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배신할 자를 알아보는 법
해서는 안 되는 일을 기어코 하는 자.
孔子謂季氏: "八佾舞於庭, 是可忍也, 孰不可忍也?"
공자께서 계씨를 두고 말씀하셨다. "팔일무를 자신의 뜰에서 공연하게 하였으니 이런 짓을 차마 한다면, 무엇을 차마 하지 못하겠는가?"
공자가 이렇게 화를 직접적으로 내는 것은 <논어>에서도 매우 드문 일이다.
먼저 어떤 인물이 이렇게 공자의 화를 돋웠는지 한번 알아보기로 하자.
계씨(季氏)는, 계손씨(季孫氏)의 후예로 노(魯) 나라 소공(昭公) 때의 대부였던 계평자(季平子)를 가리킨다.
굳이 당시 신분제를 모두 설명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울 테니 생략한다.
간단히 설명하면, 계씨는 대부라는 3번째의 위치이고, 자기 두 단계나 위에 천자라는 모셔야 할 윗사람이 있는 위치였다.
공자가 살았던 당시 노나라에는, 계손씨 외에도 맹손씨(孟孫氏, 일명 仲孫氏(중손 씨))·숙손씨(叔孫氏)가 있었는데 이른바 이 삼가(三家)의 대부들이 춘추 시대 후기에 노나라의 정치를 전횡한 세도가이다.
공자가 매번 이 세 대부들을 꾸짖은 이유는 하나였다.
이들 자신의 신분에서 해서는 안 되는 윗사람들만 행하고 누릴 수 있는 것들을 멋대로 하는 참람한 짓을 감행했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예로 팔일편의 첫 장에
이 팔일무라는 것이 나온다.
당시의 예법에 의하면 악무를 공연할 때 천자의 무대(舞隊)는 여덟 줄,
제후는 여섯 줄, 대부는 네 줄, 사(士)는 두 줄로 늘어서게 되어 있었는데
노나라는 주나라 왕실에 공이 큰 주공(周公)을 봉한 나라이기 때문에 제후국이지만 예외적으로 팔일무가 허용되었다.
그러나 계손씨는 대부의 신분이므로
그것을 행할 수 없는 신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감히 팔일무를 공연했던 것이다.
여담이지만, 공자의 우려대로 그는 후에
천자였던 소공을 축출하는 쿠데타를 벌이고야 만다.
이 장은 팔일의 첫 장이고, 팔일편이 논어의 세번째 편임에도 그림엔, '제삼'이라고 잘못 쓴다. 아! 그러지 말지. 고리타분하게, 신분에 맞춰야 하는 예법이 있는데 그 예법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이라고
문자 그대로 해석해주면, 현대인 입장에서는 팔일편의 첫 장부터 지루해지고 만다.
원래 이 장은 고리타분한 내용이 아닌데도 말이다.
예법이 문제가 아니라,
공자가 분노하여 찍은 방점은 뒷문장에 있다.
"이런 행동도 서슴없이 하는 놈은 더한 행동도 할 수 있다."
이른바 예언 저격인 셈이다.
앞서 설명했던 바와 같이, 그 예언은 적중했다.
사씨(謝氏)가 행여 이해하지 못했을까 싶어 적나라하게 주석을 달아준다.
"군자가 하지 말아야 할 것에 있어서는 잠시라도 처하지 않는 것은 차마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계씨는 이것을 차마 하였으니, 그렇다면 비록 부모와 군주를 시해하는 일이라도 어찌 꺼려서 하지 못하겠는가?"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하였다.
그 사람을 알아보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물론 그가 엄청난 연기력의 소유자라서
눈치를 못 챌 수도 있다.
하지만, 공자의 이론에 의하면,
그가 혼자서 평상시에 행하는 행동을 살펴보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지금은 신분제 사회가 아니다.
그런데 신분제 사회일 때부보다 더 옹고한 철벽이
신분을 가르고 사람들을 구분한다.
확연히 눈에 보였던 신분제의 구분보다
지금 눈에 보이지 않지만 더욱 공고하여
도저히 어떠한 것으로도 깨뜨릴 수 없는 그것이
현대에는 생겨버렸다.
아니, 그들이 부러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보이지 않는 강력한 벽과
달리 인간이라서 구분 지어지는 '도리'라는 것도
명백하게 존재한다.
우리가 사람이기 때문이다.
부모와 자식이라는 구분이 그러하고
선생과 제자라는 구분이 그러하며
윗사람에 대한 공경 같은 것이 그러하다.
그런데 그 '사람으로서의 도리'라는 것이
금 가서 깨지고 무너지고 박살 나고 있는
상황들을 뉴스에서 생중계로 보고 듣는다.
돈 때문에 부모를 스스럼없이 죽일 것이라는
사씨의 해설은 극단적인 비유였다.
그런데 작금의 현실에서는 비유가 아닌
일상사가 되어버렸다.
그런데 잠시 생각해보자.
그 자식이 과연 제대로 된 가정교육을 받았음에도
돈에 눈이 멀어 그런 짓을 벌였을까?
너무 서글프긴 하지만 자식에게 해코지를 당한
부모에게 자식 교육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나름의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당신은
궁금할 것이다.
누가 당신의 등에 칼을 꽂고 배신할지.
하다못해 사회생활을 하지 않고
집에서 살림을 하며 언니 동생 형님과
모임을 갖는 전업주부들 사이에도
모종의 정치적 행위는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들 중에서 당신을 배신할 자가 누구인지
파악하는 것은 너무도 쉽고 간단하다.
자신의 위치와 본본을 깨고 적당히 그 범위를
뭉개고 '이 정도는 다들 해'라고 하는 이는
언제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욕망을 위해
당신을 그리고 사회를 기망하고
도륙할 수 있는 자이다.
그런 자는 공자의 말씀처럼
결국 사회를 망치고 나라를 망치는 원인이 된다.
내가 이 글을 통해 당신에게 궁극적으로
하고자 하는 말은
당신이 그들을 알아보고 경계하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지금 그런 짓을 하고 있는지
당신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그런 행태를
하고 있지 않은지
경계하고 또 경계하여
그런 짓을 하지 말 것을 경고하고자 함이다.
자기 자식이 귀엽고 예쁘지 않은 부모는 없다.
하지만 예쁘고 귀여운 것과
사람으로서의 도리를 밥상머리 교육을 통해
가르치는 것은 다르다.
사춘기니 민감하다고,
입시생이니 시간 없다고,
부모가 먹여 살리기 바쁘다며
서로 밥상머리에서
마주칠 일이 없다고
핑계를 댈지도 모르겠다.
그러다가 당신은 돈 때문에
하찮고 지저분한 욕망 때문에
자식에게 칼을 맞는 일을 당해도
좋다는 말인가?
나는 안 그렇고,
내 자식은 그렇지 않다고?
웃기지 마라.
배우지 않고 아는 이는 없다.
당신의 그 안일한 사고방식은
아이에게 가르치지 않아도 흡수되지만
올바른 사람으로서의 도리는
당신의 생활 전반을 통해 보여주고
이야기 나누며 공유하는 노력이 없이는
결코 아이에게 학습되지 않는 법이다.
당신이 지금 그러한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두리번거리며 머뭇거리는 이유 역시
당신이 그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탓임을
깨닫길 바란다.
그리고 무엇보다
깨달았으면 그 잘못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만 하는 것이
'인간으로서' 존재할 수 있는
유일한 이유임을 인지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