘의 제사에 쓰이던 악가(樂歌)로, 주송(周頌)·노송(魯頌)·상송(商頌)이 있다. 풍·아·송에 부(賦)·비(比)·흥(興)을 더한 것이 이른바 육의(六義)인데, 논란이 있기는 하나 대개 전자는 내용·체재상의 구분이고, 후자는 수사상의 분류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부(賦)·비(比)·흥(興)에 대해서 간략하게 살펴보자면, 부(賦)는 마음에 느낀 것을 사실 그대로 읊는 것을 말하고, 비(比)는 비슷한 것을 예를 들어 비유하는 형태를 의미하며, 흥(興)은 노래하려는 일과 닮은 다른 일을 먼저 노래한 다음에 노래하려는 심정을 펴는 것이다. 그래서 부(賦)는 직서(直敍) 법에 해당하고, 비(比)는 비유(比喩) 법에 해당하며, 흥(興)은 주제의 서술에 앞서 흥을 돋우는 방법으로 구분한다.
고대 제왕들은 먼 지방까지 채시관(採詩官)을 파견해 거리에 나돌고 있는 노래며 가사들을 모아 민심의 동향을 알아보고 정치에 참고로 삼았다고 하며, 조정의 악관(樂官)에게 곡조를 붙이게 해 다시 유행시킴으로써 민심의 순화에 힘썼다고 한다. 악보가 전해지지 않아 시의 곡조는 알 수 없다.
이러한 내용을 감안해 본다면, 사실 중국의 풍토와 공자 당대의 실정을 알지 못하는 이들이 고문을 공부하겠다고 <시경(詩經)>을 공부하는 것은 다소 따분하고 어려운 단어가 가득한 사전을 공부하는 기분을 지울 수 없다는 푸념을 풀어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장을 공부하면서 다시금 집중하여 풀어야 할 의문은, 공자가 왜 그렇게 <시경(詩經)>에 대한 공부를 강조하였는가 하는가 하는 점이다.
앞서 언급했던 <시경(詩經)>이 갖는 의미를 모두 포함하여 공자가 자신의 가르침이나 성인군자라 일컬어지는 이들의 저술이 아닌, 전문 창작인도 아닌, 일반 백성들의 유행가라고 할 수 있는 시(詩)를 모은 <시경(詩經)>을 반드시 공부해야 할 것으로 꼽은 이유는 너무도 명확하다.
제대로 배우지도 않았지만 자신의 성정(性情)을 멜로디에 담아 불렀던 부분에 방점을 두었다면 그것은 인간의 감정을 그대로 표현한다는 서정적인 문학 본연의 의미를 탐구하는 것으로도 의미가 있을뿐더러, 과연 백성들이 당시에 어떤 일에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 관심사들이 어떤 감정으로 표출되었는지를 아주 절실하게 드러낸 살아있는 자료이기에 배우는 자들에게는 그 어떤 훌륭한 말씀보다도 먼저 배워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즉, 지식적인 것이나 훌륭한 가르침보다 고전을 읽으면서도 생전 사용하지도 않을 풀이름이나 이름 모를 식물이나 곤충의 이름도 그렇고 심지어 특정 지역에서만 사용하는 사투리성 단어에 이르기까지 그 어려운 한자공부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사람, 그것도 많이 배우고 훌륭하다고 추앙받는 인물들이 아니라 언제 사라졌을지도 모르는 이름 모를 백성들의 성정이 그대로 담겨 있는 그 자료자체만으로도 공부가 된다는 공자의 메시지는 결국 공자가 무언가를 배우려는 제자들에게 가장 먼저 인식시키고자 했던 것이 무엇인지를 가늠해 볼 수 있다.
그래서 주자는 이 장을 마무리하면서 다음과 같이 그 가르침의 정수를 정리한다.
시를 배우는 방법을 이 장에 다하였으니, 이 《詩經(시경)》을 읽는 자가 마땅히 마음을 다하여야 할 것이다.
이미 이 장의 상세한 설명을 통해 시가 할 수 있는 공효(功效)에 대해 공자는 이미 모든 것을 일러주었다. 위 주석에서 주자가 강조한 바와 같이 결국 <시경(詩經)>을 읽으며 마음을 다하라는 설명은 어려울 것이 없지만 사람의 마음을 읽는 것이 가장 어렵다는 성인의 가르침을 아주 잘 묘사한 설명이라 하겠다.
젊은 날 사랑하던 이와 이어폰을 함께 나눠 끼우고 듣던 그 시절의 노래가 거리에서 흘러나오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올 것 같은 것은, 음악이, 그리고 그 가사가 그리고 그 안에 담겨 있는 오래 묵혀두었을 추억이 흥기(興起)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 과정을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못하더라도 그저 그 가사 한 자락만으로 그 멜로디 하나만으로 한꺼번에 저 깊은 곳에 잠겨 있던 내 모든 추억과 사랑이 마치 그날처럼 살아 움직이는 순간을 느껴본 사람들이라면 이미 시(詩)가 가지고 있는 흥(興)의 기능을 몸소 체험한 셈이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연병장을 달리며 불렀던 그 투박한 군가를 들으면 노병이 되어버린 늙은 남자라도 다시 젊은 피가 끓어오르던 그 시절로 돌아가는 것만 같은 것은 군가의 박력 있는 박자나 힘 있는 가사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수려한 문장이나 세련된 말로 사람을 움직일 수도 있겠으나 별것 아닌 것 같은 거칠고 삐뚤빼뚤한 맞춤법도 제대로 맞추지 못한 못 배운 자의 글씨가 진심을 담아 움직이는 것과 다름은 그것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결코 가늠하지 못한 감동의 깊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모두가 백성의 입장을 경험해 보고 가난한 사람의 입장을 처해보고 환자의 경험을 해보고 공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자들도 물론 그러할 것이지만 흙수저랍시고, 자수성가했답시고 올챙이시절을 생각하지 못하고 거들먹거리는 자들은 더더욱 자신이 어려웠을 처지의 시절을 감사히 여기며 지금 그와 같은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 공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 장에서 공자가 그토록 시(詩)를 강조한 이유는, 비록 그 경험을 모두 공유해보지 못했더라도 그 마음을 온 마음을 다해 부대껴 공감하는 것이 공부 몇 자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고 일러주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조심스레 짐작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