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생활 속에서 착한 사람들을 보면 아주 자연스러운 비유로 “천사 같다”라는 말을 쓰고, 연쇄살인마와 같이 잔인하고 악한 사람을 “악마”라고 부르는 것에 큰 위화감을 느끼지 않는다. 천사와 악마에 대한 이미지가 명확하게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 모두의 의식에 이미 합의된 형태로 인식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인 의미에서의 합의가 언제쯤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명확하게 알 수 없지만, 인간이 있어온 이래, 인간의 역사가 기록된 그 모든 기록들에는 어떠한 형태로든 천사와 악마가 등장한다.
도대체 언제부터, 누구에 의해서, 그 존재들에 대한 기억과 형상화 작업이 이루어졌을까? 그리고 무엇보다 그 존재들을 직접 만났다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훨씬 적은 측면에서 보면, 그 존재들을 만나보지 못하고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자연스럽게 천사와 악마의 모습을 똑같이 형상화하는 것일까?
<천로역정>의 삽화
가만히 생각해보면, 누군가에게 같은 교육을 받은 것도 아니고, 전 세계의 TV에서 수년째 똑같이 방영한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TV나 기타 매체가 없던 시기, 화가들에 의해 묘사되고 그려진 천사와 악마의 모습은 어쩌면 그렇게 유사하고 통일된, 정말 실재 했던 존재를 그리듯 똑같은 것일까?
너무도 당연하고 그저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천사와 악마의 존재에 대해 우리는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다는 것부터 인정해야겠다. 그래서 지금부터 그 존재들에 대해 조금 더 구체적이고 실증적이며 문헌과 기록과 증언들을 토대로 어떻게 인간들이 그 존재들에 대해 기억하고 본 것처럼 똑같이 그리고, 그 존재에 대해 합의된 동일 이미지를 갖게 되었는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천사와 악마의 진짜 모습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유대교와 기독교의 경전이라 할 수 있는 ‘성서’를 먼저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서양에서 천사와 악마의 존재는 주로 성서에 나오는 것들을 바탕으로 구상화되었고, 그 이미지가 문학이나 미술 등에 영향을 주면서 전승되고 가다듬어졌다고 보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견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 또 근본적인 맹점이 있다. ‘최초의 성서’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우습긴 하지만, 성서는 그래픽 노블이 아니다. 즉, 그림이 없다는 말이다. 코끼리를 보지 않은 이들에게 아무리 코끼리에 대한 몽타주를 전문화가에게 의뢰한다고 한들, 말로 설명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천사와 씨름하는 야곱>, 렘브란트
게다가 성서에는 그 수많은 천사와 악마를 몽타주로 그릴만큼 상세하게 묘사한 부분도 여간해선 찾아보기 어렵다. 이런 상황들을 고려해보면 천사나 악마의 모습이라는 것은, 구체적인 묘사나 사항이라고는 거의 없기 때문에 명화 속에 등장하는 천사와 악마의 모습조차도 그 모델이나 원전이 어디에서 왔는지에 대해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근거를 찾기 어렵다.
미술사에서는 결국 당시의 화가들이 그들의 상상력을 동원해서, 고대 그리스 신화나 또 다른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을 참고했다거나 그 비슷한 것들을 만들어냈을 것이라고 얼버무리지만, 그렇다고 하여 미술사에서 설명하는 것처럼 단순히 그저 화가, 한 개인이 소설 속의 캐릭터를 창조하듯 천사나 악마의 형상을 그저 창조해냈다고 보는 것도 무리가 있다.
<베네스다 못의 기적>, 조반니 도메니코 티에폴로
왜냐하면 전술한 바와 같이, 그러하다면 캐릭터별로 그린 화가마다 천사의 얼굴이나 외모나 악마의 그것이 확연하게 달라야 하는데, 묘하게도 그렇지가 않다. 그 시대에 인터넷이나 화집이 있어서 서로 오리지널을 창조한 누군가의 한 작품을 대대로 베꼈다고 볼 현실성이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때문에, 천사와 악마의 모습은 누군가 본 것을 그대로 묘사하였거나 그 존재의 순수한 모습 그대로 표현된 것이 아니라, 다른 문화나 신화 등의 존재와 융합하여 상상으로 탄생한 작품이라고 보는 미술사적 견해는 쉽게 수용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화가나 조각가들은 그 영적인 존재들을 어떻게 형상화할 수 있었을까?
먼저, 영적인 존재를 파악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선행 작업이 있다. 그 존재의 명칭, 즉 이름을 명명화하는 것이다. 실제로 서양의 엑소시즘도 그러하고, 동양의 굿에서도 악귀를 쫓는 작업을 할 때, 가장 먼저 하는 것은 해당 영적 존재의 정체성을 밝히는 것이다.
그것은 명명화의 역작업에 다름 아니다. 쉽게 말해, 그의 이름을 파악해내어 공적으로 알리는 일환으로, 이름 자체를 외침으로서 그 존재가 무엇인지에 대해 확실하게 엑소시스트가 인지하고 있음을 밝히는 것에서부터엑소시즘은 시작된다.
그렇다면 ‘천사’라는 단어는 어디에서부터 유래된 것일까?
그리스도교, 유대교, 이슬람교 등에서는 ‘신을 보좌하는 영적인 존재’라는 의미로, 히브리 원어 ‘말락 야훼’는 히브리어의 '심부름꾼(מלאך, 말라흐)'에서 파생된 '야훼의 심부름꾼'이라는 뜻이고, 영어명인 'Angel'은 ‘신에게서 파견된 사제, 예언자’라는 의미하는 그리스어인 '앙겔로스(ο Άγγελος)'에서 나온 것이다.
<치천사 라파엘>, 베르나르도 카발리노
한자문화권으로 대표되던 동양에서는 황제가 곧 천자이며 하늘이라고 보았기 때문에 '황제의 사자'를 높여서 부르는 말로도 쓰였다. 'Angel'의 한역인 '天使'도 '하늘의 사자'라는 뜻을 갖기 때문에 본래의 의미와 크게 다르지 않다.
정리해보면, ‘천사’라는 단어의 의미는, 하나님 심부름을 하는 영적 존재의 직명일 뿐, 그 존재의 정체성에 해당되거나 본연의 성향을 가리키는 단어가 아니라는 뜻이 된다. 그래서 중국과 한국에서는 오랫동안 ‘천신(天神)’이라는 본성을 가리키는 이름을 사용하기도 했다. 본래 ‘신의 메신저’를 의미하는 ‘천사’라는 말이 중세 초기부터 일반화돼 오늘날까지 이어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또 헷갈리지 말아야 할 부분들이 있다.성서에 등장하는 천사라는 단어가 ‘전령’의 의미로 사용되는 것에는 중의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영적인 존재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지만 누가 봐도 명백한 인간으로서의 존재에게도 그 호칭을 사용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즉, ‘전령’이라는 범위가 넓은 의미로서의 ‘천사’는 영적 존재만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성 미카엘>, 라파엘로
때문에 특정 장면에 나온 '천사'가 인간인지 신인지는 문맥에 따라 판단해야 하는 황당한 문제가 발생한다. 성서에는 인간임이 명백한 천사들도 등장하는데, 사람들의 이목을 피해 다닌다는 사실을 보면 문맥상 파악하기에 크게 어렵지는 않다. 예컨대, 사사기에는 군사 지도자 기드온이 천사와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는 천사가 바위에서 불이 나오게 하는 것을 보기 전까지는 천사를 전혀 알아보지 못한다.
여기서 확실하게 인지하고 들어가야 할 것이 두 가지 있다. 첫째, 성서에 나오는 천사는 우리가 영화에서 보곤 했던 날개 달린 사랑스러운 아기 천사와는 전혀 다르다는 점. 둘째, 성서에는 케루빔과 세라핌을 제외하고는 날개를 단 천사가 없다. 또한 천사장인 미카엘과 마리아에게 수태고지를 하는 가브리엘 이외에는 천사의 이름조차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치천사 미가엘>, 귀도 레니
구약성서에는 신에게 거역한 나쁜 천사에 대한 언급이 전혀 나오지 않지만 신약성서에서는 상황이 사뭇 다르다.
“하나님이 죄를 저지른 천사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지셨다” (베드로후서 2:4).
그래서 초기 그리스도교도들은 사탄과 마귀들도 본래는 선한 천사였다가 신을 거역하게 되면서 악한 존재가 되었다고 믿었다. 이른바 타락천사가 악마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여기에서 유래하게 된 것이다. 요한계시록에는 세상의 종말에 미카엘과 선한 천사들이 사탄과 악한 천사들을 물리친다고 말한다.(요한계시록 12:9)
그렇다면 천사는 도대체 어떤 존재일까?
구약성경에는 천사에 대한 언급이 많이 나온다. 천사는 하늘에서 아브라함을 부르고, 죄악에 물든 소돔(『구약성서』의 「창세기」에 기록되어 있는 악덕과 퇴폐의 도시)을 멸망시킬 때 의로운 사람 롯을 구한다. 또 천사는 하나님 백성을 인도하고, 예언자들을 도와주며, 요한 세례자와 예수님 탄생을 알리기도 한다.
<아브라함과 세 천사>, 마르크 샤갈
이처럼 구약성경에서 천사는 철저하게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중개하는 존재이며, 하나님 심부름꾼으로 파견돼 사람을 보호하거나 처벌하는 심판자 역할을 한다. 유다인들은 하나님 처소를 왕궁으로 생각해 천사를 왕궁에서 심부름하는 존재로 묘사했다. 그래서 천사를 하나님을 모시는 신하나 군대로 생각했다.
실제로, 성서에서 신은 여러 차례 '만군의 주'라고 불린다. 그렇다는 것은, 신은 전능한 존재이면서도 휘하에 군대를 거느리고 있다는 이야기다. 천사는 신의 신하이자 병사이며 종이다.
<아브라함과 세 천사>, 루이 고피에
바빌론 유배 시기 이후부터는 하나님 명을 받아 이 세상 많은 자연현상과 인간 역사를 관장하는 천사들이 등장한다. 천사들은 하나님의 영, 혹은 하늘의 아들이나 거룩한 자, 수호자 등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리고 이 시기부터 착한 천사와 악한 천사, 즉 악마의 구별이 생기고, 개인이나 도시, 나라의 수호천사 개념도 발전했다.
신약성경에서 보면 예수님은 탄생 때부터 하늘에 오르실 때까지 천사들의 경배와 봉사를 받으셨고, 아기 예수님이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셨을 때 천사들이 노래한다. 또 천사들은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유혹을 받으실 때 시중을 들었고, 그리스도 부활 소식을 제일 먼저 알리기도 했다.
<수태고지>, 반 얀 에이크(1436년)
마리아에게 예수의 임신을 알리고, 양치기들에게 예수의 탄생을 알리고, 예수가 유혹을 물리치는 것을 돕는다. 마태복음에 따르면 예수의 무덤에서 돌을 굴려 치운 것도 천사라고 언급되어 있다.
사도행전에서 천사는 베드로를 감옥에서 꺼내 주는 역할을 직접 수행하기도 한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그분 심판을 도와드리게 될 이들도 천사들이다. 이처럼 성경에 등장하는 천사는 하나님 심부름을 하는 영적 존재들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