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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Jun 14. 2021

두 얼굴의 사나이

제발 나를 화나게 하지 마세요.

지금은 거의 없어지다시피 했지만, 80년대는 외화시리즈가 주말은 물론 평일 저녁시간까지도 한국의 시청자들을 장악하다시피 했었다.

지금의 어린 친구들에게는 어벤저스의 엄청난 괴력의 괴물로 기억되는 헐크역시 80년대 명물 TV시리즈로 한국에서 방영된 제목이 바로 '두 얼굴의 사나이'였다.

지금처럼 번역자막이 아닌 성우의 더빙 버전으로 이루어진 이 시리즈는 본래, 미국의 CBS에서 78년부터 82년까지 5년간 5 시즌 총 82편이나 방송된 장수물이기도 했다.

본래 60년대 마블코믹스의 캐릭터를 처음으로 77년에 영화로 만들었고, 그 반응이 뜨거워 TV시리즈로 제작된 케이스인데, 당시 시리즈에서는, 최근 어벤저스의 활약상처럼 외계인들이나 괴물을 작살내는 느낌보다는 동네 양아치들이나 나쁜 녀석들을 혼내주는 도망자(정부 요원들에게 잡힐까 봐) 브루스 배너의 로드무비 형태의 작품이었다.


뜬금없이 왕년의 TV시리즈로 이야기를 시작한 것은, 아련한 옛 기억을 되새기려고 함은 아니다.

이 드라마를 보면, 브루스 배너를 연기하는 연약해 보이는 박사와 화가 나면 변신하는 헐크, 이 두 가지 역할이 존재한다. 그런데, 참 신기한 것은 고정적으로 드라마가 시작할 때, 복선을 반복해서 깔았던 것이 특이할만한 점이었다.

  "제발 나를 화나게 하지 마세요."

불의를 저지르는, 혹은 그 과정에서 브루스 배너를 괴롭히고 린치를 가하는 이들에게 브루스 배너 박사가 사정하듯이 말하는 그 대사이다.

헐크 역의 조 페르노는 미스터 올림피아에서 아놀드 슈왈츠제네거에게 매번 챔피언을 빼앗겼었지만 197CM의 거구로 헐크에 낙점되는 행운을 차지하게 된다.

드라마를 보는 이들은 모두 안다, 약해 보이는 그가 오히려 부탁하듯이 악당들에게 자신을 화나게 만들지 말라고 사정하듯 경고하는 이유를.

그러나 악당들은 그 좀스런 양아치들은 그가 설마 그가 위의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동일인물일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다.

그런데 여기서 아주 단순하지만 의문이 발생한다.

앞의 박사 가운을 입은 유약해 보이는 아저씨한테는 린치를 가하고 막 해도 되고, 뒤에 서 있는 초록색 거인한테는 함부로 하지 못하고 깨갱 꼬리를 내려야 한다는 말인가?

이 얼마나 동물스러운 짓인가?


10여 년? 아니, 물론 훨씬 이전이었겠으나 기억하기로는 내가 유해지기로 한 그 10여 년 전부터 나는 나도 모르게, 내 눈앞에서 비리를 저지르거나 뻔한 잘못을 해놓고서도 목소리를 높이는 양아치스러운 인물들에게 위 드라마에 나온 클리세 같은 대사를 했었다.

  "굳이 그렇게 하지 맙시다. 사과하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면 내가 끝까지 몰아세우지는 않을 테니 그쯤하고 잘못을 인정하고 이 일을 합리적으로 수습하는 게 어떨까요?"

  결과가 어땠을 것 같은가?

  그들은 콧방귀도 뀌지 않고 비웃었다.

  자신들이 잘못하고 든든한 회사를 믿고 나대던 전화 상담원부터, 자신이 공무원이 되어 창구 자리에 앉아 선생님이라고 대접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 한 번도 밀려 본 적이 없는 햇병아리 공무원, 그리고 잘 나가는 국회의원의 보좌관, 자신이 잘 나간다며 나대는 국회의원까지 그 수많은 이들은 결코 사과를 하거나 머리를 숙이지 않았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느냐고?

  큰소리를 치고, 절대 승복해주지 않을 거라고, 잘못을 인정하지 않을 거라고 하던 그들은 결국 긴 과정 끝에 그들의 상관에게 불려 가거나 TV 뉴스에 나오기 직전에 기자에게 전화를 받거나 감사원의 전화를 받거나 여러 가지 형태의 벼랑에 몰리고 나서야, 썩소를 띄우며 말했다.

굳이 이렇게까지 하실 필요는 없지 않으시지 않은가요...?


  그들은 내가 브루스 배너 박사의 유약한 모습이 아니었음에도 그들이 결코 그 자리에서 이런 꼴을 당해본 적이 없다고, 이렇게 될 줄 몰랐다는 표정으로 뻔뻔하게 썩소를 띄우며 그 대사를 뱉었다.


  사실 이제 그런 과정이 반복되는 것이 끔찍이도 싫다.

  게다가 그들을 그렇게까지 벼랑에 몰고 가는 것이 에너지와 시간을 쏟아붓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일임을 알기에 더더욱이나 이 쓸모없는 몽둥이 휘두르기를 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는 지난했을 이 과정이, 이 지긋지긋하고 결국 끝이 빤히 보이는 이 과정이 그들에게는 처음이란다.

  내가 엄청난 사회적 책임감을 갖고 있는 슈퍼맨도 아니고, 그들 하나하나를 다 뜯어고쳐 사회가 엄청나게 나아지는 것을 본 것도 아니다.


  이 부분이 가장 가슴 아픈 대목인데, 헐크에게 혼이 난 동네 양아치들이 이후에 마음을 고쳐먹고 착하게 살았을 리가 만무하다는 점을 고려해볼 때, 내게 혼이 난 그들이 이후의 약자들에게 선량한 마음을 가지고 책임감을 되찾아 새사람이 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그 가슴속 한켠에는 초록색 거인이 살고있다.

그들이 그렇게 변해서 모두 한 방에 던져버리고 날려버릴 수 없을지언정, 그 모든 약자들의 가슴속에게도 초록색 거인은 있다는 말이다.


자신이 저지르는 것이 대단한 비리도 아니고, 대단한 부정도 아니라고 자위하며 뻔뻔하게 약자들을 기만하는 자가 당신이 아니라고 장담할 수 있는가?

어떤 식으로든 당신도 당신의 자리에서 당신이 늘 하던 방식대로 혹은, 당신의 조직이 원하는 대로 한다는 명분 하에 적당히 같이 비리를 저지르고 눈감고 그 눈먼 돈으로 식사하고 술 먹고 놀았을 것이다.


그리고 당신은 뉴스에 나오는 비리 정치인들을 보며 욕했을 것이고, 버젓이 아이들을 데리고 광화문 광장에 나가 촛불을 들며, 자신은 양심이 살아 있는 서민이라고 자위했을지도 모른다.


그러지 마라.

모든 큰 일이라는 것은

결국 아주 작은 일에서부터 비롯된다.

그것이 당신만을 망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자녀에게

당신의 가족에게

당신이 사랑하는 누군가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고 왜 생각하지 못하는가?


누군가 당신의 그 삐뚤어진 양심에 대고,

예의를 갖춘 정중한 어조로,

"제발 이런 식으로 굴지 맙시다. 지금이라도 잘못된 것에 대해 인정하고 사과하세요. 그리고 합리적으로 일처리를 합시다."라고 말했을 때,

그가 초록색 거인으로 변해서 모든 것을 작살내고

당신이 눈물을 툭 흘려도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이 되기 전에


그의 말을 들어라.

당신의 양심의 말을 들어라.


자존심이 상하고,

내가 왜 이런 사람에게 이런 말을 듣고

무릎을 꿇어야 하는 거지?

라는 알량한 자존심이 발끈하더라도

그 작은 감정 때문에

더 큰 당신의 양심을 내던지지는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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