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로봇 드림(Robot Dreams)>을 보고 나서
가족들과 맛있는 것을 먹으러 가던 드라이브 길에, 늘 틀어두는 올드팝 채널에서 Earth, Wind & Fire의 <September>가 경쾌하게 흘러나왔다.
문득 딸아이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듯 말했다.
"아! 이 노래를 들으면 이제 슬퍼져."
"이 경쾌한 디스코를 듣는데 왜 슬퍼져?"
"예전에 본 <로봇 드림>이라는 영화가 생각나서, 이 노래만 들으면 그 영화가 떠올라서, 슬퍼져."
그렇게 아주 오랜만에 장편 애니메이션을 보게 되었다.
이 애니메이션은 사실 사라 바론(Sara Varon)이라는 미국 만화가의, 무려 14년이나 지난 그녀의 히트 그래픽 노블을 원작으로 해서 만든 작품이다. 굳이 이 설명을 사족으로 다는 이유는, 대사가 없는 이 애니메이션에서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과 딸아이의 가슴 깊숙이 이 애니메이션을 기억하게 만드는 Earth, Wind & Fire의 <September>가 차지하는 비중이 마치 원작과는 별개로 따로 태어난 생명체임을 역설하는 키워드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원작 그래픽 노블에는 OST가 없다.
대사가 없다는 점에서 애니메이션에서 OST가 차지하는 비중은 결코 작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를 만든 스페인의 감독 파블로 베르헤르(Pablo Berger)는 우연히 만난 이 원작 그래픽 노블의 감성에 자신이 미국 뉴욕에서 지냈던 그 젊은 날의 1980년대에 꽂혀 Earth, Wind & Fire의 <September>가 바로 이 원작을 설명할 수 있는 스크립트임을 아주 자신 있게 내놓고 있다.
뉴욕에서 아주 오래 살며 이 원작을 그려낸 만화가, 사라 바론(Sara Varon)이 바라보았던 1980년대의 뉴욕이 원작에 녹아 있다면, 이 애니메이션은 그 원작을 만났을 때, 바로 Earth, Wind & Fire의 <September>를 메인 OST로 생각해 냈을, 감독 파블로 베르헤르(Pablo Berger)에 의해 그가 보았을 80년대의 뉴욕으로 완전히 새로운 작품으로 태어났음을 확인할 수 있다.
스페인 태생인 감독은, 뉴욕대에서 공부하며 뉴욕에서 20대를 보냈고, 1995년 뉴욕필름아카데미 교수가 되었고 예일, 프린스턴, 페미스, 케임브리지 등의 대학에서 강의한 이른바 미국 유학생이다.
굳이 이 감독의 이력을 소개하는 이유도, 이 애니메이션을 만들겠다고 그가 착안했을 모티브를 원작이 충분히 주었을 정도로, 그의 젊은 날의 기억을 여름비를 맞고 집에 들어와 따뜻한 샤워를 하고 나서 다시 머리가 보슬보슬해지는 느낌으로 되살려주었을 것이라는 상상을 가능케 한다.
1978년 펑크 밴드인 Earth, Wind & Fire가 발표한 <September>는 정규 앨범에 수록되지 않았고, 컴필레이션 앨범인 <The Best of Earth, Wind & Fire, Vol. 1>에 최초 수록되었다. 다시 말해, 63년생의 감독이 대학을 다니기 위해 뉴욕을 배회하던 그 시절의 최고 인기곡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1980년대의 느낌의 이 원작 그림과 애니메이션의 그림은 주인공들의 얼굴 톤부터 색감까지 완전히 다르다. 감독은 1981년 미국에서 처음 시작된 24시간 음악 전문 채널 MTV의 감각을 구현하는데 힘을 쏟아낸다. MTV는 뮤직비디오와 음악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대중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는데, 초기에는 감각적인 영상 편집과 현란한 카메라 워크로 'MTV 스타일'을 창출하며 음악 소비 방식을 시각적으로 변화시킨 바 있다.
이 애니메이션에서 사랑의 시기가 8월에서 8월까지의 꽉 찬 1년인 것은, MTV가 처음 개국한 8월 1일과 결코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경쾌하기 그지없는 펑크 디스코 음악의 고전에 해당하는 Earth, Wind & Fire의 <September> 가사가 사실은 지나간 연인에 대해 그리워하는 슬픔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사실과도 결코 무관하지 않음을 감독은 의도적으로 그 사이사이에 녹여내고 있다.
'Do you remember the 21st night of Septem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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