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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May 28. 2021

사법 수사관의 지위를 달라던 노동 감독관이...

수사도 안할 거면서 지위는 필요하더냐?

  한국의 게임을 중국어를 하는 동남아에 파는 것으로 돈을 챙기는 사장이 있었다.

  게임을 개발하고 그나마 번역할 돈도 없어, 이미 10년이 넘어 단물이 다 빠진 한국 게임을 온갖 감언이설과 인맥을 동원하여 가로채서는 그 이익으로 자기 배를 챙기려는 이였다.

  자신은 한국에서 신용불량자에 전과자라며 한국에는 공식적인 사장 타이틀을 달 수 없어 후배를 바지사장으로 놓고 타이완에는 그 나라 여자와 결혼하여 그녀의 이름으로 법인을 차렸다고 했다.

  그는 워킹홀리데이라는 이름으로 타이완에 들어온 한국 아이들(30세 이하의 청년들만 가능한 비자이기에 이렇게 불렀다.)을 고용하고 제대로 월급을 주지 않고 갈아치우는 방식으로 현지 사무실을 굴렸다.

  본사라고 불렀던 한국 사무실은 실제로 아무런 수익사업이 없이 한국 게임사와의 계약관계 때문에 세웠던 터라 사람들은 고용했는데 아무런 수익이 없으니 준비한답시고 노동력만 착취하고 월급을 주지 않았다.

  월급을 받지 못한 이들이 노동청에 신고했고, 사장의 누나를 자처하는(실제 누나도 아니었으므로 이렇게 부른다) 껄렁한 여자가 나타나 “어차피 걔네들한테 한 백만 원만 지금 받을래 아니면 그것도 못 받고 실랑이 계속할래,라고 하면 다 해결돼.”라며 무마하다가 결국 검찰에 기소되어 바지사장인 후배만 별을 계속해서 달았다.

  타이완에서 이사로 영입했던 인물에게도 알바생들처럼 똑같이 월급을 주지 않고 내빼려고 시간을 끌었다. 하지만 그는 만만치 않았다. 그간의 증거들을 싹 모아서 노동청 강남지청에 고발했다,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제대로 고용계약서도 갖추지 않던 사장은 이사였던 이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한글로 된 계약서까지 써놓았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다가 노동청의 연락을 받고 당황했다. 주지 않은 월급이 몇백 단위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입에 발린 거짓말로 1년여를 끌었지만 이제 고발까지 들어왔으니 어떤 식으로든 잡아떼고 도망쳐야 했다. 그래서 그는 또 누나라는 사람에게 모든 것을 말하라면서 제삼자 행세를 했다.

  노동청의 노동 감독관은 자신들이 수사관이 없고 무시를 당한다며, 법제적으로 수사관을 가진 사법 수사관의 지위를 얻어낸 이들이었다.

  사장이 의도한 대로 법률적으로, 한국의 본사는 바지사장의 명의였고, 타이완의 회사마저도 그 나라 아내의 명의였기에 서류상으로 그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잡아뗄 수 있다고 의기양양했다.

  무엇보다 한국어로 쓴 고용계약서가 있었기에 여자 노동 감독관(과반수 이상이 여성이 일하는 곳이라 이상하지도 않다. 그들은 절대 그 직업을 포기하지 않는다.)은 조사를 하면서 곤란했다. 가뜩이나 쏟아지는 일감에 치어 죽을 지경인데 이렇게 객관적인 증거들을 쏟아내며 가지고 오면 대강 처리할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진정인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림은 나왔다. 법률상으로 자기 명의는 하나도 걸치지 않은 자가, 제멋대로 고용하고 제멋대로 월급 안 준 뻔뻔한 사건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처리하려면 여간 귀찮고 복잡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가장 편한 것은 사법처리 운운하여 사장이 겁을 먹고 제대로 주지 않은 월급을 진정인에게 주면 되는데, 누나 어쩌고 하는 여자가 와서 서류상에 없는 사람이 왜 사장이냐며 길길이 날뛰는 것을 보건대 돈을 내놓을 생각이 없는 것이 명백했다.

  그래서 이 사안을 적당히 처리할 묘안이 떠올랐다.

  ‘해외에 소재한 법인에서 벌어진 일이니 국내 근로기준법이 적용될 수 없는 사안입니다.’

  어차피 회사의 실제적 주인이 한국사람이고 한국사람끼리 벌어진 일이라고 하더라도 근로기준법만 보면 해외에 있는 법인이라고 해버리면 그만이었다. 정말 신의 한 수라고 생각하며 그녀는 스스로를 칭찬했다.

  그러나 진정인은 만만한 이가 아니었다. 강남지청 근로개선 지도과의 과장을 찾아 사무실에 쳐들어와 과장의 얼굴이 붉어지도록 몰아세운 것이다.

  과장은 전후 사정을 듣고 나서 항변할 말이 제대로 떠오르지 않아, 다른 근로감독관을 지정하여 제대로 재수사를 하겠노라고 약속하고 진정인에게서 벗어났다.

  그렇게 두 번째 여자 근로감독관이 나섰다.

  이번엔 좀 더 면밀하게 따지고 들어가야만 했다. 과장의 지시도 지시였지만, 징징대며 자신들이 지위가 낮다고 가져온 수사권을 제대로 활용도 하지 않은 꼴이 되어버려 문제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두 번째 여자 근로감독관은 진정인의 조사과정에서 정의감도 제법 내보였다. 사장이라는 작자가 너무도 간악했다. 하지만 매일같이 월급을 못 받아 신고하는 진정인들과 그 돈을 주지 않겠다는 뻔뻔한 사장들을 보면서 그녀는 이 사장이라는 놈이 돈을 제대로 주지 않을 것이 뻔하다는 것을 확신했다. 그래서 사안은 분명히 하나의 회사가 분명하다고 확신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번거로운 확인 절차와 수사를 제대로 했다가는 다른 일을 기일 안에 처리하지 못할 것이 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정인은 법률에도 빠삭했고 집요했다. 심지어는 작은 카톡 대화 증거나 불법 송금 과정을 통해 금전의 흐름을 통해 회사가 하나이고 사장이 실질적인 주인이라는 것을 외길 수순으로 증명했다.

  그녀는 자신이 쓸 수 있는 병가까지 써가며 시간을 6개월이나 끌 수 있었다. 하지만 병가가 끝날 즈음에는 다시 고민을 해야만 했다. 그래서 그녀가 생각한 묘안이 ‘검찰에 떠넘기기’였다. 노동청 사건을 담당하는 중앙지검 검사에게 사건을 올려서 도장을 받는 면피 행위였다. 진정인이 법률적인 부분에 전문가이거나 근로감독관이 책임을 직접 지고 싶지 않을 때, 수만 건으로 일에 치여 웬만하면 도장을 찍어주는 나이 어린 검사에게 사건을 보내서 도장을 받아오면 웬만한 진정인들은 어쩔 수 없다고 포기하는 것을 여러 번 봐왔기 때문이었다.

  그러기 위해 최대한 문서를 그럴싸하게 적어야만 했다. 그렇게 적은 내용이 사장이라는 자가 변명했던 ‘한국의 회사와 타이완이 회사는 전혀 별게의 회사이고 아무런 관련이 없는 곳이며 본사와 지사 관계도 아니다.’라는 것을 원용해서 적었다.   

  한국의 회사와 타이완의 회사는 본사와 지사 관계라고 볼 수 있는 근거가 아무것도 없다.  

  그녀는 이렇게 그럴싸한 판단을 넣어 문건을 올렸고, 예상대로 검사실에서는 제대로 지적 하나 없이 자신의 의견에 문제가 없다는 도장을 찍어주었다. 그렇게 그녀는 자신의 원숙한 일처리에 스스로 칭찬해주기로 했다.    

  하지만 진정인은 만만한 자가 결코 아니었다. 그는 그녀의 의견서에 붉은 줄을 그어 반대되는 증거를 들이밀었다. 그녀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사건을 종결한 지 두어 달이 지났을 즈음에 진정인의 반격이 들어온 것이었다.

  그렇게 사안을 덮어줬으면 그냥 넘어갔어야 하는데, 그 바보 같은 사장이란 놈이 사안을 조사할 때 문제가 될까 봐 내렸던 홈페이지를 다시 개비하면서 홈페이지에 타이완의 회사가 지사이고 한국이 본사라고 버젓이 회사 소개를 올린 것이었다.

  게다가 한국에서는 일이 없으니 타이베이의 사무실에서 일할 사람을 구한다고 구인광고까지 버젓이 올린 것이었다. 그 일할 사무실이라는 주소가 진정인이 자신의 명함에 찍혀있다고 명시한 바로 그곳이었다.

  진정인이 그 홈페이지의 글들이 피의자인 사장의 자백에 해당한다며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결론 내린 그녀의 결과 통지서에 붉은 줄까지 그어가며 또다시 진정서를 들고 강남 사무실로 들이닥친 것이다.

  이번엔 한국 1위 로펌의 지원을 받아 그 문제의 사장을 사기 혐의로 고소까지 했다는 소장을 들고 와서 그녀가 사안을 대강 덮어주려 했다면서 직무유기 혐의로 함께 고소했다고 으름장을 놓기까지 해서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직무유기로 입건되어 강철 밥그릇을 놓치기라도 하는 날에는 정말 집밥이나 하는 아줌마로 전락하고 인생이 끝나버릴지도 모른다는 끔찍한 악몽이 스쳐 지나갔다.

  진정인이 서류뭉치를 들고 와서 따질 때까지도 그녀는 그 사람이 누구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그저 일이 많아서 기억하지 못한다고 얼버무리고 말았지만 순간 들었던 공포감은 무시할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때 흑기사가 나타났다.

  팀장이 나서서 그의 진정을 다시 한번 조사하기로 한 것이었다. 원래 국민신문고로 신고했던 진정인의 민원을 국민신문고 담당이 그저 대강 처리하다가 걸려서 혼쭐이 나는 것을 보고 팀장이 나선 것이었다. 과장은 아예 그만두고 나가서 공석인 상태였다.

  팀장은 자신만만하게 자기 밑에 있던 여자들을 자신이 보호해줄 수 있다며 나섰다. 진정인이 서울대 출신의 고학력 스펙의 교수라는 사실을 조서를 검토하고 나서 나름 전략을 세우려고 노력했다. 그의 유일한 연결고리라고는 진정인이 자신과 동갑이라는 것을 알리는 것이었다. 팀장은 특유의 경상도 사투리를 쓰며 진정인에게 우리가 갑짱이라는 이야기를 두 번이나 알렸다. 진정인은 그런 이야기 따위 귀에 담아주지 않았다. 그래서 최대한 친한 척 말했다.

  “결국 본사니 지사니 하는 거 상관없이 이 사장이라는 진정인께서 일하셨으니 일한 것에 대해 돈을 드리는 게 맞는 거잖아요. 그쵸?”

  동의를 얻으려고 핵심을 말하며 그는 적당히 사장이라는 놈에게 자신의 노하우로 얼른 지급하지 않은 월급을 지급하라고 압박을 하면 어떻게든 깔끔하게 일처리가 되겠다 싶었다.

  팀장은 자신이 착각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장이라는 놈은 결코 돈을 내놓을 놈이 아니었다. 사업을 합네 하면서 타이완을 오가면서도, 타이완 여자와 결혼하여 아이까지 낳았다면서도 그놈은 그나마 타이완 비자도 없어 노비자 100일을 넘기지 않으며 한국을 오가는 말 그대로 닳고 닳은 놈이었다.

  그렇다고 바로 이전과 똑같은 결론을 내면 자신의 가오가 심각하게 손상되고 진정인의 성격상 지랄 맞게 불똥이 튈 수도 있다는 걸 경험상 잘 알았다. 그래서 그가 내린 결론은 석 달이 넘는 시간을 끌다가 끌다가 최대한 기억에서 희석되었을 즈음에 결과 통지서를 보내는 것이었다.

  고용계약서도 있고, 금전이 오간 기록도 있고, 두 회사의 실재적인 사장이 그 작자라 하더라도 원론적으로, 그리고 법률적으로 서류상 그 작자의 이름이 걸려있는 곳이 하나도 없으니 그에게 한국 근로기준법으로 죄를 물을 수 없다.

  아니나 다를까 결과 통지서가 도착하자마자 그에게서 불같이 연락이 왔다. 올 거라 생각은 했었지만 딱히 당당히 대들 변명의 여지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질렀다.

  “고소하셨잖아요. 사기는 된다니까! 사기로 처벌받게 하세요. 근로기준법으로는, 우리는 절대 엮어서 처벌하거나 월급을 주라고 할 수가 없어요.”

  20여 년을 노동청에서 일하고, 강남 한복판에서 팀장직을 달고 있다는 그의 입에서 나온 구차한 변명은 실체적인 사장이 그 녀석이라고 하더라도 한국의 근로기준법으로 처벌할 수가 없다는 결론이었다.

  진정인은 팀장과 조사 때문에 만났을 당시, 그가 했던 마지막 말이 떠올랐다.

  “지금 한국 본사라고 하는 이 회사가 말씀하신 것처럼 기존 직원들한테 고발을 당해서 지금 바지사장이라고 하는 사람이 형사처벌을 다 받았어요. 그런데 지금 진정인의 말씀이 맞다고 결론이 나오면, 그 사람 처벌했던 검사는 물론이고 그렇게 처벌을 올렸던 우리가 다 틀렸다는 걸 인정하는 꼴이 돼요. 그게 되겠나?”    

  공무원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금품과 향응을 제공받고 일을 무마하는 일이 있냐고 말이 나오면 그들은 말한다. 지금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그런 일이 있냐고.

  뉴스를 틀면 그들의 말과는 달리 그런 일이 너무도 허다해서 이젠 이상하지도 않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금품과 향응을 제공받지도 않았는데 일이 공정하게 흘러가지 않는 경우를 흔히 보게 된다.

  그 이유를 파고 들어가 보면, 어이가 없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이전에 자신들이 저지른 잘못과 실수를 인정하는 사례를 굳이 만들지 않으려고 기존의 잘못을 덮는 일을 반복한다. 그리고 어쩌다가 그 일이 적발되어 처벌받게 되면 자기만 이런 일을 당해 억울하다고 눈물을 흘린다.

  ‘쓰레기’라는 말은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된다. 물론 좋은 의미로 사용하게 되는 경우는 드물다. 그 말이 사람에게 사용될 때는 더더욱 그렇다. 모욕적일 수 있다. 하지만 너무도 적확한 표현이기에 사용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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