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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Nov 29. 2021

악마는 왜 여러 개의 이름으로 불리는가?

7대 악마의 숨겨진 비하인드 스토리 3

지난 이야기.

https://brunch.co.kr/@ahura/515


➅ 질투(Envy)의 레비아탄(Leviathan)과 베헤모스

'레비아탄' 또는 '리바이어던'은 바다에 사는 거대한 짐승을 가리키며, 그 어원은 정확하지 않지만 '찢다', '구부리다'라는 뜻이 있다고 한다. 또한 '똬리를 튼 뱀(crooked serpent)', '꿰찌르는 뱀(piercing serpent)'으로 불리는 경우도 있다. 페니키아 신화에도 등장하는 사나운 바다 괴물인 ‘리탄’ 또는 ‘샤리트’라고도 불린다.


일반적으로 하느님이 종속시킨 혼돈의 힘 또는 거대 괴수나 생물을 의미하기도 한다. 또 바다 그 자체를 의미하기도 한다. 똑같이 베헤모스는 대지를, 지즈는 하늘을 의미하기도 한다. 레비아탄은 히브리어로 ‘돌돌 감긴’을 의미하며, 그 기원은 악어나 고래로 추정된다. 기독교에서는 칠죄종 가운데 하나인 질투에 속하는 악마로 보고 있다.


구약성서에서의 레비아탄은 사탄과 같은 악마, 또는 이사야서에 등장하는 괴물 라합과 같은 종류로 취급되고 있으며, 종반에 가서는 하느님에 의해 퇴치당한다고 나온다. 레비아탄의 형상은 가나안 신화에서 바알의 손에 의해 쓰러지는 일곱 개의 머리를 가진 바다 괴물 로탄과 메소포타미아 신화에 나오는 폭풍우의 신 마르두크에 의해 퇴치당하는 혼돈의 괴물 티아마트에 기원을 두고 있다. 이들은 모두 신 또는 영웅에 의해 퇴치당하여 그 시체로부터 하늘과 땅을 창조했다는 유사성이 있다.


레비아탄은 구약성서 중 <욥기>, <시편>, <이사야서>, <요나서> 등 곳곳에 등장하는 거대한 괴물의 이름이다. 일반적으로 거대한 바다뱀의 형상을 하고 있으며, 성경 곳곳에 등장하는 레비아탄의 모습은 다음과 같다.

그날에 여호와께서 그의 견고하고 크고 강한 칼로 날랜 뱀 레비아탄 곧 꼬불꼬불한 뱀 레비아탄을 벌하시며 바다에 있는 용을 죽이시리라.
                            (이사야 27:1, 개역개정판)
레비아탄의 머리를 부수고, 그것을 사막의 짐승들에게 먹이로 주신 분이 주님이셨습니다.
                                            (시편 74편 14절)


네가 낚시로 레비아탄을 끌어낼 수 있겠느냐 노끈으로 그 혀를 맬 수 있겠느냐? 너는 밧줄로 그 코를 꿸 수 있겠느냐 갈고리로 그 아가미를 꿸 수 있겠느냐? [....] 그의 즐비한 비늘은 그의 자랑이로다. 튼튼하게 봉인하듯이 닫혀 있구나. 그것들이 서로 달라붙어 있어 바람이 그 사이로 지나가지 못하는구나. 서로 이어져 붙었으니 능히 나눌 수도 없구나. 그것이 재채기를 한즉 빛을 발하고 그것의 눈은 새벽의 눈꺼풀 빛 같으며, 그것의 입에서는 횃불이 나오고 불꽃이 튀어나오며, 그것의 콧구멍에서는 연기가 나오니 마치 갈대를 태울 때에 솥이 끓는 것과 같구나. 그의 입김은 숯불을 지피며 그의 입은 불길을 뿜는구나. 그것의 힘은 그의 목덜미에 있으니 그 앞에서는 절망만 감돌 뿐이구나. 그것의 살 껍질은 서로 밀착되어 탄탄하며 움직이지 않는구나. 그것의 가슴은 돌처럼 튼튼하며 맷돌 아래짝 같이 튼튼하구나. 그것이 일어나면 용사라도 두려워하며 달아나리라. 칼이 그에게 꽂혀도 소용이 없고 창이나 투창이나 화살촉도 꽂히지 못하는구나. 그것이 쇠를 지푸라기 같이, 놋을 썩은 나무 같이 여기니, 화살이라도 그것을 물리치지 못하겠고 물맷돌도 그것에게는 겨 같이 되는구나. 그것은 몽둥이도 지푸라기 같이 여기고 창이 날아오는 소리를 우습게 여기며, 그것의 아래쪽에는 날카로운 토기 조각 같은 것이 달려 있고 그것이 지나갈 때는 진흙 바닥에 도리깨로 친 자국을 남기는구나. 깊은 물을 솥의 물이 끓음 같게 하며 바다를 기름병 같이 다루는 도다. 그것의 뒤에서 빛나는 물줄기가 나오니 그는 깊은 바다를 백발로 만드는구나. 세상에는 그것과 비할 것이 없으니 그것은 두려움이 없는 것으로 지음 받았구나. 그것은 모든 높은 자를 내려다보며 모든 교만한 자들에게 군림하는 왕이니라.(욥기 41:1~34, 개역개정판)

여기 묘사된 레비아탄의 모습을 종합해보면, 딱딱한 비늘에 덮인 거대한 뱀 또는 악어와 비슷한 모습으로 등에는 방패와 같은 돌기가 일렬로 늘어서 있으며 코에서는 연기, 입에서는 불을 내뿜는다.


또한 너무나 거대하기 때문에 눈앞을 통과하는 데 사흘이 걸린다는 이야기도 있다. 종말을 논하는 한 문서에서는 악마가 뱀인 레비아탄의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기록되어 있다.


<에녹서>에서 레비아탄은 거대하고 무시무시한 바다 괴물로 등장하며 바닷물 수원 위의 심연에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레비아탄의 턱은 때때로 지옥의 문 그 자체로 간주되기도 한다.


이러한 기록만으로 본다면 레비아탄이 악마군단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가히 루시퍼를 능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레비아탄은 루시퍼에 의해 창조되었으며, 원래는 인간의 모습을 한 바다의 군주였다. 그런데 레비아탄은 루시퍼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루시퍼 주변의 인물들을 질투하고 만다.


그 후 레비아탄은 루시퍼에게 저주를 받아 괴물의 모습으로 변하고 만다. 이러한 레비아탄은 성서에서 악어, 바다뱀, 용, 고래 등으로 그려진다.


유명한 <요나서>에 등장하는 요나를 삼킨 고래가 바로 레비아탄이다. 그러나 레비아탄이 구체적으로 인간에게 어떤 악을 가져다주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져 있는 것이 별로 없다. 사실 성서에서조차 그는 ‘악마’보다는 ‘괴물’의 이미지로 더 많이 그려져 있기도 하다.

그런데 레비아탄은 암컷일까, 수컷일까? 전해오는 전설에 의하면 레비아탄은 암컷이라고 한다. 즉, 하나님이 이 생물을 만들 때 암컷과 수컷 두 마리를 만들었는데, 그 암컷이 바로 레비아탄이란 이야기다. 그러면 이때 만들어진 수컷은 어찌 되었을까? 놀랍게도 그 수컷의 이름은 ‘베헤모스’라고 하며 이 역시 성서에 등장한다. 그것은 바로 레비아탄이 등장했던 <욥기> 41장 바로 전 장인 40장에서이다.


저 베헤모스를 한번 살펴보아라. 내가 너를 만들 때 함께 만든 것이다. 그것은 황소처럼 풀을 먹는다. 그의 허리 힘이 얼마나 센지 보아라. 그 뱃가죽에 뻗치는 힘살을 주목해 보아라. 백향목처럼 꼬리를 치는 저 모습과 힘줄이 얽힌 저 허벅지 근육을 보아라. 그 뼈들은 청동관같이 단단하고, 갈비뼈는 무쇠 막대기 같구나. 그것은 내가 창조한 작품 중 가장 위험한 것이다. (욥기 40장 중에서)

이처럼 베헤모스는 동관 같은 뼈대, 무쇠 빗장 같은 갈비뼈를 가지고 있어서 아무리 거센 물살에도 전혀 동요하지 않으며 잡거나 쓰러뜨릴 수 없는 무적의 짐승이라고 한다. 유대의 여러 전설에 의하면 본래 레비아탄과 함께 바다에 살도록 창조되었지만 둘 다 바다에 살면 바닷물이 넘쳐나기 때문에 레비아탄은 바다에, 베헤모스는 육지에서 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의인들은 메시아 시대에 베헤모스와 레비아탄이 벌이는 장대한 싸움을 보게 될 것이고 최후의 심판 날에 그 짐승들을 잡아 하나님으로부터 죄를 용서받은 사람들의 식탁에 올려 잔치를 벌일 것이라고 한다.

후세의 연구자들에 의하면, 이 베헤모스는 코끼리 또는 하마의 모습을 빌린 괴수로 보인다. 원래는 풍작의 상징으로 신격화되었던 짐승이라고 한다.


또 이슬람 전승에 등장하는 바하무트(Bahamut)에서 유래되었다는 설도 있다. 바하무트는 크고 강한 소[牛] 쿠자타가 타고 다니는 커다란 물고기의 이름이다. 쿠자타의 등에는 큰 루비가 있으며 더욱이 그 위에 천사가 서서 대지를 지탱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전설에 의하면, 바하무트는 바다 생물이므로 육지의 짐승인 베헤모스와는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 아마도 거대하다는 이미지와 함께 이름에서 느껴지는 공포감을 성서의 작자가 채택해 쓴 것이리라.


코끼리와 비슷한 베헤모스가 그려진 모습을 보면 또 다른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것은 힌두교 신화에 등장하는 시바 신의 아들 가네샤(Ganesha)다. 그는 현대 인도에서도 숭배되고 있는 신 가운데 하나로, 재산의 신이며 모든 장애를 없애는 신으로 되어 있다. 베헤모스=가네샤 설을 채용했는지 어떤지는 확실치 않지만, 기독교도의 입장에서는 짐승의 모습을 한 이교도의 신은 유독 꺼리게 되는 존재일 수밖에 없다. 때문에 '악마'의 일원으로 사탄의 계열에 이름을 실은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런데 베헤모스는 왜 악마의 그룹에 속하게 된 것일까? 문제는 식성에 있다. 그는 폭식의 악마로 알려져 있다. 즉, 그는 매일 수백수천 개의 산을 돌아다니며 산에 나 있는 풀을 모조리 뜯어먹기로 유명했다고 한다.

 

⑦ 분노(Wrath)의 사탄(Satan)

히브리어: שָׂטָן

라틴어: Satanas

프랑스어, 영어: Satan

아랍어: شيطان‎ (샤이타안)

 

히브리어로 ‘적대자’라는 일반 명사이다. 본래는 원수(enemy), 음해자(accuser), 적대자(adversary)의 뜻을 가진 보통명사였다. 모습이나 특징은 명확하지 않으나, 보통은 위 사진들처럼 다크하고 무섭게 표현되는 경우가 많다. 창세기에서 하와를 꼬드긴 뱀과 <요한계시록>에서 미카엘과 싸우던 붉은 용이 사탄이라고 한다.

 

중세시대에 묘사된 사탄은 염소나 산양의 머리를 가진 사람으로 묘사되는데 이는 <요한계시록>에서 예수를 따라 구원받을 이들은 예수의 오른편에 선 양 떼, 구원받지 못할 사람을 왼편에 선 염소 떼로 묘사한 데에서 유래하여 염소에 불길한 상징성이 부여됨에 따라 생긴 이미지이다. 한편으로 이러한 형태의 모습을 ‘바포메트’라 부르기도 한다.

 

사탄이 고유명사로 등장하는 것은 욥기에 처음 나온다. 욥기에서는 열심히 살고 있는 욥에게 각종 시련을 내리도록 하느님 앞에서 직접 간언한다. 재밌는 건 옆에는 다른 천사들도 있었다는 것이다. 사탄은 욥에게 저주를 내린 뒤로는 다시 등장하지 않는다. 결말 부분에서 하느님이 뒤처리를 할 때에도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

옛 개신교 성경에서는 음차로 ‘사단’이라고 표기했었다.

 

그러자 그분이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사탄이 하늘에서 번개 같이 떨어진 것을 보았다."― 루카 복음서 10:18

 

16세기 악마학자 페터 빈스벨트는 7대 죄악에서 분노를 관장하는 악마로 정의했다. 이 설정은 여러 판타지물에서도 써먹는다. 이사야서와 루카 복음서의 유사성 때문에 루시퍼와 동일시되기도 한다. 루시퍼도 하늘에서 떨어지고 사탄도 하늘에서 떨어지는 장면이 있기 때문이다.

이슬람에서는 ‘샤이탄’이라고 부르나 그쪽에선 좀 더 뒤에 정립되었기 때문에 이블리스를 설정하면서 이 문제를 보다 깔끔하게 해결했다.

성경에서 사탄은 인격화된 이 세상의 모든 악, 즉 만악의 근원과 같은 개념으로 쓰이게 된다.

신약성경에서는 ‘사탄’이라 직접적으로 표현되지 않고 여러 가지 별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악마부터 시작해서 마귀, 베엘제불, 벨리아르, 뱀, 붉은 용, 용, 옛날의 뱀, 속이던 그자, 원수들, 악한 자, 이 세상의 우두머리, 이 세상의 신, 고발하던 자, 유혹자, 살인자, 거짓말쟁이, 적대자, 밀턴의 실낙원에선 루시퍼에다가, 마스테마, 바포메트 까지. 사탄이 이렇게 많은 이름을 가지게 된 이유는 유대교, 그리스도교 신비주의가 발달하면서 일어난 문학적 창작에서 나온 것이라고 추정된다.

 

대중은 물론이고 일부 그리스도교 신자들마저 그리스도교의 세계관을 명확한 선악 대립구도에 기반한 이원론으로 오해하면서, 사탄(혹은 루시퍼)을 선신 야훼와 동등하거나 이에 준하는 반대 위치의 악신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다.

이렇게 기독교가 이원론적 종교에서 출발했다는 주장은 후기 유대교가 페르시아 지배 당시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을 받았다는 주장과 연관되어있는데, 후기 유대교에 해당하는 제2성전기 유대교는 분명히 회당에서 암송하는 ‘쉐마’라는 기도문에 따르면 유대교 신앙은 명백히 다신론을 비판하며 유일신 사상을 고백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유일신 사상이란 진정한 신이 야훼 한 분 뿐이며 그와 동등하거나 그에 준하는 신적 존재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고백이다.


특히, 창세기는 세상의 기원이 야훼 한 분에게서 시작되었다고 주장한다. 유대인들에게 유일신 신앙은 상당히 중요한 개념이었다. 그래서 성경에서 그토록 많은 부분을 할애해서 우상숭배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다.

 

반면 페르시아의 종교였던 조로아스터교는 이원론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유대교가 이원론적인 기원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면, 조로아스터교의 영향 이후에도 여전히(혹은 이전과는 약간 다른) 이원론적 세계관을 가지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원래 이원론적이었던 유대교가 조로아스터교를 만나서 일원론적인 종교가 된다는 것은 상당히 이상하다. 이원론적인 이방종교에 대한 반감 때문에 그렇게 되었을까? 하지만 이를 입증할 자료는 아직까지 밝혀진 바 없다.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을 받은 후에도 유대교가 유일신론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겼다는 것은, 유일신론이 이전부터 유대교 신앙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오히려 이런 점 때문에 초기 기독교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하느님과 동등한 존재로 고백했다는 사실이 놀라운 것이다. 초기 기독교인들 중 핵심 멤버는 원래 유대교도들이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바울을 비롯한 초기 기독교인들은 자연스럽게 유일신론 안에서 삼위일체를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삼위일체를 주장하는 초기 기독교 역시 여전히 유일신론에 대한 강조를 놓치지 않는다. 이는 초기 기독교 또한 일원론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런 점에서 후기 유대교와 기독교는 일원론적인 유일신 사상을 중심으로 하지만, 거기에 악한 영적인 존재도 언급한다고 이야기하는 게 더 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 사탄은 이원론의 한 축을 차지할 만큼 비중이 있는 존재가 아니다.


구약 성경은 사탄을 비롯한 악한 영적 세력에 대해서 몇 번 언급하는 게 전부이다.(역대기 상 21:1; 즈가리야서 3:1-2) 사탄은 하느님과 동등하지도 않고, 오히려 하느님의 뜻에 따라 행동이 제한되며(욥기 1:12), 쉽게 패배를 당하는 세력이다(루가 10:18).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원래 일원론은 유지했는데, 약간의 변화나 발전이 있었다고 설명하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물론 '일원적 이원론관에 지배한 이원론적 세계관'이라는 표현은 충분히 가능한 표현이다. 이마저도 아우구스티노가 주장했던 ‘선의 결핍’이라는 개념으로 이원론의 한 축을 담당하는 악의 문제를 신학적으로 대답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


다음 편은 여기에...

https://brunch.co.kr/@ahura/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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