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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Jun 14. 2021

개인택시와 교통사고가 나면...

대한민국 교통사고 대처법 매뉴얼의 업데이트를 요합니다.

차 안의 온도가 41도를 가리키던 토요일 정오를 막 지났을 때, 잠실로 넘어가는 고가도로에서 공사 중이라는 표지판과 함께 1차선으로밖에 갈 수 없다는 표시를 봤다.

어쩔 수 없이 왼쪽 깜빡이를 켜고 1차선으로 천천히 진입하려고 하는데 1 차선 쪽에서 부앙 거리는 소리를 내며 차가 바싹 다가왔다. 택시였다.

어차피 고가도로였고 공사가 제법 진행되던 차라 차들이 꽉 막혀 거의 진행하지 못하였고 순차적으로 차들이 하나씩 들어가던 참이었기에 천천히 차량의 머리를 1 차선 쪽으로 진입시켰다.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택시가 더 촘촘하게 그 앞으로 밀고 들어왔다.

일촉즉발

속도가 없는데도 접촉사고가 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반면, 운전의 달인이라는 개인택시라는 점에서 설마 자신의 차를 손상시키면서까지 접촉해오겠나 하는 황당한 믿음(?)도 조금은 있었다.

그런데 사이드 미러끼리 살짝 닿는가 싶은 그 순간, 나는 택시 운전자가 차를 멈추거나 할 줄 알았다.

그의 오래된 국산차 사이드 미러가 외제차의 낮은 사이드 미러를 위로 누르듯 확 제치며 자신의 차에 쭈욱 긁고 가는 것이 아닌가?

눈 앞에서 벌어진 일이었지만 일순간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공사 중인 차량 때문에 마침 공간이 있어, 그 앞으로 차를 세우라고 했다.

택시 운전자는 자신의 차에 긁힘은 컴파운드로 닦아내면 그만일 정도이니 서로 잘못했다고 하면 퉁치고 가겠다고 선심 쓰듯 말했다.

당연한 것인지 의문이긴 하지만, 나는 '죄송합니다.'를 먼저 듣고 싶었다. 살짝 괘씸한 마음이 올라왔다.

  "지금 아저씨가 잘했다는 거죠?"

  "당연하죠. 내가 직진 차량인데, 직진 차량이 직진하는데 그쪽에서 들어온 거니까 이건 내 잘못이 아니에요."

  그 한 마디에 냉정은 저 멀찍이 날아갔다.



  위 사진들이 실제 사고 난 사이드 미러는 아닌데, 대량 저런 식으로 전동 사이드미러가 반대쪽으로 확 휘어지는 손상을 입어 아무래도 공장에 맡기면 늘 그렇듯 해외 현지에 정품을 주문하는 식으로 교환 수리가 이루어질 것이 뻔했다.

  "보험사 부르고, 경찰 불러서 제대로 처리할까요? 아저씨가 잘못한 거 인정하시고 그냥 수습할까요?"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물었다.

  "나는 잘못한 거 없으니까 다 부르고 마음대로 해보세요."

  



구구절절이 그 땡볕에서 한 시간여 차를 세우고 실랑이 한 과정을 묘사할 필요성까지는 느끼지 못한다.

빠른 감기로 핵심만 요약하자면,

택시 운전사가 낡고 오래된 핸드폰을 꺼내면서 언뜻 보였던 손주들로 보이는 사진을 보고 마음이 흔들렸다.

경찰을 부르지 않기로 하고, 내 보험사도 취소를 했다.

자신이 잘못한 게 없으니 전문가를 불러 시비를 가리자고 일단 우기는 그의 어설픈 모습을 보면서 택시조합의 보험사 직원이 올 때까지 땡볕에서 같이 기다려주었다.

택시조합 보험사 현장 직원이 와서 간략하게 서로 간의 설명을 듣고, 어떻게 할 것인지를 물었다.

잠시 현장 직원이 택시 운전사를 차에서 기다리라고 하고는 내게 다가왔다.

나는 조심스럽게 내 직업을 말하고 아까부터 켜 두었던 핸드폰의 녹음기를 그의 앞에 보란듯이 놓고 말했다.

"내가 돈을 내놓으라는 것도 아니고, 잘못한 거 사과하고 기본적인 수리를 저 아저씨가 다니는 수리업체에 맡겨 실비 차원에서 수리하라고 했더니 자기 잘못한 게 없고 보험으로 하잡니다. 이거 본사 공장에 넣고 해외에서 부품 올 때까지 렌터카 쓰는 걸로 처리할까요? 저 아저씨는 컴파운드로 긁힌 거 지우고?"


  현장 직원이 고개를 크게 설레설레 저었다.

  그가 택시 기사를 데리고 잠시 상의 좀 하겠다며 구석으로 가서 한참이나 있다가 왔다.

  "사과드리고 원만하게 처리해주십사 하고 부탁드린답니다."

  그는 나이 먹고 개인택시 운전을 한 지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다며 나중에는 미소까지 지어 보이며 두 시간 밀린 사과를 했다. 그 사과를 듣자고 땡볕에서 짜증을 삭히며 있었던 것이 아니었는데, 싶었다.

  "도대체 왜 처음부터 내 말을 듣지 않는 겁니까? 일반 운전자도 아니고 이렇게 끝까지 와야 했습니까?"

  당신의 핸드폰에서 본 손주들 사진 때문에 내가 더 몰아칠 수 없었다고 말을 건네자 그가 감사하다며 고개를 연신 숙이고 숙였다.

  

  일단 사고가 나면 목 뒤를 잡고 자신의 잘못을 결코 인정하지 말고 목소리를 높여라.


  이것이 대한민국 교통사고 대처법 매뉴얼이었다면, 이제 수정하고 업그레이드를 할 때도 되지 않았을까?

  교통사고뿐만 아니라, 자신이 잘못했을 때, 잘못했다고 사과하는 사람을 탓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잘못했다고 사과하는 사람에게 그것을 빌미로 덤터기를 씌우는 정말 몇 안 되는 들 때문에 자신의 삶을 황폐하게 만들지 마라.

  그렇게 살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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