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 계통의 종교에 거론되는 천사의 위계상 구분을 가리킨다. 이는 기독교, 특히 그중에서도 가톨릭에서 발전한 개념으로, 천사에 대한 민간 신앙이 활발했던 고대와 중세를 거쳐가며 천사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에 의해서 제시되었다.
천사의 계급도
지난번 글에서 잠시 언급했던 바와 같이, 천사의 계급을 9단계로 나눈다는 주장은 6세기 초에 실명이 아닌 필명을 ‘디오니시오스’라고 쓴 사람이 책에서 정리한 것에서부터 유래한 것이다. 필명을 사용했기 때문에 이른바 ‘거짓 위(僞)’자를 앞에 붙여 ‘위 디오니시오스’라고 지칭하는 이 작자는, 사도 바오로의 연설을 듣고 그리스도교로 귀의했다는 ‘아레오파고의 재판관 디오니시오스’(사도 17,34)의 이름을 빌린 인물이다. 자기 본명을 숨기고 디오니시오스의 이름으로 글을 썼기 때문에 당시에도 그렇고 정확히 어떤 인물이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이후 천사학과 악마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이 저자를 ‘가짜’란 의미에서 위(僞)를 붙여 ‘위 디오니시우스(Pseudo-Dionysius)’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그것이 100% 허구에 근거한 소설인지, 아니면 그가 실제로 사람이 아닌, 타락천사였기 때문에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상세히 기록으로 인간에게 남길 수 있었다는 이야기 등 여러 소문이 무성하기 때문에 그 내용이 지나치게 상세하다는 이유로 무성한 소문만을 남기고 있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위 디오니시오스가 서술한 천사의 계급체계를 그대로 받아들이면서도 구체적으로 어떻게 서술했는지 근거나 배경에 대해 전혀 모르다 보니, 디테일한 부분으로 세분화되면서부터는, 위 디오니시오스의 이론과 사뭇 달라지는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미카엘 대천사가 고작 8등급인 ‘대천사’이면서 어떻게 천상 군대의 대장 역할을 할 수 있었느냐는 의문 등이 대표적인 모순이 발생하는 의구심 중 하나이다.
위 디오니시오스의 천사 계급도
그런데 위 디오니시오스의 이론에 따르면, 상위계급 천사는 하위계급 천사의 이름과 역할을 겸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즉, 9계급 ‘천사’의 역할과 이름은 모든 천사들이 다 가지고, 1계급 세라핌은 천상계에 있는 모든 천사들의 역할과 이름을 모두 겸한다는 점에서 확정적으로 1대 1 대응을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정확하게 이해를 한다면, 위 모순적이라고 지적했던 의문도 의문이 아니게 된다는 의미이다.
위 디오니시오스가 서술한 천사의 계급은 편의상 3대(隊)의 대대로 나뉘고 그 안에서 다시 3개의 등급으로 나뉘는데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치천사(熾天使)·지천사(智天使)·좌천사(座天使)의 상급 3대(隊)
주천사(主天使)·역천사(力天使)·능천사(能天使)의 중급 3대
권천사(權天使)·대천사(大天使)·천사(天使)의 하급 3대
이들을 합하여 ‘천군9대(天軍九隊)’ 또는 ‘성질(聖秩)’이라고 한다.
앞서 설명했지만, 일단 그들의 이름을 정확하게 어떻게 부르는지에 대한 것과 그 존재가 정말로 어디에서 언급되었는지 해당 천사가 언급되고 있는 성경의 구절에 대해 문헌적인 근거를 검증해볼 필요가 있다. 9계급에 대해 그 사안들을 정리한 것은 아래의 내용과 같다. 이름의 발음은, 가톨릭 전례에서 쓰이는 교회 라틴어와 정교회의 중세 그리스어로 정리했다.
• 제1계급 치품천사 세라핌(Seraphim, Σεραφείμ, 熾品天使)
: 이사야 6장 2절
• 제2계급 지품천사
케루빔/헤루빔(Cherubim, Χερουβείμ, 智品天使)
: 창세기 3장 24절
• 제3계급 좌품천사
오파님/쓰로누스(Ophanim, Θρόνους, 座品天使)
: 골로사이서 1장 16절
• 제4계급 주품 천사
도미니온스/키리오티테스(Dominions, Κυριότητες, 主品天使)
: 골로사이서 1장16절, 에페소서 1장 21절
•제5계급 역품천사
비르투스/디나미스(Virtus, Δυνάμεις, 力品天使)
: 에페소서 1장 21절
•제6계급 능품 천사
포테스타테스/엑수시에스(Potestates, Εξουσίες, 能品天使)
: 골로사이서 1장 16절, 에페소서 1장 21절
•제7계급 권품천사
프린치파투스/아르헤스(Principatus, Αρχές, 權品天使)
: 골로사이서 1장 16절, 에페소서 1장 21절
• 제8계급 대천사
아르크안젤루스/아르항겔루스(Archangelus, Αρχάγγελους, 大天使)
: 데살로니카 1서 4장 16절
• 제9계급 천사
안젤루스/앙겔루스(Angelus, αγγέλους, 天使)
: 창세기 19장 1절, 요한묵시록 5장 2절
가톨릭에서도 미사와 성무일도에서 세라핌부터 주품 천사까지 언급이 나오긴 하나, 이는 정식 교리라서가 아니라 구술 전승 차원에서 집어넣은 것이라는 점이 조금 다르다.
물론, 위(僞) 디오니시오스의 이론이 당시도 그렇고 현재까지 가장 유명한 이론일 뿐 확실하게 유일무이한 표준이나 기준으로 인정받고 있는 것은 아니다. 천사의 위계에 대해 명확한 하나의 기준이 마련될 수 없었던 이유는, 이 개념 자체가 정전에는 본격적으로 기록되지 않은 내용을 학자들이 외경을 기반으로 상상력에 의해 구상되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견해가 많다.
예컨대, 성서에 나오는 치천사는 성직자에 해당하는 듯한 묘사가 되어 있고, 지천사는 친위대 비슷한 묘사가 되어 있을 뿐, 이들 사이에 명확한 조직의 위계가 구분되어 있다는 계급적 정의를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물론, 인간의 기준으로 해당 조직에 위계가 있었다는 것 자체가 인간적인 개념이고 그 기준에 맞춰 위 디오니시오스가 인간적 관점에서 계급을 억지로 짜 맞췄으며, 여기에는 아마도 성직을 가장 성스럽게 여기는 신학적 관점이 개입되어 그렇게 이론이 정립되었을 거라는 의심도 전혀 없었던 것도 아니기 때문에 그러한 의심들 역시 참고할 필요는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머지 계급들도 그냥 성서에서 언급된 순서만 가지고 지위를 끼워 맞춘 것이 아니냐는 비난에 가까운 의심들이 이후 이 분야를 연구하고 정리하려고 시도했던 학자들에 따라서 어떤 천사가 어떤 계급인지 의견이 다르고, 생김새와 같은 세부 설명에서도 차이를 보이기 시작하게 된 것이다.
<성 아우구스티누스>, 산드로 보티첼리
그 유명한 주교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우리는 천사의 계급 등에 대해서는 결코 알 수 없다. 많은 천사들이 있고, 또 서로 다른 역할을 맡는다는 사실만을 성경을 통해 짐작할 뿐이다.”라는 요지의 말을 했다.
바꿔 말하자면, 의견이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그 존재에 대해서는 의심 없이 명확하게 인정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한국에서 가장 많은 숫자를 자랑하고 있는 개신교의 입장은, 천사의 계급 따위를 운운하는 것 자체를 사이비 종교의 현혹 정도로 이단의 이야기로 폄하한다. 그 점을 감안하고 독실한 크리스천은 이 글을 읽으며 고개를 설레설레 젓지 말고 얼른 나가는 것을 권장한다.
자아,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9개 계급들에 대한 분석을 살펴보기로 하자.
제1 계급 세라핌 (SEPRAPHIM, 치천사, 熾天使)
치천사는 일반적으로 신의 사자 가운데 가장 최고위에 있다고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치천사는, 히브리어로 ‘트리스아기온(三聖頌)’('성스러운, 성스러운, 성스러운 예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고, 앞으로도 계실 주이신 전능의 하나님')을 부단히 암창하면서 옥좌의 주위를 돌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 단조롭게 보이는 행동에 대해서는, 치천사들이 실제로는 창조의 노래, 축가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는 설이 있어 참고할만하다. 이는 사랑이 최초로 진동한 것으로, 생명을 창조하고 공진하는 장에 해당한다.
치천사는 신과 직접 교류하는 순수한 빛과 사고의 존재로, 사랑의 불꽃과 함께 공진한다. 그러나 천사의 모습으로 인간의 앞에 나타날 때에는 6개의 날개와 4개의 머리를 가진다. 예언자 이사야는 옥좌의 상측에 서 있는 타오르는 천사를 보고 “6개의 날개가 있는데, 그 2개로 얼굴을 가리고, 또 다른 2개로 다리를 가리고, 나머지 2개로 날고 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치천사는 일반적으로 각성하게 되면 '사자와 같이 울부짖는, 붉은 번개가 치는 하늘을 나는 뱀'으로 알려져 있어, 다른 어떤 천사 계급보다도 뱀이나 드래곤과 깊은 연관관계를 맺고 있다.
‘세라핌’이라는 이름은 히브리어로 '치유하는 자', '의사', 혹은 '외과의'를 의미하는 ‘라파’와 '높은 존재' 혹은 '수호천사'를 의미하는 ‘셀’의 합성어로 보인다. 뱀 혹은 드래곤은 태고적부터 치료술의 상징으로 의학의 신 아스클레피오스와 함께 성스러운 존재로 여겨지고 있다.
2마리의 뱀이 감고 있는 전설의 지팡이 '카두케우스'는 현대에서도 의술의 표상이 되어 있는데, 이는 원래 그리스의 신 헤르메스가 손에 들고 있던 것이다. 그리스의 헤르메스가 이집트의 토트(이집트 신들의 서기. 머리가이비스 또는 비비의 머리라고 여겨졌다. 초기에는 창조신이었으나, 기원전 3000년경의 하반기부터는 법률의 제정, 학문의 발전, 신성 문자의 발명이 토트의 공적으로 여겨졌다), 로마의 메르크리우스, 그리고 치천사이기도 한 대천사 미카엘과 같은 존재라는 점에 대해서는 뒤에서 상술하기로 하겠다.
이집트의 토트
이 천사 계급에서, 뱀이 상징하는 이미지는 불꽃의 피닉스 신화에서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탈피를 통해 눈부시게 젊은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는 능력으로 결국 회춘을 상징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신화학적 입장에서 기본적인 내용에 해당한다. <에녹서>에 의하면 치천사는 4명밖에 없어서 4방향의 바람, 혹은 동서남북 4방에 대응하고 있다고 한다.
이는 4개의 얼굴을 가졌다는 외견에 대한 묘사와도 일치한다. 후세에는 이것을 수정해서 치천사를 지배하는 4명의 대군주가 있다고 해석했다. 대군주의 필두는 메타트론 혹은 사탄으로 다른 3명의 존재는 케무엘, 나타나엘, 가브리엘이라고 되어 있다. 최고위의 천사에 관한 이 간단한 설명에서조차 약간의 애매모호한 혼란이 여러 기록에 혼재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대천사는 치천사보다 6단계 아래로, 신을 둘러싼 외측의 물질적인 원에 나타나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내측 영역을 지배하는 치천사의 군주의 일부가 대천사라고 불리는 경우도 있으니 자세히 볼 필요가 있다. 유력한 후보자는 현직(?) 마왕에 해당하는 사탄임에 틀림없다.
신학상의 혼란과 더불어, 불꽃으로 휩싸인 뱀의 천사들을 통솔하는 자로 일컬어지는 메타트론은 일부 오컬트 결사에서 어둠의 지배자 사탄, 혹은 '오래된 뱀'으로도 알려져 있어 혼란을 가중시키는 존재이기도 하다. 하얀 치천사의 상태인 메타트론은 천사의 계급 중에서 가장 강력한 존재로 인류의 번영과 유지를 담당하고 있다. 6개가 아니라 36개의 날개와 무수한 눈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메타트론의 인장
이러한 개념을, 품계로 나누어 ‘일품 천사’라고 하여, 치천사부터 삼품 천사인 좌천사까지를 묶어 부르는 용어도 존재한다. 가장 계급이 높은 천사들로 실체가 거의 없는 한없이 영적이고 정신적인 존재들을 품계로 나눌 때 가장 높여 부르는 말로, 명확한 역할이 부여된 중품 천사들과 달리 이 세 천사 계급의 역할은 서로 중복되는 경우도 많고 그 모습 또한 여러 가지 존재와 혼재되어 있는 듯한 양상을 보이기 때문에 명확하게 어떤 한 가지로 구분하는 것에 혼란을 느끼는 경우가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주된 임무는 하느님의 가장 가까이에서 하느님을 찬미하는 것. 대부분의 종교가 그러하듯 기독교에서 노래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데, 하느님의 말씀과 신성(神性)이 소리의 진동과 공명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만큼 상품 천사가 행하는 역할은 천사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라고 간주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