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항일투쟁열사기(抗日鬪爭烈士記) - 39

진정한 조사위원회 - 2

by 발검무적

지난 이야기.

https://brunch.co.kr/@ahura/2123



그러자 예상했다는 듯이 야마다가 두꺼운 자료를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대답했다.


“여기 다 있습니다. 우리도 그의 증언을 받았으니까 그 점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 그렇습니까? 다행이네요. 제가 지금 듣다 보니 가장 연장자였던 현직 고등학교 교사인 가토군을 비롯해서 함께 학회에 참석했던 우리 연구실의 학생들이 모두 하나같이 똑같은 위증을 했는데 이권이 개입되지 않은 사람으로 유일한 우리 학교의 외부인물은 나와 함께 방을 썼던 토호쿠 대학의 학생밖에 없거든요. 그런데 우연히도 2007년 9월 15일 토요일 책임 교수였던 유하즈 교수와 토호쿠 대학의 류자키 군에게 전화를 걸어 해당 사실에 대해 사실 확인한 대화 내용을 내가 녹음해 두었습니다. 필요하다면 거기 미리 받았다는 그들의 증언 내용 자료와 맞춰보면 좋겠군요. 그것은 이전 조사위원회에서도 밝혔지만 당연히 조사과저에서 확인되었을 줄 알았는데 증거자료로 저에게 요구하질 않더군요.”


야마다와 하야시의 등줄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특히 야마다는 그 정도가 심했다. 어느 정도 겁을 주고 이전의 문제가 되었던 사안도 덮으며 원만한 해결 쪽으로 사건을 종결하라는 총장과 부학장의 지시도 지시였지만, 평소 문학부에서 서로 뒤를 봐주며 상부상조하던 사토 렌코쿠의 접대까지 받고 나온 터였다. 그래서 일단 확실하게 가지고 있다고 여겼던 증인들의 입 맞추기 자료를 준비하고 득의양양했던 것이었는데 동민에게 객관적인 증인들의 증언이 녹취자료로 확보되어 있고 현장은 물론이고 통화 증언 녹취자료까지 있다면 더 이상 거짓증언이나 렌코쿠가 조작해 둔 연구실 학생들의 증언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었고, 오히려 위증죄로 무고를 논할 역전의 순간을 맞이할 수 있는 정도였다.


이 정도까지 동민이 치밀한 준비를 해왔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그가 당황에 마지않으면 주저하게 되는 것이 어찌 보면 본능적으로 당연한 수순이었다. 이미 제출된 증거가 조작이라는 조사까지 들어온다면 사토 렌코쿠는 물론이고 그것을 방관하고 동조했던 조사위원회에 비난의 화살이 부메랑처럼 되돌아올 것은 불 보듯 뻔했다.


“조사위원회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하야시가 일단 시간 벌기로 화제를 다른 쪽으로 돌렸다.


“무슨 뜻이죠? 이전에 했던 일련의 과정들이 조사위원회가 아니면 뭡니까?”

“그것은 원만한 해결을 위해 일단 확인만 하기 위한 것이고, 실제 정식 조사위원회는 오늘 이 위원회가 처음입니다.”


하야시 변호사는 일단 이런 것으로 우겨서라도 동민에게 밀려서는 안 된다고 여겼다.


“원만한 해결을 위해 열린 조사위원회라구요? 말은 좋네요. 제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1차 조사위원회에서는 상대방에 대해 사실 확인을 하면서 앞으로 문제가 된 상대방에 대해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사과를 하고 향후 화해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이라고 적혀 있던데···, 일방적으로 범죄자의 심문을 하는 것처럼 이것저것 따지고 내가 뭔가 말하려고 하면 무조건 잘못되었다고 우기고, 사과하고 원만한 해결을 하자고 편지를 보냈더니 그것을 엮어서 비밀유지의무라고 뒤집어 씌워서 말도 안 되는 등교금지명령을 내리고 어느 누구에게도 연락하지 말라고 협박하고 그럽니까? 그게 지금 당신이 말하는, 그리고 문서에 적혀 있던 원만한 해결을 추구하는 조사위원회의 역할입니까?”


동민의 연이은 빠른 일본어에 하야시 변호사는 자신도 모르게 침이 꼴깍 넘어갔다. 구구절절 옳은 소리였고 심지어 중간에 숨 쉴 틈조차 없이 쏘아붙이는 것이 영락없는 일본인 아나운서 같은 말솜씨였다. 결과적으로는 자신이 동민에게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배경을 깔아준 꼴이 되고 말았다는 사실이 더욱 창피했다. 처음부터 모든 사실을 설명해 나가면 동민이 논리적이라는 사실보다, 이미 있었던 사실을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덮는다는 것이 얼마나 귀찮고 어려운 일인가 체험하는 것 같아서 꺼림칙해졌다.


“그러면 궁극적으로 박상이 이 사건을 마무리하길 원하는 방향은 무엇입니까? 어떻게 해드리면 좋겠습니까? 렌코쿠 교수 이외의 교수 누군가로 지도교수를 바꿔서 지정해줬으면 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이제까지 가만히 있던 ‘사이’라는 여자 교수가 나섰다. 처음에 명령받은 대로 동민에게 적당한 타협선을 묻고 대강 덮는 것이 이 조사위원회의 본질이 아니었던가를 모두 재확인하는 직설적인 딜에 해당하는 질문이었다. 동민 역시 예상하고 있던 질문이긴 했지만 대안자체가 너무 어처구니없었다.


“주임교수이자 실권자인 렌코쿠 교수가 나를 내쫓지 못해서 안달인데 다른 어떤 교수로 지도교수를 바꿔 정하면 그 영향권에서 벗어날 것이라고 봅니까? 다들 렌코쿠 교수의 눈치를 보면서 따르는 입장인 것을 정말로 몰라서 하는 얘기입니까?”


동민의 까칠한 지적에 사이라는 여자 교수가 움찔하고 움츠렸다가 다시 활짝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러면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지 박상이 바라는 것을 구체적으로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겠어요?”


동민이 내내 고민했던 대안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저는 그저 진실이 확실하게 밝혀지기를 바랍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저 역시 원만한 해결을 바랄 뿐입니다. 가장 중요한 건 내가 하지도 않은 일에 대해 누명을 씌운 것이고,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나를 공격하고 막 가자는 지도교수의 본색을 알아버렸다는 것이 매우 슬픕니다. 하지만 내가 이제까지 2년 이상 들인 시간과 공이 아까워서라도 조용히 박사학위를 딸 때까지 참고서 그 성과를 거두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교과서적인 답이었다. 그때다 싶었는지 반 대머리의 야마다가 나섰다.


“맞습니다. 박상도 자신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그렇게 나와야 합니다. 남의 나라까지 와서 그렇게 고생했으면 아무런 결과물도 없이 그대로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은 정말로 슬픈 일이 될 것입니다. 나도 학생들과 죽이네 살리네 싸우고 난리까지 부렸었지만 나중에 다시 원만하게 서로 잘되는 쪽으로 해결된 적이 많습니다. 그렇게 하는 게 서로에게 가장 좋은 결론일 겁니다. 생각 잘했습니다.”


아슬아슬하고 만신창이가 되어버리기는 했지만 결론만 좋으면 모든 것이 좋은 것이라고 야마다는 한껏 온화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동민은 그들의 행태를 보면서 아랫입술을 물어뜯고 일갈을 외치고 싶었지만 알고도 속아주는 척하는 수밖에 없었다. 지금 정식으로 잘잘못을 가리자고 하고 렌코쿠의 처벌을 추궁하고 손해배상을 청구한다면, 여기 모인 자들은 자신을 그런 모종의 목적이나 바라고 난리를 치는 자해공갈단으로 몰아갈 것이 뻔하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해서 일단 그렇게 매듭을 짓는 것으로 역습의 첫 단추를 마련하기로 며칠 전부터 구상하고 온 터였다. 그들이 어떻게 나올 것이라는 걸 뻔히 알고 있었기에 화해하자고 억지 제안을 할 때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를 며칠에 걸쳐 내내 고민해 온 것이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였다.


“잘 알겠습니다. 그러면 조사위원회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원래 계획했던 시간을 너무 오버했으니 오늘은 여기서 마치지요.”


하야시가 한시라도 빨리 그 거북스러운 장소에서 빠져나가고 싶어 마무리하려고 동민의 눈치를 보았다.


“수고하셨습니다.”


겨우 힘겨운 한 걸음을 끝내며 일어서는 동민에게 반 대머리 야마다가 말을 걸고넘어졌다.


“이제 공식 조사위원회의 조사가 끝났으니 개인적으로 박상을 생각해서 하는 말인데···, 그 비밀유지의무 위반에 대해서···, 그거 밖의 변호사들한테 무슨 말을 어떻게 들었는지 몰라도 학교 측에서 봤을 때는, 특히 상담실장입장에서는 박상이 그렇게 한 것에 대해 비밀유지의무를 위반을 했다고 지적한 것이 맞습니다.”


동민과 히야시 변호사가 동시에 일그러진 얼굴로 야마다를 노려봤다. 야마다는 그 말만큼은 꼭 하고 넘어갔어야 한다는 듯이 여유 있는 표정으로 동민을 봤다. 그제서야 동민은 야마다의 얼굴을 어디서 보았었는지가 생각났다. 대학 학회당시 학회 출장비와 원고 수정 지원에 대한 신청을 할 때, 딴지를 걸며 초면부터 자신에게 반말을 해댔던 무례하기 그지없는 반 대머리 담당교수였다. 갑자기 정중한 존댓말을 너무 깍듯이 해서 그전에 만났던 그 작자와 동일인물이라고는 도저히 연상되지 않았던 탓에 헷갈렸었는데 지금 그 구차한 표정을 보니 그제서야 그가 기억났다.


그는 사토 렌코쿠가 긴급히 선발해서 내보낸 용병이자 대변인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하더라도 새삼 달라질 것은 없었다. 야마다가 오오하타와 같은 부류로 문학부 내에서 사토 렌코쿠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이 지금의 대세를 가르는 것에 아무런 차이가 없을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동민은 그를 통해 렌코쿠에게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넌지시 건넸다.


“그런데 제가 사토 렌코쿠 씨의 비리와 연구비 횡령에 대한 정황과 증거를 확보했는데 그건 이 조사위원회의 어디에 누구에게 제출하면 제대로 된 조사를 통해 처벌되는 겁니까?”


야마다의 얼굴이 다시 한번 후끈 달아오르며 어색한 미소를 계속해서 짓지 못하게 일그러뜨리고 말았다. 막 나가려던 하야시는 얼른 녹음기를 껐다. 이제 다 끝났다가 싶었는데 연구비 횡령이니 뭐니 더 큰 건들이 튀어나오면 어쩌자는 것인지 괜스레 동민에게 시비를 건 반 대머리의 머리를 한 대 갈기고 싶어졌다.


“우리는 박상의 세크하라 의혹에 대한 조사를 할 뿐이지 다른 사안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다른 이야기는 이 자리에서 삼가 주십시오.”


당황한 빛이 역력한 세 사람에게 이미 예상했다는 듯이 피식 웃어 보이며 동민이 물었다.


“그러면 경찰에 제보하거나 손해배상 재판을 청구할 때 제기하면 됩니까? 그리고 횡령을 한 것이 밝혀지면 당연히 사토 렌코쿠 씨는 국립대 교수직에서 짤릴 테고 새로운 교수가 오면 그분에게 지도를 받아도 되지 않을까요?”


아무것도 모른 척 툭툭 내던지는 동민의 말에 그들의 표정이 한 마디 한 마디에 지옥을 오기는 만 가지 변화를 일으키는 듯했다. 야마다가 다시 애써 태연한 척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횡령을 한 교수가 해고되는 것은 물론 상식적으로 그렇습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새로운 교수가 반드시 온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문학부에 학생대비 교수가 너무 많아서 신규채용은 어려울 겁니다. 그리고 아까도 말했지만 박상도 자신의 앞날을 생각해서 이쯤에서 그냥 원만하게 문제를 덮는 것이···”


거기까지 말해주면 동민이 적당히 눈치채주길 야마다는 바라마지 않았다. 동민은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듯한 표정으로 그 자리를 나왔다. 당황한 세 사람이 동민이 나간 회의실에서 웅성거리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에 귀를 기울일 필요성을 느끼지는 못했다.


다음 편은 여기에...

https://brunch.co.kr/@ahura/2125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