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려주마. - 97
지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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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오락이 없던 시절, 장충체육관은 사람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만드는 오락의 장이었습니다. 그러한 특성에 발맞춰 그 앞으로 쭉 늘어선 맛집들이 있지요. 네. 바로 그 유명한 장충동 족발집들입니다. 그런데 족발집들이 그렇게 밀집해 있는 것도 신기하지만, 간판을 보게 되면 외국인들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문구들로 온통 도배가 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원조’, ‘진짜 원조’, ‘원조의 원조’ 하다못해 ‘TV에 나온 집’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자신들이 원조(元祖)라고 강조하는 내용이 담긴 간판입니다. 장충동 뿐인가요? 남산의 돈가스는 그 유명한 원조 논란에 대한 진정한 시시비비를 가리겠다고 유튜브에 한동안 젊은 구독자들의 관심을 끌기도 했었습니다.
식당에만 원조를 따지나요? 한국의 대표하는 음식에 대해 일본이 기무치로 자기네 음식이라고 우긴다고 김치 원조국의 한국인들은 뿔이 날대로 났었습니다. 중국에서 한복도 원래 중국이 원조라는 말에 발끈해서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며 인터넷 댓글 대전을 벌이기도 했었죠.
중국의 공자에 대한 제사로 알려진 ‘치전(致奠)’을 한국 성균관에서 매년 3월과 9월 장엄하게 석전대제(釋奠大祭) 의식 절차에 따라 치르고 있음에도, 십수 년 전 한국 유림(儒林) 단체 회원들 500여 명이 공자의 고향인 중국 산둥(山東) 성 취푸(曲阜) 공묘(孔廟)까지 가서는 한국의 장엄한 ‘치전(致奠)’을 구현한 것은 중국에서도 주목할만한 뉴스로 보도된 바 있습니다. 실제로 문화혁명 당시 공자를 봉건주의의 상징으로 매도하면서 관련의식을 말살해 버린 중국의 입장에서는 본고장에서도 하지 않는 의식을 한국에서 차리면서 이것이 진정한 원조 ‘치전(致奠)’의 모습이라고 구현하였으니 그럴 만도 했지요.
물론 조선시대 500년의 장구한 정치체계의 바탕이 된 성리학의 원조가 공자였으니 어찌보면 그 뿌리를 부여잡고 내려온 이들에게 있어 공자를 위한 제대로 된 치전(致奠)을 치르는 것은 유학이 아닌 유교로서의 종교적 측면이 강화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종교라고 하니, 유교에 한한 문제만은 아님을 알 수 있지요. 예수는 본향인 이스라엘에서 한 사람의 예언자 정도로 간주되고 있으나 한국에서는 인류의 영원한 구원자로 전체 기독교가 그 어떤 사업체보다 비대해지며 이익을 추구하는데 지대한 원조 역할을 해주고 있습니다. 불교의 참선수행 전통 또한 불교의 발상지인 인도는 물론 이를 크게 발전시킨 중국을 이미 훨씬 능가하는 수준으로 발전해 면면히 전해지고 있습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정작 원조(元祖)들은 원조 타령을 하면서 종주국을 강조하거나 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넘어오면 그 원조에 대한 강렬한(?) 존숭과 절대적 신격화(?)는 종교분야는 물론이고 그것에 대한 도그마까지 셀프로 만들어 그 누구도 감히 손대지 못할 상황을 만드는 것이 한국인들입니다.
그렇다면 한국인들은 왜 그렇게 원조(元祖)라는 것에 강한 집착을 보이는 것일까요? 이 부분에 대한 한국인의 심리를 분석하기 전에 원조(元祖)가 오리지널로 번역되는 사소한 실수는 오류로 바로 잡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엄밀하게 구분하자면 오리지널은 ‘진짜’라는 의미로 번역되어야 하는 용어이고, 원조(元祖)는 ‘오리진(The origin; 기원)’의 의미로 사용되는 용어입니다.
실리주의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조금 어이가 없기도 합니다. 식당의 메뉴를 가장 먼저 시작한 곳이 중요한 게 아니라 정작 맛이 있느냐 없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임에도 왜 원조에 대한 논쟁을 부여잡고 흥분하는지를 말입니다.
아주 기본적인 인간의 심리로 접근하자면, 원조(元祖)라는 단어가 주목받는 시점과 상황에 대해서 충분히 인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 처음 시작한 것들에 대해 모두 ‘원조(元祖)’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주목받았을 경우에 의미를 갖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너무도 당연하게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지 못하고 주목받지 못하는 대상에 대해 그 원조(元祖)를 논한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일 테니까 말이죠.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원조(元祖)는 그 의미가 부여되는 것 자체가 일종의 인정이고 존중의 의미를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처음 시작했거나 처음 만든 것에 대한 무형의 가치에 대한 존중이 포함된 개념이라는 의미죠. 문제는 원조(元祖) 논란의 대부분이 상업적인 이익을 위한 다툼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다는 것은 자연스럽게 매출과 이어지고, 그것이 무형의 가치를 가지고 있어 사람들이 그것을 경험해보고 싶다는 마케팅적 요소를 갖췄다는 사실을 의미하죠.
그래서 법적으로 확인받는 특허와는 또 다른 개념으로 사람들은 자신들이 그 인기를 끄는 것을 처음 만든 이가 바로 자신임을 강조하게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것을 강조하는 이유나 계기가 진짜 원조의 의도가 아니라는 것이죠. 인기가 있고 사람들이 찾기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카피가 나오고 그것을 벤치마킹한다는 근사한 말을 붙여가면서 노력 없이 적당히 묻어가자는 숟가락 얹기 편승작업이 나오게 됩니다. 그러면 원조의 어드밴티지를 이제 막 맛보려는 진짜 원조(元祖) 입장에서는 반짝하고서 다시 정체하거나 이익을 나눠야 하는 상황에 화가 날 수밖에 없죠. 그래서 자신들이 원조(元祖) 임을 강조하게 됩니다.
원조(元祖)를 카피한 이유가 그게 장사가 잘 된다는 이유 때문이었는데 스스로 원조(元祖)는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가 더 맛있다 따위의 정직한 커밍아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자신들이 원조(元祖)가 아니라는 것을 아는 카피그룹에서 버젓이 자신들이 원조(元祖)라며 원조(元祖) 보다 더 나은 발전된 카피라는 말도 안 되는 자기 포장을 합니다.
한국인이 원조(元祖)에 민감한 것과 그 과정이 무슨 상관이 있냐구요? 있죠. 우리가 이미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한국인들은 누구보다 눈치가 빠르고 상황을 읽어내는 속도가 빠릅니다. 배우는 것도 빠르죠. 한국에서 뭔가 나오면 짝퉁을 만들어 한국인들을 실망시켰던 중국인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퀄리티에서 문제가 되는 중국의 문제점을 한국인들은 스스로 검증하면서 최대한 더 나은 원조(元祖)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돈이 된다고 하면, 가장 먼저 그 원리를 읽어내고 무형의 가치를 카피해 내는 속도전의 일인자 한국인들의 입장에서는 사람들이 원조(元祖)에 열광하는 포인트가 무엇인지를 찾아내서 그 부분을 극대화해 낼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는 점에서 문제는 복잡해집니다.
그리고 그 능력과는 별개로 그것이 사람들의 관심에서 출발하여 경제적인 이익과 직접적인 연관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성향이 여기에 기름을 붓는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그래서 앞에서 잠깐 구분했던 오리지널의 논쟁과 원조(元祖) 논쟁은 뒤섞이게 됩니다. 실제 원조(元祖)가 진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의 다혈질적 감정 다툼에서 원조(元祖)는 진짜이고 원조(元祖)를 제외한 것들은 모두 짝퉁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이미 앞에서 정리한 바와 같이 이것은 범주가 다른 개념어일 따름입니다.
이익이 전제가 된 비즈니스적인 감각으로 보면, 사람들이 ‘원조(元祖)’라는 것을 입에 올리기 시작할 때부터 이미 그것은 돈이 되는 아이템이라는 것을 한국인들은 아주 잘 압니다. 그렇다고 해서 원조(元祖)가 모두 돈이 되는 것은 아니죠. 누가 처음 한국에 미니스커트를 들여왔는지, 최초의 커피는 무엇인지 하는 등의 생활상식에 해당하는 이야기들은 그것의 원조(元祖)를 밝혀 그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과는 다른 문제이죠. 그것은 최초에 대한 가치를 인정하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호기심의 영역이니 논외에 해당한다고 보면 됩니다.
앞서 살펴본 종교의 원조(元祖)를 따지는 것과 같이 직접적인 금전적인 이익은 아니지만 결국 원조(元祖)를 강화하는 것에서 오는 부차적인 이익 역시 위의 비즈니스 감각으로 이어집니다.
예컨대, 일본을 상징하는 벚꽃의 원조(元祖)가 사실은 한국의 왕벚꽃이었더라라고 하는 논쟁은 중국에서 아무 근거 없이 한국의 모든 것은 중국에서부터 유래한 것이다의 차원이 아닌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것으로 시시비비를 따져야 속이 후련한 한국인들의 입장에서 자신들이 즐기고 좋아하는 것이 왜색 문화의 잔재가 아니라는 대의명분을 명확히 하고 오히려 일본이 원조라고 알려진 것이 실제로는 우리나라에 뿌리를 두고 있더라라는 심리적 안위 요소를 두려고 하는 것이죠.
화투는 일본에서 시작되었지만, 지금 한국인들이 모두가 즐기는 화투는 일본의 화투와는 분명히 다릅니다. 그것에 대해서 화투의 원조(元祖)가 일본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겠지만 현재 그것을 한국화 해서 즐기는 한국인들의 입장에서는 원조(元祖) 논쟁 자체가 큰 의미를 갖지 못합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flowerwars
아주 미묘한 디테일의 차이기는 하지만, 중국이 한국의 모든 것이 자신의 나라에서 유래한 것이라서 중국이 모두 원조라고 우기는 것은 그다지 합리적이거나 논리적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중국이나 일본이 우리나라의 문화나 음식 등을 자기네가 원조라고 말하는 것에 대해 한국인들이 흥분하며 말도 안 된다고 나서는 것이 적반하장이라고 보기 어려운 점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한국인의 특성 중에는 명백한 문헌적 증거나 증인의 증언 같은 부분을 법원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객관화해서 인정하는 의외의(?) 합리주의가 존재하기 때문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산주의도 그 혁명의 원조(元祖)인 소련과 최대 수혜국인 중국을 능가해 북한에서 가장 지독하고 철저하게 존속하고 있는 것을 보면 한국인의 원리주의(原理主義) 의식은 이미 DNA에 각인되어 있는 그 이상의 수준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짐작해 봅니다.
다음 편은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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