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고소사건이든 피소사건이든 경찰을 압박하지 않아요. 우리가 을이라는 게 명백하잖아요. 차라리 납짝 엎드려서 우리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우리 편을 만들고 사정을 하는 전략을 써요. 그리고 그건 만고불변의 진리라고 생각해요."
잠시 대답을 하지 못하고 20여초의 침묵이 흘렀다.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은 안다, 내가 대화중에 침묵을 보이는 경우가 결코 없다는 것을, 단, 한 경우만 제외하고.
선택의 기로에 서 있을 때이다.
그 선택의 기로는 욕을 바가지로 퍼부을 것인가, 아님 그냥 침묵으로 의사만 전달하고 넘어갈 것인가하는 것이다.
그녀의 말이 전혀 틀린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필드에서 일하는 변호사들은 대개 그렇게 생각하고 의뢰인들에게도 실제로 그렇게 조언한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왜 경찰이 갑이 되었을까?
왜 나이가 한참 어린 검사가 아버지뻘인 피고인들에게 야,자! 하며 언성을 높여도 괜찮다는 분위기가 형성되었을까?
자기 아버지보다 나이가 한참 많은 원고에게 앉아서 조용히 하라고 윽박지르는 판사의 행동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왜일까?
왜 수사 주체라는 것들이 엄한 짓을 하고 거짓말하는 것은 녹취하여 증거를 남기고 그들을 감찰하게 하여 옷을 벗길 수 있는 정당한 행위가,도리어 부메랑으로 작용하여 사건을 망쳐버리는 지름길이라는 말을 현장의 변호사들이 하게 되었을까?
몇해전부터인가 통화와 대화를 녹취하는 것이 일상화되어 버렸다.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겠으나 굳이 주요 요인을 따져보자면,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말을 쉽게 바꾸고, 전혀 그런 말을 하지 않았던 것처럼 행동하기 때문에, 그들을 조질 때, 뭔가 객관적인 증거라고 할 만한 것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하고, 그만큼 현대인의 신체의 일부가 되어버린 핸드폰 문화가 자연스레 일조한 덕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찰이 거짓말을 하고, 사건을 조작하고, 제멋대로 왜곡했다는 정황을 녹취하고 그들을 감찰해야할 부서나 기관에 찌르게 되면, 그 불이익을 고스란히 제보를 한 사람이 감당해야 하기 때문에 절대 그런 액션을 취해서는 안된다고 변호사들이 말한다.
심지어, 경찰에서 수사과정을 이미 넘어갔다고 하더라도 그런 액션을 취하고 수사주체들이 사건을 조작하는 증거를 수집했다는 정황이 담긴 조서가 검찰에 넘어가면 검찰역시 선입견을 가지고 안좋은 판단을 한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