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항일투쟁열사기(抗日鬪爭烈士記) - 23

호군혜의 정체 - 2

by 발검무적

지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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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은 또 경영학으로?”

“아니요. 중국문학이나 중국철학이요.”

“중국문학?”

“네. 왜요? 뭐가 이상해요?”

“아니, 일본의 제국대학 중 하나인 국립대학에 중국인이 중국어 전공으로 입학이 되기는 하나?”

“지도교수랑 연락해서 어제 직접 만나서 다 얘기 끝냈어요.”


그렇게 중국인이 중국어 전공으로 국립대학에 입학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일본인은 그는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그녀의 말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모두가 계산된 그녀의 공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사토 렌코쿠’라고 하는 교수와 교육 관련 시의원을 하고 있는 그의 부인과 함께 자리를 하게 되고 나서였다. 코가 변호사인 자신의 이름을 남편이라며 팔고 입학을 담보받았다는 사실도 그들을 통해 듣고 나서야 진실을 깨달았지만 그것은 이미 후회하기엔 늦은 시기였다. 그 지역에서 중국 여자와 살림을 차렸다는 사실은 이미 변호사협회에서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기 때문에 차라리 조금은 격이 있는 여자라는 식으로 포장이라도 하고 싶어져 버렸다. 20여 년을 그 국립대학에서 교수를 한 사람과 시의원이라며 정치인 명함을 내미는 그의 부인과 관계를 좋게 맺어두는 것도 자신에게 그리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것이 최종적인 그의 판단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궁색한 최종결론과 상관없이, 모두 코가 오래전부터 고민 끝에 계획한 그대로였을 뿐이었다.


그렇게 코가 입학한 국립대학에서의 처음 석사 1년간의 생활은 꿈만 같았다. 그 지역에서 가장 크다는 공원을 떠올릴 정도로 훌륭한 캠퍼스에 매일 꽃단장을 하고 일주일에 한두 번 연구실에 들르거나 하는 것이 그녀에게 있어서는 너무도 즐거운 일이었다. 다른 중국 유학생들이 오거나 하게 되면 이제 일본생활이 10년이 훌쩍 넘은 그녀는 최고참이었고 중국 여학생들의 대모로 존경을 받았다. 물론 중국 유학생들 모임이나 중국인들이 모이는 곳은 가지 않았다. 자신이 속해있는 곳은 언제나 일본인 학생들이 속한 곳이어야만 했다. 그리고 돈을 내거나 자신이 무엇을 사주거나 하는 서툰 일 따위도 절대 하지 않았다.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할 수가 없었다. 남편이 변호사이고 해외여행을 늘 다닌다고 소문을 자기가 내긴 했지만 그 소문 때문에 어린 학생들이나 중국 학생들에게 쓸데없는 돈을 쓰는 것은 죽기보다 싫었다. 중국이라면 그랬을지도 모르겠지만 현재 자신은 철저히 일본에서 10년이 넘은 일본인들에 속해 있다고 주장하고 싶었기에 일본의 더치페이 스타일이 너무나 마음이 편했다. 행여 돈을 내는 모임이나 자리에 사토 렌코쿠나 다른 나이가 있는 교수나 남자가 있을 경우는 더욱 편했다. 적당히 돈을 낼 때 자신이 아직도 회비를 내지 않았다고 불쌍한 표정을 지어 보이면 언제나 자신이 열외가 되도록 그들이 배려해 준다는 사실을 이미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1년 반이 지나고 여름방학이 지났을 즈음, 늙은 변호사에게 가장 싼 가격의 패키지라는 것을 재차 확인받고 나서야 겨우겨우 이제까지 모은 돈을 합쳐서 호주로 무리한 여행으로 자신의 여권에 새로운 나라의 도장을 받아낼 수 있었다. 그렇게 막 그 구차한 여행을 마치고 다녀왔을 때였다. 싼 시즌을 노리느라 방학이 한참 지나고 학기 시작이 꽤 지난 10월 중순경에 돌아오자, 원래 연초에 온다고 했다가 한 학기 늦게 도착한 한국인이 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사토 렌코쿠에게 호주의 벼룩시장에서 산 캥거루 버버리 넥타이를 비싼 것처럼 포장해서 들고 들어갔다가 그의 연구실에 서 있는 동민과 마주쳤다.


“처음 뵙겠습니다. 코라고 합니다.”

“중국인이군요?”

“네?”


당황스러웠다.

일본에 온 지 10년이 넘어 자신에게 처음 만난 자리에서 대놓고 중국인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자신의 앞에 서 있는 한국인의 일본어 발음은 분명히 자신이 매일 듣는 일본인의 그것에 가까웠다. 조금 트집을 잡자면 관동보다는 관서지방 사람의 목소리에 가까웠다고나 할까.


“일본어가 불편하면 중국어로 말해도 됩니다.”


그가 갑자기 유창한 중국어로 말을 걸어왔다.


“중국어를 잘하는군요?”


놀라서 자신도 모르게 중국어로 대답을 하고 말았다.


“어떻게 내가 중국인이라는 걸 알았죠?”

“발음이 누가 들어도 전형적인 중국인 발음인걸요? 어떻게 모를 수가 있어요?”


그는 서슴지 않고 자기의 발음이 어색한 중국인의 발음이기에 쉽게 알아들을 수 있었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이제까지 이렇게 직접적으로 자신의 발음이 중국인스럽게 어색하다고 지적해 온 사람은 없었다. 게다가 일본인도 아니고 한국인에게 그런 말을 듣는 것이 그녀에게는 그야말로 굴욕적인 첫 만남의 시작이었다.


그렇게 처음 그를 만난 이후, 그녀는 나름대로 이제까지 그녀가 누려왔던 캠퍼스생활에 묘한 제약을 느끼기 시작했다. 가장 큰 괴리감은, 그 한국인이 약혼한 상태로 곧 결혼을 할 것이라는 점이었다. 게다가 그의 외모는 비슷한 연배임에도 자신보다 한 10년은 더 앳되보였다. 그렇다면 이제 기혼자가 한 명 더 늘었다는 것과 자연스레 유일한 기혼자였던 자신과 비교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모든 것들이 불안해졌다. 다행히 나중에 결혼을 하고 일본에 들어온 그녀의 아내가 일본에 오는 것은 6개월이 지나서일 것이라는 점이 위안이라면 위안이었다. 하지만 시간은 다른 어떤 때보다 빠르게 흘러갔다.


그 6개월간 공부가 직업이라며 웃어 보이던 저 한국인의 놀라운 학습능력과 이제까지 봐왔던 대강 공부하는 일본인 학생들과의 차이점 등등에 무덤덤해지는 노력이 채 익숙해지기도 전에 그의 아내라는 화려하기 그지없는 진짜 드라마에서만 보아왔던, 찌질한 오영희와는 전혀 다른 부류의 한국인 여자가 연구실에 등장한 것이었다.


그의 아내를 만나기 전에 들었던 유일한 정보는, 그녀의 직업이 치과의사라는 것이었다.


치과의사.

일본과 한국이 어떤지 직접 가볼 필요가 없이 중국만 하더라도 치과의사는 상류계층의 직업임에 조금의 의심할 여지도 없는 부분이었다. 그녀도 한국의 부자들이 대강 어느 정도의 삶을 살고 있는지는 드라마를 통해 듣고 본 것이 있어서 꽤 알고 있던 터였다. 하지만 이제까지 연구실이나 일본에 와서 만난 한국 유학생들의 수준을 비교해 보건대 거의 자신보다 아래 수준이라고 확인한 바 있으니 진짜 치과의사가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로 하거나, 혹여 대학을 갓 졸업한 월급쟁이 페이닥터 정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싶었다. 자신의 남편을 보더라도 변호사라도 다 같은 변호사가 아니라는 것은 그의 수입이나 생활수준만 보더라도 예외는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이제까지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 만나온, 돈도 없고 학벌도 자신과 비슷하게 고등학교를 졸업한 시골출신이거나 그다지 대단한 경력이라고는 할 수 없는 변변치 않은 한국 학생들을 보며 느끼던 묘한 상대적 우월감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이제까지와 마찬가지로 자신이 어느 정도 목에 힘을 주고 사는데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라고 자위하고 싶었다.


하지만 동민 내외가 등장하고 그녀의 자존심이란 자존심은 한순간에 모두 무너져 박살 나버렸다. 특히 힐을 신어도 160이 채 되지 않았던 자신과 비교되는 멀리서 연구실 복도에서 마주치거나 그 낡고 좁은 엘리베이터에만 같이 타더라도 훤칠하고 늘씬한 진짜 한국 여자가 나타난 것이었다. 그전에 만난 한국 여자들은 대개 시골 변두리 출신에, 키가 자신과 별달리 차이도 나지 않았고, 옷차림 역시 튀지 않는 오래된 보세옷의 꾸질꾸질한 여학생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코는 유독 오 영희와도 사이가 좋았더랬다. 그녀와 함께 있음으로 해서 자신이 조금이나마 우위를 점하고 튄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거들을 입어도 툭 튀어나와 쳐지기까지 한 배에, 어떻게 매만져도 커버되지 않는 큰 얼굴, 무척이나 짧아 치마를 입는 것에 큰 용단이 필요한 자신의 다리길이 등을 생각하건대, 누가 보더라도 비교할 수 없는 대상의 여자가 나타난 것이었다.


치과의사라는 동민의 아내는 늘 화려하기 그지없는 드레스 스타일로 학교에 나타났다. 처음 만났을 때는 자신의 가짜 루비보다도 더 큰 진짜 다이아몬드를 결혼반지인 듯 끼고 나타나, 온통 몸을 휘감고 보기에도 자신의 옷보다는 10배나 비싸 보이는 고급스러운 원피스를 입고, 힐을 운동화처럼 편하게 신고 있었다. 키가 173이라고 했다. 자신이 보기에는 180의 장신 농구선수처럼 보였는데 그 옆에 가서 서기가 끔찍하다 싶을 정도로 비교될 것이 뻔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가능하면 동민과도 껄끄럽게 수업에서 마주치거나 자신의 무식이 드러나지 않도록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을 최소한 하는 것을 목표로 스텔스처럼 죽어지내던 그녀에게 동민의 아내까지 매일같이 남편과 함께 연구실의 자습실에 와서 공부한다는 사실은 더더욱 그녀를 불편하기 그지없게 만들었다. 일본문학 연구실 팀들과 함께 사용하는 자습실은 개인 사물함이 있는 곳이어서 학교를 자주 가지 않는 그녀라고 할지라도 쓸데없는 군것질거리나 무거워서 보지도 않는 책 등을 모두 두고 다녔기 때문에 꼭 들를 수밖에 없는 공간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 막 결혼했다는 그 부부가 함께 나란히 앉아 공부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녀의 마음은 도통 편하지 않았다. 매번 그 공간에 들를 때마다 무시할 수도 없고, 꼭 인사를 나눠야만 하는 것도 영 내키지 않는 것이 사실이었다.


동민의 아내가 등장함으로써 가장 먼저 태세를 전환한 것은 자신의 지도교수 사토 렌코쿠였다. 사토 렌코쿠가 여자를 밝히는 것은 이미 자타가 공인하고 있던 사실이었지만, 그것을 이용하여 자신이 로비 아닌 로비를 했던 터였지만 자신에게도 넘어왔던 그가 화려하기 그지없는 동민의 아내에게 눈이 돌아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었다. 공공연하게 공석에서 동민의 아내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한국 여배우 최 지우와 이름이 똑같은데 키도 똑같고 분위기가 똑같다며 너즈레를 떠는 말을 들었을 때는 정말 역겨워서 어쩔 줄을 몰랐다.


물론 다른 일본 학생들도 크게 다르지 않은 반응이기는 했지만 그들은 굳이 자신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지 않으면 그저 돌아서서 잊어버리고 그만이었다. 동민에 대한 껄끄러운 반응이 조금씩 일어나고 있기는 했지만 자기가 이간질을 한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정도로 움직여줄 일본인들이 아니라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던 중 지우가 온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지우를 통해 한국어 강습을 받는다고 사토 렌코쿠가 여기저기 자랑하며 떠들고 다녔을 때, 어떻게 해서든 자신도 그 그룹에 끼고 싶었다. 물론 지우와 비교가 되는 것이 끔찍하게 싫었지만 이대로라면 사토 렌코쿠가, 한국여자와 비교할 때 발톱의 때만도 못해 보이는 자신을 결국 바라보지 않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었고 돈을 내지 않고 한국어를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은 내내 해오던 터였다. 물론 정식으로 일본어조차 배운 적이 없었지만 일본에 살고 있기 때문에 전투적으로 일본어를 몸에 익혔던 것과는 달리, 한국어는 드라마를 보며 그 생활이나 문화를 동경하고 있던 터라 화장이나 옷차림이 세련된 치과의사와 관계를 밀접하게 만들어 돈독해지기라도 한다면 자신이 그들의 생활수준으로 함께 올라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망상이 굴뚝같았다.


그러나 그것이 자신만의 착각이었음을 깨닫고 다시 한번 좌절하게 되는 일이 터진 것이다. 낯을 가린다는 이유로 동민의 아내가, 자신이 사토 렌코쿠와 함께 한국어를 공부하는 것은 내키지 않는다고 대놓고 거절한 것이다. 그녀에게는 너무도 다행히, 사토 렌코쿠의 게으름과 지우의 한국 치과병원의 대진 문제로 잠시 그녀가 귀국한 탓에 한국어 수업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그녀가 세 번이나 끈질기게 가까워지기 위해 매달렸지만 그녀는 지우가 있는 그 위까지는 결코 올라갈 수가 없었다. 코는 그것이 자신의 수준이 낮다고 판단 내린 동민의 방해라고 생각했고 자신이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는 한계가 그런 것인가 싶어 그 망상을 사실이라고 착각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녀는 더욱 불안했다.


지우가 두 달여 한국에 들어갔다가 다시 연구실에 나온 후 갑작스레 사토 렌코쿠가 연구비로 동민에게 신형 SONY 노트북을 사주었다는 소문을 듣고서는 다시 한번 그녀는 불안감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직도 구형 노트북을 사용하고 있는 자신과는 차이 나게 원래 쓰고 있던 개인노트북을 동민이 가지고 있었었음에도 불구하고 지우가 함께 공부하는데 편의성을 제공하기 위해 렌코쿠가 남는 연구비로 노트북을 구매해 주었다는 소문이었다. 정작 사토 렌코쿠가 그것을 생색내기 위해 연구실에서 동민에게 주려고 모든 학생들이 있는 자리를 선택했을 때 그녀는 질투에 온몸이 불타버리는 것만 같았다.


다음 편은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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