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입술은 한 여자의 입에서 작은 입김이 새어 나오며 탄성이 흘렀다. 남자가 그녀의 등에서 허리 쪽으로 손가락에 약간 힘을 주었을 뿐이었음에도 여자의 입에서는 뜨겁고 낮은 숨소리가 쉴 새 없이 새어 나오며 남자의 간을 녹였다.
“으음.”
남자의 목젖 저 안쪽에서 묵직한 소리가 울렸다.
아까 룸에서 술을 마실 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에 남자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자리에서 빠져나와 여자가 이끄는 대로 차에 올라타고 어디론가 가는 것 같기는 했지만 어둠이 내린 모이와산(藻岩山)을 올라가면서부터는 여자에게 집중하느라 차가 어디로 가는지 차를 운전하고 있는 자가 거울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지조차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나와 하나가 되고 싶나요?”
화장실에 갔다가 들어오는 중이었다. 좁은 복도에서 속삭이듯 그의 뒤에서 들리지도 않을 정도의 목소리로 말했다. 그것이 그녀가 말한 것인지 확인할 새도 없이 정신이 몽롱해지며 아득한 나락으로 빠져드는 환상을 느꼈다.
“으응.”
자신도 모르게 대답하고 나서는 바로 기다리고 있던 벤츠에 올랐고 자연스레 여자가 자신의 목을 감으며 차가운 입술을 덮어왔다.
“읍, 입술이 차갑군.”
“얼음을 계속 물고 있었어요. 차갑게 하지 않으면 뜨거워져서 내가 어떻게 될지 몰라서요.”
차 안에 얼음이 가득한 박스가 있고 그 안에는 돔 페리뇽(Dom Pérignon)이 담겨 있었다.
‘야왕(夜王)’이라는 가게가 이렇게 대단한 곳일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못했다. 일본의 이 시골구석에 이런 엄청난 미인이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었다.
그저 격이 다른 술집이라고만 다들 추천하기에 결정한 장소였다. 어떻게든 따내야 하는 본사의 계약이었고 그 접대는 그에게 있어 회사의 사운을 걸고 하는 마지막 베팅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나간 술집에서 이 정도 미인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녀가 룸에 들어오는 것을 본 순간, 그는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회사고 계약이고 가정이고.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들어갈까요?”
정신이 아득해진다 싶을 즈음에 여자가 그를 이끌었다. 기사가 차 문을 열자 여자가 먼저 차에서 내리며 밖에서 손을 내밀었다. 투명하다 못해 흐르고 있는 혈관이 다 뚫어져 보일 듯한 투명하고 탄탄한 가슴이 한눈 가득 들어왔다.
‘이대로라면 죽어도 좋다.’라고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조용한 정원 같은 곳을 지나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눈발이 거센 날씨 탓인지 가을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춥다는 느낌이 드는 정도였다. 마치 누가 올 것을 미리 알았던 것처럼 어느 사이엔가 끈적한 존 콜트레인(John William Coltrane)의 재즈 음률이 흐르고 있고, 글렌피딕(Glenfiddich) 30년 산이 놓인 협탁 옆으로 붉은 벨벳 커버가 덮혀진 침실이 나왔다.
남자를 침대에 앉히고 여자가 가만히 술잔에 술을 따른다. 차갑고 맑은 소리를 내며 피보다 붉은 와인이 크리스털 와인잔에 떨어졌다. 잔을 들고 한 걸음 걸어 나오며 그녀가 흰여우 털로 만든 베스트를 자연스레 발아래로 떨군다. 드러난 피부가 눈빛에 반사되는 듯 투명하다.
남자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 크지 않은 키였지만 그녀는 길게 늘어뜨린 머리로 얼굴을 반쯤 가리고 여전히 매혹적인 눈으로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어깨에 끊어질 듯 얹혀 있던 옷깃도 내렸다. 그러자 이제 긴 보라색 드레스가 한쪽 끈만으로 힘겹게 그녀의 몸에 걸쳐져 있다.
여자가 고개를 숙이자 이내 드레스가 옷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툭하며 떨어졌다. 여자가 남자의 뒤로 와서 목을 감아 안으며 뒤에 대고 속삭였다.
“다시 물어보죠. 나와 함께 하고 싶나요?”
“아, 으응.”
남자는 부드러운 그녀의 드레스가 자신의 어깨에 얹히는 것을 보고는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을 정도의 긴장상태를 풀지 못했다. 목을 감고 있는 그녀의 차가운 피부 감촉이 아니었다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그대로 호흡이 가빠 쓰러지고 말았을 것이다.
“누워봐요.”
여자가 몸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안 것은 그 짧은 순간이었다. 여자는 떨어진 드레스 속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있었다. 수줍은 듯 굴곡이 또렷한 얇은 등을 보이며 남자를 뒤로 하고 커다란 커튼 앞에 섰다.
그녀가 커튼을 젖히자 이내 눈이 시릴 정도로 하얀 달빛이 쏟아져 내렸다. 흔한 가로등 조명 하나 없이 방안에 켜져 있는 촛불만이 약하게 흔들렸다. 달빛만으로도 그녀의 알몸을 비추기에는 충분하다고 남자는 생각했다.
남자는 그녀가 다가올 기대에 참지 못하고 옷을 내던지며 몸을 내던지듯 그녀를 움켜 안았다. 그녀는 그를 안은 채 차가운 미소를 지은 해 침대로 몸을 스러뜨렸다.
남자는 마치 커다란 비늘을 안고 있는 듯한 착각에 정신이 아득해져 왔다. 미끄러운 비늘이 자신의 온몸을 서늘하게 지나가는 듯 그녀의 몸은 차갑지만 보드랍기 그지없었다. 점점 가빠오는 숨을 몰아쉬며 그녀의 몸을 탐하기 시작했다. 순간 온몸에 한기가 일어 어쩌지 못할 정도로 왼쪽 가슴이 쩌릿해져 왔다.
“허억!”
숨이 턱까지 차올라 숨을 쉴 수조차 없었다. 그의 외마디 비명이 터지기도 전에 그의 숨에서 허연 김이 서려 나왔다.
“어, 어떻게···이런···”
쓰러져 왼쪽 가슴을 부여잡고 힘겨워하는 그의 입술을 그녀의 차가운 입술이 덮쳐왔다. 그는 드라이아이스에 입술을 대는 고통과 마치 그녀의 입술에 모든 것이 송두리째 빨려 들어가는 듯한 환각을 보며 그저 어찌할 줄 모르고 발버둥 치기 시작했다. 숨을 쉬고 싶은데 내쉬는 숨만 가능하고 들이마시는 것은 불가능했다. 눈을 치켜뜨며 그녀의 모습을 본 순간, 그녀의 머리가 사방으로 퍼져 일어서고 눈동자가 얇아지면서 입술이 짙은 검은색으로 변해가는 것이 희미하게 보였다. 마치 온몸이 타들어가는 느낌에 이미 심장이 오그라들어 죄어오는 고통은 말도 이루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커져만 갔다. 입술이 떨어졌다 싶었는데 이번엔 그녀의 몸이 공중에 뜨는 듯하더니 그녀가 차갑게 웃으며 치켜 올라간 눈썹으로 그를 보며 계속해서 검은 입술을 동그랗게 만들며 자신의 숨결을 들이마시고 있었다.
그의 입가에서 허연 김이 나오는 듯하다가 이내 피가 서리기 시작하면서 빨간 수증기가 피 분수가 되어 그녀의 검은 입술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미 그는 정신을 잃고 죽음의 문턱을 넘고 있었다. 그녀는 그런 그의 고통스러운 모습을 재미난 듯 바라보며 그의 몸에 남아 있는 피를 마지막 한 방울까지 깨끗하게 들이마시고는 입맛을 다셨다.
실오라기라고는 하나도 없던 그녀의 몸은 어느 사이엔가 하얗고 긴 소매가 달린 천들이 휘감아 오르며 그녀의 몸을 가볍게 바람처럼 세웠다.
- 방금 들어온 속보입니다. 정체모를 변사체가 다시 한번 발견되어 홋카이도 경찰이 조사에 나섰습니다. 이번 사체가 발견된 곳은 삿포로시 남구 쪽에서 고속도로로 진입하는 스키장 쪽이었습니다. 이번에 발견된 사체를 포함하면 온몸에서 피가 모두 빠져나가고 심장이 얼어붙은 사체는 총 4 구로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1년 전부터 발생한 이 살인 사건은 이른바 홋카이도 설원 살인사건이라고 하여 1년 전부터 불가사의한 살해 방법으로 살인을 해 온 사건으로 아직까지 범인의 윤곽조차 파악하지 못한 탓으로···
삿포로역을 마주 보고 있는 빅카메라에 전시되어 있는 여러 대의 TV들은 모두 하나같이 이 기괴하기 이를 데 없는 살인사건의 속보를 전하고 있었다. 삿포로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내려 바로 앞에 있던 빅카메라 상가를 지나던 남자도 가만히 TV 앞에서 발을 멈추고 화면을 응시했다.
아직 첫눈이 내릴 시기는 아니었음에도 생각보다 눈이 많이 내린 것은 지구 온난화 때문이라고 떠들어대는 뉴스로 바뀔 즈음에서야 남자는 천천히 방송 송신탑이 보이는 삿포로역 남문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막 교차로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광고 휴지를 받으며 깔깔거리는 여고생들의 무리가 남자와 부딪혔다. 긴 루즈삭스에 검게 선팅을 한 여고생들은 기분 나쁜 얼굴로 남자를 치어다봤다.
“아얏! 아저씨! 조심해야 할 거 아냐!”
남자의 가방에서 떨어져 나온 팔괘 그림이 새겨진 나침반의 바늘이 미친 듯이 돌다가 바늘 끝이 파르르 떨리며 스스키노 방면을 가리켰다. 모자를 깊이 눌러쓴 남자의 얼굴에 흉터가 드러나자 불량한 여고생들조차 움찔하고는 뒤로 물러섰다. 남자는 여고생들을 신경 쓸 겨를도 없이 팔괘 나침반을 낚아채듯 들고는 내달리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눈으로 모두들 종종걸음을 치는 사이에 남자는 눈 위를 아무렇지도 않게 튀어 오르듯 내달려 사라져 갔다.
스스키노(すすきの)
홋카이도의 중심인 삿포로시에서 가장 큰 환락가.
낮에 보이는 한가로운 도심의 모습에서 퇴근시간이 한참 지나고 가게에 조명이 들어오면서 스스키노가 원래 가지고 있는 모습을 하나둘씩 내놓기 시작한다. 스스키노의 본모습은 저녁시간이 지난 즈음부터 드러난다. 특히 호텔을 사이에 둔 오래된 뒷골목 가게들 사이로 들어가게 되면 이제 막 화장을 하고 나오기 시작하는 여자들의 향수와 화장품 내음으로 골목이 스물 거리는 뱀으로 뒤바뀌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아직 11월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날은 서늘해져 가고 있었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던 4시 즈음부터 흩뿌리기 시작한 눈발은 이제 앞을 바라볼 수 없을 정도로 더욱 거세져 사람들은 저마다 가게로 얼른 들어가고 밖을 나다니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줄었다.
사토 렌타로는 그날도 교수회의를 빙자해서 경찰들과 즐거운 모임을 갖고 있었다. 홋카이도 대학의 교수인 그는 왕실 검도 조교였던 할아버지 덕분에 검도 사범이라는 별책으로 경찰들의 명예 사범으로 홋카이도 내에서는 제법 알려진 인물이었다.
“하하하. 이거 이렇게 대접받아도 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160이 겨우 될까 말까 한 키에 워낙 통통한 체질로 동글동글해 보이는 렌타로가 아예 벨트를 한 칸을 뒤로 늘리며 경찰서장에게 맥주병을 내밀었다.
“무슨 말씀을요. 이 정도는 해 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도 우리 사범님이시고 이제 제 바보 아들 녀석을 부탁드려야 하는 입장인데···”
니시 노부야스 삿포로 경찰서장은 사실 이 자리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오늘 자리가 있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홋카이도의 유일한 제국대학의 교수이자 명색이 검도 8단이라는 일본 홋카이도 검도회 지부장에게 밉보이지만 말자는 정도였다. 무엇보다 변변치 못한 지방대학을 졸업한 아들을 명색이 서장 아들이랍시고 대학원이라도 홋카이도 대학원에 입학시키려면 무엇보다 렌타로의 입김은 절대적일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럼 이 정도로 하고 자리를 옮길까요?”
“예?”
렌타로의 제안에 니시 서장의 얼굴이 잠시 일그러지는 듯 어두워보였다.
“아, 그런데 제 아들 녀석의 문제는 아직 대답을 안 해주셔서···”
“뭐가 그렇게 바빠 서두십니까? 이제 서장님 아드님은 제 연구실로 그냥 들어오면 된다니까요. 아무런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일전에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저와 인연이 있는 북경대 교수 딸도 이번에 제 연구실로 오기로 했습니다. 일본어를 전공했다고 하는데 중국문학 연구로 들어오는 거죠. 하하. 아무런 문제 될 것이 없어요. 어차피 제 말 한마디면 대학원 입학시험이야 그냥 형식적으로 치르는 것이니까요. ”
“뭐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저야 아들 녀석을 맡기는 입장에서 더할 나위가 없긴 하지만 정작 어떻게 사례를 해야 할런지···”
니시 서장은 마냥 사람 좋은 미소로 허허하고 웃어 보이는 사토 교수 같은 부류를 잘 알고 있었다. 먼저 뭔가를 요구하지는 않지만 지금 거래의 조건을 매듭지어놓지 않으면 언제고 자기 원하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밀 수 있는 인간이라는 것을 경험상 잘 알고 있었다.
“뭐 대단한 일도 아닌데 사례까지야···”
순간 렌타로의 눈이 반짝거리며 안경 밖으로 그 탐욕스러움이 꿈틀거리며 기어 나올 듯했다.
“2차에 야왕(夜王)이라는 곳에서 그 유명한 돔 페리뇽을 마셔보는 게 제 소원이긴 합니다만 말이죠. 하하하”
니시 서장의 얼굴이 다시 한번 일그러졌다. 물론 사토 렌타로가 그것을 놓칠 리가 없었다. 그러나 그에게 서장의 표정 따위는 중요치 않았다. 지금 칼자루를 쥐고 있는 이가 자신이라는 것만을 생각하면 그만이었다. 그는 늘 그렇듯이 남이 어떤 입장인지는 자신과 전혀 상관없다는 표정으로 술에 거나하게 취한 듯 마시지도 않은 맥주잔을 만지작거리며 실실거리는 미소를 흘렸다.
야왕(夜王)은 스스키노에서 최근에 급부상한 가장 잘 나간다는 비밀 싸롱이었다. 일종의 호스티스 바인데 상위 1%만 받는다는 소문이 공공연하게 나돌 정도로 실제 다녀온 이들은 많지 않았다. 지난번 도쿄에서 왔던 경시청의 고급간부들이 가는 것을 배웅하면서 멀찍이서 한번 봤을 뿐이었다. 그 비용이 얼마인지 접대하는 비용으로 나갔던 영수증이 10가지 다른 항목으로 나뉘어 처리되었던 것만을 생각하더라도 하룻밤에 족히 100만 엔 정도는 감수해야 하는 수준이라는 것을 어림짐작할 뿐이었다.
“야, 야왕 말이지요.”
니시 서장의 떨리는 목소리를 들으며 사토 렌타로는 모른 척 우롱차를 가지고 들어온 여급의 치마를 올리며 허벅지를 슬쩍 건드렸다. 여급이 어쩔 줄을 몰라 황급히 손으로 치마를 내리며 나갔다.
‘쓰레기 같은 놈. 이런 걸 대학교수라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더라도 니시 서장에게 있어 아들의 진로 세탁은 최소한 출세를 위해서는 필수였다. 100만 엔 정도로 때울 수 있는 것이라면 오히려 싸다고 생각했다.
“좋습니다. 제가 오늘은 일이 있어 함께 2차를 모시지는 못하지만, 비서에게 야왕까지 모셔다 드리고 부족함이 없도록 조치해두겠습니다. 모쪼록 오늘 밤 즐겁게 보내시고 앞으로 부족하나마 우리 바보 같은 아들 녀석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럼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니시 서장의 정중한 인사를 받으며 사토 렌타로가 정색을 하고 고개를 숙여 인사를 표했다.
“그럼 조심해서 들어가시길.”
렌타로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요즘처럼 대학원에 입학하겠다는 학생이 없는 시대에 예전처럼 입학 청탁을 하고 이런 접대를 받는 것이 얼마만이던가? 기껏해야 하룻밤에 3-4만 엔 정도를 떨리는 손으로 내면서도 여자를 제대로 만져보지도 못하는 캬바쿠라에 가서 아줌마들을 상대하는 것보다야 소문으로만 들었던 상위 1%들이 논다는 화끈한 야왕에 가볼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는 목적이 달성되는 순간이었다. 어차피 지원자가 얼마 없는 요즘 추세를 늙은 서장이 알 리 없으니 늘 하듯 적당히 그의 아들을 자신의 연구실에다 그냥 받아주면 그뿐인 문제였다. 렌타로는 그렇게 고대해 마지 많던 야왕에서의 화려한 밤을 보낸다는 상상만으로도 몸서리가 쳐왔다.
'카니 혼가(かに本家)'를 나서면서 렌타로는 영수증 챙기는 것도 결코 잊지 않았다. 대개 스스키노에서 접대를 받으면서 이곳 관할 경찰 공무원이 개인 접대를 영수 처리하는 일은 있을 리 만무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영수증 만들어 주세요.”
“예? 계산은 아까 서장님께서 다 하셨는데요?”
당황한 지배인에게 다시 한번 그는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만들어 달라는 거 아닙니까? 그 양반 그냥 갔지요? 영수증은 내가 받아가겠습니다.”
“아, 네.”
지배인은 그제야 사토 렌타로의 의중을 알고는 똥 씹은 얼굴로 썩소를 날렸다. 카운터를 눌러 아까 계산서를 다시 뽑았다. 공식 계산서를 뽑으면 그것을 가지고 학교 연구비에 청구해서 다시 돈을 챙겨 받는 방식은 이미 사토 렌타로가 이곳의 단골이 된 10여 년 전부터 해오던 방식임을 지배인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접대는 접대대로 받고 영수증을 챙겨두었다가 연구비로 청구하는 이중 뇌물의 형태를 취하는 것이 그의 장기라면 장기였다.
거들먹거리며 나온 사토 렌타로를 니시 서장을 수행했던 운전수가 기다리고 있었다.
“서장님께서 그곳까지 책임지고 모시라고 하셔서···”
“아, 이렇게까지 안 해도 되는데 원. 그럼 가볼까요?”
그렇게 가보고 싶던 야왕에 드디어 가본다는 기대감에 사토 교수의 아이 같은 퉁퉁한 얼굴에 발그레한 화색이 돌았다.
야왕은 스스키노의 한 복판에 있었지만 결코 일반인들의 눈에 띄지 않았다. 심지어 야왕이 어떤 곳인지 말은 무성해도 어디에 있는지 어떤 식의 가게인지 조차 일반인들에게는 쉽게 알려져 있지 않았다. 광고를 하는 것도 아니고 웨이터나 지배인이 밖에서 누군가를 배웅하는 모습도 없다. 그저 여느 고급 호텔처럼 불만 은은하게 켜져 있는 로비에 붉은 카펫이 깔려 있고 그 카펫을 밟고 들어가면 조용히 오카미(술집 마담)급의 여자들이 복도에 서서 손님을 안내해서 안으로 사라져 버리는 곳이었다.
스스키노는 그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골목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 스스키노 환락가를 20여 년 돌아다녔던 렌타로에게도 야왕으로 들어가는 길은 생소했다. 마치 숨어 있는 듯한 안쪽 골목을 들어가다 조금씩 길이 넓어져가고 차 한 대가 겨우 지나다닐 수 있는 길을 지나 그 곁으로 아무런 조명이나 간판이 없이 조그맣고 허름한 골목이 나왔다. 늘 그 조명이 없는 뒷골목 같은 빌딩의 뒤편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그곳이 무슨 식당인지조차도 알 수 없었다.
차에서 내리고 사토 렌타로는 그 묘한 분위기에 조금 전까지 마신 술이 확 깨는 것을 느꼈다. 확실히 자신이 이제까지 다녔던 싸구려 캬바쿠라들과는 격이 다르다는 것이 현관의 카펫에서부터 느껴지는 듯했다.
“이쪽으로.”
어느 사이엔가 늘씬한 중년의 오카미가 그의 곁에 서 있었다. 사람이 나오는 것을 보지 못했는데 정통 기모노 복장을 한 오카미는 잰걸음으로 바닥을 미끄러지듯 앞장서 나갔다.
“어디까지 가야 하는 겁···”
특유의 뚱뚱한 몸에 실룩거리는 몸을 흔들며 걸어 들어가던 렌타로의 입이 떡 벌어졌다. 좁은 복도에 여자들이 양 벽면을 가득 채운채 자신을 응시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여긴···”
“이곳에서 마음에 드는 아가씨를 선택하셔서 룸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바로 밖으로 나가시는 것도 상관없습니다.”
오카미는 짧은 인사와 함께 벽면으로 빨려 들어가듯 아가씨들 사이로 사라져 버렸다.
마냥 행복한 미소에 침이 고인 렌타로는 저마다 아름다운 복장과 늘씬한 몸을 자랑하는 아가씨들을 보면서 모두를 한 번씩이라도 찔러보고 싶은 마음을 억누를 수 없었다.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기는데 그의 눈에 쏘아 박히듯 한 아가씨의 얼굴이 들어왔다.
이제 갓 고등학교를 졸업했을까 싶은 정도의 어린 얼굴을 한 여자가 조용히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다른 아가씨들의 얼굴이나 몸매도 예사롭지 않았지만 그녀와 시선이 마주치고 나서는 다른 여자들에게 시선을 옮길 수가 없었다. 점점 다가서면서 그녀의 얼굴을 이마에서 턱선으로, 가슴을 지나 잘록한 허리에 이르기까지 훑어내리며 자신도 모르게 연신 침을 꿀꺽 삼켰다.
“저기···”
곁에 서 있던 아가씨들을 뒤로하고 렌타로가 그녀의 앞에 섰다. 아까 앳되 보였던 얼굴과는 다르게 묘한 색기가 흐르는 것이 나이를 좀처럼 짐작하기 어려운 묘한 얼굴로 그를 향해 미소를 띠며 속삭였다.
“저와 함께 하실래요?”
그녀가 입을 열자 사토 렌타로는 자신도 모르게 그녀에게 손을 내밀어 뭔가에 홀린 듯 그 뒤를 따랐다. 잡은 손이 보드랍기가 마치 담비를 만지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차갑지만 부드러웠다.
룸으로 들어서자마자 렌타로가 그녀의 허리에 팔을 감싸 안으며 덮쳤다. 하지만 그녀는 너무 자연스럽게 그의 손아귀에서 미끄러지듯 빠져나갔다.
“아니에요. 이렇게 급하게 하면 재미가 없잖아요. 그쵸?”
여자는 조용히 사토 렌타로를 밀치듯 소파에 앉혔다. 입안에 침이 모두 말라붙어버리 듯 목이 탔다. 렌타로의 마음을 모두 읽고 있다는 듯 그녀가 조용히 크리스털 잔에 얼음을 하나둘 떨구고 스카치위스키를 따랐다. 다가와 그의 무릎에 앉은 그녀가 잔을 내밀었다.
“이곳은 뭐든 가능한 곳이라고 들었는데···”
렌타로는 다급한 목소리로 위스키를 목안으로 다 털어 넣고는 물었다.
“물론이지요. 단, 예의를 갖춰주세요. 교수님이시니까.”
“어? 내가 교수라는 것을 어떻게 알지?”
렌타로는 자신에 대해 말해 준 적이 없었는데도 자신에 대해 알고 있는 그녀가 신기한 듯 되물었다.
“TV에서 봤어요. 이번에 홋카이도 개발 연구의 인문학 고문이시라고 하던가?”
여자가 잔에 다시 위스키를 채우며 미소를 뗬다. 렌타로는 자신이 저명한 교수로 TV에도 나와 이름을 알릴 수 있다는 생각에 몇 번이고 인터뷰를 자청한 바 있었다. 그런 그의 의도대로 이런 고급 싸롱의 아가씨마저 자신을 안다고 하니 왠지 더 우쭐해졌다.
“그렇지. 아무래도 홋카이도는 미개하게 방치된 숲이나 눈 때문에 방치된 산들이나 촌들이 너무 많잖아. 그래서 내가 교수회의에서 나서서 우리 지역을 위해, 학교를 대신해 나서게 된 거지. 하하. 내가 그 정도로 유명해져 있을 거라고는 생각 못했는데 어떻게 날 알아봤지?”
순간 여자의 표정이 아무렇지도 않게 굳었다. 렌타로는 순간 심장이 멎어버리는 것만 같은 공포를 느꼈다. 이내 여자가 다시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특유의 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게. 우리 교수님께서 저 같은 것과 함께 하시길 원하신다면 어떤 걸 해드릴까요?”
“그게···난 좀 독특한 취향이라···”
뭔가 자기 페이스대로 끌고 가려는 렌타로의 가슴 섶을 그녀의 가녀린 손가락이 파고들었다.
“운동도 많이 하셨나 봐. 음. 이 야성적인 가슴 하곤····후훗.”
여자가 다리를 벌려 렌타로를 품듯이 타고 앉아 아예 가슴을 들이밀며 넥타이를 풀었다. 이어 렌타로의 허벅지로 천천히 손을 내려가자 렌타로의 가슴팍 털이 삐져나왔다.
“어때요? 우리 자리를 옮길까요? 술을 마시러 오신 것 같진 않으니까···”
“오. 그래. 나야 언제든지 오케이지.”
착 달라붙어 가슴이 움직이는 것까지 느껴질 정도의 말캉거리는 감각이 전해져 오자 렌타로는 거의 여자에게 몸을 맡기듯 차에 올라탔다. 여자와 렌타로가 차에 오르는 모습을 어둠 속에서 무거운 그림자 하나가 그들을 응시하고 있었다.
차 안에서 렌타로가 여자의 현란한 손놀림과 키스세례를 받는 동안 여자도 렌타로도 그들이 타고 있는 차를 뒤쫓는 그림자가 있는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한 듯했다. 렌타로는 정신없이 거친 숨을 몰아 대며 여자의 몸 구석구석을 제멋대로 주물럭대기 시작했다.
“다 왔어요.”
여자가 렌타로의 손을 가만히 잡아 제지시켰다.
“오. 빨리 들어가자고.”
어둠으로 둘러싸인 정원을 지나자 짙은 쇠에서 나는 특유의 비린내가 가득했다. 아마도 성처럼 집을 둘러싸고 있는 삐죽 나온 철창들과 문에서 나는 비릿한 쇠 내음이려니 생각하고 그녀와 함께 집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막 침대를 찾아 그녀를 쓰러뜨리고 그녀의 옷을 모두 찢듯 벗겨내기 시작했다. 여자는 이제까지와 달리 특별히 반항을 하거나 제지하지 않고 그대로 퉁퉁한 렌타로의 얼굴을 안아 이제 막 벗겨진 옷 속으로 당겨 안았다.
“웁. 음. 숨이 막혀.”
그녀의 작지 않은 가슴골에 가슴을 파묻고 혀를 놀리던 렌타로가 숨이 막히는지 고개를 들었다.
“으악!”
그녀의 얼굴이 마치 새로 화장을 한 것처럼 완전히 다른 얼굴로 변해 강렬한 인상으로 자신을 무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그녀의 머리가 모두 쭈뼛거리듯 일어나고 갑자기 들이닥친 한기가 온몸을 얼려버릴 듯 휘감아 왔다.
“뭐야? 왜 이러는 거야? 이건 무슨 이벤트지?”
“어리석은 놈. 뭐? 미개한 자연을 바꿀 때가 왔다고? 촌구석을 관광산업으로 바꿔?”
여자의 무서워진 얼굴과 함께 점점 길어지는 그녀의 손톱이 이제 거의 일본도처럼 길어져 렌타로의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때였다.
와장창 하는 소리와 함께 검은 그림자가 유리창을 깨면서 날아들었다. 남자의 손에는 염주와 봐주라가 들려 있었다.
“늦었구나. 이 광경을 보여주기 위해 한참 뜸 들였는데···”
여자가 건장한 체격의 남자를 보며 차가운 냉소를 날렸다.
“요물! 이제야 꼬리를 잡았구나. 이렇듯 사람들을 죽여 너에게 무슨 득이 있다고 이리 극악무도한 짓을··· 내 오늘 널 성불시켜 주마.”
남자가 염주를 움켜쥐며 앞으로 다가섰다.
“올 줄 알았다고 하지 않았나? 어리석은 땡중. 그렇게 강한 산사(山寺)의 향내를 몸에 풍기면서 미행이라는 것이 가능할 줄 알았더냐? 코유키(小雪)!”
“엇?”
남자가 뒤를 돌아다볼 사이도 없이 깨진 창 밖에서 흩날리는 눈발과 달빛을 가르며 빠르게 하얀 뭔가가 확 하며 달려들었다. 그리고는 눈 깜짝할 사이 건장한 남자가 손을 써볼 틈도 없이 희고 긴 머리카락을 날리며 한 여자가 옷에서 흰 천을 날리며 남자를 하얗게 휘감아버렸다. 백발의 여자가 날아들어 남자의 온몸을 감싸 안 듯 꼬옥 끌어안았다. 휘 감인 흰 천들은 마치 살아있는 듯 그의 몸을 옥죄여갔다. 이내 남자의 움직임은 반항하지 못한 채 서서히 멈췄고 그의 몸은 급속도로 차갑게 얼어갔다.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남자를 안은 백발의 여자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지 못하고 그저 그를 꼭 안은 채 미안하다는 혼잣말을 반복할 뿐이었다.
“허,허억!”
말 한마디를 뱉을 겨를도 없이 남자는 그대로 얼어붙기 시작했다. 그의 몸이 얼어가는 것을 보면서 렌타로는 이미 모든 핏기라고는 하나도 없는 창백하고 쪼글거리는 얼굴로 변해 자신을 안고 곁눈질로 죽어가는 남자를 바라보는 여자의 품에서 바둥거리던 손을 툭하고 떨구었다.
코유키의 품 안에 있던 남자는 이내 하얗게 변하다가 발끝에서부터 얼어붙기 시작해서 쩡하는 소리와 함께 달빛에 눈이 날리듯이 사라져 버렸다.
“언제 봐도 너의 다이아몬드 더스트는 아름다워. 코유키! 최고의 작품이라니까···아하하하하!”
달빛이 시리도록 차가운 그 설원에서 껍데기만 남은 사토 렌타로의 시신만이 홀로 나뒹굴며 얼어갔다. 그 거대한 저택은 삐죽거리던 창살도, 숲에 쌓인 정원도 사라져 버린 채 하얀 눈 외에는 아무런 것도 남아 있지 않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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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돔페리뇽(Dom Pérignon)
돔페리뇽은 '샴페인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17세기 베네딕트 수도사 돔페리뇽(1668~1715)을 기려 프랑스의 샴페인 회사 '모엣샹동'에서 만든 세계최고 수준의 샴페인이다. 돔페리뇽을 잔에 따르면 황금색을 띤다. 잔 바닥에서부터 솟구치는 기포가 수면까지 한번에 힘차게 올라오는 모습이 마치 별이 쏟아지는 느낌을 준다고 한다. 돔페리뇽 1병을 출하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최소 8년, 오랫동안 숙성시켜 깊은 맛을 내기 위해서다. 돔페리뇽 64년도산(750ml)은 150만원을 호가하는 명품으로 전세계에 몇 병 남아있지 않다.
다이아몬드 더스트
‘細氷’이라고 불리는 것으로 영하 10-30도 대기중의 수증기가 승화해 생기는 극소 빙정(얼음의 결정체)이 내리는 현상으로 맑은 아침 햇빛에 굴절되어 1킬로미터 떨어진 거리에서도 보인다. 마치 다이아몬드와 같이 찬란한 빛을 발한다고 하여 이렇게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