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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Oct 25. 2021

마약에 찌들어 젊은 날을 송두리째 날려먹었음에도

사랑의 힘으로, 다시 당당하게 “I AM IRON MAN”을 외치다.

1965년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영화 제작자이자 감독인 아버지 로버트 다우니 시니어, 배우인 어머니 엘시 포드로 할리우드의 영향력 있는 영화인이었다. 덕분에 그는 유년기 시절부터 유복한 환경에서 자랄 수 있었다.


독특한 부분은 부계와 모계 모두 상당히 다양한 혈통이 섞여 있다는 것이다. 아버지 로버트 다우니 시니어는 1/2는 리투아니아계 유대인이고 1/4는 헝가리계 유대인과 아일랜드인 혈통이며, 어머니 엘시 포드는 스코틀랜드인, 영국인, 독일인, 스위스인 혈통이 섞여 있다.

영화감독 출신의 아버지 덕분에 는 5살 나이에 정식 연기 데뷔를 하게 된다. 첫 데뷔작은 아버지가 연출을 맡은 1970년 영화 《파운드》였다. 당시의 첫 대사가 상당히 인상적(?)이었는데, 자신에게 소리치는 계속 떠드는 상대역에게 가만히 있다가 “아저씨 고추에 털 났어요?”라는 빵 터지는 대사를 하는 것이 그의 공식 데뷔 첫 대사였다. 이후 9편의 아버지 작품에 꾸준히 출연했다.

영화 《파운드》의 등장 장면

워낙 자유스러운 영혼을 가졌던 아버지의 아무 생각없던 장난 탓에, 처음 무려 6살의 나이로 아버지가 내민 마리화나를 거리낌 없이 받아서 피웠다고 한다. 물론 아버지는 아이가 귀여워서 그랬던 것이었겠지만, 그것은 결과적으로 아들이 마약의 수렁에 빠지는 화근을 제공하고 말았다.


그 위험한 자유스러운 분위기는, 당시 15살이었던 친누나에게도 악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그의 누나는 아버지의 마리화나로 인해 일찍부터 중독자가 되어 극심한 거식증으로 생명이 위험한 지경까지 후유증을 심하게 겪는 위험천만한 삶을 경험한다.


훗날 그들의 아버지 로버트 다우니 시니어는 당시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며 “아이들을 마약으로부터 보호해 주지 못한 것을 반성한다.”라며 자신의 행동을 후회했다.

아버지와 함께

아역 배우로 꾸준하게 활동하며 연예 활동에 매진하던 그가, 17세가 되던 해에 자신이 다니던 산타모니카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오로지 연기 활동에만 매진하겠다고 결정한다. 전문 연기자가 되기 위해 아예 뉴욕으로 건너가게 되었고, 집안의 도움을 빌리지 않고 스스로 자립하기 위해 식당 청소부와 나이트클럽의 종업원 등 다양한 알바를 하며 생활비를 벌었다.


1980년대 중반에는 미국 영화계에 주목받던 60년대생 청춘스타들을 의미하는, ‘브랫 팩’이라고 불리는 청춘스타 군단에 대표적 유망주로 떠오른다. 이 브랫 팩의 대표주자가 바로 탐 크루즈. 탐 크루즈가 큰 사고 없이 영화계의 정상을 차지하는 동안 그는 마약 등의 막장 사생활 때문에 첫 번째 그의 큰 기회를 그렇게 놓치게 되고 만다.

26살 당시 사진

다른 어떤 설명이 필요 없는, 2014년, 2015년, 두 해에 걸쳐서 포브스 선정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연예인들 중 10위, 8위를 차지한 인물, 2008년, 마블의 히어로 영화인 아이언맨에 주연으로 출연하며 자신이 직접 특유의 애드리브로 “I AM IRON MAN”이라는 불후의 명대사를 외치며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라는 거대한 시리즈의 포문을 연 유일무이의 대체 불가 아이언맨, 로버트 존 다우니 주니어(Robert John Downey Jr.)의 이야기이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마약으로 인해 잃어버린 것은 청춘 시절의 인기뿐만이 아니었다. 20대 시절 7년이나 넘게 사귀며 동거까지 했던 <섹스 앤 더 시티>의 배우이자 사랑하는 연인이었던 사라 제시카 파커와 헤어져야만 했다. 로버트가 마약 중독에 빠져 허우적 댈 때도 곁을 지켜왔던 그녀지만, 계속되는 마약 중독에 지쳐 결국 매우 안 좋은 끝을 보이며 결별하게 된다.

 

본래 오래된 연인과 헤어지면 금세 엉뚱한 사람과 만나 빠른 결혼을 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라는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 배우 겸 가수인 데보라 팰코너와 교제하게 되고, 1992년 결혼식을 올린다. 그리고 1년 후인 1993년, 아들 인디오 팰코너 다우니가 태어났다. 아이가 태어난 만큼 가족을 생각하며, 마약을 끊어야 했지만, 로버트는 다시 마약에 손을 댔고, 결국 재활원과 감옥을 들락날락거리는 만신창이 생활이 이어진다. 견디다 못한 데보라는 2001년부터 오랜 별거생활 끝에 양육권 분쟁으로 지루한 싸움을 벌이다, 2004년 정식으로 이혼하고 만다.

첫번째 부인과 함께

마약 중독 증세가 심각해지던 1990년대 중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만신창이로 망가져간다는 소식에 절친이던 숀 펜과 데니스 퀘이드가 로버트의 집에 쳐들어가 문을 다 부수면서까지 약에 취한 로버트를 둘러업고 마약 치료 센터로 강제 입원시켰다. 두 친구의 도움과 눈물겹게 애정 어린 충고가 결국 그를 갱생의 길로 이끌게 된다.

마약에 빠진 시기였음에도 그의 연기는 1992년 인생작, 《채플린》을 만나며 그의 천재적인 연기력이 무르익었다는 가능성을 보게 된다. 로버트는 스크린 속 찰리 채플린이 살아 돌아온 듯한 열연을 펼쳐 관객과 평단의 극찬을 끌어냈다. 이 작품으로 로버트는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에 후보 지명과 영국 아카데미상(BAFTA)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누리며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연기파 배우 대열에 올라서게 된다.

 

폭스TV의 미니시리즈 《앨리 맥빌》

2001년에는 전미 황금 시간대에 방영되었던 폭스 TV의 미니시리즈 《앨리 맥빌》에서 주인공의 남자 친구 변호사 ‘래리 폴’역을 맡아 골든글로브 TV 미니시리즈 부문 남우조연상과 배우협회의 코미디 시리즈 부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고, 에미상 코미디 부문 최우수 남우조연상 후보로 오르며 전 세계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얼마 안 가 다시 마약 문제로 경찰에 체포되면서 드라마 시즌 중반에 하차하는 흑역사를 찍으며 방송계에서 퇴출 절차를 밟게 된다. 이 드라마 마니아들은 로버트가 잘 나가던 드라마를 다 말아먹었다며 욕을 먹었다.

 

그의 마약 중독이 본격적으로 이슈가 되었던 시기는 1987년으로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마약 중독자 역으로 출연한 영화 <회색 도시>가 개봉하던 시기였다. 이후 재활원에 들어가 정상으로 회복된 듯하였으나, 8년 후인 1995년 코카인과 헤로인을 상습적으로 복용해 다시 재활원으로 입소하게 된다.


숀 펜과 데니스 퀘이드가 그를 재활원에 보낸다던 시기가 바로 이때였다. 하지만 두 친구의 절실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로버트는 얼마 못 가 재활원을 탈출하였는데, 너무 급하게 나온 나머지 알몸 상태로 차를 운전하다 경찰에게 붙잡히고 만다.

1년 후, 퍼시픽 코스트 하이웨이를 과속으로 달리던 로버트는 다시 검문에 걸려, 불법 마약과 총기 소지로 다시 경찰에 체포된다. 이러한 위태로운 상황에서 한 달도 되지 않아, 마약에 취한 상태로 이웃집 소년의 방에 들어가 옷을 벗은 채로 잠을 잔 것이 발각되어 구속된다. 결국, 법원은 그에게 3년의 보호 관찰 명령을 내리게 되고, 다시 재활 센터로 보내진다.


하지만, 4일 후 탈출해 4시간 만에 경찰에 붙잡히는 ‘개망신’을 당한다. 이때가 첫 번째 아내인 데버라 팰코너는 그의 곁을 떠났고, 할리우드의 제작진은 영화 촬영을 할 때마다 그에게 마약 검사와 보험을 종용하는 치욕스러운 요구를 하게 된다.

 

그랬던 그가 어떻게 극적으로 마약을 끊게 되었는지의 일화는 너무도 유명하다. 그 강렬한 유혹을 끊게 된 계기가 몇 개 있는데, 그 첫 번째가 버거킹이다. 어느 날 평소처럼 차 트렁크에 마약을 가득 싣고 달리다가 버거킹에서 자신이 좋아하던 치즈버거를 사 먹는데 그 어떤 맛도 전혀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그 순간 ‘아, 내가 좋아하는 버거 맛도 제대로 못 느낄 지경까지 몸이 망가졌구나!’ 하고 큰 깨달음이 왔던 로버트는 그대로 차를 몰고는 바다로 가서 트렁크에 가득 실려있던 마약을 몽땅 바다에 버렸다고 한다. 훗날 그에게 깨달음을 주었던 버거킹에 대한 감사의 의미로, 《아이언맨》에서는 버거킹 치즈버거 먹는 장면을 그의 부탁으로 일부러 집어넣는 PPL을 완성시킨다.

그를 정말로 마약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오게 해 준 은인은 2002년에 《고티카》를 찍으며 만나게 된 영화 프로듀서 수전 레빈이다. 레빈은 다우니보다 8살 어렸는데, 그녀를 만난 이후 마약과 알코올 의존증에서 완전히 벗어났으며 작품 활동에도 활력을 띠기 시작한다. 그렇게 그들은 3년의 열애 끝에 2005년 결혼했다.

두번째 아내이자 현재의 아내와 함께

결혼 이후 배우 활동도 활기를 되찾아 《키스 키스 뱅뱅》과 《굿나잇 앤 굿럭》, 《조디악》 조역으로 뛰어난 연기를 보여주면서 가능성을 보이더니 《아이언맨 1》으로 성공적인 재기를 하게 된다.

 

마블 코믹스가 본격적으로 스튜디오를 차리고 《아이언맨 1》의 영화화를 준비하면서 주인공 토니 스타크에 대한 오디션을 진행하자,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자신의 운명을 걸고 오디션 장에서 혼신의 연기를 펼쳐 존 파브르 감독의 마음에 드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당시 스튜디오의 대표였던 아비 아라드는 로버트의 과거 마약 중독 사례를 언급하며 그의 캐스팅을 심하게 반대했다. 이후 스튜디오의 경영진으로 케빈 파이기가 합류하게 되는데, 케빈 파이기가 로버트의 가능성에 대해 마지막 표를 밀어주면서 극적으로 캐스팅된다.

얼마나 굴욕적인 캐스팅이었는가를 설명하자면, 당시 그를 도와주는 제임스 로드 중령 역의 테런스 하워드보다도 주인공인 그의 몸값이 터무니없이 낮았다. 여담이긴 하지만, 테런스 하워드는 1편이 대박이 나고 2편의 제작에 들어갔을 때, 로버트의 몸값이 자신보다 훨씬 뛴 것을 확인하고 자존심이 상한다며 배역을 거부한다. 그래서 2편부터 제임스 로드 중령 역은 돈 치들이 맡게 되는 행운을 얻게 된다. 또한, 예전 찰리 채플린으로 연기력을 인정받은 후엔 따로 필요 없었던 오디션 영상까지도 《아이언맨 1》에서는 찍어야 했다.

 

로버트는 《아이언맨 1》 제작 준비 기간 동안 존 파브로 감독 사무실 옆에 자신의 개인 사무실을 따로 만들어 시나리오 제작과 아이언맨 촬영 일정 모두 열정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사실 초기 《아이언맨 1》은 제작 예산도 그렇고 제작했던 스튜디오 입장에서조차 ‘폭망’을 예상했던 작품이었다. 그러나, 그를 믿어준 존 파브르 감독의 연출과 로버트의 혼신을 담은 연기와 노력으로 마블 전설의 1호로 초대박을 치게 된 것이다.

 

그렇게 《아이언맨 1》의 성공으로 로버트는 마블 시네마의 영웅이자 대부로 자리 잡을 수 있었고, 진정한 인생 역전을 만들어낸다. 사실 그 직전까지 노력한다고 했었지만, 한번 약쟁이가 온전히 약에서 벗어나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나 할리우드 영화계에 있으면서 약과 술에 의한 유혹을 끊어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 그가 완전히 약을 끊어버리게 된 데는, 2004년 그의 어머니로부터 걸려온 한 통의 전화가 가장 큰 동기부여가 되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한 내용은 그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2014년 바로 그날 그가 페이스북에 올린 장문의 글에 자세히 담겨있다.


 “어머니가 이루지 못한 성공을 내가 이루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지만, 마약으로 인해 번번이 실패해왔다. 2004년의 나는 끔찍한 상태였다. 하지만 갑작스레 걸려온 어머니의 전화에 나는 모든 것을 받아들였다. 어머니가 무슨 말을 했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나는 그 이후로 술을 끊고 약에도 손을 대지 않고 있다. 어머니는 배우로서, 그리고 마약을 극복해낸 인간으로서 나의 롤모델이었다. 나의 야심, 인내력, 장대함, 변덕, 때로는 공격적인 부분, 모두가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다. 앞으로도 변하지 않았으면 한다. 어머니가 있는 사람은, 어머니가 비록 완벽한 인간이 아니더라도 전화를 해주길 바란다. 그리고 그럼에도불구하고 사랑한다고 전해주길 바란다.”

어머니와 함께

당신이 잘 알지 못했던 아이언맨의 굴곡진 인생 이야기이다. 혹시나 너무 롤러코스터 인생을 본 탓에 속이 울렁거리지는 않는지 모르겠다. 그는 어찌 보면 영화계에 있어서는 상당한 금수저가 맞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방탕함과 오만함 속에서 약에 쩔어 자신의 청춘을 저 밑바닥까지 내동댕이쳤던 사람이다. 자신을 이해해주고 밑바닥에 내동댕이쳐졌어도 안아주던 연인이 넌더리가 날 정도로 자신을 구제하지 못했고, 아이까지 태어난 한 가정을 자신의 몰지각함으로 망가뜨리고 엉망이던 자신과 결혼해줬던 아내와 최악의 상황까지 가서 싸우며 헤어졌다.


자신을 위해 형사처벌을 받게 될지도 모를 위험을 감수하고 집을 부수고 들어와 자신을 재활원에 넣어준 친구들의 우정을 배신하고 다시 약을 하겠다고 탈출했었으며, 여전히 그 이후에도 차에 가득 마약을 싣고 다니며 마약중독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정도 되면 그의 인생이 그저 실패 정도로 묘사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말 그대로 개망나니 인생이었고 어느 누구도 도와줄 수 없는, 그렇게 길거리에서 마약중독으로 사망했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전형적인 인생 패배자의 모습이었다.

그의 아내와 시사회 레드카펫에서

그런 그가 마흔을 훨씬 넘어 해골바가지의 물을 마시고 깨달음을 얻은 사람처럼, 버거킹 햄버거를 먹다가 깨달음을 얻고, 다시 찾은 사랑을 통해, 갱생을 하게 되고, 어머니의 눈물 어린 사랑에 그 바닥을 치고 다시 한번 뛰어오른다.

그의 나이 이미 마흔을 훨씬 넘어선 40대 중반에서야 그는 그의 인생작을 만난다.


그의 인생을 쭉 살펴봐서 알겠지만, 그에게는 몇 번이나 정상에 오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가 단지 운이 좋기 때문이라는 착각은 할 수 없을 정도로 몇 번이고 그는 그 기회를 놓쳤고 망가뜨렸으며 만신창이로 자신의 인생을 내동댕이쳤다.


다른 외적인 요인도 아니었다. 그저 자신이 자신을 조절하지 못했다는 그 하나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그 수렁에서 빠져나온 것도 온전히 자신만의 노력이어야만 했다. 물론 사랑하는 이들의 절실한 도움은 상당한 도움이 되었고, 천운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심이 되었던 것은 그 자신의 절실함이었고 노력이었으며 피와 땀이었고 눈물이었다.

 

당신은 어떠한가?

그의 이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삶이, 그가 빠져나온 이 긴 수렁이 과연 아무나 빠져나올 만큼 간단한 것이었다고 보이는가?


당신이라면, 당신이 그의 입장이었다면 아무렇지도 않게 다음날 마약이고 술이고 딱 끊고 그렇게 거듭날 수 있었겠나?


당신이 지금 겪고 있는 어려움이, 그 실패가 코로나 때문에, 당신을 속인 동업자 때문에, 유독 어려웠던 이번 시험운 때문에, 믿고 투자해주겠다고 말을 바꾼 그 투자자들 때문만이라고 생각하나?


아니다. 당신이 조금 더 준비했어야 하고, 당신이 더 노력했어야 하며, 당신이 미리 그 난관을 극복할 수 있는 플랜 B를 준비했어야 한다.


왜냐구?

그렇게 하지 않고 정점에 오르는 이들은 없다. 정점에 올랐던 사람이기에 로버트는 밑바닥까지 갔었을 때 다시 올라오는 것이 지옥 같았고, 참을 수 없는 모멸감과 치욕을 견뎌내야만 했다. 하지만 그는 견뎌냈고 준비했고 이겨냈다. 그런 꼴을 당하게 만든 원흉이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당신도 당신이 지금 겪는 일의 원인이 바로 당신에게서 비롯되었고, 당신이 좀 더 노력하고 당신 스스로를 컨트롤할 수 있었다면 더 나은 결과를 낳을 수 있었다는 점을 인정하고 그 점을 다시 보완하고 재도전할 수 있는 강한 의지가 있다면, 그 이전에 어떤 일을 망쳐놓았든 당신은 충분히 정점에 설 자격이 있다.


당신이 그렇게 다 망쳐놓고 이번 생엔 망했으니 다음 생을 생각하네마네 병신 같은 생각을 하는 동안에도 당신이 충분히 그 모든 시련을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믿어주시는 당신의 어머니가 계시고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을 떠올릴 때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삶을,

당신이, 당신의 의지로 살아낼 것을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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