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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생각하는 의로움이란 과연 무엇인가?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 용맹함을 넘어 사나운 자들에게.

by 발검무적
子路曰: “君子尙勇乎?” 子曰: “君子義以爲上, 君子有勇而無義爲亂, 小人有勇而無義爲盜.”
子路가 말하기를 “君子는 용맹을 숭상합니까?” 하니,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君子는 義로써 上을 삼는다. 君子가 勇만 있고 義가 없으면 亂을 일으키고, 小人이 勇만 있고 義가 없으면 도둑질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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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씨(胡寅(호인))의 주석에 의하면 이 장은 자로(子路)가 공자를 처음 만났을 당시의 대화로 추정되는, 그야말로 자로(子路)가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었던 인물인지를 오롯이 드러내는 질문과 대답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공자의 제자 중에서 용맹함과 의리에 대해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만한 한때 다혈질의 주먹깨나 썼던 자로(子路)였던 지라 군자를 목표지향으로 삼으라 했던 가르침에 대해 당연히 자신이 누구보다 뛰어나다고 여겼던 용맹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처음 만남부터 워낙 특별했던 터라 그런 자로(子路)의 성향을 공자가 간파하지 못했을 리가 없다. 이에 공자가 그에게 내놓은 해답(?)은 먼저 의(義)라는 개념을 우선으로 삼아야 한다고 전제한다. 그 한 가지 설명만이면 자로(子路) 같은 초심자들의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쉬웠을 텐데, 공자는 거기에 더해 생각할 거리를 숙제로 주듯 비유를 더한다.


실제로는 생각할 거리나 숙제라는 의미에 앞서, 용맹함을 설명하는 데 있어 왜 의(義)라는 개념을 우선으로 삼아야 하는지에 대한 심화설명에 해당한다. 군자와 소인의 경우가 다르다며 두 경우에 대해 勇만 있고 義가 없는 균형이 깨진 경우를 설명하는 방식을 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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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악하여 정리하면, 勇이라는 것은 언제나 義라는 것이 전제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할 경우 군자는 亂을 일으키고, 小人은 도둑질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알 듯하면서도 군자라면 절대적인 완성체인데 어째서 亂을 일으키는 우를 범하게 되는지에 대한 설명이 상세히 풀이되어 있지 않다.

그 의문에 대해 주자는 아래 주석을 통해 여기서 군자(君子)와 소인(小人)은 지위에 한정된 표현이라고 부연한다.


‘尙(상)’은 숭상하는 것이다. 군자가 난을 일으키고 소인이 도둑질을 한다는 것은 모두 지위로써 말한 것이다.


이 장에는 君子란 단어가 총 세 번 언급되는데, 처음 둘은 본래 목표지향점인 有德者를 의미하고, 마지막의 소인과 대비되어 표현되었을 때만 爲政者를 가리키는 것으로 구분된다.


한편, 윤 씨(尹焞(윤돈))는 공자가 자로(子路)에게 해준 이 장의 가르침은 핵심이 바로 용맹함에 있어 의(義)를 위주로 삼아야 함이었다고 설명한다.


“의로써 상을 삼으면(의를 숭상하면) 그 용(勇)이 크다 할 것이다. 자로(子路)가 용맹(勇猛)을 좋아하였으므로 夫子(부자)께서 이것으로 그의 잘못을 바로잡아주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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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로(子路)는 스승 공자에 기탁하여 배움을 시작하면서 善言善行을 보면 즉각 받아들이고 義理를 실천하는 데에는 용맹했으나 학문으로 궁구하는 습관이 신실하지 못한 탓에 스스로의 한계나 폐해(弊害)에 빠질 공산이 큰 인물이었다. 그래서 ‘양화(陽貨) 편’의 8장에서 공자는 그에게 이른바 ‘六言六蔽(육언육폐)’를 일깨워준 바 있었다.


즉, 仁 知 信 直 勇 剛의 六言도 학문을 하지 않으면 각각 愚 蕩 賊 絞 亂 狂의 六蔽에 빠질 수 있다는 지적이었다. 그 설명에서도 勇의 덕이 있더라도 학문으로 궁구하지 않게 된다면 亂의 폐단에 빠진다고 했으니, 그 가르침은 바로 이 장의 용맹함에 대한 가르침으로 다시 연결된다.


이 장에서 가장 중시되는 개념은 앞서 공자가 강조한 바와 같이 ‘의(義;의로움)’이다. 이는 질문을 한 당사자였던 자로(子路)가 용맹함과 의로움에 대해 명확한 구분이 없어 보였거나 의로움이라는 개념을 명확하게 세우지 못했다고 여긴 공자의 특약처방에 해당하는 가르침이었다.


그렇다면 공자가 자로(子路)에게 일깨워주고 싶어 했던 그 ‘의(義;의로움)’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흔히들 말하지만 용맹한 것과 연관 지어 생각했던 의로움에 대해 딱히 뭐라 정의하는 것도 조금 애매해진다. 이런 경우, 해당 개념을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대 개념을 통해 대조적으로 이해하는 방법도 효과적일 때가 있다. 의로운 것의 반대개념은 무엇일까? 바로 사리사욕만을 추구하는 것이 그것이다. 안중근 의사를 떠올리게 하는 그의 유묵(遺墨) 중에서 유명한 ‘견리사의(見利思義)’가 바로 그 의미를 반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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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정리하자면, 자로(子路)가 자부했던 자신에게 꽉 차 있었던 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표현방식인 용맹함이었을 뿐, 그러한 마음가짐과 과감한 행동이 무엇을 위해서 행해지는가는 정작 바로 서 있지 않음을 공자는 지적해 줌으로써 그가 가장 중요한 부분을 간과하고 있음을 깨닫게 하고자 한 것이다.


의로움은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에 대한 근거이고 이유이자 대의명분이다. 때문에 군자가 의로움이라는 대의명분이 없으면서 용맹함만 있게 되면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난을 일으킨다고 구체적인 사례를 든 것이고, 소인은 자신의 사회적 지위에서 정권을 잡을 수 있을만한 깜냥조차 되지 않으니 그저 도둑질을 한다고 매우 현실적인 사례를 제시한 것이다.


그런데 이번 ‘양화(陽貨) 편’에서 배웠던 내용을 종합해 본다면, 공자가 굳이 세 번의 군자 언급 중에서도 마지막 한 언급만을 위정자에 해당하는 사회적 지위만으로 설명한 것은 그에 대비되는 소인이 갖는 사회적 지위와는 별개로 두 개념 모두가 도덕적인 의미에서 소인에 해당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의로움을 제대로 공부하고 수양의 기본으로 삼는 군자와는 달리, 소인은 행동함에 있어 언제나 사리사욕을 주목적으로 삼고 자신의 욕망을 달성하기 위해 하지 못할 일이 없을 정도로 과감한 용맹함을 보이기 때문이다.


파란당의 당대표가 경기도지사를 하던 시절 인수위 때부터 초대 비서실장을 지낸 전 수정구청장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자, 이미 관련 사건으로 검찰의 압박을 받다가 지병으로 세상을 뜬 인물까지 포함하여 다섯 사람의 목숨을 빼앗으면서까지 욕심의 정치를 이어나가고 있다며 빨간당의 인물들과 스피커들은 연일 기레기 언론을 통해 집중포화를 쏟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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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파란당의 당대표는 기자들 앞에서 울분과 분노를 터트리며 광기라며 검찰의 압박으로 인해 또 한 명의 힘없는 국민 한 명이 선택하지 않아도 될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점을 지적했다. 그랬더니, 어찌 되었든 야당의 대표이자 자신이 연루된 사건인데, 일단 묻고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자신의 잘못이라고 의견을 표하지 않았다며 빨간당 무리들은 입에 피가 흐르는데도 불구하고 물고 놓지 않는 투견처럼 으르렁거리길 멈추지 않았다.


그 광기 어린 모습이 기레기 케이블을 여기저기 가득 채워 떠들어대는 것을 보면서 불편함을 넘어 거부감이 심하게 올라왔다. 왜 그런 거부감이 쓰나미처럼 몰려왔는지 내 감정과 사실관계를 찬찬히 살펴보고 나서야 그 뒤에 있던 뚱뚱한 그림자 하나가 어퍼컷을 하며 매직아이처럼 올라왔다.


맞다. 국민들 전체를 진정한 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네이티브 스피커인지 의심하게 만들었던 저 유명한 ‘바이든을 날리면~’의 블랙 코미디 사건이 발생했을 때가 기억난 것이다. 지금 파란당의 당대표가 인간적으로라도 먼저 무조건 자신의 잘못이라고 말하지 않는다며 지적질해대는 자들 중에서 어느 한 명도 당시에 어퍼컷을 날리며 자신은 그런 말을 한 기억이 없다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도 사과하지도 않았던 대통령에게 그래서는 안된다며 바른 목소리를 낸 자는 없었다.


일본의 정치제도와 꼭 닮아 있는, 현직 국회의원을 하면서 외교부장관을 겸직하는 자는 자신이 바로 대통령의 곁에서 그 말을 들었으면서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는 둥, 심지어 그 말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는 둥 본질을 흐리는 말을 서슴지 않았다. 대통령이 자신의 동문만이 그리고 자신과 같은 칼잡이 직업을 가졌던 자들만이 가장 일을 잘한다면서 도처에 낙하시켰던 검찰출신의 인사들 중에서 어느 한 사람도 대통령이 별 대단한 것도 아닌 것으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사과하지 않는 자세로 일관한 탓에 정국이 꼬여만 간다고 직언을 하지 않았다.

search.pstatic.jpg 밑빠진 독에 물붓기가 아니고?

이제까지의 공부를 통해 너무도 잘 알고 있지만, 자로(子路)는 많이 공부하지 못하고, 먹물이라고 불리는 지식인이나 학자타입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이른바 협객이었다. 힘 있는 것들이 힘없는 자들이 억누르고 제멋대로 전횡하는 것을 결코 묵과하지 않고 바로 주먹을 날려 그 불합리를 해소하려는 용맹함을 가진 이였다. 그가 가진 용맹함이란 말 그대로 아무것도 배우지 않은 백성들의 입장에서 보기만 해도 듣기만 해도 말도 안 되는 불합리함과 불공평처럼 상식에 위배되는 부정에 대해 결코 간과하지 않는 단호함(?)에 기반한 것이었다.


공자는 자로(子路)의 그 단순무식함이 향하고 있는 바가 올곧은 것임을 누구보다 먼저 알아차렸다. 하지만, 그를 제자로 받아들이고나서부터 그러한 성향으로 인해 결국 억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며 내내 강직한 자로(子路)를 걱정했던 것은 그의 강직함이 세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고, 무엇보다 그가 더 큰 사회의 변화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그가 갖추고 있지 못했던 것들을 채움으로 인해 균형을 찾게 하고자 함이었다.


이 장에서 공자가 설명한 바와 같이, 용맹함만이 가득하고 의로움을 갖추지 못하게 된 이들은 결코 그 균형을 갖추지 못한 것이 아니다. 그들이 가진 것은 용맹함이 아님을 공자는 역설한다. 다시 말해 그나마 자로(子路)가 용맹함이라고 자부할만한 것은 그나마 용맹함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라도 되었으나, 원문의 마지막 구절에서 공자가 군자를 도덕적인 본래의 의미로 사용하지 않은 이유와 같이 강조했던, 사리사욕을 위해 하지 못할 바가 없는 추악한 이들의 민낯은 그것과는 비할 바 없음을 일깨워준 것이다.


파란당의 당대표가 성남시장 때부터 경기도지사를 따라 돈냄새를 맡고 같은 무리를 자처하며 자신이 용맹하다며 거칠 것 없이 원리원칙을 뭉개고 호가호위(狐假虎威)하던 자가, 갑작스럽게 정의의 화신이 된 것마냥 자신이 지은 죄는 자신이 다 짊어질 것인데, 정작 더 큰 죄를 지은 파란당의 당대표가 거짓말을 한다며 자신이 지은 죄를 모두 인정했으면 좋겠다고 연일 법원의 앞에서 인터뷰를 자처하는 것을 보며, 그리고 그것을 대서특필하여 광고인지 뉴스인지조차 헷갈리게 만드는 기레기 언론사들의 행태가 그야말로 목불인견(目不忍見)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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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연일 쏟아지는 그 광고 같은 방송의 영향력(?)으로 인해, 그가 매일같이 쏟아내는 그 당당한 인터뷰하는 모습만 보았을 때는 그가 정말로 오로지 돈을 바라고 권력에 기생했던 인물인지가 정말로 헷갈리게 만든다. 그는 자신이 처음과 달리 말을 바꾼 근거로 자신이 형제라고 믿었던 사람들의 배신을 겪으면서 믿고 있던 이들에 대한 신뢰가 깨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가 처음 증거를 인멸하겠다고 건물 밖으로 핸드폰을 던지는 생쇼를 하고 누군가가 시킨 대로 쓰레기 음식을 먹고서라도 병원에 가려고 했던 이유가, 그의 말대로라면 의리를 지키기 위함이라는 것인데, 그가 거쳐온 삶의 이력을 지켜봐 왔던 이들이라면 그가 정말로 그 의리라는 것을 지키기 위해 그랬던 것이었는지 아닌지를 구분하는데 섬세한 통찰력까지도 필요치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가 본격적인 부동산 관련 사업에 눈을 돌리기 시작할 즈음, 자신이 살던 아파트 리모델링의 조합장이 되겠다고 제출했던 이력서에는 건축 관련 이력이 필요했던지 건축사사무소에서 근무 중이었다고 기재되었다고 보도된 바 있는데, 권력에 선을 대고 자신의 위치가 정치적으로 활용가치가 크다는 것을 침소봉대하며 기획본부장으로 승승장구해서 임명되던 당시 시의회에서 경력이 논란이 되자 3년 정도 건축분야에서 일했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그러나 나중에 위원회 내부자들의 진술로 밝혀진 사실에 따르면, 운전기사로 두 달을 일했을 뿐 실제로 건축일이라고는 해본 적이 없다고 사실이 드러나고 말았다.


유일하게 그의 변절과 동시에 180도 바뀐 자백에만 의존하는 검찰은 그의 진술이 갖는 신빙성에 대한 의문의 집중포화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 돈을 정확하게 언제 줬는지 왜 특정하지 못하냐고 지적하는 법원과 상대 변호사의 질문에 그는 ‘돈을 받은 사람이 잘 알겠지, 내가 그때 고발할 의도도 없었는데 정확하게 기록해 뒀을 리가 있느냐?’라고 어이없는 반문을 했다고 한다. 그의 말을 신뢰할 수조차 없지만 그의 진술에 의거하더라도 김만배 일당에게서 돈을 전달하라고 했는데, 그 금액 중에서 일부를 자신이 가로채고 전달조차 100% 하지 않았다는 블랙코미디 같은 사실까지 버젓이 보도가 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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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어떤 의로운 자가 뒷돈 거래를 하면서 자신이 셀프로 자신의 몫을 알아서 가로채고 돈을 전달하며, 기자들 앞에서 당당하게 자신이 그랬던 것은 의리를 위함이었다고 한단 말인가? 이 장의 가르침에 따르자면 소인들이 사리사욕을 위해 무슨 일이든 서슴지 않고 감행(?)해놓고서는 도둑질을 합리화한다고 지적하였는데, 공자는 수천 년 후 대한민국의 유 모 씨를 이미 꿰뚫어 보고 있었던 신력(神力)이라도 갖추고 있었단 말인가? 아니면 수천 년이 지나도록 우리는 공자의 시대보다도 단 한걸음조차 나아가지 못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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