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항일투쟁열사기(抗日鬪爭烈士記) - 41

통학금지해제와 최후의 발악 - 2

by 발검무적

지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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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스도우의 멘트는, 학생상담실장이 처음 보냈던 동민의 이메일에 렌코쿠가 만들었다는 보고서의 대사와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 마치 원고를 읽고 있는 초보 연극배우의 그것과 다를 것이 없는 이제 정년을 바라본다는 짜리 몽땅한 털보 교수의 모습이 딱하게까지 보였다.


“현재 학교에서 통학금지조치를 해제하게 된 배경에 대해 어디까지 알고 계십니까?”


마치 NHK의 다큐멘터리 아나운서의 내레이션 같은 동민의 질문에 스도우가 움찔했다. 사실 렌코쿠에게 들은 말과 내성적인 타케다의 비난에 근거해서 시키는 대로 읽고 따라준다고 하긴 했지만 자신이 동민이 문제를 일으키는 것을 직접 본 것도 아니었거니와 실제 학교의 조사위원회의 과정도 렌코쿠를 통해 간혹 전해 들었을 뿐 실제로 학교 조사회의 내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직접 확인한 바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통학금지 자체도 렌코쿠 교수의 사주를 받은 상담실장이 억지로 만들어 누명이라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에 총장실 직속 회의에서 긴급하게 내린 결정이라는 점을 먼저 알려드립니다. 그리고 사키에의 문제도 이미 사키에 본인이 직접 나서서 학생들이 만들어낸 누명이라고 사토 렌코쿠 교수에게 몇 번이고 해명한 바 있는데 마치 전례가 있는 듯이 말하는 것은 렌코쿠 교수가 만들어낸 거짓말에 지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제가 문부과학성에 고발을 하고 나자 그제서야 학교 조사위원회에서 이 건이 잘못된 것임을 깨닫고 현재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할 희생양을 찾고 있는 상황입니다. 말도 안 되는 권력을 남용하고 자퇴를 강요한 상담실장이 그 책임을 져야 하는지 아니면 그것을 사주한 누군가가 책임을 져야 할지 찾고 있는 중이란 말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지금 상황이 어떤지?”


동민의 거침없는 설명과 비난에 스도우가 약간 움츠려 들었다. 렌코쿠가 그 틈을 가만히 구경하고 있을 인간이 아니었다.


“지금 우리는 박군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모인 것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는 코상이 박군에게 느낀 공포와 두려움으로 인해 도저히 공부를 계속할 수 없다고 할 정도로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학교 측에서의 결론은 통학금지를 해제한다고 했을지 몰라도 우리 연구실의 입장으로는 여전히 박군이 위험인물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변함이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능하면 박군이 자퇴를 하거나 그렇지 않고 끝까지 공부를 계속하겠다고 주장한다면 최소한 코상에게 접근금지명령을 내리기 위해서 모인 것입니다. 다시 말해 통학금지를 해제해 줄 수는 있지만 학교에 나오더라도 조건이 있다는 것입니다. 당신이 코상과 마주치지 않는 조건입니다.”


처음 9월 7일 사토 렌코쿠에게 받은 명령과 토씨하나 틀리지 않은 내용이 그대로 반복되었다. 이미 그 당시에도 알겠다고 하고 명령을 따르겠다고 했던 동민이었건만 행여 자신이 속한 대학의 교수가 되지 못하게 하려고, 자신의 불륜과 연구비 횡령 사실이 들키지 않으려고 그 모든 일을 꾸몄던 렌코쿠가 이제 모든 방법이 막히고 나서도 다시 당당하게 사람들을 모아 놓고 원래의 내용대로 동민에게 협박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전에도 그렇게 하겠다고 했는데 사토 렌코쿠 교수께서는 코상의 손을 잡고 학생상담실로 가서 직접 고소를 부추기고 진행했습니다. 결국 지금과 똑같은 결과로 돌아올 것임을 몰랐습니까? 그건 어떻게 된 일입니까?”


동민이 입을 통해 이제까지 전혀 듣지 못했던, 처음 듣는 진실들이 쏟아져 나오자 약간씩 교수들이 술렁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보지 않고 듣지 않았을 뿐 사토 렌코쿠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고 이번 일이 어떻게 꾸며졌는지 아무것도 모르고 믿은 사람들은 아니었기에 대세에 영향은 없었다. 그들은 그저 자신들에게 어떤 형태로가 되었든 상대적 자괴감을 주었던 한국 일류대학의 박사에게 그간의 눌렸던 의식을 되찾고, 동민이 자신들의 눈앞에서 얼른 사라져 버리기를 바라는 저마다 이유만 다를 뿐, 목적이 같은 공범일 뿐이었다. 렌코쿠가 주위를 둘러보며 당황스러운 기색을 약간씩 보였지만 여전히 기세를 놓칠세라 말을 이어나갔다.


“뭔가 오해를 하나 본데, 나는 직접 데리고 간 것도 아니고 그냥 참고인으로 나와 함께 가 달라고 코상이 하도 부탁을 해서···”

“그게 말이 됩니까? 자기 지도학생 두 명이 문제가 있을 때, 아무런 사실확인이나 삼자대면도 없이 무조건 어느 한 사람의 손을 잡고 학생상담실에 정식으로 학교의 행정절차를 통해 고소를 하고 자신이 보지도 않은 일을 증언하고 자기 학생들에게 압력을 넣어 거짓증언을 하게 하는 것이 말이 됩니까?”

“그, 그건···”


렌코쿠가 정곡을 찔렸는지 말을 더듬으며 제대로 대꾸를 하지 못했다.

동민이 이제까지 참았던 감정이 갑작스럽게 폭발하기 시작했는지 말이 빨라지고 언성이 약간씩 높아져갔다.


“게다가 자기 돈도 아닌 연구비로 구입한 노트북을 갑자기 반환하라고 협박하면서 반환하지 않으면 경찰에 도난신고를 하겠다고 하는 경우는 어느 나라의 어느 대학에서 있을 수 있는 일입니까?”

“그야 그렇게까지 하지 않았으면 박군이 컴퓨터를 내놓지 않을 게 뻔하니까···”

“말이 됩니까? 나는 아직도 재학 중이고 내가 노트북을 가지고 한국으로 야반도주라도 한다는 말입니까? 그리고 7월 말에 있었던 학회에서 있었던 문제가 9월 말에서야 문제가 된다는 것이 말이 된다고 생각합니까? 대만에서 함께 있던 수많은 학생들과 함께 갔던 것도 모자라 인솔교수랍시고 책임을 맡았던 유하즈 교수는 바보라서 그런 일이 있었던 사실을 현장에서는 물론 돌아와서 3개월이 지나도록 몰랐다는 말입니까?”

“박군이 대만의 여학생과 대만에서 일으킨 문제가 너무 심각한 거라서···”

“말씀 잘하셨습니다. 지금 여기서 하고 있는 말이 모두 녹음되고 있는 것처럼 엠피쓰리를 가지고 갔던 대만의 뒤풀이 자리에서 우연히 버튼을 잘못 눌러서 현지에서의 3-4시간 동안의 대화내용이 모두 녹음이 되었습니다. 렌코쿠 선생과 코가 대만의 여학생과 짜고서 만들어낸 거짓말을 증명할 녹음자료가 있습니다. 그 녹음에 대만의 여학생이 어떤 말을 했는지 선생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까? 녹음 사실이 있는데도 거짓말을 계속할 생각입니까? 게다가 술 마시는 자리에 코상은 나오지도 않았었단 말입니다.”

“녹음을 했다고?”


렌코쿠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조사위원회의 야마다 교수에게 얼핏 듣기는 했었다. 야마다가 대강 무시하고 그 자료를 제출하지 못하게 했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 정말 녹음한 내용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서 엉겁결에 그는 자기 스타일대로 억지를 부렸다.


“영상도 있어? 영상도 없는데 그 자료만 듣고 어떻게 알아?”


동민이 다음 말을 잇지도 못하고 허망한 듯한 표정으로 헛웃음이 터져 나오는 것을 주체하지 못했다. 아예 작정하고 우기기로 한 사람 앞에서 이렇게 계속 증거를 대도 의미가 없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주위의 10명이 넘는 교수들 중 어느 한 사람도 동민의 말에 힘을 실어주는 인간은 없었다. 어차피 예고된 공개사형장이라는 것을 재확인할 뿐이었다. 타케다 교수가 그 상황이 지속되는데 동참하는 것이 창피했는지 갑작스러운 일정이 있다면서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 계속 있기가 껄끄러웠던 것은 다른 교수들도 마찬가지였다. 다케다를 필두로 하나 둘 이런저런 핑계로 몇 명이 나가고 스도우 교수가 계속 눈치를 보면서 동민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자아, 정리합시다. 일단 지금 우리가 말하는 것에 동의합니까?”

“뭘 말입니까?”

“코상과 접촉을 피할 수 있겠습니까?”

“어차피 제가 이곳에 와서 공부한 지 벌써 2년 반입니다만, 코상과 연구실에서 마주친 것은 손가락에 꼽습니다. 그런데 무슨 범죄자도 아니고 우연히 마주치게 된다면 어떻게 하라는 말입니까?”

“도망쳐주십시오.”


렌코쿠가 기다렸다는 듯이 끼어들었다. 동민이 가만히 생각하는 듯 렌코쿠를 노려보았다.


“알겠습니다.”


동민의 높은 자존심에 반발을 할 것이라던 렌코쿠의 예상은 빗나갔다. 그들은 동민이 이렇게 선선히 코상을 피하겠다고 나올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반응이었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렌코쿠는 자신의 속내를 또 내뱉는 실수를 저질렀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왜 이렇게까지 수모를 당해가면서 이곳에서 공부를 계속하겠다는 겁니까? 그냥 자퇴하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훨씬 나은,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지 않습니까?”


사진 설명

아베 신조 일본 총리(오른쪽)가 어린 시절 외할아버지인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의 품에 안겨 찍은 사진. 왼쪽은 형인 히로노부 미쓰비시 상사 패키징 사장.


다음 편은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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