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지간해서는 이제 썩어빠진 정치인의 얘기를 직접적으로 하는 것도 넌더리가 나서 그만두고 싶었다.
그런데 어제 보다보다 이렇게 썩은 정치인이 있나(참고로, 정상적인 상식하에서라면 국무총리는 정치인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다.)싶어 자신의 정치생명만큼 낡고 늘어져빠진 저 라바의 딴청에 애먼 화면에 뭔가를 던질 뻔했다.
"쟤 도대체 뭐래는 거니?"
저 4분간의 횡설수설을 들으며 황당하기 이를 데 없었다.
세 정부에 걸쳐 주요 공직을 거쳤다며 여기저기 이익을 챙기고 정치 생명을 구걸하는 총리라는 자가, 그렇게 똑똑하다고 자부하며 경성제대를 졸업하고 하버드에서 나랏돈 다 챙겨 먹으며 경제학 석사와 박사학위까지 받아온 자가 과연 '국익'이라는 단어의 뜻을 몰라서 저 짓을 벌였을까?
아무리 동문서답에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정신줄을 놓는 시기가 온다고 하더니 그런 가능성을 모두 열어두더라도 저건 정도가 너무 심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무엇보다 그는 전혀 정신줄을 놓거나 멍청해서 말귀를 못 알아들은 자가 아님이 명약관화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와 같은 생각에 저 4분의 영상을 뉴스로 던져놓은 기자 역시 '국익'이라는 것에 방점을 찍었을 것이다.
충분히 이해한다.
하버드 박사가 아니라 박사 할아비가 와도 논리적으로 말도 막히는 질문을 던졌는데 무슨 제대로 된 답변을 할 수 있었겠는가? 그런데, 그러면 대개 배운 자라고 하는 이들은 입을 닫거나 최소한 자신이 제대로 된 논리적인 답변을 내놓을 수 없음을 부끄러워하기라도 한다.
아이가 잘못했을 때 학교 담임선생이 '느그 부모님 낼 학교에 오라고 해라!'라고 하면 학교를 찾은 '제대로 된' 부모는 일단 시비를 확인하고 자식의 잘못임이 명확하다면 괜한 거들먹거림은 배제하고 고개를 숙여 자식을 제대로 교육시키지 못한 잘못을 사과한다. 그것이 상식이고 도리이다.
대통령이 국정경영이라고는 해본 일이 없이 맨날 폭탄주를 날리며 검찰에서 잔뼈가 굵어 좌충우돌이라고 하여 닳고 닳은 사람을 총리로 앉혀놓았으면 최소한 총리는 제대로 된 사회의 어른된 모습을 보여야 나중에 자기 자식들에게 부끄럽지 않을 것 아닌가? 나중에 자기 자식이나 손주들이 이 영상을 본 다른 친구들에게 이게 뭐냐고 지적한다면 총리의 손주가 입이 열개라고 한들 뭐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냔 말이다.
용산과 빨간당은 내내 국익을 위한다며 목소리를 높여왔다.
그래서 정작 일본에서 오염수를 방류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어떤 국익이란 말인가, 하는 질문은 아주 근본적이면서도 그들의 폐부를 찌르는 질문이었을 것이다. 정말 우리의 국익과 일치한 무언가가 있다면 저런 질문에 시원하고 명쾌하게 정리해 주는 것이 총리의 역할이자 책무일 것이다.
그런데 저 꼴이 도대체 무어냔 말이다, 꼴 사납게시리...
강의를 하거나 면접을 하거나 논문심사를 할 때 학생에게 질문을 던진다. 너무도 당연한 사실이지만, 그 질문은 궁금해서 던지는 질문이 아니다. 그가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혹은 그가 저지른 실수에 대해서 잘못을 지적하고 그 잘못을 수정하도록 깨닫게 하려고 던지는 질문이다.
그런데, 제대로 대답을 못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차라리 대답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얼굴이 붉어지거나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경우는 귀엽기라도 하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나오는 대로 아무말대잔치를 해대는 자에게는 일말의 동정조차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탈락시키거나 배제시켜 버리게 된다.
"죄송합니다. 제가 공부가 부족해서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제대로 답변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모범답안까지는 아니지만,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데 '그래. 그러니까 다음 기회에 더 잘해라. 이번엔 탈락!'이라고 할지라도 최소한 그 학생에 대해 근본을 의심하고 폄하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그 차이는 별것 아닌 것 같지만 그 바닥에 계속 남아 있을 생각이거나 그 조직에 들어오기 위한 면접을 또 볼 생각이라면 아주 중요한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입건된 사건의 수만 무려 3년 치 60 케이스에 해당한다며 채용비리를 수사하고 있는 현재 담당 수사관이 힘겨움을 토로했다.
"아마도 자료 정리만 하고 제주경찰청에 이 사건을 그대로 저나 제 팀에서 할지, 아니면 청에서 가져가서 할지에 대한 의견을 물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바로 국수본(국가수사본부)에 전화를 걸었다.
용산에 있는 어퍼컷 대통령이 수차례 강조하지 않았던가.
"채용비리는 국가의 거대악 중 하나이니 반드시 척결하도록 하겠습니다. 이권 카르텔들을 박살내서 그들이 챙겨간 이익을 반드시 환수하도록 하겠습니다."
십수 년에 걸쳐 공공기관의 이름으로 수백억의 돈을 무자격자들에게 탕진하고 결국 그 이익을 자신들이 뒷돈으로 세탁하여 사용하고 있었던 재단의 신종 채용비리를 3년 치만 들춰보아도 60 케이스나 나왔다.
겨우 한 명의 경찰이나 4명의 한 팀이 1년 내내 매달려도 결론을 내기가 어렵다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사건은 과거 광역수사대라 불렸던 전국구 단위의 수사가 가능한 청 단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상례이다.
그런데 국수본에 연락해서 내가 정식으로 서류를 넣어줄 테니 빨리 서울경찰청의 반부패 수사팀이 수사를 진행할 수 있도록 컨트롤을 해달라 하니 담당이라는 경감 녀석이 이렇게 말했다.
"말씀하지 않으셔도 만약 제주 서귀포서의 담당 팀장님이 그렇게 제주청에 요청하고 제주청에서 서울청에 요청하면 저희 국수본에서 중간에 조절해 드릴 겁니다."
"그건 지금의 팀장이 위에 서류로 상신하고 제주청과 이야기하고 제주청에서 다시 1,2주 묵혀서 검토합네, 하는 거고 또 서울청의 담당부서에서 검토합네 하면서 1,2주 쓰겠지요, 그런 쓸데없는 시간을 낭비하지 않으려고 내가 지금 전화한 거 아닙니까?"
"아, 교수님 심정은 이해가 갑니다. 그리고 지금 설명해 주신 내용 들어보니까 저도 처음 듣지만 정말 충격적인 사건이기도 하네요. 그런데 모든 민원인들은 자신의 사건을 최우선으로 하기를 원합니다. 그렇다고 모든 절차를 무시하고 그럴 수는 없는 거지요. 원칙대로 해드릴 겁니다. 제가 특별히 신경 쓰고 보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면 대부분의 사람은 그에게 감사하다며 전화를 끊었었을 것이다. 그의 목소리 언저리에 그 경험이 느껴졌다. 그런데, 그는 오늘 상대를 잘못 만났다.
"난 지금 경감이 특별히 신경 써서 봐달라고 요청하려고 전화한 게 아닙니다. 원칙에 맞춰서 제대로 다 알아보고 조언받아서 서울경찰청의 반부패 수사팀에서 이 사안을 원활하게 받을 수 있도록 조율해 달라고 구체적인 요청을 하려고 이 긴 설명을 한 겁니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월요일에 서귀포서의 팀장에게서 원칙에 맞춰 이 사안이 서울경찰청으로 이첩되어야 할 사항인지를 확인하고 그 부분을 서울 경찰청의 반부패 수사팀이 조속히 인계받을 수 있도록 조율해 달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정식으로 요청이 순서대로 오면 원칙대로..."
말귀를 못 알아먹었거나 알아들었는데 위의 라바처럼 엄한 소리로 자신의 궁색함을 벗어나려 함인지 그도 저도 아니고 둘 다인지 그가 헛소리를 내뱉기 시작했다.
"난 정말 싫은데, 경찰들은 꼭 위에서 내리꽂아줘야만 일을 하더라구요. 내가 위에서 연락이 가도록 해주면 됩니까?"
"아! 외압을 넣으실 거면...."
"어디다 대고 함부로 외압이라는 표현을 씁니까? 내가 오늘 요청한 부분에 대해서 담당자가 제대로 수용하지 못한 부분을 항의할게요."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원칙대로만 진행하자구요. 끊습니다."
대개의 이런 부류들은 내가 블러핑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경찰뿐만 아니다. 대개 이렇게 살아왔던 이들은 정말로 말한 대로 위에서 정말로 연락이 와서 찍어 눌린 경험이 대부분은 없기 때문에 그렇게 웃으며 튕겨내고 만다. 그래서 나는 또 그 짓을 반복하는 게 너무너무 싫지만 끝장을 보고야 만다.
처음 국수본에서 반부패 범죄수사계에서 국민권익위의 수사의뢰를 제주도에 보냈던 여자 경장이 이렇게 말했다.
"원래 채용비리건은 의율적용이 업무방해로 규정되기 때문에 경제수사 범죄계에서 맡습니다. 그리고 저희 국수본은 직접 수사를 하는 곳이 아니라 각 청의 수사를 조율하는 행정적인 역할만 맡습니다."
신종 아재 개그인가? 수사본부에서 수사를 하지 않는다, 라니.
설사 그 설명이 긴 사족을 달아 그런가 보다 하더라도 그다음 내 대꾸에 그녀는 입을 닫았어야만 했다.
"본래 채용비리가 대개 의율적용이 업무방해로 되는 건 맞는 말이에요. 그런데 지금 국민권익위의 채용비리신고센터에서 수사의뢰가 들어간 건, '청탁'이라고 해서 부정청탁을 명시적으로 표기했는데요. 부정청탁은 본래 반부패 수사계에서 하도록 업무분장이 되어 있는 걸로 아는데요."
"아, 그게 그러니까..."
"그러니까...?"
"그러니까 그게 부정청탁이 있는지 없는지는 수사를 해봐야 아는 거니까요."
"업무방해인건 수사를 안 해봐도 알고?"
"예? 아니 그러니까..."
"그러니까..."
대개 자신이 잘 모르거나 논리적으로 할 말이 없으면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거나 사과하는 것이 도리이다.
도리를 모르는 자들이 판치는 세상이라 총리가 저 지경이니 국수본의 것들이 뭘 보고 배우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