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부모가 생존해 계시거든 멀리 나가지 아니하며, 나가더라도 반드시 행방을 알려야 한다."
이 장의 내용은 표지 사진에 나와 있는 <四字小學(사자소학)>에서부터 <명심보감>의 ‘효행편’과 <小學(소학)> ‘明倫(명륜) 8章’에도 같은 글이 실려있다. 기본적으로 글을 배우기 시작하는 어린 나이에서부터 반드시 지켜야 할 항목이라고 하여 강조되어 가르쳐왔었기 때문이다. 자식으로서 해야 할 효도의 가장 기본적인 항목으로 왜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 멀리 나가지 말고, 나가더라도 행방을 알리라고 했을까?
여담이긴 하지만, 한때 문화 대혁명으로 고문이나 공자에 대해 중국 공산당이 공격을 했을 때, 이 장을 비아냥거리면서 “이 내용대로라면 해외에 나가서 공부하는 것은 꿈도 못 꾸지 못하겠네?”라며 비난했었다고 한다.
무식과 부덕의 소치이다.
그저 멀리 떠나지 말라고 한 것을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면 그런 바보 같은 소리를 하게 된다.
먼저 ‘부모님이 계실 적에’라고 해석하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주의한다. 있을 ‘在’ 자는 ‘부모님이 살아계셨을 때’라는 의미이다.
그 이유에 대해 주자의 해설을 먼저 살펴보기로 하자.
멀리 나가면 부모와 멀리 떨어져 있는 시간이 길어져, 조석으로 문안드리지 못하고 소식이 소홀해지니, 부모님 걱정을 떨칠 수 없을 뿐 아니라, 또한 부모가 내 생각으로 자나 깨나 걱정할까 염려되는 것이다. ‘나가면 반드시 그 행방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예컨대 동쪽으로 간다고 말씀드렸으면 감히 고쳐 서쪽으로 가지 아니하여, 부모님께 반드시 자신의 소재를 알아 걱정하지 않게 하고, 또 자신을 부르면 틀림없이 연락이 닿아서 착오가 없도록 해야 한다.
주자의 설명대로 원래 부모님을 같은 집에서 모시며 함께 사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때문에 이전 장에서 설명했던 바와 같이 부모님을 챙기는 것과 더불어 부모님이 자신에 대해 걱정할만한 일을 만들지 말라는 것이 이 자의 취지이다. 즉, 여기서 멀리 나간다는 것은 단순히 물리적 거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어디에 갔는지 모르는 상황이라면 당연히 집안에 있는 부모님은 자식을 걱정하기 마련이다. 언제 돌아오는지 왜 늘 돌아오는 시간에 돌아오지 않는지를 걱정시키는 일을 하지 말라는 의미이다. 때문에 자신이 어디를 가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일러드리면 쓸데없는 걱정을 덜어드리게 된다는 취지이다.
이 장의 전체적 취지에 대해 범 씨(范祖禹)는 이렇게 한줄로 정리한다.
“자식이 능히 부모의 마음을 제 마음으로 삼을 수 있다면 그것이 효이다.”
이게 무슨 말인가?
왜 갑자기 부모님의 마음을 내 마음으로 삼는다는 것일까?
그 말에 대한 해답은 ‘부모가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은 자식이 부모가 되고 나서야 알 수 있다.’는 어른들의 말씀에 힌트가 있다.
어려서는 친구들과 놀고 싶고, 통금시간을 정해 내 행동을 규제하는 부모님이 싫고, 굳이 이렇게까지 통제를 해야 하느냐고 대들 수도 있다. 그런데 단 한 번도 왜 부모님이 그렇게 하시는지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보려 들지 않는다.
부모님은 왜 그러셨을까?
그냥 놀러 다니고 술 마시러 다니고 나쁜 친구 어울리고 남자 친구랑 여자 친구랑 사고라도 칠까 봐?
반대로 생각해보자.
만약 집에서 어른들이 집에 계신데 친구가 집에 와서 자기 방에서 놀고 있는데, 뭐하고 노느냐고 뭘 먹고 노느냐고 물으시던가?
편하게 집에서 방에 있는 줄 아는데 무엇을 걱정하실 필요가 있겠는가 말이다.
그것이 그렇게 이해가 안 가던 자식은 커서 자신이 자식을 낳고 자식이 머리가 크고 나서 부모의 입장이 되어서야 그때 부모님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이제 알겠다고, 그때 속 썩여서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은데 부모님은 이미 곁에 안 계시다.
그래서 범 씨가 그 단순하지만 심오한 과정을 단 한 줄로 요약정리한 것이다.
부모님의 마음이 내 마음과 같다고, 내가 부모님 입장에서 생각할 때가 그것이 이해가 되는 순간, 그것이 진정한 효로 완성된다는 것이다.
때문에, <禮記> ‘曲禮 上篇’을 살펴보면, 집에 돌아오게 되면 반드시 부모님의 얼굴을 뵙고 안부를 살피라는 것까지 상술한 내용을 볼 때, 이 장에서 설명하고 있는 내용이 단순히 멀리 가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 아님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즉, 언제 부모님에게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기 때문에 바로바로 체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현대에 연로하신 부모님의 집을 대형병원이나 대학병원이 멀지 않은 곳으로 정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당신에게 부모님이 어떤 존재인지 굳이 물을 필요도 없을 것 같다.
어느 자식에게고 부모님은 똑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나를 세상에 있게 만드신 분들이고, 그분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그분들이 재벌이 아니어서 내가 금수저가 안되었다며 그분들을 원망하는 개망나니 자식이 아닌 이상, 부모님에게 특별한 효도는 아니더라도 걱정을 끼쳐드리지 않는 것만으로도 효도라는 것은 앞서 우리가 공부한 바 있다.
이제 곧 추석이다.
부모님과 떨어져 지내며, 자주 전화도 드리지 않고, 자주 찾아뵙지도 않고, 늘 일 때문에 바쁘다고,시집갔으니 시집에 가야 한다고, 애를 낳았으니 애들 챙기느라 정신이 없다고, 그렇게 당신은 당신을 낳아주고 길러주신 분들에게 소홀해왔다. 적당히 용돈 챙겨드린 답시고 당신의 도리를 다한다고 착각하지 마라. 당신이 나중에 자식들에게 그런 대접을 받았을 때의 서운함을 한 번이라도 다시 떠올려보라. 부모님이 어떤 마음으로 당신을 기다리고 그저 아무런 말씀 없이 오랜만에 본 당신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만 보시고 곁에 앉아 계시는지,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곰곰이 되새겨보라.
이번 주말부터 시작되는 추석 연휴가 이례적으로 긴 편이다.
코로나 때문에 가족들끼리도 여럿 모이기 어렵다고는 하지만, 부모님은 이미 2차 접종까지 마치셨으니 어디 놀러 갈 생각이나 집에서 술 마시고 잠이나 처잘 생각하지 말고, 이제부터라도 좀 사람 노릇을 하겠다는 다짐과 함께 부모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도록 계획해보라.
이 글을 읽고 나서도 그것이 부모님을 위해 당신이 당신의 시간과 정력을 배려하는 것이라는 가당찮은 생각이 조금이라도 든다면,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말고 혼자서 접시에 물 가득 담아 코 들이박고, 행여 다음 생이라도 사람으로 태어나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