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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Nov 14. 2021

천사는 남자인가, 여자인가?

천사학 개론 2

지난 이야기.

https://brunch.co.kr/@ahura/460


천사가 가장 많이 등장하는 공식적인(?) 책은 뭐니 뭐니 해도 <요한계시록>되시겠다. 무려 70번 이상이나 천사가 구체적인 단어로 언급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천사가 요한에게 계시록의 내용을 전하는 장면부터이니 아예 처음부터 전면에 나온다고 보는 것이 맞을 듯하다.

또한 요한계시록에는 여섯 날개를 가지고 ‘안과 주위에 눈들이 가득한’ 네 가지 '생물'이 나온다(요한계시록 4:8). 이 네 생물은 신의 옥좌 주위를 맴돌며 신을 찬양한다.


하지만 초기 그리스도교도들은 신의 천사가 인간으로 위장하고 다닌다고 믿었기 때문에 천사의 존재를 함부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 근거로, <히브리서>에는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히브리서 13:2)라고 하는 구절이 보인다.

대개 천사는 등에 독수리의 날개로 보이는 하얀 날개가 달린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다. 중세의 그림이나 문학 작품에 묘사된 천사의 모습이 날개 달린 요정의 모습이기보다 인간과 비슷하게 그려진 건 그저 상징적인 모습이 아니라 성경 내용에 충실한 묘사이다. 그러한 이유로, 성경에서는 언급되지 않은 날개는 아예 묘사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언제부터인가 성서의 천사는 날개가 없는데도 예술 작품에는 흔히 날개를 단 모습으로 묘사된다. 신의 전령이라면 하늘을 오갈 수 있어야 하니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상상이 발현된 것인지, 천사는 인간과 다른 뭔가 구분되는 형상을 갖춰야 한다는 생각에서 그런 형상을 그려냈을 수도 있다.


물론, 직접 만나보거나 본 사람들에 의해 그렇게 묘사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어떤 화가들은 천사를 그리면서 아예 깃털 의상을 입은 모습으로 그리기도 했다. 예술작품에서 천사는 대개 남자로 묘사되지만(성서에도 늘 남자로 지칭된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거의 대부분 수염이 없고 젊은 모습으로 묘사된다.

<수태고지>, 로베르 캉벵

남자들이 수염을 기르던 시대에도, 천사의 수염을 그리지 않았던 이유는 세속을 초월한 느낌을 주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천사의 화려한 의상은 천사가 신의 궁정에서 산다는 관념의 소산이라고 미술사에서는 설명한다.

 

미켈란젤로는 통념을 깨고 당시로서는 파격적으로 날개 없는 천사를 그렸다. 16세기에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경당 벽에 <최후의 심판>을 그렸을 때, 종교개혁의 대응하는 트리엔트 공의회가 열렸던 시기였기 때문에 감히 천사의 존재에 날개를 빼고 그렸다 해서 강력한 비난을 받았던 것이다.

시스티나 예배당

르네상스 시대에는 아기 천사가 큰 인기를 끌었는데, 이는, 아기 천사의 모습을 그려냈던 이들이 당시 유행했던 예술사조와 관련하여 그리스 신화 속의 인물인, 에로스, 즉 큐피드의 모습에서 영향을 받아 천사의 이미지로 섞어버렸다는 것이 미술사에서의 정설이다.

 

사람들이 더 이상 천사를 진지하게 여기지 않게 되었다는 사상적인 변화를 의미하는 반증에 다름 아니다. 사랑스러운 아기 천사는 성서에서 보는 천사와 사뭇 다른 그야말로 장식을 위한 상상의 부산물로 예술작품에 반영되기 시작한 것이라고 보는 견해가 타당할 듯하다. 그러한 사상적 배경에서 르네상스 시대에 탄생한 천사는 ‘푸티’(putti, ‘꼬마’라는 뜻의 이탈리아어 푸토(putto)의 복수형)라고 부른다.

<천사>, 라파엘로

페터 얀 브뤠겔의 <반역 천사의 몰락>은 아름다운 신적 존재에서 혐오스러운 마귀로 변한 천사의 모습을 보여주어 타락천사의 이야기가 상상에서 시작된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반역 천사의 몰락>, 페터 얀 브뤠겔

<요한 묵시록>에는 날개 세 쌍을 단 존재가 나오긴 하는데, 이게 천사인지 아니면 다른 존재인지에 대한 부분은 논란이 있기 때문에 천사라고 단정 지을만한 근거가 부족한 상황이다. 그래서 천사의 또 다른 특징으로는 머리 위에는 고리가 떠 있는 것으로 묘사하는 경우도 많다.


원래는 고리가 아니라 후광인데, 그림에 후광이 마치 고리처럼 보여 이를 간략화하여 고리로 묘사하거나 그리게 된 것이다. 또 각종 창작물에서 천사의 날개는 한 쌍보다 더 많은 경우가 있는데 날개가 많을수록 높은 천사라고 판단하던 기준이 작용한 시대의 산물이기도 하다.

반면, 비인간형으로 나타날 때도 있는데 불타는 신의 전차(Chariot)의 바퀴로 묘사된 지천사 등으로 나오기도 한다. 영적 존재들이기 때문에 보통은 그냥 무난한 인간형으로 형상되고 실상은 다양한 모습으로 묘사된다.

 

사도 바울은 천상의 존재들을 ‘왕권’, ‘통치자’, ‘권세’, ‘주권’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렀다(로마서 8:38, 에베소서 3:10, 골로새서 1:16). 후대의 작가들은 그것을 천사의 ‘위계’로 여기고 각 위계마다 특정한 기능이 있으리라고 추측했다.


디오니시우스라는 필명을 사용한 중세의 작가는 『천상의 위계』라는 책에서 천사들의 '서열'과 특정한 임무를 상세히 분석했다. 이 책은 천사에 관한 기본 개념서처럼 자리잡기 시작하면서, 천사에 대한 모든 정보를 전달하는 천사학 교과서처럼 이후 많은 예술작품과 예술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디오니시우스가 정리한 천사의 계급도

천사를 소재로 삼거나 등장인물로 한 문학작품은 워낙 많기 때문에 일일이 모두 언급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문학작품으로 인정받고 있는, 존 밀턴의 『실낙원』은 천상의 전쟁에서 선한 천사들이 사탄의 지도를 받는 반역 천사들을 몰아내는 장면을 아주 상세하게 묘사한다.


이후 미디어가 발전하고 천사라는 존재를 영상화할 때는 대개 이 작품의 천사가 갖는 이미지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여기서 천사는 선하면서도 강력하고 거친 존재로 성서에 묘사된 천사의 모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좀 더 구체화되어 있고, 전령보다는 전사의 이미지를 갖추고 있다.

 

다양한 면모를 지닌 천사들이지만 공통점도 있다. 바로 그 존재의 등장과 그것이 갖는 의미를 표현할 때, 하나님의 거룩한 후광과 하늘나라의 영광을 드러내며 그 힘을 지닌다는 점이다.

인간과는 구분되는 이질적인 존재이자 상상도 하지 못할 능력을 가지고서 인간의 상식으로는 상상치도 못한 모습으로 나타나서 경외감을 드러낸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천사는 그의 존재 이유가 하나님의 대리인 역할을 한다는 공통적인 목적을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천사들이 하늘에서 내려올 때의 목적에 부합하게 그분의 신성이 천사의 모습을 빌려 내려오는 것과 동일하다는 점 때문에 인간들은 두려움에 떨거나 도망치거나 섬기는 모습을 보이게 되는 것이다. 즉, 천사 자체에 대한 경외감보다는 그가 모시고 있는 분에 대한 경외감이 발현된다는 것이다.


앞서 성서도 그렇고 대개의 예술작품에서 천사의 성별을 일괄적인 남성의 이미지로 구현하고 있다고 설명했는데, 좀 더 정확하게 설명하면, 성서나 초기 작품들에서 그렇게 구현된 것은 맞지만, 좀 더 시대가 흐르고 구체화되기 시작하면서 천사의 성별에 대한 묘사는 혼란스럽기 그지없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그런 혼란을 준 가장 큰 근거는, 마태오 복음서 22장 30절 때문인데 ‘부활 때(즉, 영생을 얻은 구원받은 그리스도교 신자)는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이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아진다.’라고 한 설명을 근거로 천사에게는 성별 자체가 없다는 이해가 가능하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해, 천사들은 인간을 초월한 순수한 영적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의 기준으로 보는 성별 구분 자체로 판단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설명 되시겠다.

 

기본적으로는 천사에 대한 이해는 상술한 내용과 같으나, 종교와 문화에 따라서 천사에 대한 묘사는 판이하게 달라진다. 성경에 묘사되는 원조 기독교 천사들은 숨 막히는 위압감과 거룩함을 무한 발산하는 장성한 어른 남성형이지만, 그리스 로마 문화, 혹은 북유럽 신화와 접목되면서 미녀형, 여전사형, 갓난아이형 천사 등 문화적 성향이나 예술사조의 영향까지 받아가면서 다양하게 세분화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분명히 성경에 등장하는 천사인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은 물론 악마까지 모두 남성으로 묘사되고 있으며 몇몇 성경 구절에는 직접적으로 남성으로 표기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사가 여성으로 묘사되기 시작한 시기와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 분석해보면, 그 역사가 짧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적어도 15세기 무렵부터 예술작품들에서는, 특히, 성모 마리아를 시중드는 하위 천사들을 여성으로 묘사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아진 것을 알 수 있다.

<수호 천사>, 피에트로 다 코르토나

아무래도 동정녀 옆에 건장한 외간 남자의 모습을 그리는 것 자체가 자연스럽지 못하다고 여겼을 개연성이 높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여성의 모습으로 묘사한 것이 아닌가 추정할 수 있다. 특히, 수태고지, 즉 성모 마리아에게 예수의 임신을 알리는 장면을 묘사할 경우 매우 높은 확률로 여성, 혹은 중성적인 모습으로 등장한다.

 

성경에서 직접적으로 천사를 여성으로 규정할만한 언급이 없다고는 했지만, 조금 자세히 분석해보면, 사람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천상의 존재라고 보이는 여성을 천사처럼 묘사되는 경우는 있다. 예컨대, 날개로 바람을 일으키는 여자들이 나오는 장면들이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들이 진짜 하느님의 사자인지는 불확실하지만, 적어도 천상의 존재라는 점은 틀림없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다음 편에서는, 앞서 살펴보았던 천사들의 계급을 언급했던 디오니시우스의 『천상의 위계』를 통해 천사에 대해 구체적인 계급별 내용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하겠다.

 

다음 편은 여기에...

https://brunch.co.kr/@ahura/4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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