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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Oct 19. 2021

다섯 번째 차 - 황산모봉차(黃山毛峰茶)

안후이성의 황산 일대에서 재배되는 녹차, ‘중국 차왕’

지난 이야기.

https://brunch.co.kr/@ahura/362


                   황산모봉차(黃山毛峰茶)

황산모봉(중국어: 黄山毛峰, 병음: huángshān máofēng 황샨마오펑)은 중국 황산의 대표적인 명차이다. 안후이성의 명차로는 기문 홍차와 더불어 황산모봉이 손꼽힌다. 황산모봉은 종류로는 녹차이며, 작고 흰 은빛 털이 차 잎을 덮고 있는 외관으로 보면 백차와도 유사하다. 청명에서 입하 때까지 차를 수확한다. 그 이후에 따서 만든 것은 모봉차로 취급하지 않는다.


명나라의 허차서(許次紓)가 쓴 『다소(茶疏)』라는 책에 보면, “천하의 명산(名山)에는 반드시 영초(靈草)가 난다.”라고 했다. 여기서, '영초(靈草)'란 영험한 풀, 즉, 차(茶)를 의미한다.

서하객(徐霞客)의 초상

같은 명대(明代)를 풍미했던 저명한 여행 답사기 『서하유기(徐霞客遊記)』의 저자이자 문인으로 이름을 날렸던 서하객(徐霞客)은 “오악(五岳)을 돌아보고는 다른 산들이 산으로 보이지 않았는데, 황산을 보고 나서 오악이 산으로 보이지 않는다.”라고 극찬으로 황산을 산중의 산으로 표현하였다. 30여 년을 중국 천하를 여행만 다니며 기록으로 남긴 사람의 말이니 황산이 어느 정도 대단한 위세를 가지고 있는지 알만한다.

황산(黃山)은 산수가 빼어난 만큼 그 산을 둘러싼 주변에 휘주(徽州: 안휘성)의 명차들이 집중적으로 생산되고 있는 지역이다. 둔녹차(屯綠茶), 태평후괴(太平猴魁), 기문홍차(祁門紅茶), 노죽대방(老竹大方), 황산모봉(黃山毛峰) 등의 많은 차들이 모두 이 지역을 대표하는 차들이다. 이러한 지리적 역사적 배경 덕분인지, 중국의 차문화를 대표하는 고대의 ‘휘주 차문화’가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어, 지금도 중국의 전통 차문화를 연구하는 연구자들에게는 반드시 들러야 할 차의 성지이기도 하다.

 

안휘성의 역사를 기록한 『휘주부지(徽州府志)』에 의하면, 황산(黃山)에서 차가 본격적으로 생산되기 시작한 것은 송나라 인종 가우(嘉佑: 1056~1063년) 연간이며, 명나라 목종 융경(隆慶: 1567-1572년) 연간에 이르러 차업(茶業)이 흥성하기 시작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즉, 황산(黃山)의 차 생산은 이미 천년의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명대에 이르러 비로소 황산차가 대내외적으로 유명해지게 된 것임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황산모봉’이란 이름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고, 청대 말기(약 1875년) 이전의 모든 문헌 기록에는 ‘운무차(雲霧茶)’란 이름만이 황산차를 대표하고 있었을 뿐이다.

명나라 허초(許楚)의 『황산유기(黃山遊記)』에는 “연화암(蓮花庵) 부근 바위틈 사이에서 차가 자라는데, 향이 아주 은은하며, 고요한 운치가 사람들의 군침을 자극하는데, 이것을 ‘황산운무(黃山雲霧)’라 한다. …중략… 운무차(雲霧茶)는 산승(山僧)들이 바위틈새의 적은 흙 사이에서 재배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후대인 청대 강징운(江澄云)의 『소호편록(素壺便錄)』에도, “황산에는 운무차가 있는데, 아주 높은 산꼭대기에서 생산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면, 앞서 공부했던 동정 벽라춘처럼 황산운무차는, 불교 사찰을 중심으로 승려들에 의해 처음 재배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현지에서는 아직도 ‘황산모봉’을 ‘황산운무’라고 부른다.

 

황산모봉차가 역사적 기록에 등장하는 것은 청나라 광서(光緖) 연간에 와서이다. 『휘주상회자료(徽州商會資料)』의 기록에 따르면, 황산모봉차는 ‘사유대차장(謝裕大茶莊)’에서 처음으로 창제한 것이라고 언급되어 있는데, 이 차장을 처음 만든 사람은 ‘사정화(謝靜和)’라는 인물이다.

기록에 언급된 내용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사유대차장(謝裕大茶莊)은 중국의 개혁개방 이후 다업(茶業)의 확장과 발전을 위해 ‘천명장(天茗莊)’이라고 이름을 개명하였다. 흡현(歙縣) 조계(漕溪)사람으로 차업(茶業)에 종사하였다. 차장을 경영했을 뿐만 아니라, 채다와 제다의 기술에도 매우 정통하였다. 1875년 차 시장의 수요에 영합하기 위해 매년 청명절에 황산 탕구(湯口)·충천(充川) 등지를 찾아 고산의 유명다원에 올라 두텁고 부드러운 찻싹을 채취하여 정교하게 차를 덖고 말렸는데, 상표를 ‘황산모봉’

으로 명명하고 동북, 화북 일대에 수출하였다.”

황산 모봉의 창시자-사정화(謝靜和)

사정화의 이름은 ‘사정안(謝正安)’이라 하는데, 자(字)가 ‘정화(靜和)’이다. 휘주부 황산 남쪽 자락에 위치한 조계촌에서 조상 대대로 차업(茶業)을 경영하는 명문 차상(茶商) 집안에서 태어나 평생을 차 생산과 차업 경영에 몰두하였다. 1875년 황산모봉을 창시하고, 중국 내지와 유럽 각국에 황산모봉을 수출하여 청나라 정부로부터 그 공을 인정받아 차상으로서 관직까지 겸직했던 인물이다.

 

그가 황산모봉을 창제하게 된 역사도 눈물겹기 그지없다. 1860년대 말기 태평천국의 난이 끝난 후, 청나라가 상무(商務) 활동에 적극적으로 힘쓰기 시작하면서 중국차를 해외로 수출하는 기구인 ‘양장(洋莊)’의 발전이 고조에 이르게 되었다. ‘양장(洋莊)’이란 당시의 무역상 혹은 수출상을 의미하는 말이다.


사정화는 운반거리가 먼 광주(廣州)보다는 비교적 가까운 상해(上海)의 ‘양장’을 거쳐 휘주 지방의 차를 해외로 수출하기로 하고 상해로 가서 ‘사유대’라는 차장을 창건하게 된다. 그러나 이미 대내외적으로 널리 유명해져 있던 서호용정, 노산운무(蘆山雲霧), 운남 보이 등과 같은 명차들과 비길만한 경쟁력을 갖춘 좋은 품질의 명차가 휘주(안후이성)에 없음을 한탄하고는 휘주를 대표하는 새로운 명차를 개발하기로 결심하게 된다.

처음 사정화(사정안)가 사유대차장을 개업했을 당시 사진

오랜 고심을 하던 사정화는 황산의 숱한 봉우리에 올라 모든 차밭을 샅샅이 찾아 헤매던 중, 앞서 언급했던 연화암의 승려들이 바위틈에서 재배하고 있던 ‘황산운무차’를 발견하고는 이 차를 황산차를 대표하는 명차로 개량·발전시키기로 결심하게 된다. 그는 매번 직접 산에 올라서 채다(采茶)와 제다(製茶), 그리고 생산량과 판매에 이르기까지 온갖 정성과 심혈을 기울여 실험하고 연구한 끝에 드디어 1875년 ‘황산모봉’을 탄생시키게 되었다.

제품으로 완성된 찻잎은, 하얀 솜털 같은 백호(白毫)로 덮여있고, 찻싹의 끝이 뾰족한 게 마치 산봉우리 같았으며, 그 생산지가 황산원(黃山源)에 속하는 데다가 황산(黃山) 부근이었기에 이 의미들을 담아 차의 이름을 ‘황산모봉’이라 명명하게 되었다고 한다.


당시 기록을 찾아보면, 그렇게 눈물겨운 과정을 거쳐 창제된, ‘황산모봉’은 상해에서 첫 출시하여 차 마니아들에게 선을 보이자마자, 그해에 바로 초대박을 쳤다고 한다. 중국차를 수입하려고 상해에 온 영국 차상(茶商)들은 새롭게 접하는 이 녹차의 맛을 보자마자 모두 여지없이 최고라는 평가를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게 영국과 러시아 등의 차상들이 앞을 다투어 이 차를 예약하여 물량이 동이 날 지경이 되자, 급기야 중국의 고위관원들과 귀족들도 뒤늦게 뛰어들어 ‘황산모봉’은 드디어 세상에 그 화려한 명성의 첫 장을 열게 된다.

 

그렇게 ‘사유대’ 차장은 황산모봉의 메카로 40여 년이나 이름을 날리게 되지만, 사정안(謝正安) 이 세상을 떠나고. 그의 네 아들들에 의해 합작경영으로 그 명맥을 이어나가던 즈음, 연이어 발생한 중국 내지의 군벌들의 내란과 중일전쟁 등의 역사적 격동기의 혼란을 겪으면서 상황이 안 좋아지기 시작한다. 황산 모봉(毛峰)의 생산량이 감소됨과 동시에 각지에 있던 ‘사유대차장’의 분점들마저 하나둘씩 문을 닫기 시작한다. 국내의 불안정한 정세로 인해 영국과 러시아 등지로 대량 수출되던 국제 판로마저 막히게 되자 ‘황산모봉’은 마침내 세상으로부터 서서히 잊혀져가기 시작한다.

 

모택동의 공산당이 정권을 잡고 ‘중화인민공화국(中華人民共和國)’을 건립하면서 상황은 다시 한번 반전한다. 중국 정부로부터 공식적인 우수 명차의 칭호를 받았던 ‘황산모봉’의 가짜가 혼란한 국내 정세의 흐름을 타고 대량으로 시장에 유통되면서 중국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시행했던 전국단위의 찻잎추출검사에서 ‘황산모봉’의 명성이 거의 0점에 가까운 낮은 합격률을 받게 된 것이다.


이때 가짜 황산모봉(黃山毛峰)의 난립으로 ‘정통 황산모봉’의 명성이 훼손되는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다고 분개한 이가 있었으니 바로 황산모봉의 창시자 사정안(謝正安)의 적통 후손이던 ‘사일평(謝一平)’이었다.

최근 사일평 회장의 모습

그는 1995년이 되어서야, ‘정통 황산모봉의 회복’이란 기치를 내걸고 ‘황산모봉’의 품질과 명성의 회복에 발 벗고 나서게 된다.


본래 ‘흡현(歙縣)차엽공사’에서 꾸준히 차와 관련된 일을 해오던 그는 회사에 사직서를 내고 자신이 직접 고향인 조계(漕溪:현재 안휘성의 부계富溪)로 내려와 ‘조계차창(漕溪茶廠)’을 창업하게 된다. 그는 본래 대대로 내려오던 전통 가공기법의 기초 위에 현대 과학기술과의 접목과 연구 끝에 마침내 모봉(毛峰)의 품질을 한층 더 끌어올려 명차(名茶)로써의 모봉의 명성을 회복하는 데 성공한다.

사유대 박물관 현관, 사정안의 흉상 위로‘황산모봉제일가’라는 현판이 보인다.

원래의 맛과 향을 살린 황산모봉을 생산하기 위해 사일평은 두 가지 방법을 동시에 실시하였다. 한쪽으로는 차 생산기지를 건설하면서 또 한 편으로는 상품의 이미지를 결정짓는 상표관리를 신경 쓰기 시작한 것이다. 아울러 황산모봉의 재배에 적합한 지역, 기후, 토양 등의 조건에 부합하는 해발 500미터 이상에 위치한 부계(富溪)와 갈석(竭石) 두 마을에 모봉차의 생산기지를 건설하였다.(참고로 그때부터 현재까지 황산모봉의 재배 차밭(茶園)은 모두 해발 800미터를 유지하고 있다.)

 

그렇게 잘 다니던 회사를 때려치우고 가업을 이어 창업하고 10여년의 고심 어린 경영 끝에 사일평의 ‘사유대’에서 생산된 황산모봉은, 마침내 ‘국가 원산지 생산품 보호 범위’에 속하는 국가 주요 농산품으로 지정되었음은 물론, ‘중국 차왕’이란 칭호까지 얻게 되었다.

 

이후, 조계(漕溪)는 중국 정부에서로부터 ‘황산모봉차의 생산기지(生産基地)’로 공식 지정되었으며, 동시에 조계의 ‘황산모봉차’는 중국의 10대 명차 중에서도 중국의 ‘국차(國茶)’로 공식 지정되는 영예를 얻기도 하였다. 2007년 3월 중국의 국가주석이던 후진타오(胡錦濤)는 중국을 방문한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과 함께 부계(富溪)를 방문하여 공장과 ‘사유대차엽박물관’을 관람한 뒤, 직접 그에게 ‘황산모봉’을 선물하기도 했다.

 

황산모봉 일반등급(위) 특급(아래)

현재 황산모봉의 생산지역은 이미 황산 산맥 남쪽 자락에 위치한 황산시의 휘주구(徽州區), 황산구(黃山區), 흡현(歙縣), 이현(黟縣) 등의 황산 주변의 많은 곳으로 확대되어 재배 생산되고 있다. 주요 생산지로는 도화봉, 자운봉, 운곡사, 조교암, 자광암 등이 있으며, 이곳에서 생산한 황산모봉을 특급으로 취급한다. 따라서 수량이 많지 않다.


황산은 골이 깊고 산봉우리가 연이어져 숲이 우거지고 곳곳마다 계곡을 흐르는 시내가 널려 있다. 기후가 온화하고 강우량이 풍부하고 연평균 온도가 15~16℃며, 연평균 강수량이 1800~200㎜이다. 토양은 산지 황양(黃壤)에 속하며, 토층이 매우 깊고 두텁다. 토질이 부드러워 투수성(透水性)이 매우 좋다. 풍부한 유기질과 PH(수소이온농도)가 4.5~5.5로서 차나무 생장에 매우 적합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황산모봉은 일반적으로 가늘고 여린 잎인 ‘세눈(細嫩)’만을 채취하여 만드는데, 특급 황산모봉은 ‘일아일엽초전(一芽一葉初展)’을, 1등급은 ‘일아일엽(一芽一葉)’, ‘일아이엽초전’을 2등급은 일아일엽과 ‘일아이엽(一芽二葉)’을 3등급은 ‘일아이·삼엽초전(一芽二·三葉初展)’등을 표준으로 삼아 구분한다.

참고로, ‘일아일엽초전(一芽一葉初展)’은 차나무의 맨 끝에 창처럼 뾰족하게 솟아 있는 싹과 바로 그 밑에 달려 있는 갓 전개되는 한 개의 찻잎을 가리킨다. ‘일아일엽(一芽一葉)’은 한 개의 차 싹과 그 밑에 달려있는 찻잎을 가리키며, 일아이엽초전(一芽二葉初展)은 하나의 찻싹과 그 밑에 붙어서 잎으로 막 펼쳐지고 있는 2장의 싹 잎을 가리킨다. 그리고 ‘일아이·삼엽초전(一芽二·三葉初展)’도 위와 마찬가지로 한 싹 아래 붙어서 갓 피어나는 두 잎 혹은 세 잎을 가리키는 말이다.

 

찻잎을 따는 시기를 보면, 특급 황산모봉은 청명(淸明) 전후이고, 1~3등급 황산모봉은 곡우(穀雨) 전후에 채취한다. 채취된 신선한 찻잎이 공장에 들어오게 되면 먼저 찻잎을 선별하게 된다. 겨우내 언 잎이나 병충해에 상한 잎을 제거하고, 그다음에는 각 등급에 부합되지 않은 찻잎이나 줄기 등을 가려서 추려내어 찻싹과 찻잎의 품질을 수준이 고르게 유지되도록 한다. 이렇게 엄선된 찻잎은 다시 그 부드러운 정도에 따라 구분하여 따로 펼쳐놓고 찻잎의 수분을 부분적으로 제거한다. 찻잎의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오전에 채취한 찻잎은 오후에 제다하고, 오후에 채적한 찻잎은 당일 밤에 제다를 진행한다.

 

황산모봉의 제다 공정은 ‘살청(殺靑), 유념(柔捻), 홍배(烘焙)’의 3단계로 진행되는데 현지에서 어깨 넘어 견학한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제1단계인 살청은 직경 50센티미터 정도의 솥을 사용하며, 솥의 온도는 먼저 고온에서 나중에 저온(150~130℃)으로 옮겨가는 방식을 취한다. 솥에 매번 투입되는 찻잎의 양은 특급일 경우 200~250그램, 1급 이하일 경우에는 500~700그램까지 증가할 수 있다. 신선한 찻잎을 솥에 넣었을 때 깨 볶는 듯 소리가 나면 온도가 적당한 것이다. 오직 손으로 가볍게 뒤집어 가며 재빨리 볶아야 하는데, 통상 분당 50~60차례 정도로 한다. 이때 찻잎을 솥을 걸어놓은 부뚜막에서 약 20센티미터 정도 높이로 들어 올려가며 볶아야 한다.


높이 들어 올려 찻잎을 흩뜨릴 때는 뭉치지 않도록 골고루 잘 흩어지게 하며, 솥에서 찻잎을 볶으며 위로 끌어올릴 때는 솥 안이 깨끗하게 비도록 전부 다 끌어올린다. 살청은 찻잎을 적당히 시들게 하는 작업으로 찻잎이 부드러워지고, 찻잎 표면의 광택을 사라지며, 푸릇한 기가 없이 차향이 드러나기 시작하면 된다.

 

제2단계인 유념(柔捻)과정은 찻잎을 비비는 과정이다. 특급과 일급은 살청이 적당히 이루어졌을 때, 계속해서 솥에서 약간 쥐었다 놓았다 하면서, 가볍게 비비는데, 가닥을 정리하는 작용을 가한다. 2~3급은 살청 후, 솥에서 꺼내어 열기가 식은 뒤에 가볍게 1~2분 정도 비비게 되는데, 찻잎의 가닥이 약간 구불구불하게 되면 된 것이다. 이때 주의할 사항은 찻잎을 천천히 비벼야 하며, 무겁게 압력을 가하지 말고 가볍게 눌러 주어야 한다.

제3단계인 홍배(烘焙)는 불에 쬐어 말리는 과정으로서 ‘초홍(初烘)’과 ‘족홍(足烘)’으로 나눈다. 초홍(初烘)은 ‘첫불 쬐기’를 말하며, 족홍(足烘)은 충분히 불에 쬐어 찻잎을 완전히 건조시키는 과정을 뜻한다.

 

초홍은 살청 솥마다 4개의 건조용 대바구니를 사용한다. 불의 온도는 처음에 고온으로 높였다가 낮추어 가는데, 홍배 때 제일 위에 놓이는 첫 번째 대바구니의 불과 거리가 제일 멀기 때문에 불의 온도를 90℃이상으로 하고, 두 번째와 세 번째, 네 번째 바구니로 내려갈수록 80℃, 70℃, 60℃로 차차 불의 온도를 낮추어간다.


이때 찻잎이 고열에 타지 않도록 자주 뒤집어 주어야 하며, 또한 위에 놓인 바구니와 아래 놓인 바구니의 순서를 수시로 바꾸어 주어야 한다. 첫 불 쬐기(初烘)가 이 끝난 차는 곡식을 까불 때 쓰는 대나무 키에 옮겨 담아 30분간 가량 열을 식혀 찻잎의 수분이 다시 고르게 분포되도록 한다.


초홍을 거친 찻잎은 다시 8~10번의 불 쬐기를 거쳐 마지막 단계인 족홍(足烘)의 과정을 진행하게 되는데, 이때 온도는 60℃정도로 하며, 찻잎이 충분히 건조될 때까지 여린 불(文火)로 천천히 건조시켜간다. 차가 완전히 건조되면, 잡티를 골라내고, 다시 한차례 ‘불 쬐기’를 하여 차향을 북돋아준 뒤, 밀폐된 차통(茶罐)에 넣고 봉합하여 보관한다.

7번째 우린 상태인데 맛과 향이 옅어지지 않는다.

완제된 황산 모봉의 등급은, 일반적으로 특급과 1~3의 등급으로 나누어지고, ‘특급’은 다시 상중하 3등급으로 나누어지며, 1~3등급은 다시 각각 상하 2개 등급으로 세분화된다. 특급 황산모봉은, 그 형태가 작설(雀舌)의 형태이며 잎은 고르게 견실하다. 찻잎은 뾰족하고 하얀 솜털로 덮여있으며, 빛깔은 마치 상아(象牙)와 같다. 다 자란 찻잎은 황금빛을 띠고 있으며, 맑은 차향이 높고 오래 지속된다.

황산모봉 작설(雀舌)

여섯 번째 차 이야기는 여기에...

https://brunch.co.kr/@ahura/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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