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왜 한국인들은 소풍에 늘 김밥을 싸는 건가요?

한국인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려주마. - 96

by 발검무적

지난 이야기.

https://brunch.co.kr/@ahura/1930


흔히 말하는 MZ 세대의 아버지 세대 때 이미 한국에서는 소풍 가는 날 도시락을 김밥으로 싸는 것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정도의 보편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학교에서 공식적으로 소풍을 간다고 하면 그 전날, 이미 어머니들은 도시락으로 쌀 김밥을 준비했습니다. 기본적으로 김에 밥을 놓고 단무지와 계란은 반드시 들어가고, 그 이외에 소시지나 햄, 혹은 시금치, 당근 등등 집집마다 약간의 레시피에 차이를 보이며 사이즈도 제각각 특성이 도드라지는 김밥 도시락이 꾸려졌지요.


search.pstatic.jpg

고전적인 소풍 도시락은, 사이다에 삶은 계란, 그리고 김밥 도시락에 간식용 과자들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오늘의 주제가 되는 질문이 떠오릅니다. 왜, 언제부터 한국인들의 소풍 도시락은 김밥이 국룰이었는가 하는 것이죠.


이 질문은 수년 전 말 같지도 않은 김밥의 원조가 일본이냐 한국이냐에 대한 논쟁과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여기저기 인터넷 짜깁기를 해서 글을 쓴 이들의 설명을 보면, 김밥이 조선시대부터 이어져온 한국 전통음식이었다고 하면서 원래는 ‘노리마키’(김초밥을 의미하는 일본어)’라고 불렸다는 황당한 설명을 늘어놓기도 합니다. 조선시대의 전통음식인데 원래의 이름이 일본어라니요. 아무리 일본어를 할 줄 모르면서 인터넷 짜깁기를 해서 늘어놓더라도 정도가 있어야지요. 참으로 어이가 없는 일들이 인터넷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곤 합니다.


역사적인 흐름이나 원류를 설명하는 방식 대신에 원초적인 부분부터 살펴봐야 한다는 주장으로 김밥 원조 논란이 무의미하다고 강변하는 입장도 있습니다. 예컨대, 김밥의 원료이자 베이스가 되는 김밥용 김을 일본과 한국 모두 생산하고 있는지, 둘 다 생산하고 있다면 어느 나라에서 더 많은 양을 생산하고 있는지, 더 거슬러 올라가면 그런 김밥용 김을 언제부터 생산했는지 등에 대한 고증이 가장 명확한 해답을 준다는 이론인데요.

애매한 문헌에 등장한 용어를 설명하는 것에 비해 상당히 설득력이 있는 이론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게 먹는 김밥용 김의 시작은 김이라는 음식을 밥에 싸서 먹는 방식인데, 쌀을 주식으로 하는 문화권에서는 김이 생산되는 지역에서 자생적이며 독립적으로 누군가의 가르침이나 발명이 없어도 자연스럽게 김에 밥을 싸 먹는 방식은 공통적인 부분이라는 지적입니다. 실제, 우리도 김밥용 김과 그냥 조미해서 밥에 싸 먹는 김이 용도가 다르다는 것 정도는 분명히 구분하기 때문에 그 설명을 더욱 설득력을 갖습니다.

search.pstatic.jpg

다시 말해, 김을 양식하고 바다에서 수확한 후 김밥용 김을 말려 생산하는 것은 지리적으로나 기후환경적인 면에서 좀처럼 까다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그냥 적당히 밥에 얹어서 싸 먹는 형태가 아니라 제대로 된 사이즈로 김밥을 싸기 위해 적합한 김을 생산하는 것은 조금 더 기술적인 부분이 들어가기 때문에 처음 김밥용 김을 만들고 김밥을 만들기 위해서는 상당한 정성과 기술이 바탕이 되었어야 한다는 설명이 성립하게 되는 것이죠.


때문에, 위에서 설명한 김 생산량에 대한 통계나 역사를 분석해 보면, 일본은 지금도 그렇지만 한국의 김과는 다른 뻣뻣하고 두꺼운 김조각의 형태로 취식하고 있는 반면, 한국에서는 그냥 밥에 싸 먹는 김은 물론, 김밥을 싸기 위해 제작되는 김밥용 김이 훨씬 얇고 김밥을 싸기 위해 아주 적절한, 특히 입안에 들어갔을 때, 뻑뻑하고 두꺼워서 입천장에 붙는다던가 불편함을 주지 않는 김밥에 최적화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기에 김밥의 원조를 따져 묻는 것 자체가 한국 김밥에게 모욕적인 논쟁일 수밖에 없다는 결론인 것이죠. 혹자들이 말하는 노리마키의 발전형으로 미국 서부지역에서 끼어들기 시작했던 캘리포니아롤에 김이 들어가기 시작한 것은 이미 최근에 가까운 일이기 때문에 김밥의 역사에는 끼어들 틈조차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역사적인 기원을 올라가 문헌을 찾아보게 되면, 김에 대한 기록 자체가 한국에서는 15세기부터 김을 먹었다는 언급의 문헌이 발견되는 반면, 일본에서 처음 김을 먹었다는 기록 자체가 18세기 초중반이 되어서야 확인됩니다.


한국인이 왜 소풍이나 피크닉을 갈 때 늘 김밥을 싸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주제로 삼았으면서 뜬금없이 김밥의 원조에 대한 설명을 늘어놓는지 궁금하신가요?


사실, 김밥의 원조가 한국인 것에는 전혀 이론의 여지가 없지만, 일제 식민지 시절 일본의 도시락 문화가 우리나라에 없던 도시락(이른바 벤또)에 영향을 미치면서 김초밥(노리마키)이 자연스레 한국의 김밥으로 호환되었다는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조선시대까지 관청에서 일하던 이들은 관청 안에서 식사를 제공했기 때문에 도시락을 사가지고 다닐 이유가 없었지만 일제 강점기에는 직원들이 점심을 밖에 나가 식당에서 사 먹거나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는 일본의 문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지금도 일본은 기차(에키벤)에서도 그렇지만 도시락(벤또)이라는 것으로 점심식사를 해결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문화였기에 늘 집에서 먹거나 차려진 밥상으로 식사를 하던 조선에서는 새로운 문화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죠. 신식 학교의 문화가 자리 잡고 학교에서 지금처럼 급식이 나오지 않았기에 당연히 도시락 문화는 국민들 전체에 자연스러운 준비물이 되어 갔습니다.

search.pstatic.jpg

이 과정에서 매번 같은 방식의 도시락을 쌀 수 없다는 주부들의 고민에서 쌈 문화에 탁월한 재능을 보였던 한국인들의 문화중에서 김밥이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실제로 1930년대 동아일보의 기사를 살펴보면 ‘김쌈밥’이라는 조리법이 정식으로 소개된 것을 찾아볼 수 있는데요. 밥에 설탕과 식초 등을 넣어 간을 맞춘 모습이 일본의 김초밥(노리마키)과 유사하다는 점에서 김초밥이 한국식으로 발전하면서 현재의 김밥으로 진화(?)하였다는 설명이 설득력을 갖게 됩니다.


무엇보다 매일 싸는 밥과 반찬으로 구성된 도시락과는 달리 소풍이라는 특별한 날에 야외에서 먼지가 날리는데 밥과 반찬을 먹는 것보다 특별한 음식이면서도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김밥이 소풍날의 도시락의 시그니처가 되어버린 것이죠.


소풍날의 시그니처라고는 하지만, 워낙 영양 밸런스가 잘 갖춰진 탓에 제대로 식사를 할 수 없는 대치동 학원가의 학생들을 위한 식사로도 인기를 차지한 지 오래되었고, 제때 식사를 하지 못하는 아이돌들의 이동 중 식사로도 김밥은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며 다양한 김밥의 형태를 탄생시키게 됩니다.


밥이 주식인 한국인의 기준에서 보았을 때, 반찬이 모두 포함되어 영양밸런스까지 맞춘 음식은 김밥이 아니고서는 찾아보기 힘들죠. 기존의 주먹밥의 경우에는 그 안에 반찬을 넣을 수 있겠으나 그 형태가 다양하고 골고루 들어가기도 어려울뿐더러 소금으로 간을 한다고는 하지만 김이 감싸주며 내는 특유의 적당한 감칠맛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search.pstatic.jpg

신선한 야채와 참치, 불고기, 햄 등으로 다양하게 영양 밸런스를 맞출 수 있다는 점과 실제로 들어가는 밥의 양을 생각해 보면 한 줄만 먹어도 밥 한 공기 이상의 든든함을 채울 수 있다는 실용적인 면까지 김밥은 특별한 피크닉에 한 끼를 맛있게 먹기 위해 도시락의 내용물로는 다양한 반찬이나 밥을 따로 싸는 불편함이나 따뜻한 밥을 유지할 수 없다는 점등을 고려하면 움직임에도 헝클어지지 않고 호일에 싸거나 도시락에 넣으면 온기가 급격히 사그라들거나 눅눅하고 축축해지는 일이 없기 때문에 피크닉의 도시락으로는 최적의 음식인 셈이죠.

최근 미국에 출시되었던 김밥은 재고 하나 없이 전량 매진되어 사람들이 다음 출고를 물어볼 정도로 영양만점에 맛까지 있어 새로운 K-푸드로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길거리 음식, 순대, 떡볶이와의 상성도 좋아 길거리 음식으로도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국물이라면 빼놓을 수 없는 한국인들에게 김밥과 순대, 떡볶이에 더한 오뎅 국물은 환상의 조합으로 중고생들을 중심으로 어른들이나 외국인들에 이르기까지 불호가 없는 음식으로 손꼽을 수 있을 정도가 되었죠.


김밥의 특성상 잘라서 단면을 보이게 하기 때문에 영양뿐만 아니라 색감을 중시하는 이들에게는 다양한 방식으로 진화한 김밥이 맛이나 영양은 물론이고 예쁜 색감과 모양도 중시하곤 합니다. 중국인들은 깜짝 놀란다는 깻잎이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참치 마요 김밥부터 바깥에 김이 보이지 않는 누드 김밥이라던가 계란이 안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감싸서 계란말이처럼 보이는 김밥에 이르기까지 김밥의 진화와 변화는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search.pstatic.jpg

소풍날 신나게 놀다가 점심시간이 되어 친구들과 둘러앉아 도시락을 열어보면, 같은 김밥인 듯 하지만, 그 집만의 문화와 방식이 제각각의 형태로 담겨 그 사이즈마저 어쩜 그렇게 제각각인지를 신기하게 쳐다보며 하나씩 다른 집의 김밥을 맛보곤 했던 기억은 그 옛날 학창 시절을 보냈던 이들에게는 소울푸드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듯합니다.


일하는 엄마들이 많아지면서 이제는 유명한 김밥 맛집에서 단체로 사서 주문하는 방식으로 바뀌어 조금은 서운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래도 김밥은 한국인을 연상하게 하는 대표적인 음식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입니다.


김밥의 원조 논쟁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김에 도대체 한국인들은 왜 그렇게 원조 타령을 하는지에 대해서도 이젠 한 번쯤 설명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긴 하네요. 누가 그것을 최초로 시작했는지에 대한 원조 논쟁에 한국인들이 왜 그렇게 진심인 것인지, 사소하게는 원조 식당에서부터 유행어를 처음 누가 사용했는지 그 명칭에 대해서는 누가 원조인지 등등 한국인이 집착하는 그 원조에 대한 이야기를 다음에 살펴보기로 하죠.

search.pstatic.jpg

다음 편은 여기에...

https://brunch.co.kr/@ahura/1935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