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려주마. - 41
지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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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해를 맞이하게 되면 학생들과 샐러리맨들이 가장 먼저 달력을 통해서 확인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저마다의 취향에 따라 다를 수 없는 전 세계적인 아주 일반적이고도 공통적인 현상이지요. 바로 달력에서 빨간 날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공부하지 않고 일하지 않는 날이 얼마나 많은지 연휴는 얼마나 쓸 수 있는지를 확인하고 싶어 하는 것이죠.
앞에서 누차 언급되긴 했지만, 크리스마스가 빨간 날(휴일)인 나라는 한중일 삼국 중에서 한국이 유일합니다. 실제로 아시아 총 47개국 중에서 크리스마스가 휴일인 나라는 필리핀,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카자흐스탄, 아르메니아, 팔레스타인, 조지아, 요르단, 레바논 등 한국인들에게는 생경하기 이를 데 없는 나라들 뿐입니다. 또 러시아와 크리스마스, 키르기스탄, 에티오피아, 이집트 등은 크리스마스가 12월 25일이 아닌 1월 7일인 것도 한국인들의 상식(?)과는 많이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왜 뜬금없이 또 크리스마스에 빨간 날 이야기를 꺼내는지 의아하신가요? 그 나라를 이해하는데 여러 가지 기준과 요소들이 있겠지만, 의외로 그 나라의 달력을 보고 그 나라의 휴일(정확히는 기념일)을 확인하는 것도 매우 유의미한 분석을 할 수 있다는 설명을 하려고 꺼낸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빨간 날이라서 전 국민이 휴일로 쉬는 국가의 기념일보다 훨씬 더 중요한 기념일들도 많습니다. 가장 일반적인 것이 자신을 포함한 가족들의 생일이 있을 것이고요. 앞에서 설명했던 사랑하는 부모님이나 조부모님의 제사가 있을 수 있겠고요. 결혼기념일도 그중 하나에 포함될 수 있을 겁니다. 이 정도는 일반적이고 공통적인 기념일들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여기서 간과할 수 없는 기념일들이 등장합니다. 젊은 세대들을 중심으로 수십 년 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변함없이 양산되는 다양한 연인들을 위한 기념일들이 바로 그것인데요. 지금은 아재와 아줌마가 되었을지 모르겠지만 그 세대에도 분명히 기념일이란 있었습니다. 가장 흔한 것은 언제부터 한국에서 그렇게 챙겼는지는 모르겠지만, 밸런타인데이가 있겠고요, 그로부터 한 달 뒤에 여자가 줬으니 받아야 한다고 생긴 듯한 화이트 데이도 있습니다. 그와 덩달아 연인이 없어서 솔로들끼리 짜장면을 먹는 3월 14일의 블랙데이도 있고요. 과자업체에서 만든 것은 아닌가 의심되는 11월 11일의 빼빼로 데이도 있습니다.
그뿐인가요? 연인으로 사귀기 시작한 지 100일이 되는 날은 반드시 챙겨야만 연인관계가 유지되는데 큰 문제가 안 생기고요. 그렇게 100일 단위는 물론이거니와 365일 1주년이 되기 시작해서는 1년 단위가 추가되고 처음 키스한 날에서부터 처음으로 함께 한 날에 이르기까지 기념일은 하루가 다르게 쌓여가면서 기념하지 않는 날이 더 적어지는 기현상을 맞이하게 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념일을 여자가 챙기기를 바란다고 하지만, 반드시 성별의 문제로 치부하고 여자만이 기념일을 챙긴다고 생각하는 것은 편견입니다. 어찌 되었든 기념일을 챙겨 받는(?) 사람은 그것이 남자든 여자든 의미가 있고, 특히나 연인들의 기념일은 어느 한 사람만이 그것을 기념하자는 의도가 아니니까요.
그러면 다시 본주제로 돌아와 볼까요? 60살이 되는 생일은 환갑이 그러하고, 이제는 100세 시대라 하여 환갑은 잔치까지는 필요 없다고 하면서도 꼭 챙기고 나서 칠순 잔치를 하고, 팔순 잔치를 하며 단순한 생일을 넘어 10년 단위 혹은 연인들의 100일 단위, 1년 단위의 기념일들을 깨알같이 챙기고 경축하는 문화의 DNA는 언제부터 왜 어떻게 한국인들에게 발현되었던 것일까요?
앞에서 설명했던 음력을 기준으로 한 설이나 한가위를 챙기는 것이 농경사회에서 발현된 것이라면 중국의 그것에서 유래했기 때문에 현재 중국에서 지내고 있는 청명이나 단오도 한국에서 휴일로 지정하고 그 의미를 두어야만 하지만, 한국에서는 청명이나 단오의 의미조차 희석되어 특별한 날로 기념하지 않습니다. 때문에 단순히 농경사회의 배경이 아직도 작용한다는 설명은 설득력을 갖지 못합니다.
그에 반해, 한 여름 더위인 삼복더위에 삼계탕 등의 보신음식을 먹는 문화는 여전히 한국에서는 유효합니다. 작년에 워싱턴 포스트발 기사에서 블랙데이에 대해 ‘그들의 영혼의 색과 동일한 색깔의 음식에 연애사적인 고민을 묻어버리는 것’이라고 표현했던 것과 연관 지어 혹여 한국인들은 먹는 문화와 관련된 것만 강화시키거나 특화되었다고 착각하는 이들도 없지는 않습니다.
뒤에 한국인들에게 ‘잔치’라는 것이 갖는 의미에서 대해서 상술할 때 다시 언급하겠지만, 한국인들에게 무언가를 경축할 때 모든 이들과 함께 하는 문화는 농경사회에서 시작되긴 했지만, 한국인들만의 특유의 정서를 담고 있습니다. 그것은 당연히 함께 모였기 때문에 무언가를 먹는 음식문화가 빠질 수 없고, 먹는 문화도 단순히 함께 음식을 나눠먹는 것이 아니라 그 음식에 의미를 담아내는 것에 의의를 두는 민족적 특성이 고스란히 담기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서양문화임에도 불구하고 밸런타인데이의 의미를 명확하게 새기기보다는 초콜릿을 주고 그 달콤함을 먹는 것에 의미를 두는 한국적인 밸런타인데이로 진화(?)하게 된 것이지요. 이것은 자기네 문화라고는 창조하지 못하는 차이니즈 타이베이에서 추석 명절에 불고기를 먹는 것과 대조됩니다. 그들이 추석에 불고기를 구워 먹는 것은 전통도 뭐도 아닌 고기를 파는 회사에서 광고로 추석에 가족들끼리 모여 고기를 구워 먹는 것을 선전하고나서부터 생긴 풍습도 뭣도 아닌 것이기 때문에 비교자체가 불가한 경우죠.
그래서 한국에서의 연인들이 갖는 기념일은 일반적인 1주년이라던가 100일 수준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1000일, 2000일까지 이어지죠. 그 기념일은 연인의 관계에서 결혼하게 되더라도 쉽게 취소되지 않습니다. 기념일이라는 것은 결국 해당되는 날의 의미를 함께 경축하자는 것이고, 그것이 의미 있는 것은 자신에 대한 이기적인 생각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상대와 함께 하기에 의미를 갖기 때문입니다. 만약 단순히 자신의 생일이나 자신이 승진한 날 등 자신에게 좋은 일만을 경축하는 것이라면 개인주의적인 사고로 분석하는 것이 맞겠으나 대표적인 연인들의 기념일은 두 사람이 함께 무언가를 시작했던 것을 경축하자는 의미이고, 무엇보다 연애하는 대상과 그것을 함께 추억하고, 기념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강한 것이죠.
이것은 한국인들에게 있어 ‘잔치’의 개념이 갖는 의의와 그 궤를 함께 합니다. 내 아이가 죽지 않고 건강하게 100일을 넘겼는데, 그것을 마을 사람들에게 '백설기'라는 의미 있는 떡을 만들어 돌리는 것에서부터 그저 자신에게 경축할 일을 축하해 달라는 의미가 아님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내' 기념일이 아닌, '우리'가 함께 축하하고 경축해야할 '잔치'의 의미인 것이죠.
전 세계적으로 공통적인 생일잔치만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서양의 경우 생일잔치는 가족들이 차리거나 주변의 이웃들이 함께 주인공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차립니다. 그런데 한국의 생일은 생일날 자신이 생일이니 한턱을 쏘겠다는 조금은 묘한 방식의, 주인공이 생일상을 차리고 다른 이들을 초대하는 방식으로 축하를 합니다. 그것이 한국인만의 독특한 문화와 사고방식에서 나온다는 것을 인지하게 될 즈음이라면 당신은 이미 세계인들에게 한국인의 특질을 명확하게 설명해 낼 수 있는 한국문화 전문가의 영역에 첫걸음을 내딘 것이라고 인정받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음 편은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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