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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은 왜 그렇게 의대에 집착하는 건가요? -2

한국인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려주마. - 91

by 발검무적

지난 이야기.

https://brunch.co.kr/@ahura/1920


앞서 분명히 전 세계적으로 의사가 선호하는 직업군임은 분명하고, 수입면에서 봤을 때도 상위권에 늘 속하기 때문에 다른 나라들에서도 역시 의대로 자녀를 보내려는 경향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라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왜 유독 한국만 의대 열풍이 그렇게 심한 것일까요? 수입이 그렇게 좋다는 미국은 아예 의대가 없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심지어 필수전공이라 일반적으로 선택하는 생물학이나 화학을 전공하지 않은 인문계 전공자들도 의대에 진학하는 의전원이 운영 중입니다. 그렇다고 성적이 최고인 학생들이 의대를 지망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하면 미국인들은 그저 웃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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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도상국이나 성적 우선위주의 동양권이 더 강한 그런 열망을 보이는 것이 아니냐고요? 공산권이자 조금은 독특한 직업순위를 가진 중국은 논외로 하더라도 가까운 일본 역시 의대는 우수한 학생들이 지망하지만 성적 최고 우수자들이 의대로 직행하는가를 따져보면 역시나 일본인들도 고개를 갸웃합니다.


최근 최고의 인구증가와 함께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인도는 어떤가요? 한국에 많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인도 역시 교육열이라고 하면 한국의 SKY캐슬 엄마들에 못지않은 어마어마한 교육열을 자랑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인도의 최고 성적우수자들의 지망은 수년간 인도공과대학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미국의 시차에 최적화된 사업환경에서 성장한 IT열풍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지요.


전 세계적인 부자, 아마도 미국을 중심으로 보게 될 텐데 입에 다이아몬드를 물고 나온 재벌가의 이야기가 아닌 평범한 개천용이 억만장자가 된 경우, 의사는 한 명도 찾아볼 수 없죠. 90%는 전 세계 트렌드에 맞춰진 IT업계의 창업주들이 그 자리를 차지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여기에 한국인들의 의대 열풍을 해석할 수 있는 실마리가 담겨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재벌가의 2세와 3세는 ‘결코’ 의대 따위에 진학하지 않습니다. 로스쿨 따위에도 진학하지 않죠. 그들에게 있어 의사나 판검사, 변호사 등등은 돈으로 고용해서 부리는 업종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IMF이전까지 최고 성적 우수자가 서울대 의예과에 진학하지 않았던 이유와 맞물려 있기도 한데요. 한국에서 의대를 지망하는 이들은 평생 짤릴 걱정 없이 경제적으로 중산층의 가장 위 그 언저리쯤에 속하고 싶은 이들이 지망하는 곳입니다.


그들은 앞서 분석한 바와 같이 두 가지 경우에서 최고상류층에 어차피 들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부모가 의사였기 때문에 직업적인 면에서 자신의 육체를 갈아 넣어야 하는 3D업종 못지않은 일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것을 대체할만한 더 나은 직업을 찾지 모산 경우에 해당하고 두 번째는 부모가 그 수준에까지도 도달하지 못한 일반 월급쟁이 회사원 혹은 그 만도 못한 중산층 저 밑의 층에 있다가 오직 그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공부만이 살길이라고 채찍질을 해서 의사를 만들어간 케이스에 해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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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잠깐 언급했던 인도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인데요. 어차피 공부를 잘해서 성적이 상위권에 속해 공대에 들어갈 수 없거나 미국이나 영국 유학은 엄두도 못 낼 집안에서는 자국이 아닌 엉뚱한 러시아나 동유럽에까지 유학을 보내서 의사 면허를 받아오려고 돈을 들이붓습니다. 이전에 세계 어느 나라에 가더라도 보이던 중국 유학생들이 독특한 체취의 인도 유학생들로 대치되는 경향을 보더라도 그 부분은 충분히 확인할 수 있는데요. 재미있는 점은 중국이나 베트남의 유학생들이 한국의 점유율을 높이는 이 상황에서도 인도에서 한국으로 유학을 오는 학생들은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이 칼럼의 주제에서는 벗어나서 다른 기회에 분석하겠지만 인도는 영국의 식민지 시절 영향으로 미국 유학보다는 영국 유학을 선호하고 실제로 영국에는 인도 유학생들의 점유율이 한국에서 중국과 베트남 유학생을 합친 수준을 상회합니다.)


정리해 보면, 중산층의 아랫부분에서 그렇게 선호해 마지않는 의사라는 직업군도 결국 사회의 상류층에 속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들 자신도 알고 있고, 그 위에 있는 이들도 알고 있다는 서글픈 결론에 이르게 되는데요.


중산층의 가장 위에 속하는 계층에라도 오르겠다고 한 것이, 다른 사람에게 짤리지 않아도 되고 정년과 상관없이 일할 수 있으며, 내가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는 경제적 자유도가 다른 중산층의 그 어느 직업에 비교해서 가장 안정적인 직업이기 때문이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인문계열의 로스쿨을 진학하고자 하는 이들의 마음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게다가 미국의 경우 의전원을 다닐 때 최소 1년 학비로 2억 원가량이 필요한 것에 비해, 한국의 의대는 2025년 기준 가장 비싸다고 하는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의 학비도 연간 천만 원을 아직도 돌파하지 않았다는 점을 보면, 한국의 의대는 투자 대비 가성비가 상당히 높은 선택이라고 밖에 할 수 없습니다.(참고로 국립대인 서울대 의대는 연대보다 연간 300여만 원이나 저렴합니다.) 그러니까 가장 비싼 사립대 의대를 6년을 다니더라도 미국 의대의 1년 학비의 4분의 1 수준이니 같은 의사 직업군에 속할 수 있다는 전제하에 가장 가성비가 높은 나라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죠.


이것은 최근 한국에서 1년 넘게 장기화되고 있는 전문의들을 중심으로 한 의료파업과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앞에서 분석한 바와 같이 상류층에도 속하지 않으면서 중산층 위쪽에 속하겠다고 발버둥을 쳤던 이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그들의 계산이, 그 예상이 무너져 중산층의 위쪽에서 미끄러져 내려오는 것일 겁니다.


검찰 수장 출신의 단무지 정부에서는 국민들에게 인기를 얻겠다고(사실 그 속내는 포퓰리즘이 아닌 국내 대형 병원과의 콘체른과 정치적인 문제가 엮여 있는 것이긴 하지만 거기까지 들어가면 이야기가 너무 복잡다단해지는 관계로 그 이야기는 다른 기회로 미루도록 할게요.) 의사를 대폭 늘리겠다는 폭탄선언으로 의료개혁을 감행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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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 여기에 한국 사회가 가지고 있는 모순적인 면이 드러나고 맙니다. 이미 입학 정원을 늘려서 25년도 의대를 입학할 수 있는 정원이 늘어난다는 소식이 터지자마자 강남 대치동에는 의대 전용입시반이라는 명목하게 이른바 SKY 비주류학과출신의 30대 직장인들부터 시작해서 언감생심 의대를 노릴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성적 상위의 장수생들은 물론 지방 의대에 갔다가 역시나 수도권 의대만 못하다며 자존심 상해하던 의대생에 이르기까지 아주 난리법석이 일어납니다. 그렇게 25년 의대에 합격한 이들은 정부의 의도대로라면 착실하게 공부를 해야 맞지요. 정원 확대를 통해 의대에 입학했으니 그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결과는 그들이 그 안에 이너서클에 들어가자마자 그들은 위에 선배들이 자신들의 밥그릇을 지키겠다고 싸우는 전선의 전략에 동조하며 휴학 혹은 수업거부에 동참을 합니다. 본과도 아닌 이제 기본을 배워야 할 예과의 학생들이, 그것도 정원 확대를 통해 의대생이 된 과정과 본분을 망각하고 자신들의 밥그릇이 선배들의 위계잡기에 달려 있다면서 그들의 노선에 따르는 블랙 코미디를 보여주게 됩니다.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한국인들이 의대에 열광하는 이유와 목적을 무너뜨릴 수 있는 여지를 원천봉쇄하겠다는 거죠. 내가 새치기해서 결국 이너서클 안에 들어왔지만, 다른 이들까지 봇물 터지듯 들어오게 되면 그 기득권은 더 이상 기득권이 아니게 되고 수입면은 물론이거니와 자신들의 직업이 받던 사회적 명예 등등의 그 모든 것이 중산층 위쪽에서 아이스크림 녹듯이 아래로 흘려내려 올 것이 뻔하다는 계산에서 입니다.


처음 사법고시로 1년에 1000명씩만 줄을 끊어서 뽑던 사이, 선진국의 로스쿨을 따라간다며(실제로는 도저히 사법고시를 통과하지 못하는 음서제에 해당하는 자식들을 위한 개선책이었지만) 로스쿨을 열었습니다. 올해 변호사 시험 합격자는 1,700여 명, 합격률은 가까스로 50%를 넘었을 뿐입니다. 그렇게 로스쿨 제도가 안착(?)되고 우리의 법률시장은 안정화가 되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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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결국 법조계의 층차만이 더욱 확고해졌을 뿐입니다. 그나마 신분을 어떻게 바꿔볼까 하던 로스쿨 졸업생들 중에서 어차피 출신이 대단하지 못하고 그저 그런 지방대 로스쿨 출신의 이들은 300만 원도 되지 않는 월급을 받아가며 다른 성골 출신의 변호사들 뒤치다꺼리를 하는 등급으로 헐떡거리며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혼전문이니 파산 전문 수습변호사들이라는 웃픈 시장 개척 변호사들이 생겨났습니다.


어차피 전관예우는 빤히 있어 기존의 사법고시 출신의 15년 차 이상의 판검사들을 영입하는 대형 로펌들 위주로 굵직한 사건들은 모두 돌아가고, 대형 로펌에서는 부모가 법조인 출신인 성골이나 그나마 부모가 재력이 빵빵해서 엄마가 단독 사무실을 차려줄 수 있는 진골의 경우를 제외하곤 겨우겨우 성적으로 개천용으로 인정받은 몇 퍼센트를 제외하고는 모두 거기서 거기인 미꾸라지일 뿐입니다.


하지만, 의사는 다르죠. 사회적 차별정도가 법조계에 비해 훨씬 약하다(?)는 사실을 현직 의사인 부모는 물론, 개천용들도 알 수 있을 정도지요. 아주 비근한 예를 들자면, 현재 대형 병원에서 교수를 하는 유명의사나 특히 개인 병원으로 자기 병원을 세울 정도의 의사들은 반드시 서울대 의대 출신도 아니거니와 그렇지 않다고 해서 환자들의 외면을 받지도 않는다는 겁니다. 무엇보다 그들이 수술이나 진료 등으로 소요하는 시간이 서울대 의대 출신이라고 해서 훨씬 더 나은 판정을 받지 않는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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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한국인들은 경제적인 불확실성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의 자식들이 가장 확실하게 중산층의 콘크리트 위층에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고, 그것은 경제적 불확실성이 더욱 커져가는 현재 국내외상황과 맞물리며 당분간은 꽤 지속될 것이라고 봅니다. 무엇보다 법조인들의 카르텔은 AI가 대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기지만, 생명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영역을 AI가 대치하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되는 아주 합리적인 판단 때문이기도 하죠.


다음 편은 여기에...

https://brunch.co.kr/@ahura/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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