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항일투쟁열사기(抗日鬪爭烈士記) - 40

통학금지해제와 최후의 발악 - 1

by 발검무적

지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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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조사위원회가 끝이 나고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아 예상했던 대로 학교 측에서 먼저 연락이 왔다. 여기서 ‘예상했던 대로’라는 표현은, 동민이 ‘가족들에게 이후 어떻게 될 것이라며 설명했던 그대로’라는 것을 의미했다. 학교 측이 협상안을 유도할 것과 대강 이 사건을 무마시키려는 의도를 확연히 담아낸 협상안일 것이라는 점이 외길수순으로 맞아 돌아가는 듯했다.


연락이 온 방식은 학교에서 바로 온 것도 아닌 교무과의 시미즈를 통해서 온 이메일이었다. 문학연구과 연구부장교수가 동민을 직접 만나고 싶어 한다는 연락이었다. 때마침 다른 학교에서 초청받은 세미나를 참석하기 위해 일본 현지를 떠나야 했던 동민은 세미나에 참석하기 전날 만나거나 그것이 안되면 세미나가 끝나고 돌아온 후밖에 시간이 없을 것 같다는 매우 건조한 답변을 보냈다. 실제로 시간이 없기도 했지만 문학연구과 연구부장교수가 이제까지 이 사안에 대해서 뭘 했다고 이 기회를 이용해서 격식을 차리려는 것이며, 무슨 이유로 부른다는 말도 없이 오라 가라 하는 것인지 내심 괘씸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결국 세미나를 무시하고 부르면 부르는 대로 바로 올 수 없느냐는 일방적인 약속을 강요하던 교무과 직원 시미즈와 이메일 실랑이를 서너 번을 거듭한 끝에 세미나의 일정이 끝나는 2월 첫째 주 월요일 오전으로 부장교수와의 약속이 잡혔다.


그렇게 세미나를 마치고 돌아와 연구부장의 연구실을 찾아간 월요일 동민은 먼저 1층의 시미즈에게 ‘무슨 이유로 오라고 하는지도 말하지 않고서도 부르는 것이 일본의 예의냐?’라고 넌지시 찔러놓고 바로 윗 층에 있다는 연구부장교수의 연구실로 올라가 문을 노크했다.

잔뜩 날이 선 동민의 입장에서 처음 만나는 연구부장교수는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사람이 좋아 보였다.


“박상이십니까? 아, 일찍 오셨군요. 지금 사토 렌코쿠 교수도 불렀으니까 바로 올 겁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시겠습니까?”

‘사토 렌코쿠를? 왜?’


아주 예상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의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도 동민은 치밀어 오르는 오래된 분노에 약간 손끝이 떨림을 느꼈다. 가만히 앉아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사토 렌코쿠가 문을 노크하고 들어섰다. 그는 동민을 만날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탓인지 애써 담담한 표정을 지었지만 적잖이 긴장에 흥분까지 하고 있다는 사실은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었다.


“아, 바쁘시지요?”


렌코쿠는 애써 동민을 무시하려는 듯 그를 외면한 채 부장교수에게 친근한 척 이것저것 안부며 근황을 물었다. 사실 동민이 이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연구부장에게도 호소해 볼까 했지만 학교 내의 그의 위치와 그가 보수적인 성향을 띠고 변화를 싫어한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그가 한 달 후 정년퇴직을 한다는 점까지 분석하고는, 이빨 빠진 호랑이라는 사실만으로도 그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을 그만둔 적이 있었다. 이런저런 생각이 오가는데 드디어 세 사람이 자리에 앉아 마주 보는 어색한 타이밍을 조우하게 되었다. 렌코쿠는 굳이 자신과의 친분을 과장하고 싶었는지 연구부장교수의 옆자리에 앉겠다고 억지로 어색해하는 부장교수의 곁으로 가서 앉는 퍼포먼스까지 잊지 않았다.


“자아, 오늘 박상과 사토 교수를 부른 이유는, 학교 조사위원회 측에서 박상이 가해자로 의혹을 가지고 진행되었던 조사과정에서 통학금지조치가 취해져 있는데, 연구를 하는 사람에게 그것은 너무 가혹하다는 입장의 이야기가 나와서 일단 학교 차원에서 통학금지 조치를 해제하라는 명령이 내려왔고 저는 그것을 전달하라는 말을 들었기에 그것을 전달하기 위해서입니다.”


부장교수는 그저 자신에게 책임이 전가되지 않는 범위에서 원만한 해결을 원하는 전형적인 자기 자리 유지형의 인간이었다. 그에게 찾아오지 않길 정말 잘했다고 동민은 다시 한번 자신이 판단에 확신을 가졌다.


“그러면 오늘 이렇게 저를 부른 것은 통학금지를 해제하는 조치를 통보하는 것뿐입니까?”

“그렇습니다.”


동민의 질문에 두 교수는 조금 의아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원하던 것이 그대로 공부만 하고 제대로 공부한 성과를 거두기만 하면 된다던 동민의 말대로 해주었는데 무엇이 불만이냐는 의문이 담긴 표정들이었다. 물론 그들이 짜고 치는 고스톱이 어떤 의도를 담보하고 있는지에 대해 동민이 모를 리가 없었다. 하지만 예상했던 시나리오라면 이제 호락호락하게 그들의 손아귀에서 놀아나지 않는다는 것을 어필한 수순이었다.


“그렇다면 그 말도 안 되는 부당한 명령을 내린 학교 측의 누군가는 그 잘못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 것 아닙니까?”

“예?”


렌코쿠는 차마 대답을 하지 못하고 놀라서 되묻는 부장교수의 의문에 함께 고개를 돌렸다.


“그렇지 않습니까? 만약 그것이 정당한 명령이었다면 그 근거를 대고 설명해 주면 되고 그 명령이 잘못된 부당한 것이었다면 학교 측의 누군가 그 명령을 내리거나 사주한 사람이 책임을 져야 하는 것 아닙니까?”


동민의 논리 정연한 지적에 부장교수가 당혹스러움을 금치 못했다.


“그건···, 저는 그런 것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일단 박상의 그런 주장이 있었다고 위에 보고는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때, 도저히 그 상황을 보다 못했는지 아니면 더 이상 이야기가 진전되었다가 자신의 공작이 드러날 것이 두려웠는지 렌코쿠가 말을 막고 나섰다.


“이봐! 박군. 부장교수님은 아무것도 이 사안에 대해서는 알지도 못하시고 그저 조사위원장인 부학장님의 명령을 전하는 것밖에 없는 겁니다.”


렌코쿠의 변호와 무마에 부장교수가 자신은 억울하다는 듯 긍정의 고개를 끄덕였다. 대강 위에서 말을 전해 듣기는 했지만 이 한국 유학생이 보통내기가 아닌 학생임에는 분명하다고 생각하니 등줄기에서 식은땀 한 줄기가 흐르는 것이 느껴지는 듯했다.


“그러면 제 의견을 공식적으로 조사위원장에게 전해주십시오. 그리고 조사위원회 과정에서 이 사건에 관련된 교수의 연구비 횡령 문제라던가 여러 가지 문제제기를 하였는데 왜 그 사안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이 없는 겁니까?”


‘연구비 횡령’에 얼굴이 화끈 긴장한 티가 나기 시작한 렌코쿠의 등 뒤로 연구실 문이 열리며 반대머리 야마다가 들어오려는 것이 보였다. 그는 동민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는 놀라서 황급히 문을 닫고 그냥 나가버렸다. 예의상 문학부 수장 교수의 연구실에 들어오면서 노크도 제대로 하지 않고 설사 실례하고 나가 더더라도 말없이 그렇게 얼굴을 들이밀었다가 사라지는 것은 일본의 예의상 보았을 때도 명백한 언어도단의 행위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야마다의 입장에서는 부장교수에게 넌지시 사실을 알리고 렌코쿠의 변호인 역할을 했다는 점을 눈치 빠른 동민에게 알게 해서는 큰일이 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무작정 자리를 도망치듯 피했던 것이다.


“알겠습니다. 위에서 박상의 의견에 100% 수긍하고 따를지는 의문이지만 일단 내 선에서 보고는 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의 목적은 일단 통학금지조치의 해제를 명하는 것이기에 이만하도록 하겠습니다.”


불만족스럽기는 했지만 자리를 빌어 렌코쿠에게 자신이 어디까지 프레스를 가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여기는 동민에게 렌코쿠가 다시 발목을 잡았다.


“박군. 지금 11시 반인데, 일단 학교 측의 명령은 통학금지해제인지는 몰라도 우리 연구실측은 의견이 좀 다릅니다. 그러니까 이따 1시까지 교수회관의 스도우 교수님 연구실로 오도록 하세요. 학교 측과 우리 연구실의 교수들이 의견을 달리 할 수도 있기 때문에 모든 교수들이 모여 박군의 문제에 대해서 전체 학과 회의를 하기로 했습니다.”

‘이것은 또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딴지냐?’


동민은 끝까지 상황파악을 하지 못하고 자신의 우위를 점할 수 있다고 여기는 렌코쿠의 언행에 어이가 없었다. 그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그냥 그 자리에서 면박을 주고 연구비 횡령과 협박으로 형사고발이라고 해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이제까지 참아왔는데 그대로 일을 망쳐버릴 수는 없다고 여겼다.


“알겠습니다.”


1시간 반이 채 되지 않은 짧은 시간 동안 렌코쿠는 무척이나 바빴다. 일단 동민이 빠져나간 자리에서 연구부장교수에게 헤헤거리며 전후사정을 설명하고 동민이 얼마나 질이 나쁜 학생인가 모함하는 것에 충분한 공을 들여야만 했다. 이어 도망쳤던 야마다는 다시 돌아와 렌코쿠의 편을 들며 동민이 얼마나 교수를 우습게 보는 인간인가 모함하며 이 사안 자체에 별관심 없어하는 부장교수에게 조사위원회에 동민의 불만을 보고할 것도 없고, 자신이 조사위원으로서 움직일 테니 귀찮은 일은 하지 말라고 미리 렌코쿠와 계획한 대로 그의 입을 막는 것에 치력했다.


그리고 렌코쿠는 다시 한번 중국 문화론의 교수들을 상대로 미리 입을 맞춰둬야 했다. 조수 미즈카미까지 모이는 자리를 ‘징벌회의’라는 형태로 만들고, 미리 명령해 둔 곤도를 선두로 관계가 껄끄러운 교수들에게까지 동민이 여학생에게 위험이 되는 인물이라고 소문을 퍼뜨려 공공의 적으로 만드는 것에 성공했다는 보고를 재확인했다. 자신은 철저하게 제삼자인 양 연기하겠다고 다시 자기 최면을 걸었다. 지도교수의 입장에서 동민을 구제하고 싶지만 구제하기에는 너무 문제가 많은 학생이고, 특히나 여자문제가 복잡한, 손대기 어려운 인물이라는 점을 확대하기로 한 계획에 충실했다. 모양새가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최소한 학교 조사위원회의 명령을 불복할 수는 없었지만 단단히 동민에게 겁을 주고 다시 한번 자퇴를 종용하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이번 퍼포먼스의 관건이었다. 지난번 구술시험 이후로 이 문제가 해결이 되더라도 동민이 박사학위를 받거나 편하게 공부할 수 있는 분위기는 결코 없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인지시킬 수만 있다면 그다음은 동민이 알아서 포기하고 자퇴든 자살이든 해줄 것이라고 그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박군이 왔습니다.”


조수 미즈카미가 모두에게 나지막이 말했다. 좁은 스도우의 연구실에 임시 회의실이랍시고 다닥다닥 붙어 앉은 중국 문화론 연구실의 교수가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모였다. 조교수에 조수까지 이렇게 모이는 것은 여간해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무도 앉으라는 얘기를 꺼내지 않을 정도로 동민에 대한 그들의 전투의욕은 각기 다른 형태로 쭈뼛거렸다. 최소한 동민에게 우호적이지는 않더라도 진실을 말하기에도 어려운 분위기를 렌코쿠는 겨우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 듯 보였다.


동민이 장갑을 벗으며 녹음버튼을 미리 눌러둔 엠피쓰리를 보이지 않게 테이블 한켠에 놓았다. 눈치 빠른 조수 미즈카미가 아니고서는 다른 이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오늘 이렇게 모인 것은 박군의 세크하라 의혹사건에 대해서 우리는 이미 결론을 내렸다는 점을 결론내려고자 함입니다.”


렌코쿠가 그렇게 운을 띄우며 스도우에게 싸인을 보냈다. 털보 스도우 교수는 이전의 구술시험때와는 사뭇 다른 표정으로 동민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미 여러 통로를 통해서 박군이 여러 가지 세크하라 의혹에 얽혀있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동민은 렌코쿠가 스도우 교수를 비롯해서 여러 교수들이 렌코쿠의 마수에 걸려 자신에게 우호적이지 않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특히 사키에 사건을 언급하는 듯한 인상에서 내내 트집 잡을 것을 찾던 유하즈나 그와 대학동기이자 사키에의 지도교수였던 다케다, 그리고 나이가 가장 어리고 외국어를 잘한다고 했다가 면박을 당했던 마츠에 조교수까지 다들 동민의 당혹스러운 얼굴을 보기 위해 모인 듯 만찬을 기다리는 배고픈 자들의 얼굴이었다.


“어떤 일을 말씀을 하려는지는 알겠습니다만, 저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운 짓을 한 일이 없습니다. 이미 당사자가 직접 해명을 했던 사건을 비롯해서 렌코쿠 교수에게 어떤 말을 들었는지 모르지만 그것은 모두 사토 렌코쿠 교수가 만들어낸 거짓말 투성의 거짓입니다.”


동민의 직설적인 공격에도 그들은 전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렌코쿠의 거짓말 사전 공작도 그러했지만 그들은 이미 동민에 대한 보이지 않았던 이지메의 마수를 꺼내기로 암묵적 동의를 한 터였다. 동민은 천천히 사실증거에 근거해서 돌파하는 수밖에 없다고 여기고 스도우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아무리 그렇게 말해도 이미 우리는 여러 증인을 통해 사실을 확인했고···, 오늘 통학금지해제조치가 내려졌다고는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박군이 일본에서의 유학을 그만두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좋겠다는 점에 만장일치로 결정을 했습니다.”


다음 편은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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