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가없는 어려운 일을 하는 것이 어째서 仁이 되는가?

이득도 안되는 일을 누가 하냐며 비아냥거리는 바보들에게 고함.

by 발검무적
樊遲問知, 子曰: “務民之義, 敬鬼神而遠之, 可謂知矣.” 問仁, 曰: “仁者先難而後獲, 可謂仁矣.”
樊遲가 智를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를 힘쓰고, 귀신을 공경하되 멀리한다면 智라 말할 수 있다.” 다시 仁에 대하여 묻자, 또 말씀하셨다. “仁者는 어려운 일을 먼저 하고 얻는 것을 뒤에 하니, 이렇게 한다면 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장에서는 번지(樊遲)라는 인물이 ‘다시’ 등장한다. 그의 이름은 번수(樊須)이며, 자(字)가 子遲(자지)여서 ‘번지(樊遲)’라고 부른 것이다. 공자보다 36세가 어렸는데, 국적에 대해서는 약간 기록이 다른데, 정현(鄭玄)은 제(齊) 나라 사람이라 했고, <가어(家語)>에는 노(魯) 나라 사람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설마 처음 보는 인물이라며 생경해하지 않으리라 생각하고 간략히 소개했지만, 이미 앞에서 배운 인물이다.


앞서 배운 ‘위정(爲政) 편’ 6장에서, 공자께서 맹씨가에 들러 맹의자(孟懿子)가 효(孝)에 대해 묻자, 공자께서 ‘無違(무위)’라고 대답하는데, 돌아오면서 ‘맹의자가 효를 묻길래 무위라고 해 주었다.’고 수레를 모는 번지(樊遲)에게 이야기해주자, 번지가 무슨 말인지 몰라 다시 묻자, 공자께서 번지에게 ‘生, 事之以禮. 死, 葬之以禮, 祭之以禮’라고 말해주는 바로 그 내용이다.

맹희자가 죽으면서 맹의자와 남궁경숙에게 공자를 스승으로 모시라고 유언을 남겼던 것이 공자의 나이가 17세 무렵이었으니, 맹의자가 효를 물은 시기를 유추해 짐작해 보면, 공자와의 연령차이에 비추어 합리적인 추정이 어렵긴 하지만, 번지(樊遲)는 꽤 어릴 적부터 공자를 수행했다는 사실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논어>에서 번지(樊遲)는 주로 공자의 수레를 모는 어(御)로 등장하며, <춘추좌전>에서는 노애공(魯哀公) 11년에, 제(齊)나라가 노(魯)나라를 침공했을 때, 번지(樊遲)가 노나라 군(軍)의 좌사(左師)를 맡은 염구(冉求)의 병거(兵車)를 맡아서 전투에 참가하여 활약하는 내용을 볼 수 있다.

번지(樊遲)의 초상

어제 배운 내용처럼, 공자는 자신의 마차를 모는 일을 하던 번지의 지와 인에 대한 질문에 대해 그의 눈높이와 그의 평소 습관과 생각에 맞춰 대답을 해준다. 물론 그의 특성에 맞췄다고 해서 그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일반론적인 내용에도 당연히 부합하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본문에는 ‘知’라고 쓰여 있는데, 내가 해석을 하면서 ‘智’라고 쓴 것의 구분을 지금 이 글을 읽지 않고서 위에서 읽어냈다면 평소에 공부를 열심히 한 사람이라고 칭찬받을 만하다. 그렇지 않고 타성에 젖어 그저 한글로 된 부분만 읽었다면, 조금은 반성하고 잘 모르더라도 이 기회에 해석과 원문을 함께 보는 연습을 눈에 익혀 쓸데없는 일본어나 중국어 공부하기보다 동양고전을 원문으로 볼 수 있는 고문을 먼저 익힐 것을 권장한다.


고문에서 ‘知’는 ‘智’를 포함하는 광범위한 개념이다. 그래서 번지가 알고 싶어 했던 것은 그 광범위한 개념이 아닌 ‘智’였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해석에서는 ‘智’라고 써서 구분한 것이다. 흔히 초심자들에게 고문을 지도할 때 ‘智’는 지혜로운 것으로 번역하는데, 단순한 앎을 넘어선 현명한 것에 해당하는 개념이라고 여기면 큰 실수는 없을 듯하다.

그런데 대답이 묘하다.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를 힘쓰는 것까지는 일반적인데, 왜 갑자기 귀신을 공경하되 멀리해야 한다고 한 것일까? 다시 仁에 대해 ‘어려운 일을 먼저 하고 얻는 것을 뒤에 하는 것’이라 설명한 것도 약간 생뚱맞게 들린다.

주자가 이 부분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지 먼저 살펴보자.

“人道의 마땅히 해야 할 바에 오로지 힘을 쓰고, 귀신의 알 수 없는 것에 미혹되지 않는 것은 智者의 일이다. 일의 어려운 바를 먼저 하고 그 효과의 얻음을 뒤에 함은, 仁者의 마음이다. 이것은 반드시 번지의 결함에 따라 말해 주신 것일 것이다.”

번지(樊遲)의 ‘결함’이라고 해석한 부분은, 주석의 원문에는 ‘失’로 새겨져 있는데, 어설프게 공부한 자들이 번지(樊遲)의 ‘잘못’이라고 해석하는 경우가 있는데, 공자의 가르침은 잘못에 대해 지적하는 방식이 아니라 일깨워주는 방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잘못이라고 해석하면 안 되기 때문에, ‘결함’이라고 뜻을 새겼다. 즉, 그의 평소 부족했던 부분에 대해서 염두에 두고 있다가 바로 그 부분을 보완할 수 있도록 일깨워주셨다는 의미이다.


미루어 짐작할 수밖에는 없지만, 아마도 번지(樊遲)가 부족했던 부분이 미신에 현혹되는 부분이 있었던 것이기 때문에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도리를 힘쓸 뿐이지 조상신 외의 이상한 귀신에 대해 미혹되지 말라는 권고로 지혜로움을 설명하였고, 일에서 어려운 바를 먼저 하고 그 대가로 무언가를 얻는 것에 대해 기대하지 말라는 의미로 仁이라는 것을 설명하였다.

정자(伊川)가 배우는 자들을 위해 이제 일반론으로 그것을 풀어 다음과 같이 설명해준다.


“사람들은 귀신을 많이 믿고 있는데, 이는 미혹된 것이며, 믿지 않는 자는 또 공경하지 않으니, 능히 공경하되 멀리할 수 있다면 智라고 말할 수 있다.”


또 말씀하셨다. “어려운 일을 먼저함은 극기(克己)의 일이니, 어려운 일을 먼저 하고 얻음을 헤아리지 않음이 仁이다.”

그래서 여씨(呂大臨)는 이 장에서 가르쳐주는 실천 항목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급하게 여기고, 알기 어려운 것(귀신)을 구하지 않으며, 하기 어려운 바를 꺼리지 말아야 한다.”

사실 뒤에 배울 안연편의 22장에, 번지(樊遲)가 다시 한번 공자에게 인과 지에 대해서 묻고 공자가 답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당연히 그때는 또 다른 답변으로 공자는 번지에게 일깨움을 주고자 한다.


하지만 번지(樊遲)는 그 가르침의 의미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해 자하(子夏)에게 가서 다시 묻는다. 그 부분은 다시 뒤에 공부할 때 자세히 설명하기로 한다. 동일한 비유는 아니지만, 엄밀히 말해, 번지(樊遲)는 공자의 전용차 운전기사인 셈이었다. 때문에 공자를 지근거리에서 모셨기 때문에 제자들이나 위정자들과의 대화를 얻어들을 기회가 많았다.

하지만, 학업을 주로 삼은 제자들과는 조금 처지가 다른 입장이었기 때문에, 자신이 모르는 것을 용기 있게 다시 묻는 모습을 보인다. 공자는 그때마다 마다하지 않고 번지(樊遲)에게 그가 잘 알아들을 수 있게 설명해준다.

그런데 번지(樊遲)의 눈높이에 맞췄다고는 하지만, 두 번이나 번지(樊遲)가 등장하고 그 대화와 설명이 <논어>에 실린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묻는 이가 배우는 제자가 아니어도 당시 일반적인 사람들이 어떤 부분들이 부족하고 어떤 문제점이 있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표자로 번지(樊遲)가 역할을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제자들과는 또 다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지(智)에 대해서는 마땅히 번지(樊遲)의 지혜로움이 발휘되어야 할 바의 방향을 제시하였고, 인(仁)에 대해서는 무언가를 얻을 수 있는 것에 대해서만 움직이는 것은 결코 ‘인자(仁者)’가 할 바가 아니라고 권계하고 있다.


수천 년 전 공자의 마차를 끌었던 이가 들었던 충고가 지금의 당신에게는 적용되지 않는가?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고 점집을 찾아가고, 인터넷을 뒤져 얼마 안 된다면서 사주를 보고, 유료 전화를 걸어 무당과 통화하지 않는가?

그렇지 않다면 그 수많은 진한 화장을 한 무당들의 광고들은 왜 그리 온천지에 도배가 되어 있단 말인가? 당신이 할 수 있는 바의 노력을 다 하고서는 하늘의 뜻에 맡기면 될 것을, 점집에 언니와 손잡고 가서 쓸데없는 무서운 눈빛을 마주할 시간에 책을 잃어 그 빈 머릿속의 우동 사리를 지식으로 바꾸어 채우는 것이 훨씬 더 현명한 행동이 아닐까?


매일 밤, 연재하는 실화소설의 사건을 마무리 짓기 위해 타이완에 갔더랬다. 타이완은 아직도 귀신씨나락까먹는 향냄새가 도심 한복판에 온통 진동을 하고, 귀신이 움직인다는 시간과 날짜에 맞춰 할 것 안 할 것 다 한다. 그래서 그 나라가 나라가 아니고 그 모양 그 꼴로 국민들을 개돼지로 아는 '타이완 박근혜'라는 차이잉원같은 사악한 여자한테 휘둘리는 거지, 라는 생각을 들었었다.

더 큰 문제는 언제나 ‘인(仁)’이다.

무언가 얻는 것이 있는 일이라면 사람들을 모두 달려든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일이라면 어려운 일이라면, 어떠한가?


매번 법비들 이야기만 하다가 그 언저리에 있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해보자. 로스쿨이 대량 양산시스템을 대변하듯 변호사들이 어마어마 늘어났다. 여기서 어마어마는 사법고시와 2년간의 사법연수원 시스템으로 양산하던 1년에 천명이 되지 않던 시절에 비해 어마어마 많아졌다는 것이다. 대학마다 장사가 된다고 서로 부합하며 로스쿨을 설립했는데, 지방의 로스쿨은 변호사 시험 합격률이 50%를 밑도는 곳까지 나오기 시작했다.


자아, 그렇게 해서 변호사가 된 이들이 그리 많아졌다. 그들도 먹고살아야 한다. 그런데 기존 기득권을 가진 이들은 같은 변호사를 공격해서 먹고사는 샤크 변호사가 나오는 것도 달갑지 않고, 행여라도 그 밑에 해당하는 이들이 싸구려 시장으로 물을 흐릴까 싶어 날이 서 있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그런데, 미국에서 온 ‘프로 보노’라는 개념이 있다. 간략히 말하자면 변호사가 사회적으로 의의를 갖는 사건이나 취약계층을 위해 무료 변론을 하는 것을 말한다. 현재 변협에서 운영을 한답시고 지원 변호사를 받고 공식적으로 연계해주는 일을 한다고 하는데, 그것이 참 꼴이 우습다. 서울변협에서 그것을 중계한다는 사무실에 직접 방문하여 그 실무진을 만난 적이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들은 프로보노가 무슨 의미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그저 어깨에 뽕이 잔뜩 들어간 월급쟁이에 불과했다. 본래 프로보노는 정말로 필요한 이들과 열린 플랫폼을 통해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져야 하는데도 그렇지 못했다. 대형 로펌에서는 마치 사회적 기부를 하는 것인 양 적당한 티가 나는 프로보노 건을 골라서 변협에서 인정해주는 점수를 받는 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심지어 그 사무실의 여직원은 주변에서 보고 배운 것이 그만한 것이었는지 전화 문의나 찾아오는 이들에게 같잖은 고압적인 자세를 유지했다.

로펌에 가면 변호사들에 받은 보너스로 장식한 비싼 장신구만 달고 다니는 여비서들이 고객들의 외모나 장신구를 보고 허리의 각도를 정하는 방식과 그 여직원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회단체랍시고 가장 유명한 곳들을 방문했을 때도 그 행태는 다르지 않았다. 참여연대에 문제가 되는 사건을 상의하기 위해 회의를 갖자고 했을 때 가장 사무실에서 말단 여직원이 했던 이야기가 아직도 어이가 없다.


“저희가 1년간 제기한 사안에 대해서는 이미 계획이 다 잡혀 있어요. 이렇게 중간에 어떤 사안이 생겼다고 해서 그걸 들여다볼 시간도 여유도 없단 말입니다.”


그 여직원의 개인적인 일탈일 수도 있지 않냐구? 당신이 그런 의문을 가질까 봐 눈총을 받아가며 책임을 지고 있다는 그 윗사람에게 다시 물었으나 똑같은 대답을 들었다.


“저희는 저희가 준비한 사안만 하지, 이렇게 제보가 들어오거나 문제가 된다고 해서 중간에 다른 건을 다루지 않습니다.”


그녀의 말은 사실과 달랐다. 언제든 정치권이나 그들과 연계가 되어 있는 사안이 갑자기 터졌을 때 그들은 버젓이 정의의 사도인 양 방송사 카메라 앞에 나타나 그 사안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고 나섰다.

현재 한국에서 민사소송 중에서 소송가액이 3천만 원 이하일 경우 소액재판으로 분류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서민들이 당하는 일들은 3천만 원 이하의 건이 많다. 그러면 변호사는 당당히 말한다.


“억울해서 재판을 하고 싶어도 수임료를 내시면 되고, 그 돈을 받고 싶어도 수임료를 내시면 변호는 해드립니다.”


받고 싶은 돈이 100만 원이고 200만 원인 사람들은 소송을 하지 말라는 말이다. 수임료가 받아야 할 돈보다 더 커지니까. 그래서 그들은 다시 생각해주는 척 말한다.


“저기 법무사한테 소장이나 써달라고 해서 나 홀로 소송을 해보세요. 아니면 속 편하게 잊으세요.”


물론 되나 가나 무료로 소송을 해달라고 변호사 사무실을 찾는 진상들도 많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송가액과 상관없이 의미 있는 소송들은 충분히 있다. 그들의 말처럼 이를테면 소장만 제대로 써도 상대의 잘못을 혼쭐 내줄 수 있는 의미 있는 소송들이 있단 말이다.


내 브런치의 매거진 ‘누가 우리 사회를 좀 먹고 있는가’에도 제법 제시되어 있다. 그런데도 그들은 당장 수임료가 되지 않는 소송이나 고객에게는 관심이 없다.


이 장에서 공자가 지적하는 수천 년 전의 중국에 살던 사람들이 타임머신을 타고 대한민국에 모두 이식된 것인가? 어찌 그리 똑같단 말인가?


그래서 仁者는 가장 어려운 일을 먼저 하고, 그 얻는 바를 나중에 구한다고 한 것이다. 얻는 바를 나중에 구한다는 것은 후불로 수임료를 받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것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당신을 비롯한 상당히 많은 이들이 仁이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하는 것은 실제로 모르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행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도 그것을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이 장에서 알려주고 있는 것처럼 仁에는 무언가 대가가 달려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문장의 뒤에는 눈에 보이는 대가가 아닌 흔히 말하는 선한 영향력과 사회적 파급력이 있다. 그러한 것들은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더 큰 부와 명예를 부수적으로 가져다준다. 그것을 의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다.


당장 눈에 보이는 이익이 없으면 그것을 하지 않겠다는 이들은 더 큰 이익이 되는 것만 보면 그것에 미혹되기 마련이다.


그것은 귀신에 미혹되는 것보다 더 심각한 비극적인 결말을 낳는다.


사람들이 하기 싫어하고 어려운 일이지만 의미 있는 일들이 있다. 아주 사소한 것부터 전문가만이 할 수 있는 일에 이르기까지 그런 일들은 다양하다.


당신이 仁을 이루는 방식이 당신의 도처에 깔려 있다는 말이다. 이래도 仁이 어렵다고만 할 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