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께서 말씀하셨다. “3년 동안을 아버지의 도(행동)를 고치지 말아야 孝라 이를 수 있다.”
호씨(胡寅)가 “이 장의 내용이 이미 머리 편(學而)에 있어 중복되었는데, 그 절반이 빠져 있다.”라고 주석에서 설명하였다. 마침 이 연재 시리즈가 학이편 13장에서부터 본격적인 공부를 시작하였던 바, 학이편 11장을 상세히 들여다보지 않았으니, 전체 내용이 담긴 11장을 한번 살펴보는 기회를 갖도록 하자.
子曰 父在 觀其志, 父沒 觀其行, 三年 無改於父之道 可謂孝矣.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아버지가 살아 있을 적에는 그(자식)의 뜻을 보고, 아버지가 죽은 후에는 그(자식)의 행동을 본다. 3년 동안 아버지의 도를 고치지 않으면 효라 할 수 있다.
아버지가 살아계실 적에 어떻게 그 자식 된 이의 뜻을 본다니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조금 의아하다. 그런데 한술 더 떠 돌아가신 후에는 그 자식의 행동을 본다니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이인 편에만 남아 있는 마지막 문장, “3년 동안 아버지의 도를 고치지 않으면 효라 할 수 있다.”역시, 그저 돌아가시고 3년 시묘살이를 하면서 부모의 뜻을 바꾸지 말아야 한다는 것인지 그 정확한 의미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의구심이 생길 만한 글이다.
일단 주자가 이 장에 대해 해설한 내용을 보고 감이라도 잡아보자.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에는 자식이 스스로 마음대로 할 수 없으나 뜻은 알 수 있고, 아버지가 별세한 뒤에야 그 행동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이것을 관찰하면 족히 그 사람의 선과 악을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러나 또한 반드시 3년 동안 아버지의 도를 고치지 말아야 효성스러움을 볼 수 있는 것이니, 그렇지 않다면 행한 것이 비록 선하다 하더라도 또한 효라 할 수 없는 것이다.
주자의 해석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이 장에 공자는 역시 특유의 화법으로 두 가지를 녹여넣었음을 알 수 있다.
하나는, 자식 된 자의 사람됨을 그가 아버지의 생전과 사후의 행동을 통해서 알 수 있다는 점.
또 다른 하나는, 3년 시묘살이를 하는 동안이라도 아버지에 대한 도를 고치지 않아야 진정한 효라고 볼 수 있어, 효에 대한 진정한 개념과 이성적인 선보다 감성적인 효가 우선되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첫 번째 내용은, 설명이 조금 복잡해서 길어질 수 있으니, 두 번째에 해당하는 ‘3년 동안 아버지의 뜻을 바꾸지 않아야 효이다’라는 이유부터 살펴보자. 왜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이 진정한 효의 기준이 되는지에 대해 윤 씨(尹焞)가 설명한 것이 있어 참고가 된다.
“아버지가 하신 것이 만일 그 道理라면, 비록 죽을 때까지 고치지 않더라도 가하거니와, 만일 그 道理가 아니라면 어찌 3년을 기다릴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3년 동안 고치지 말라는 것은 효자의 마음에 차마 못하는 바가 있기 때문이다.”
3년을 굳이 언급한 것은, 부모님 상을 당해 그 슬픔을 공식적으로 추모하는 시묘살이의 기간을 말한 것이지, 3년의 기간이 큰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다. 위 설명에서처럼 부모님의 뜻이 본래 이성적으로도 합당한 것이라 자식 된 자의 입장에서 이성적으로 살피더라도 따르고 계승해야 할 것이라면 굳이 고치고 말 것도 없다. 다만, 그것이 도리에 부합하지 않았을 경우, 부모님이 살아 계실 적에는 그것이 이성적으로 잘못된 것이라 따를 수 없는 것이라 하더라도 함부로 혹은 제멋대로 고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마지막 줄의 그 이유가 읽는 이의 마음을 울린다.
‘효자의 마음에 차마 못하는 바가 있기 때문이다.’
아! 이전 장에서도 공부했지만, 자식 된 자가 봤을 때, 도리에 어긋나거나 잘못된 판단이라고 생각됨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이 그렇게 행동하시는 경우가 있다. 물론 이전 장에서 배운 대로 완곡하게 간하여 고쳐드림이 맞다. 하지만, 감정을 상하지 않게 간하였는데 고쳐지지 않는 경우가 분명히 생긴다. 그럴 경우, 이성적으로는 강력히 간하고 고치는 것이 맞겠으나 천륜으로 맺어진 부모 지간이라는 특성상, 자식이 ‘차마’ 그렇게까지 할 수 없는 것을 말한다.
이 문장의 눈깔자는 그래서 ‘차마’이다.
그런데 지금의 자식들은 어떠한가?
부모님이 살아계심에도, 자기 증여세 들다며 돌아가시기 전에 재산을 미리미리 주지 않는다고 당당히 협박하고 윽박지르기 일쑤이고, 행여 두 분 중에 한 분이라도 돌아가시면 이때다 싶어 다른 한 분을 바로 요양병원에 집어넣고 평소 자주 찾지도 않았던 부모님의 집에 들어가 턱 하니 자리 잡고 낡은 세간 살림이라며 제멋대로 엿장수를 불러 다 폐기해버린다.
그게 인간인가? 짐승도 자기를 먹이고 키워준 에미에게는 그리하지 못한다.
며느리도 자식이며, 사위도 자식이다. 그들이 시집에 처가에는 그따위로 하면서 자기 집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 같은가? 돈 때문에 부모에게 칼을 들이대고 형제간에 칼부림이 나는 것이 과연 인간 종자들이 할 짓인가 말이다.
살아생전 제대로 챙기지도 않던 것들이 부모님이 오래 사시던 집이 재개발로 인해 재건축한다고 뉴스에 떠들기 시작하면서 새삼 챙기겠다고 효자효부 흉내내며 들락거리는 모양새를 보는 것만으로도 욕지거리가 치밀어 오른다.
더 흥분해서 욕설을 쏟아내기 전에, 앞서 말한 첫 번째 복잡하다는 설명으로 돌아와 보자.
이 장은 효에 대해 말하는 것 같지만 효에 대해서만 말하는 것이 아닌 일종의 '다빈치 코드'같은 장이다. 사실 그 의미를 파악한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이 장의 숨겨진 코드를 찾아 읽은 조선대표, 다산(茶山 丁若鏞) 선생의 이 장에 대한 해설을 참고해보자.
도란, 政令과 施措를 이른다.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아들이) 그 뜻을 멋대로 펼치는 것이 영 마음 불편하기에 시행하기를 점차로 하는 것이다. 이 장은 曾子가 孟莊子의 효성을 일컬은 것과 서로 조응하는데, 본래는 大夫를 위해서 꺼낸 말이다. 천자나 제후에게 천하에 재앙을 끼치고 종묘를 위태롭게 할 만한 先君의 폐정이 있다면, 고치기를 마치 불 속에서 사람을 구해내듯이 하고,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 내듯이 해야지 어찌 감히 효도를 핑계로 미적거릴 수 있겠는가?
어라? 효에 대한 이야기가 갑자기 정치로 자연스레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간다.
다산은, 이 장에서 말하는 아버지 방식(道)을 정령 시조(政令施措), 즉. 정책과 명령, 시책과 조치로 해석하고 있다. 그리고 대놓고 이 글은 불효자들에 대한 경계임과 동시에 공자가 타깃으로 삼은 자들은, 원래 대부라고 콕 집어 말하고 있다. 그의 해설에 맞게, 정치적 맥락에서 읽으면 자식(후계자)의 효는 아버지 생전의 사업이나 정책을 적어도 3년은 유지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사실 공자 당시의 기준으로 보면, 혈연 승계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되었던 것은 ‘정책의 연속성’이었다. 아버지가 성군(聖君)이라고 하여 꼭 그 자식이 성군이기를 기약할 수 없다는 사실은 혈연 승계가 갖는 태생적인 취약점이자, 모든 불화의 근원이다.
그래서 다산은, 공자가 3년이라는 시묘살이의 기간을 언급한 것의 중의적 행간을 읽어내고는, 혈연 승계에 필연인 정책의 연속성, 위기를 보완하는 의미의 기간으로 3년이라는 묵수(墨守) 기간을 설정했다고 보았다. 3년이라는 세월이라면, 이전 선군의 정책이 잘못된 부분이 있어도 시의에 맞게 조절될 수 있는 기간으로는 충분하다고 본 것이다.
그런데 행간에서 정치에 대한 이야기임을 읽은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산의 자신의 생각을 보태 좀 더 힘주어 강조한 뒷부분이 있어 주목을 요한다.
3년이란 세월 동안 아버지의 뜻을 받드는 일도 중요치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선군의 폐정이 있다면 과감히 고칠 줄도 알아야 한다.’에 다산은 방점을 찍는다. 썩은 가지는 다 쳐내야 한다는 의미에 다름 아니다.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설명하는 방식을 보면, 다산이 이 부분을 얼마나 강조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마치 불 속에 있는 사람을 구해내듯이 하고,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 내듯이 곧바로 고쳐야지 효도를 핑계로 잘못된 제도를 고치지 않는 건 오히려 불효라고 강하게 목소리를 내고 있다.
뭔가 모순된 태도라고 생각되어 조금 이해가 어려울 수도 있겠다.
왕은 만백성의 지도자로서 잘못한 정책이 있다면 곧바로 고치는데 인색하지 않아야 한다. 당시의 시스템 자체가 혈연 승계이다 보니 대부분 왕은 선군의 유지를 받들어 그대로 따랐다. 말이 좋아 그대로 따른 것이지, 실제로 그 안을 들여다보면 기득권 세력과 전면적으로 싸워가며 잘못된 것을 개혁할 자신이 없었을 뿐이다. 기득권의 눈치를 보지 않고 진정한 개혁을 이룬다는 것은 자신의 위치를 내놓고 싸워야 하는 전면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자는 개혁할 의지가 없으면서 선친에 대한 효도라는 핑계로 미적거리는 왕과 그 왕에게 압력을 가하는 대부들을 향한 따끔한 일갈을 효도라는 가르침에 섞어 던진 것이다. 역시 알아들을만한 자들만 알아들으라는 고약한(?) 화법이다.
그래서 유 씨(游酢)가 이 장에 대해 해설한 내용은 위 내용을 모르면 혼란스럽게 보일 수 있는 여지가 있다.
“3년 동안 고치지 말라는 것은 또한 마땅히 고쳐야 할 입장에 있으나 아직 고치지 않아도 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바로 고치는 게 맞다는 것인가?
잘못되었더라도 3년은 고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인가?
이 해답은 공자가 늘 상위 제자들에게 강조했던 ‘시중(時中)’이라는 용어를 알아야 풀 수 있다. ‘시중(時中)’이란, 그 상황에 맞게, 그때에 맞게 적용해야 함을 의미하는 말이다.
그래서 효도도 정치도 늘 쉬운 것 같으면서도 어려운 것이다.
잘못된 걸 그냥 고치면 되는데, 그냥 고치는 게 그렇게 쉬우면 왜 그렇게 하지 않았겠는가? 여러 가지 피치 못할(?) 상황들이 생기는 것이다. 배우는 자들이 경계해야 할 핵심은 바로 거기에 있다.
원래 도리가 아니라면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만일 것을, 거기에 인정이라는 이름의 몹쓸 것이 붙으면 시험에 들기 마련이다.
직접 농사를 짓지 않으면서 농지를 사서 대토를 하며 적당히 지목을 변경하여 별장을 짓거나 그 땅이 개발구역에 묶이면서 보상을 받으려는 목적으로 묵혀두거나 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다. 처벌해야 할 것이고 금지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자기 부모가, 자기 마누라가 법을 어기고 농사를 짓지도 않으면서 땅으로 사면 이제 이성과 인정이 충돌하게 된다. 그것을 제대로 가리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따라 일류와 삼류가 나뉜다.
그런데 요즘에는 거기까지 가지도 않는다. 부모가 그런 짓을 하고, 아내가 그런 짓을 했는데 몰랐단다. 모를 수가 있나? 적극 가담을 했으면 배후의 주범 내지는 공범인 것이고, 알면서 방조했다면 직무유기이고 방관범인 것이다.
그런 자들이 버젓이 대중의 앞에 서서 법을 논하고 그래서는 안된다고 한다. 법을 가장 잘 아는 법비출신 정치인 놈들이 그런 짓은 가장 잘하면서도, 걸리면 마치 새로운 사실을 안 것처럼 연기를 펼친다. 전공을 얼른 바꾸라고 아카데미로 보내야 할 판이다.
전체적인 정권의 교체 상황을 봐도 그렇다. 공자가 지적한 수천 년 전의 모습과 달라진 것이 무에 있단 말인가? 정권이 바뀌면 이전 정권의 정책이 무엇이 되었든 간에 모조리 비난하고 모조리 뜯어 바꿔야 한다고 한다. 이전 정권이 어떤 정권이든 전부 다 썩어빠지진 않았을 것 아닌가? 그런데 괜찮은 정책이었으니 이어서 한다는 것은 하나도 없이, 마누라와 자식 빼고는 다 바꾸겠다는 필사적인 일념으로 새 옷을 갈아입으려고 한다.
그것이 국민을 위한 개혁이라면 힘들고 귀찮아도 쌍수 들고 환영한다. 하지만, 반대를 위한 반대라면, 결국 그 밥에 그 나물일 것을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다는 말을 들먹이며 그저 모두 갈아엎어야 한다고 말하는 세태가 대한민국을 조선시대의 붕당 악습이 판치던 골로 잡아끌어간다.
어디 하나 빠짐없이 골고루 썩은 공무원들의 모습을 보라. 정권이 바뀐다고 청와대의 주인이나 장관 하나가 바뀐다고 원래 일하던 그 복지부동의 공무원들이 잘리고 바뀌지 않는다. 제도와 법령을 바꾼다고 위에서 설쳐도 결국 일하는 자들은 철밥그릇이라 그 일을 선택했다는 공무원이란 말이다. 그들이 여태 바뀌는 정권에서 살랑거리며 먹고살았는데, 새로운 정권이 왔다고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며 포은의 코스프레를 하며 당당히 검찰의 옷을 벗던가? 외교부에서 그렇게 사건사고를 일으켜도 통역이나 하던 여자 장관 말을 듣고 그들의 비위를 적나라하게 까발리며 인적쇄신을 하던가?
그들은 바짝 엎드려 절대로 자신들의 밥그릇을 미동 없이 지켜내며 바뀌는 정권을 비웃으며 보신하고 복지부동한다. 그런 이들이 특별한 이들이 아니고, 당신의 가족들이고 친지이며 친구이고, 브런치 작가라며 버젓이 겉멋 들린 글을 쓰는 당신이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