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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정말로 지치고 힘들 때 누가 곁에 있어주나?

100세 인생에 가장 나와 오래 지낼 사람 찾기.

by 발검무적

지난 이야기.

https://brunch.co.kr/@ahura/1894


현재 기준으로 100세까지 사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라고들 한다. 하지만, 100세가 지금의 건강상태를 유지하면서 한창 일할 수 있는 건강상태와 정신상태로 유지되면서 살아갈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으로부터 10년 혹은 20년 후가 된다면 어떨까? 불과 10년 2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사람들은 환갑이면 늙었다고들 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이제 어디 가서 환갑은 노인이라고 불리기에는 정말 민망한 나이가 되어버렸다. 50세가 되면서 회사에서 나가라고 하는 압박을 받는 이들의 입장에서 50세까지 받았던 월급의 절반, 아니 3분의 1만 받더라도 70세까지 일할 수 있다면 정말로 행복할 것 같다고들 말한다.


그런 기준으로 본다면, 이제 10년이나 20년 후에는 80이 되어도 아무런 건강에 문제가 없이 경제생활을 영위하고 그저 노인정이나 노인복지센터를 전전하는 삶은 패배자의 형태라며 온전한 삶을 살고 싶다고 목소리를 내는 이들이 굉장히 많아지고 자연스러워질 것이다.


그렇다면 결혼생활은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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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서른이 넘어, 남자는 마흔에 가까운 나이에 혹은 마흔을 넘어서 결혼을 하는 것도 만혼이 아닌 시대가 되어버렸다. 그렇다면 100세 시대에 맞춰 그들이 살아온 날보다 함께 한 나날들이 훨씬 더 많아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 될지도 모르겠다.


당신이 지금 헤어짐을 생각하면서 오만하기 그지없이 ‘정말로 생각 없이 살았는데 너무 오래 같이 살았구나!’라고 중얼거리고 있다면, 당신이 본래 계획했던 결혼생활은 도대체 얼마나 짧길래 그렇게 말하고 있는 스스로 거울 앞에 서서 그 뻔뻔한 작태를 한번 치어다봐줄 필요가 반드시 있다고 하겠다.


결혼을 통해 분가를 하지 않더라도 요즘은 대학을 가면서 자연스럽게 독립을 하는 1인 가정이 많아지는 편이다. 그렇다면 부모님과 20대 즈음까지 함께 사는 생활이 될 텐데, 정작 성인이 된 지 한참이 지나 만나 함께 사는 부부의 경우 2,30년은 고사하고 4,50년을 함께 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 한 것이다.


한 대상과 그렇게 오래 사는 것이 지루하다고 곁눈질을 하며 조금이라도 더 젊은 혹은 더 능력 있는 대상을 기웃거리는 철딱서니 없는 사람은 이미 가정을 건사할 마음이 없는 짐승이니 인간의 이야기를 나눌 자격이 없어 논외로 친다. 최근에 출몰하는 무뇌충들 중에서는 자신의 주변에 워낙 이혼한 이들이 많아지니 자신도 한번 홀로서기를 해볼까? 자유로운 돌싱이 되어볼까? 하는 얼빠진 상상을 무턱대로 실현에 옮기는 것들도 적지 않다고 하는데 그 벌레들도 논외로 한다.


그나마 사람이라고 불릴 수 있는 이들을 중심으로 다시 생각해 보기로 하자. 그저 함께 사는 것이 아니라 살을 부비고 인생의 전쟁터에서 그 수많은 고난과 힘겨움을 함께 넘어 지금까지 살아온 부부라면 당연히 두 사람에게는 전우애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오늘 점심을 뭘 먹을지 물어보면 진지하게 정해주는 것에서부터 아침에 입고 나갈 옷이 어떤 게 나은지를 바로 정해주는 것은 물론, 당장 벌어진 사고에 대해서 당장 달려와 나 대신 모든 것을 해결하고 싸워줄 동지애까지 포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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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당신의 배우자와 얼마나 많은 것을 공유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묻는지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기본적으로 당신이 어려서 무엇을 어떻게 결정할 것인지를 부모님께 상의한 것보다는 훨씬 더 많은 세월, 훨씬 더 많은 문제들에 대해 당신은 당신의 배우자와 의견을 나누게 될 것이다. 상대가 과묵하든 집안일에 협조적이든 개인적인 성향을 떠나서라도 자녀의 진학문제라던가 자동차를 어떤 것으로 살 것인가라던가 집에 애완동물을 키울 것인가 말 것인가에 이르기까지 두 사람이 함께 살면서 서로에게 의견을 묻고 공유하고 상의해야 할 것들을 수없이 산재해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진정한 부부생활에서 가장 유의미한 것은 내 힘겨움을 나눌 수 있는 가장 가까운 대상이라는 점이다. 맞벌이라면 회사에서 있었던 어이없는 상사의 뒷담화를, 전업주부라면 아이의 학교에 찾아갔다가 만났던 황당한 무개념 엄마의 이야기이든, 그리고 두 사람이 아니고서는 결코 접점이 없을, 각자가 가지고 있는 사람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들에 대해 두 사람은 그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무게를 나눌 수 있게 된다. 심지어 그 형태는 굳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저녁에 식사 후에 둘이서 아무런 대화 없이 늘 보던 채널을 틀어놓고 소파에 앉아 상대의 무릎에 가만히 머리를 베고 누워 새근거리며 포근함에 잠들 정도의 일상만으로도 공유되곤 한다.


도대체 사랑을 시작으로 결혼생활을 하는 부부가 아니고서 누가 이런 것이 가능하다는 말인가? 혈연관계로 맺어진 가족 중에서도 이런 공간과 정신을 공유하는 경우가 부부 말고 또 어디에 있단 말인가? 결혼 전에는 핸드폰이 뜨거워지고 방전이 되고, 해가 뜨는 것을 보고서야 전화를 끊을 정도로 별 것 아닌 이야기로 날밤 새는 것이 일상이었던 이들이 결혼을 하고 나서 이제 서로 흥미가 다해서 굳이 서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는 경우가 오히려 더 기이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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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고민거리를 꺼내기 위해 그 고민이 왜 누구와 어떻게 생겼는지를 굳이 처음 프롤로그부터 다 설명하지 않아도, “내가 맨날 얘기했던 걔 있잖아~”로 시작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은 결국 함께 침대를 쓰며 수년간 이미 사전에 많은 대화를 통해 정보를 쌓은 사이가 아니고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관계의 끈끈함이 분명히 있는 것이다.


자신이 필요한 것을 굳이 말하지 않아도 샤워하고 나오는 자리에 새 속옷과 잠옷을 가져다 두는 사람은 그의 생활습관을 모두 아는 사람이다. 아침에 해장으로 콩나물국을 반드시 먹는지 아니면 꿀물을 먹는지를 알고서 침대에서 마실 수 있도록 챙겨주는 사람 역시 그와 오랜 생활을 통해 그의 생활을 공유한 사람뿐이다. 잔기침을 한다고 자기 전에 창고에 두었던 가습기를 꺼내와 아무렇지도 않게 씻어서 가동해 주는 일은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당신의 삶이 유연하게 흘러가는 데 있어 너무도 필수가결한 요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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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묻지 않고 “오늘 많이 힘들었어?”라며 냉장고에서 맥주캔을 꺼내서 식탁에 안주와 함께 꺼내 놓아주는 것만으로도 당신의 힘겨움은 벌써 반은 줄어들어 있다는 뜻이다.


그런 사람이 당신에게 두 명, 세 명이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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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편은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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