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려주마. - 98
지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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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 한국인에 대한 이야기를 100까지 채울 정도로 많이 해오면서 음식에 대한 이야기가 적지 않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먹는 것만큼은 한국인에게는 진심이 아닐 수 없는 분야이기 때문일까요? 오늘 하려는 이야기는 외국인들이 한국에 와서 깜짝 놀라는, 그리고 한국인들조차 한국인들이 발명해 낸 것인 줄조차 몰랐던 먹거리 얘기를 좀 해보려고 합니다.
이미 앞서 살펴보았던 치킨의 경우, 미국의 KFC에서 출발한 후라이드 치킨이 한국의 치느님으로 변신하면서 양념치킨으로 한국화 되어 역수출되기 시작한 것은 너무도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양념치킨의 시초는 페리카나라고 알고 있는 분들이 많은데 한국에서 최초로 양념치킨을 만든 대구의 윤종계 씨가 1980년에 손님들이 남겨놓은 치킨을 보고 뻣뻣하고 식으면 닭 비린내가 난다는 것을 알고 메뉴를 개발을 시작했는데, 동네 할머니의 물엿을 넣어보라는 조언에 파, 마늘 등을 더해 양념치킨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후 윤종계 씨의 제자로 있던 양희권 씨가 페리카나 치킨을 창업하면서 양념치킨이 전국에 퍼지게 되었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중국집(?)이라 불리던 중화요릿집의 대표메뉴 짜장면 역시 정작 중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오리지널리티가 바로 한국에서 탄생하게 되었답니다.
마치 일식집에서 기원한 것 같은 명란젓은 또 어떤가요? 일본의 대표적인 반찬이지만 한국에서는 1800년대에 이미 공식적인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로 오래된 음식입니다. 일본을 여행한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은 들러보았거나 들어보았을 ‘후쿠야(ふくや, FUKUYA)’라는 일본 최초의 명란젓 판매 프랜차이즈 매장을 처음 만든 가게를 처음 문 연 카와하라 토시오라는 사람이 1949년 후쿠오카에 건너가서 처음으로 소개한 음식입니다.
일제 강점기에 부산에서 태어난 카와하라 토시오는 우리나라의 명란젓을 후쿠오카에 가지고 가 일본어로는 ‘멘타이코’라고 불리는 후쿠오카 3대 음식 중의 하나로 격상시키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현재 ‘후쿠야 나카스 본점(ふくや 中洲本店)’에서는 명란을 기반으로 만든 과자, 라면 등의 제품도 판매하고 있어 선물용이나 기념품으로 판매고를 올리고 있습니다.
명동 한편을 자리 잡은 길거리 음식은 또 어떤가요? 너무도 당연하게 국적을 의심하지 않게 만드는 떡볶이, 순대, 김밥은 그렇다 손 치더라도 길쭉한 막대기를 들고 다니며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고 먹게 만드는 치즈가루가 잔뜩 뿌려진 회오리 감자를 보며 한국이 오리지널리티를 가지고 있을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한국인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이 음식은 그리 오래지 않은 20년 전인 2006년 ‘농업회사법인 회오리유한회사’의 정은숙, 박중호, 이봉구 씨가 개발하여 2009년에 상표 등록과 디자인 등록을 마친 상품입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큰 감자, 조림용 감자와 달리 작은 규모의 중간감자는 시장에서 큰 쓸모를 얻지 못했습니다. 시장에서 환영을 받지 못하고 상품성이 떨어지다 보니 판매 자체가 쉽지 않았죠. 거기에 착안하여 중간사이즈의 감자 활용을 고민하면서 탄생한 음식이 바로 이 회오리 감자입니다. 회오리감자로 매출을 올리기 시작한 해당 회사는 현재는 다양한 음식들로 지평을 확장하면서 연간 매출만 300억 원에 육박하는 회사로 성장해가고 있습니다.
그뿐인가요? 횟집에 가면 '스키다시'라는 이름으로 올라오는 다양한 음식 중에서도 서구적인 냄새를 팍팍 풍기면서도 아이들에게 사랑받는 음식, 콘치즈가 있지요. 옥수수, 마요네즈, 치즈 같은 한국적인 재료와는 거리가 먼 이 독특한 스키다시는 해외에서 자극적인 맛이 쏙 빠져 있으면서도 은근히 중독성 있는 맛으로 ‘KOREAN CORN CHEESE’라는 이름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구가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 콘치즈도 1970년대 한국에 널리 정착하게 된 마요네즈를 베이스로 1990년대 유통하기 시작된 옥수수 통조림이 더해지면서 그즈음의 한국 어느 횟집에서 개발되었을 것이라는 추정이 있습니다.
저자극의 콘치즈를 횟집에서 먹고 나면 달짝지근한 디저트를 먹지 않을 수 없죠. 커다란 식빵 덩어리에 버터를 발라 오븐에 굽고 캐러멜 소스와 시나몬 토핑과 생크림을 올려 먹는 허니브레드가 바로 그 주인공인데요. 콘치즈와 마찬가지로 재료만으로 보자면, 식빵과 생크림, 캐러멜 소스 등 외국에서 온 디저트로 보기에 딱인 듯 하지만, 2004년 <커핀그루나루>의 김은희 대표가 개발한 100% 한국 오리지널 디저트입니다.
한국에서 개발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일본의 한 디저트 카페에 갔더니 점원이 직접 테이블에 다가와 “하치미츠(벌꿀)~하치미츠(벌꿀)~”노래를 부르며 허니 브레드에 허니를 뿌려주는 퍼포먼스를 하는 것을 보며 빵 터졌던 기억이 새롭네요. 한국인들에게는 의외일지 모르겠지만 외국인이 한국에서 먹은 인상적인 음식 중의 하나로 꼽히기도 했다고 합니다.
한국인에 대해서 분석하는 글에 뜬금없이 한국인이 개발한 음식이나 디저트들에 대한 역사를 나열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의문을 품은 사람들이 나올 법도 한 시점일까요?
조금만 더 들어보면 힌트가 될지도 모르니 몇 가지 더 살펴볼까요?
본래의 오리지널을 뛰어넘는 음식 개발이 역수출로 이어진 경우도 적지 않았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대표적인 햄버거 체인점인 버거킹에서도 대표 메뉴라 할 수 있는 콰트로 치즈 와퍼가 있습니다. 콰트로 치즈와퍼는 2013년 9월 버거킹 한국 한정 메뉴로 출시되었던 메뉴였는데, 너무도 많은 사랑을 받은 덕분에 6개월 만에 정식 메뉴로 재출시되었고 한국뿐 아니라 외국에서도 선풍적 인기를 끌면서 1985년 버거킹 한국 입점 이후 첫 역수출한 메뉴 라인업의 사례로 기록되었습니다.
대표적인 아이스크림 체인점의 대명사, 배스킨라빈스에도 역수출의 메뉴는 감춰져 있습니다. 아이스크림 가게의 입장에서는 비수기인 겨울철에 아이스크림 판매량을 늘리기 위해 한국에서 개발된 메뉴인 아이스크림 케이크가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세계가 반한 아이스크림 케이크는 중국, 중동, 미국 배스킨라빈스 본사까지 역수출되었고 아이스크림 덩어리를 순간적으로 정교하게 잘라내는 '워터 컷'이라는 기술에서부터 한국에서 개발해서 가능한 메뉴로 탄생되었다고 합니다.
한국인의 커피사랑을 분석하면서 살짝 언급되었던 믹스커피도 만만치 않은 역수출의 주역입니다. 동네 곳곳에 자리 잡은 카페들이 그렇게 많은 커피를 판매하고 있지만, 뭐니 뭐니 해도 집에서도 사무실에서도 식후 진리로 꼽히는 커피믹스는 유명 바리스타들마저도 한수 접고 인정하는 아이템이 되었습니다.
커피믹스가 출시하게 된 배경에는 1974년 국내 최초의 커피 크리머인 "프리마"의 개발로 이러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동서식품>에서 1976년 12월 세계 최초로 커피와 프리마, 설탕을 이상적인 비율로 배합한 커피믹스가 탄생하게 됩니다. 오히려 커피의 종주국으로 불리는 서양에서 한국을 방문한 외국 관광객들이 기념품으로 꼭 구매하는 품목으로 이 커피믹스가 꼽히며 끊임없는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피자의 본고장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피자빵으로도 불리는 소시지빵도 빼놓을 수는 없죠. 지역마다 이름이 달라 낙엽빵이나 거북이 빵으로도 불리는 이 소시지빵은 해외에서 ‘KOREAN SAUSAGE BREAD’라는 이름으로 당당히 역수출되고 있는 한류빵의 선두그룹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원래 일본의 커피숍 및 경양식 레스토랑에는 피자빵과 유사한 발상에서 만들어진 ‘피자 토스트’라는 메뉴가 있었는데 피자빵은 이것의 영향을 받았다고 보는 의견이 제빵업계의 정설로 통합니다. 처음 미국의 핫도그를 현지화해서 빵에 소시지를 넣기 시작한 것은 일본 제빵업계에서 시작된 것인데 이것이 한국식으로 다시 재해석이 되면서 피자빵이 탄생하게 된 것이죠.
다만 한국의 소시지빵은 발전과정에서 일본과는 다른 독특한 진화(?) 과정을 거쳤는데 원통형인 소시지를 반죽으로 둘러싼 뒤 그대로 굽거나 튀기면 콘도그가 되지만, 그 상태로 콘도그 반죽을 자른 뒤 낙엽 모양으로 꼬아서 펼친 다음 그 위에 캔옥수수, 피망, 다진 양파, 마요네즈, 모차렐라 치즈, 토마토케첩, 파슬리, 완두콩 등의 다양한 토핑을 뿌려 마치 피자처럼 굽는 방식으로 변모하게 된 것입니다.
이제 조금 눈치채셨나요?
한국인의 전통밥상의 반찬이나 요리들이 그 명맥을 꾸준히 이어오는 것에는 어느 누구도 이견을 제시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오늘 소개한 의외로 한국적이 아닌 것 같으면서 한국인에 의해서 개발되고 진화되고 업그레이드되어 역수출하게 된 품목들을 보게 되면 한국인들은 먹거리에 진심이면서도 그 맛이나 형태에 집중하기보다 함께 나누는데 즐거움을 배가시킬 수 있는 것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저 맛있거나 원조만을 고집하고 그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면 시도하지 않았을 변화와 진화의 과정은 결국 그것을 어떻게 더 많은 이들이 함께 즐겁게 즐길 수 있는가에 대한 의식과 연결되어 현재의 결과물을 만들어내게 되었습니다.
결국 그게 상업적인 논리에서 봤을 때, 많이 팔리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고 멍청한 질문을 할 의향이라면 다시 한번 위로 스크롤을 올려 찬찬히 읽어보시죠. 그들에게 더 많이 팔기 위한 무언가가 정말로 필요했다면 그것은 많이 팔리는 품목을 더 많이 대량생산하면 그뿐이었을 것입니다.
원래의 형태를 가지고 있는 것에서부터 한국인들의 입맛에 맞고 취향을 저격할 수 있는 그 무언가를 함께 향유하기 위한 현지화가 결국 글로벌화로 역수출하게 되는 과정은 단순히 더 많이 팔기 위해 인기를 끌만한 것을 만들려는 목적과는 아주 미묘하지만 큰 차이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인이 가진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음식, 위에 열거했던 음식들이 주로 어떤 경우에 선택되는지를 생각해 보면 좀 더 쉽게 그림이 떠오를까요?
다음 편은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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