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군혜의 정체 - 1
지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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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는 항저우 출신의 중국여자였다.
일본인 변호사와 결혼을 했다고는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중국 국적을 가지고 있었다. 대부분 정상적인 결혼을 한 경우, 중국 여자들이 일본 국적을 얻는 그것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게다가 그녀의 남편이 일본인 변호사라는 사실까지 감안하면 그것은 더더욱 듣는 이들에게 의문을 자아내기 충분한 구린 구석이었다.
사토 렌코쿠의 가벼운 입소문을 통해 그녀가 그 비싼 오스트레일리아 관광이니 해외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던 것도 그와의 결혼에 성고하고 나서였다. 동민이 최근 오스트레일리아 관광이 그다지 비싸지 않다는 대꾸를 들었을 때도 그녀는 적잖은 충격을 받아야만 했었다. 한국을 대표하는 최고 학부에서 박사과정까지 마치고 와서 중국어를 전공으로 하지도 않았다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중국인들과 중국어로 대화를 하는 것도 썩 맘에 들지 않았다. 특히나 수업을 하거나 세미나를 할 때 자신을 비롯해서 연구실의 다른 일본 학생들이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은 것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과 충고를 서슴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더더욱 기분이 나빴다.
게다가 동민이 결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그녀에게 있어 상당한 쇼크였다.
일본의 국립대학. 그것도 문학부 대학원생들에게 있어 결혼을 했다는 것은 아주 큰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었다. 특히 남자가 결혼을 했을 경우, 그것은 남자가 상당한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도저히 불가능한, 공부하는 것을 직업으로 한 자들은 결코 평범한 결혼조차도 할 수 없다는 공식에서 그 한국인은 예외였던 것이다. 일본 대학원생 중 여자의 경우는 결혼을 해서 생활의 여유가 있어서 대학원을 취미생활정도로 여기고 들어오는 경우도 있긴 했다, 특히 중국 유학생의 경우 돈을 벌기 위해 어떻게든 일본에 불법체류를 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일본의 흔하디 흔한 장학금까지 받아낼 수 있다면 그보다 더 나은 복권은 없다고 할 정도로 중국 여자들에게 있어 일본 유학비자는 기본적인 돈 벌기의 티켓과도 같은 것이었다.
코가 중국문화론 연구실에 들어올 때만 해도 중국의 상황은 물론이고 일본에 오는 중국인들의 그러한 생각은 최소한 그렇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코는 실제로 제대로 된 4년제 대학이라고는 졸업하지도 못했고 항저우의 외곽에 있는 이름 없는 국제인증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고등학교를 제대로 졸업도 하지 못했던 상태였기 때문에 일단은 어떻게든 중국을 벗어나서 큰돈을 벌고 싶었다. 큰돈을 버는 것은 그녀가 일본에 온 지 한참 뒤에 생긴 욕심이고 지긋지긋한 중국의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가장 기본적인 갈망이 그녀에게는 최우선의 과제였다.
텔레비전을 좋아하고 드라마 보는 것이 생활의 가장 큰 낙이던 그녀에게 일본 드라마와 한국 드라마를 통해 본 이웃 나라사람들의 생활수준과 패션 스타일은 자신이 속해 있는 중국, 그것도 꾸질꾸질한 남방의 한쪽 구석 생활과는 천양지차였고, 그 드라마들에 빠져들면 빠져들수록 자신이 처한 현실에 도저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특히나 항저우의 중심도 아닌 아무도 찾아주지 않는 변두리 시골구석의 생활이라는 것은 관광객이 많은 항저우의 특성상 우연히 보게 되는 일본이나 대만 혹은 한국 관광객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들과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자신도 그들의 무리에 속해보고 싶은 마음을 계속해서 끓어오르게 만들었다.
그러던 중 알고 지내던 동네 동생이 우연히 알게 된 일본 관광객을 통해 일본에 가서 돈벌이를 시작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래서 코는 그녀와 새삼스레 친하게 지내고 싶다는 듯 영혼 없이 살가운 편지를 통해 꾸준히 그녀와 연락을 주고받았다. 그래서 자신도 일단 일본에 가게 되면 묵을 수 있는 방 한 칸을 가지고 있는 그녀를 자신의 친동생처럼 친하게 만드는 것부터 공을 들이고 또 들였다. 코에게는 자신이 필요한 사람에게 적극적으로 접근해서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그녀만의 탁월한 능력이 있었다. 무엇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상대에게 자신이 가장 불쌍하게 보이는 연기가 그녀의 최대 무기라면 무기였다. 예쁜 얼굴도 아니었고 큰 키의 멋진 몸매를 가진 것도 아니었으며 세련된 말투로 매력을 발산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녀는 무엇보다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파악해 내고 그에 맞춰서 자신이 최대한 몸을 낮춰 그들이 원하는 대로 시중을 들어주는 언행을 통해 당신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해주겠다고, 상대방이 하인을 얻은 듯한 마음을 갖거나 자신을 낮출 수 있는 데까지 낮춰, 언제든 상대보다 한참 아래에 있는 사람이라 상대를 속이거나 그의 위에 올라서려고 하지 않는다라는 안도감을 갖게 만드는 특기가 있었다.
그렇게 처음 일본에 와서도 동네의 동생을 자신의 친동생이라고 얘기하고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를 찾았다. 일본어라고는 제대로 공부해 본 적도 없는 그녀가 알고 있는 일본어라고는 드라마를 통해 주워들은 몇 마디가 전부였다. 하지만 생활력에는 일가견이 있는 그녀가 그 꾸질꾸질한 중국을 벗어났다는 것만으로도 그녀에게 학습동기는 충분했다. 제대로 된 일본어 학교를 다니거나 그 흔한 일본어 능력시험 자격증도 준비할만한 엄두를 내지 못했지만 먼저 일본 생활을 하고 있던 동네 동생을 통해 소개받은 사무실의 심부름꾼 역할이 그녀에게는 너무도 행복했다.
그것이 그녀가 스물넷의 일이었다.
스물넷의 그녀는 일본에 온 지 몇 달이 채 되지도 않아 사무실에서 자신의 변신을 꿈꿨다. 일본어가 능숙하지 않았지만 가능한 한 자신이 못 알아듣는 일본어에 대해서는 상대방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최대한 노력했고, 차를 타거나 시중을 돕고 말하지 않아도 눈치껏 그들이 필요한 것을 챙겨주는 방식으로 상대를 높이고 자신을 낮추는 대인관계를 통해, 누구보다 말을 잘 알아듣는 급사로 인식되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가 그렇게 절박했던 것은 사실 사연이 있었다. 바로 비자 때문이었다. 중국인이 일본에 돈을 벌러 오는 경우 가장 기본적인 문제는 비자에서 출발한다. 언어도 원활하지 않은데, 취업비자는 하늘에 별 따기였고 유학비자를 받기 위해서는 정식으로 일본어 학교나 대학에 재학 중이라는 공식적인 재학 증명서가 확실하게 필요했다.
그래서 그녀가 눈여겨보고 있다가 최종으로 결정한 방법이자 그 타깃은, 회사에서 월급제로 일하는 삼류 변호사였다. 그녀보다 먼저 온 동네 동생은 일본어 학교를 등록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대학을 들어가기 위해 공부까지 하고 있었지만 그녀는 그런 그녀의 눈물겨운 노력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녀는 하나하나 다시 공부해서 대학을 일본에서 들어갈 자신도 실력도 없었기 때문에 고민의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일본의 시골 변호사가 아무리 수입도 변변찮고 사회적 입지가 바닥이라고 하더라도 변호사는 변호사였다. 아무것도 없는 못생긴 중국 여자의 비자문제를 해결해 주기 위해 그녀와 덜컥 결혼해 줄 사람 따위는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을 그녀가 모를 리 없었다. 그래서 그녀가 결정한 것이 시간과 공을 들여 나이가 한참 많이 먹어 조금이라도 어린 첩을 가지고 싶어 하는 일본 늙은이였다.
그렇게 그녀는 자신의 비자문제를 법적으로 해결해 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서 그의 곁에서 모든 시중을 들고 능력이 없어 젊은 일본 여자를 첩으로 들일 수 없는 어중간한 욕심이 들끓는 늙은이와 서로 간의 부합점을 찾아 대학이라는 곳에 발을 들이밀 수 있었다.
당시 일본은 그 10년간 지방자치제와 대학경쟁으로 인해 학생들이 줄어들고 대학이 자체로 경영을 유지하는 것이 어려워져 지방자치단체가 기업처럼 도산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였고 아울러 대학이 폐교하는 일은 뉴스에 나올만한 일에 속하지도 않는 부지기수의 다반사였다. 그런 상황에서 조금 떨어지는 학력이나 서류를 가지고 있더라도 안정된 보증인과 등록금만 제대로 납부해 준다면 설사 그것이 기준미달의 중국인이라고 하더라도 머릿수를 채운다는 의미에서 일본의 대학은 수준이 떨어져 있었다.
그녀는 그런 일본의 상황과 자신이 처한 욕망이 맞닿은 지점을 금방 읽어냈다. 모든 공부는 텔레비전 드라마를 통해서뿐이었지만 생활 속에서 익혀가는 그녀의 전투 일본어는 생각보다 빠르게 나날이 발전해 갔다. 특히 경제적인 원조자가 생긴 이후로 그녀가 필요한 때에 적절히 선물공세를 하는 선택지도 가능해졌다. 대개 그녀가 최고라고 생각하는 것은 나이 든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브랜드들도 그것을 구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대강 중국에 가서 해당 브랜드의 진짜 같은 짝퉁 물건을 값싸게 구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던 그녀는 1년에 한 번 비자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국에 들어가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선물 실탄도 충분히 채워올 수 있었다. 그렇게 적당한 브랜드 선물을 나이 든 사람들에게 적재적소로 들이밀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그녀는 자신의 생활수준이 이미 이전에 비해 많이 올라섰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4년간의 대학을 수업이나 시험 따위의 과정을 생략하고 등록금을 꼬박꼬박 들이부었다는 이유만으로 졸업장을 받은 후 남편이 변호사라고 말하고 다닐 수 있는 행복한 그녀만의 생활이 펼쳐졌다. 자신의 구체적인 사생활에 대해서는 일본인들의 성격상 자세하게 묻지 않는 문화적 성향상 자신의 남편이 변호사라는 것만을 수줍은 듯이 얘기하고는 남편의 나이나 이름 혹은 어떤 사무실을 운영하는 사람인지 등등 그 이상을 절대 공개하지 않았다. 어떻게 만났는지 그는 어떤 사람이며 왜 결혼한 지 오래되었는데 아이는 생기지 않는지 등등을 포함해서.
그녀는 대학을 졸업하고 대일본제국의 대학 학사 학위를 손에 거머쥐게 되면서 조금 더 욕심을 내기로 했다. 대학원을 진학하기로 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대학에서의 공부를 열심히 한 것도 아니었고 전공에 대한 고민이나 연구등의 과정을 거쳤던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가장 멋있어 보이는 경영학을 선택했다. 하지만 아무리 돈을 내고 들어가고 그것을 묵인해 주는 대학 때는 그렇다 손 치더라도, 대학원에는 논문이라는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절차라는 것이 있었고 학부제의 대학과는 달리 세부 전공과 관련된 해당 연구실이 있었기 때문에 연구실의 세미나나 수업에도 참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는 큰 장벽이 그녀의 결심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전공을 잘못 선택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골 촌구석의 사립대학이긴 했지만 경영대학원은 그나마 공부를 본격적으로 하거나 취업을 위해 공부를 좀 하는 일본 학생들이 간혹이긴 했지만 한둘 섞여 있다는 사실까지는 미리 계산해 넣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래서 몇 달간의 부대낌에서 그녀는 자신이 이곳에서 석사 학위를 받을 수 없으며 계속 연구실이나 나가 수업에 참석하다가는 자신의 밑바닥이 드러나고 말 것이라는 위기감을 느끼고서는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이제까지 제대로 공부를 잘하고 있다고 말해왔던 늙은 변호사 남편에게 새삼스레 자신이 하고 싶다고 학비까지 달라고 했는데, 덜컥 그만두겠다고 할 수만은 없는 노릇 아닌가 하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낡디 낡아 10만 킬로도 더 뛴, 덜덜거리는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늙은 변호사에게 있어 돈을 뜯어내는 것도 정도가 있다는 사실을 그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수개월간 고민한 후 그녀가 내린 묘안은 지금의 시골 대학보다 더 나은 제국대학 중 하나인 국립대학으로의 진학이었다. 그녀가 좀 더 수준이 높은 국립대학으로 진학하겠다고 하면 그 역시 감탄에 마지않을 것이라고 그녀는 확신했다.
“국립대학?”
늙은 변호사는 그녀의 새로운 제안이 뜬금없고 황당하지 그지없었다. 물론 집안에서 그녀가 뭔가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가끔씩 싸구려 여행을 중국인 친구들과 가겠다고 할 때 백만 원도 안 되는 돈을 대주는 것도 조금 아깝기는 했지만 그녀에게 받는 서비스에 비해서는 싸구려 캬바쿠라에서도 그 정도의 돈을 내야 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다지 큰돈이 나가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잘 다니고 있던 지방 사립대를 포기하고 국립대학으로 진학을 하겠다니, 그녀가 무슨 생각에서 그런 제안을 하게 되었는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국립대학이요. 당신도 내가 국립대학에 간다고 하면 다른 사람들한테 얘기하기가 조금 낫지 않겠어요? 박사과정까지 제대로 해 보일게요.”
“그럼, 학비는···? 이제까지 다닌 대학에도···”
“걱정 마세요. 국립대학이 사립대학보다 학비도 더 싸고 절반정도 깎아주는 장학금제도도 있다나 봐요.”
늙은 변호사의 돈 걱정과 그가 어떤 것을 걱정하고 있을지 무엇을 트집 잡을 지도 그녀는 이미 계산에 넣고 있었다. 그녀가 장학금까지 해결했다고 말하니까 더 이상 그는 토를 달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단 하나 마지막 질문에 대한 대답이 기가 막혔기 때문이었다.
다음 편은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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