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원래 모두 시한부 인생이다.

내일 지구의 멸망이 온다면...?

by 발검무적

시한부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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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드라마와 영화에서 진부한 클리쉐로 순애보를 그리는 데 있어, 그리고 재벌 회장의 재산을 둘러싼 암투를 그리는 데에도 숱하게 사용되는 개념이다.


말 그대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정확히 말하자면 한정적 수명을 의미하는 용어이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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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수명이 본래 무한정이 아님은, 다시 말해, 시한부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가 이미 알고 있는 바임에도 우리는 스스로가 시한부 인생이라는 사실을 망각하며 병으로 여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의사의 선고를 받은 이를 연민하고 동정한다.


어리석기 그지없는 것이 인간이라지만, 자기 집 하나 버젓이 마련하지 못하고 전월세로 2년에 한 번씩 이사를 다니는 사람이 오피스텔에 월세 사는 사람을, 혹은 고시원에서 사는 사람을 동정하고 연민하는 것과도 크게 다르지 않은 셈이다.


이것저것 붙여서 쉬었다면 열흘이 넘는 기나긴 연휴를 보내며, 아들과 평범하게 나누던 일상을 그리워하며 요리로 아들을 추억하며 사부곡을 부르는 요리헌터님의 글을 보면서 추석은 무척 더 정에 사무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큰 시험을 준비한다고 정신이 없는 첫째와 공부한다고 해외에 나가있는 둘째에게 명절 음식을 제대로 먹이지도 가족끼리 함께 맛있는 것을 먹으며 재미있는 것을 함께 보며 깔깔거리던 일상을 이 긴 연휴에 누릴 수 없었던 공허함은 '가족 최우선 주의'를 강조하는 가장에겐 너무도 가슴아린 시간들이었다.


명절이라 특별한 이벤트가 있다거나 엄청나게 돈이 필요한 이벤트 상황이 벌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가족끼리 맛있는 것을 해 먹고 그 과정에서 함께 장을 보고, 투닥거리며 그것으로 요리를 하고, 그간 있었던 일을 나누고, 재미있는 것을 찾아 같은 공간에 편하게 옹기종기 그것을 공유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시간들이었다.


아이들이 태어나서 자라나는 모습을 무비캠에 찍어둔 영상을 꺼내보았다.

알프레도나 토토가 그랬던 것처럼 덩그러니 큰 거실의 tv에서 흘러나오는 아이들의 깔깔거리는 목소리를, 그 해맑던 꼬꼬마시절의 영상들을 보며 다시 그 시절을 회상했다.


살아가는 이유, 왜 사는가에 대한 화두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의 화두였다.

반백년을 훌쩍 넘겨 살아오면서 내가 생각하고 깨닫게 되었던 것은 결국 내가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하는 것.

소소한 일상, 그저 함께 맛있는 것 먹고 하하 깔깔 같은 공간에서 함께 웃기 위한 것이 전부였다.


가족을 이루지 않고, 아이를 낳지 않거나 낳을 수 없는 이들의 개인적인 가치관까지는 알 수 없으나 최소한 내가 생각하는 삶의 목적은, 내가 사는 이유는 가족이 그렇게 함께 행복하기 위한 것이 전부였다.


돈을 엄청나게 많이 버는 것이나 유명해지는 것이나 한 세상 권력을 손에 쥐고 다른 사람들의 위에 군림하며 그것을 휘두르며 살고 싶다는 생각은 내게 삶의 목적의 어느 한 편린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게 뭐가 그리 어려운지 조금씩 조금씩 원하던 그림을 맞춰나가기가 힘들었다.


돈이 어마어마하게 많아도 가정이 파탄 나고 이혼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혼외자를 만들고 세기의 이혼을 하는 사람의 가정이 행복해 보이지도 않았고, 최고의 미녀가 최고의 부자를 만나 결혼했다고 하면서 결국 가정을 파탄내고 자신의 아이를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갈라서서 지내는 것이 예뻐 보일 리 만무했다.


물론, 돈이 없어 내내 삶에 찌들어 있으면서 서로 사랑으로 감싸는 가족이 더 많을 수 있다는 드라마틱한(?) 현실에 괴리된 이야기도 믿지 않는다.


모든 가정이 아무런 문제 없이 행복하기만 할 수 없다는 것은 굳이 긴 세월을 살아가며 검증하지 않았더라도 수많은 시간의 세월과 역사가 증명한다.


저마다의 문제가 다를 뿐 고민거리나 속상한 문제나 말 못 할 가정사는 어느 집에나 있다.


그렇지만 가장 기본적인 문제.

가족 중에서 죽을병에 걸리거나 시름시름 아픈 것만 아니라면 그 외의 문제들은 얼마든지 해결방법이 있다.

100년도 채 살지 못하면서, 아니 심지어 건강한 최고의 컨디션으로 살 수 있는 세월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 자신이 100년이 되지 못하는 세월에 이 삶을 떠나게 될 것을 아는 우리 모두는 시한부 인생이다.


자신의 여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들은 드라마 속의 주인공들이 돈을 더 벌어보겠다고 아등바등하거나 권력을 더 손에 쥐겠다고 발버둥을 치는 모습은 그려지지 않는다. (물론 계엄에 사역했던 모 짭새 간부를 보면 현실에도 간혹 그런 자들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고는 할 수 없겠으나 그것은 극히 예외라 생각한다.)


시한부 판정을 받게 되면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했던 것들을 찾게 된다.

대부분의 드라마나 영화에서 그려지는 그 소중한 것에 돈이나 권력이나 물질적인 것들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런데 100년 이하로 어차피 시한부를 받은 전 인류는 자신들이 시한부 인생임을 망각하고 자신의 행복을 방기 해버리고 만다.


내일 지구의 멸망이 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사과나무까지 심을 여유가 있을지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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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폼페이 화산으로 마그마에 뒤덮여 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던 이들의 잔해를 보면 인간이 최후를 맞이하기 전에 하고자 했던 본능적인 행동이 무엇인지 우리는 조금이라도 유추해 볼 수는 있다.


최소한 내가 사랑하는 이들과 조금이라도 더 많은 시간을 함께 공유하는 것.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있는 것.

나를 낳아주고 길러주신 부모님. 내가 낳아 기른 내 아이.

그렇게 함께 살아온 가족들과 시간과 공간을 조금이라도 더 공유하는 것.

그것이 전부이고 다였다.


시한부 인생이라고는 하지만, 교통사고로 자신의 의사와는 전혀 무관하게 생을 마감하는 경우도 점점 더 늘어나고 있고, 갑작스러운 화재, 사고 등으로 생을 마감하게 되는 경우 역시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더 황당한 것은, 40대 사망 원인의 1위가 암으로 사망하는 퍼센티지가 아닌 자살이 1위라는 사실이다.


자살은 스스로의 삶을 한정 짓는 행위이다.

저마다의 가정이 저마다의 고민과 아픔과 말 못 할 걱정거리를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듯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한정 짓는 데에는 그만한 피치 못할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가족이 아프지만 않다면 병으로 시한부 인생만 아니라면 더 바랄 것도 없을 것이라는 피맺힌 기도를 하는 이들에게 사지 멀쩡하게 건강하면서도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들의 행위는 사치로 보일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모두에게는 저마다의 사정이라는 것이 있을 수 있다.

돈이 없는 이가 돈 많은 이를 무조건적으로 동경하고 그렇게만 될 수 있다면 악마에게 영혼을 팔 수 있다고 하는 것이 인간이다. 돈이 많지만 행복하지 않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의 사정을 당장 먹고 죽을 돈도 없다며 연휴에도 하루 벌이를 찾는 이들에게는 설득할 도리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살아가는 이유가 내가 사랑하는 이와 함께 행복하게 지내기 위함이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행복할 수는 없겠으나 최소한 자신이 왜 사는지 무엇을 위해 사는지 그 목적이 주객이 전도되는 일이 없기를, 그래서 죽음을 맞이했을 때 주마등을 보면서 뼈에 사무치게 후회하지 않게 되기를 그래서 행복하게 한 세상 잘 살고 사랑하는 이들에게 고마웠노라 감사할 수 있기를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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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천으로 직접 보며 기도할 수 없었던 한가위의 달님에게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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