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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Dec 17. 2021

만화 수준이 안된다고 1년에 500매를 폐기당하고도

끊임없는 노력으로 전 세계인들이 열광하는 작품의 작가로 우뚝 서다.

1955년, 일본의 아이치현 나고야시에서 태어났다. 집안 경제사정이 굉장히 안 좋은 상황이었지만, 부모 모두 느긋한 성격을 가지고 있어, 먹을 것을 살 돈이 없는 상황에서도 둘이서 왈츠를 추는 사람들이었다.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던 그는, 제대로 끼니를 먹을 수 없었던 상황에서도 배를 곯아가면서 만화 그리는 것을 유일한 낙으로 삼으며 지냈다고 한다. 


갖고 싶은 물건이 생기면 손에 넣을 때까지, 혹은 흥미가 없어질 때까지 그림을 계속 그리는 버릇이 있으며, 그 버릇은 만화가가 된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다고 회상한다. 존경하는 만화가는 데즈카 오사무와 월트 디즈니로, <철완 아톰>에 등장하는 로봇을 매일 장난스럽게 그리고 있었다. 가장 영향을 많이 받았던 작품은 모두 디즈니 애니메이션이었는데, 그중에서도 <101 마리 달마티안>을 매일같이 모사하며 지냈다고 한다. 당시 다니던 회화교실에서 그린 ‘101마리 달마티안’으로 상을 받고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한다.

 

어릴 때는 만화나 애니메이션에 열중했지만, 초등학교 고학년 이후에는 영화나 텔레비전 드라마로 흥미의 대상이 옮겨, 만화를 거의 접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 그리기는 여전히 좋아하고 자신감도 있었기 때문에 아이치 현립 기공업고등학교(현재의 아이치 현립 이치노미야 기공과 고등학교)의 디자인과에 진학했다. 정작 고등학교에 만화 연구 동호회에 회장까지 했지만, 만화를 그리지는 않았다고 한다. 초등학교 사생 콩쿠르에서 몇 차례나 입상했고, 고등학교 시절에는 캠페인 포스터로 전국 고등학생 부에서 입상했다.

 

공업 고등학교를 졸업한 1974년, 그림 그리는 일을 하고 싶어 현지 광고 관련 디자인 회사에 디자이너로 취직했지만, 태연히 지각을 거듭하거나, 레터링 작업이 주된 일로 지겨워 약 2년 반 정도 지난 1977년 1월에 회사를 때려치운다.

퇴직 후 1년간은 아르바이트로 일러스트를 그려서 근근이 먹고살아간다. 그 후 금전적으로 심각하게 쪼들리려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던 어느 날, 찻집에서 우연히 손에 든 <주간 소년 매거진>, 신인상의 작품 모집의 기사를 발견한다. 우승 상금 50만 엔을 받을 수 있다는 이유로 투고작을 그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주간 소년 매거진>의 공모전을 목표로 투고작을 그렸음에도, 마감시간에 제때 그림을 완성하지 못해 매주 투고작을 접수받는 <주간 소년 점프>로 가져갔다고 한다. 1978년 1월에 <주간 소년 점프>의 신인상인 월례 영점프상에 응모작품인 ‘아와와 월드’를 투고한다. 장르로 따지면 개그 만화였는데, 그 이유는 스토리 만화와 상금은 같았는데 페이지 수는 절반이었기 때문에 부담이 없어서였다고 한다.

<닥터 슬럼프>, <드래곤볼>의 작가이며,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의 캐릭터와 몬스터 디자이너이자, 일러스트레이터였던 만화가 토리야마 아키라 (鳥山 明; とりやま あきら)의 이야기이다.


일본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만화가로 서구권에서도 절대적인 인기를 얻고 있으며 당연히 한국 내에서의 인기도 절대적이다. 1982년도에 데즈카 오사무가 직접 자신의 후계자가 나왔다고 발언하여 화제가 되었던 일화가 있다. 이 일화 때문에 한국에선 그를 ‘2대 만화의 신’이라 부르기도 했었다. 일본 만화가 중, 가장 돈을 많이 번 사람으로도 유명하며, 일본 내에서 납세 금액 Top 10 엔트리에 이름을 올린 유일한 만화였다. 

세금 때문에 거주 지자체인 아이치현에서 이사도 못 가게 한다는 농담 같은 루머가 생겨났을 정도였다. 그 예로 1992년 미국 경제잡지 포브스에선 미국 만화가의 최고 갑부인 찰스 M. 슐츠(<피너츠>의 원작자) 보다 더 부자인 만화가라며 토리야마를 취재한 적도 있다. 나가이 고 이후로 천재 만화가라는 수식어가 딱 어울리는 인물로, 과감하고 다양한 실험을 통해 소년 만화계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그렇게 투고했던 작품은 입상하진 못했지만, 곧바로 또 그려낸 투고했던 작품 <수수께끼의 레인잭>을 본 <주간 소년 점프>의 편집자였던 토리시마 카즈히코(鳥嶋和彦)의 눈에 띄어 새로운 원고를 가져와보라고 권유받게 된다. 이유는, 여러 가지의 구도를 사용해서 대상을 그렸다는 점과 효과음 등을 영어로 표현한 센스가 신선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일본의 만화계 구조는 여러 형태가 있기는 한데, 이런 식으로 만화 편집자가 만화가들을 트레이닝하는 구조가 당시에는 수행의 일반 형태중 하나이기도 했다. 그렇게 그는 편집자 토리시마 밑에서 1년간 500페이지 이상이라는 수많은 원고를 폐기당한 뒤 1978년 단편 <원더 아일랜드>로 데뷔하게 된다.

당시 잡지에서는 늘 인기순위를 조사했었는데, 그의 데뷔작은 최하위였다. 여담으로 오바 츠구미와 오바타 타케시의 만화 <바쿠만>에서 ‘편집자가 만화가의 원고를 칭찬한 뒤, 눈앞에서 바로 원고를 찢어버렸다.’라는 일화를 그린 적이 있는데, 그 일화의 주인공이 바로 토리시마와 토리야마라는 건 일본 만화계에서 아주 유명한 이야기였다.

 

이후 또 욕을 먹으며 엄청난 분량을 폐기당한 뒤 내놓은 단편이 <걸 형사 토마토>라는 작품이었다. 이 단편이 데뷔작에 비해 제법 독자의 호응을 얻는 것이 확인되자 정식 연재가 결정됐다. 이 단편의 세계관을 활용해서 캐릭터들의 디자인을 조금 바꾼 뒤 동물, 로봇, 인간, 외계인이 공존하는 독특한 세계에서 벌어지는 코미디 작품이 바로 공전의 히트를 치게 된 <닥터 슬럼프>였다. 


원래는 만화 타이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천재 과학자인 ‘닥터 슬럼프’ 노리마키 센베가 주인공이었지만, 편집자이자 엄격한 스승 격이던 토리시마는 1회용 캐릭터였던 노리마키 아라레가 주인공이 되기를 원했었다. 그리하여 여자 아이가 주인공인 단편을 하나 그려봐서 반응이 좋으면 토리시마의 뜻대로, 반응이 좋지 않으면 토리야마의 뜻대로 가기로 서로 내기를 했는데 너무도 당연하게(?) 편집자의 예상대로 아라레가 독자들의 좋은 반응을 얻어 주인공으로 확정되었고 <닥터 슬럼프>는 대대적인 히트작이 되었다. 

사실 이 만화로 이미 그는 일본 만화가 사상 처음으로 납세자 순위 10위권에 들어가는 큰 성공을 거둔다. 일본 만화계의 전설인 테즈카 오사무도 하지 못했던 기록을 거둔 만화계의 센세이션이었던 셈이다. 1983년에는 TV 토크쇼에 단독 출연하기도 하는 등, 20대 후반에 이미 유명 만화가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연재 당시만 하더라도 코미디 만화에 있어서는 아키다 쇼보의 <소년 챔피언>이 독보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으나 그 독자층을 <주간 소년 점프>로 끌어오게 만드는 일등 공신으로서 소년 점프 1차 중흥기의 주역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이미 이때부터 살인적인 스케줄 때문에 연재 1년째 되도록 사흘에 한 번밖에 못 잤다거나 철야를 6일 연속으로 한 적도 있다고 하고, 작업한 기억이 아예 없는 회차도 있었다고 한다. 정상의 위치를 고수하며 5년 정도 연재를 이어 가지만 소재와 아이디어의 고갈을 이유로 들며 1984년 연재 종료를 선언하게 된다.

 

나중에 토리시마가 밝힌 비화에 의하면, <닥터 슬럼프>는 매 화마다 주제가 바뀌는 형식의 만화였고, 토리시마가 해당 회차의 개그가 마음에 들지 않아 딱지를 놓아, 그 회차 전체의 스토리를 갈아엎어야 했기 때문에 토리야마가 굉장히 힘겨워했다고 한다.


엄청난 고생을 하긴 했지만, 데뷔하고 2년 차밖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특유의 화풍이 이미 정립되었음이 보인다. 이후로 그림체가 변하기는 해도 작품의 분위기에 따라서 스타일이 변하는 것이지 이미 이때 자신만의 화풍을 정립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그림 실력은 있었어도 만화에 대한 지식이라고는 전혀 없던 문외한이 2년여의 수련 끝에 완벽한 화풍을 완성시킬 정도로 성장한 것만 봐도 범상치 않은 재능과 뼈를 깎는 노력이 있었던 것을 엿볼 수 있다.

사실 토리야마는 처음 만화가가 될 때, 2년 안에 성공하지 못하면 이 일을 접겠다고 자신의 부모님과 약속했었는데 2년 만에 당당히 성공을 이룬 것이다.


그러나, 5년간이나 어마어마한 인기와 수입을 안겨준 작품을 갑자기 끝내버릴 수는 없었기 때문에 편집자 토리시마가 이를 윗선에 긴급하게 보고했다. 총편집자는 말도 안 된다고 하면서 <닥터 슬럼프>보다 재미있는 걸 가져오면 허락해주겠다는, 당시 <닥터 슬럼프>의 인기를 생각하면 거의 불가능했던 조건을 내걸었다. 


그래서 토리야마는 일주일 내내 매달리던 <닥터 슬럼프> 작업을 5일 만에 끝내고 나머지 2일을 단편들을 그리는 데에 힘을 써야 했다. 하지만 내놓는 단편들마다 별 반응을 얻지 못했고 아이디어 고갈을 토로하던 그가 도저히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한 토리시마는 회의를 위해 직접 나고야에 있는 토리야마의 집으로 찾아간다.

그런데 보통 라디오나 음악 등을 들으며 작업을 하는 다른 만화가들과는 달리 토리야마는 자신이 좋아하는 성룡의 영화를 틀어놓고 원고를 그리고 있었다. 이를 본 토리시마는 그렇게 성룡이 좋으면 그런 무술 만화를 그려보는 것은 어떠냐고 제안하게 된다. 거기에 서유기에서 아이디어를 따와 시험 삼아 그리게 된 것이 <드래곤 보이>라는 단편으로, 이 만화가 그를 전설로 만들어준 <드래곤볼>의 시초가 된다.

 

정작 <닥터 슬럼프>를 마치고 6개월의 준비기간을 거쳐 연재를 시작한 <드래곤볼>은 인기 순위가 연재작 중 15위권으로 그의 데뷔작처럼 망작으로 인식되며, 연재가 언제 중단되어도 이상하지 않았던 상황이었으나, 당시 애니메이션 <닥터 슬럼프>의 말도 안 되는 성공을 뽑아냈던 후지 TV는 이미 연재 전부터 토리야마 아키라의 신작은 무조건 애니메이션화 한다는 계약까지 이미 체결해놓은 상태였기 때문에 연재 시작과 동시에 <드래곤볼>의 애니메이션 제작에 들어갔다. 


편집부에서는 이미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고 있는 작품을 그냥 중도에 잘라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에 결국 <드래곤볼>에 다시 한번 기회를 주기로 한다.

위기에 몰린, 토리시마와 토리야마 두 사람이 머리를 싸매고 회의한 결과, 오공과는 정반대인 야비하고 얄미운 한 캐릭터를 투입시켜 만화를 회생시켜 보기로 결정한다. 그렇게 이 신의 한 수는 오공과 크리링이 거북 하우스에서 수련을 한 이후, 천하제일 무술대회에 참가하는 편이 전개되면서 <드래곤볼>의 인기를 급상승의 선로에 올려놓게 된다. 


그리고 이전 <드래곤볼>의 악당들이 확실한 빌런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의 코믹 캐릭터에 지나지 않았다는 점 때문에 토리시마와 토리야마는 악당이란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에 토리시마가 로마 제국의 네로 황제에서 영감을 얻어 상대방의 고통을 보며 즐거워하는 악당 캐릭터를 제안하였고, 그 아이디어를 구상하면서 탄생한 캐릭터가 피콜로 대마왕이었다. 

이렇게 토리야마는 만화의 장르는 기존 <닥터 슬럼프>에서 정착되었던 개그 모험물에서 자연스럽게 액션물로 변경되며 진화하게 되었고, <드래곤볼>의 전설은 시작된다.

 

피콜로 대마왕과의 대립과 액션물로서의 변신을 마치게 된 <드래곤볼>의 영향력은 일개 만화라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어마어마한 파급력과 인기를 몰고 오게 된다. 연재를 쉬고 싶어도 쉴 수가 없는 지경에 달했고 연재를 쉬기라도 했다간 슈에이샤 매출에 치명타를 맞고 점프 편집부, 애니메이션 제작진, 완구회사 직원들까지 죄다 밥벌이를 잃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까지 순식간에 처해였다. 


피콜로 대마왕부터 늘어난 작업량은 더욱더 증가, 셀 편이 종료할 때 즈음에는 일본 문부성 차관이 토리야마를 찾아 연재를 계속 이어가달라고 부탁했다는 전설까지 알려진다. 역시 같은 직업인 만화가인 아내와 결혼하기 전까지는 출판사에서 붙여주는 어시스턴트 외엔 전체 작화를 자신의 힘만으로 그렸고, 그러면서도 <닥터 슬럼프> 시절부터 매주 15여 년간 연재 펑크가 단 한 번도 없었던 전설도 쓰게 된다.

심지어 <드래곤볼> 연재 기간 중에는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 등의 게임 캐릭터, 몬스터 디자인과 일러스트 작업, 부정기 단편 연재, 그 외에도 자동차 디자인을 비롯한 각종 디자인 작업 의뢰 등을 동시에 진행하는 등 실로 엄청난 작업량을 모두 차질 없이 훌륭하게 소화해낸 것으로 유명하다. 


이게 뭐 대단한 것이냐고 할 수 있겠으나, 실제 일본의 만화 연재 중에 개인적인 사정이든 사고든 연재가 휴재가 되는 경우는 일반적인 것을 감안하면, 그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그 업계에서는 혀를 내두른다. 특히 그가 귀찮아서 시간과 정신의 방처럼 배경이 필요 없는 공간을 그려낸다던가, 마을을 일일이 그려내는 것이 귀찮아 늘 마을이 통째로 날아가는 그림을 그릴 정도로 게으른 본래의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연재를 하는 15여 년간 얼마나 자신을 쏟아부어가며 작업했는지 알 수 있다.

 

실제로 그렇게 무리한 스케줄로 만화가들의 직업병인 건초염이 생긴 데다 15년 동안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만화만 그린 것에 진절머리가 났다며 장기 연재는 더 이상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실제로 <드래곤볼> 이후 지금까지 어떤 장편도 연재하지 않았다. 


단편 역시도 점프 계열의 새 잡지 창간 기념 등을 이유로 출판사에서의 요청에 의한 것이 대부분으로 사실상 실질적인 작가 활동은 드래곤볼을 끝으로 그만두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디자인 관련 작업 등 다른 작업은 아직 활발한 편이다.

편집자 토리시마 카즈히코

앞서 언급했지만, 사실 토리야마는 정식으로 만화가 스승에게 수행을 받은 것이 아니라, 토리시마 카즈히코라는 만화를 그려본 적도 없는 편집자에게 1년간 수행을 하고 나서 데뷔를 하게 된다. 데뷔를 한 것도 어느 정도 수준이 되어서 한 것이 아니었기에 최하위의 인기순위로 바닥에서부터 겨우 근근이 자신의 부족한 점을 개선하고 고쳐가는 수행을 지속해야만 했다.

 

오늘날까지도 토리야마는 단순히 그림 실력뿐만이 아니라 훌륭한 컷 분배를 통한 가독성으로도 매우 큰 호평을 듣는데, 이 기법 역시 토리시마 카즈히코가 토리야마에게 가르쳐준 것을 토리야마가 끊임없이 실전에 적용해가면서 그리고 매주 연재를 통해 독자들의 반응을 확인하면서 독자들이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를 끊임없이 연구하고 시도한 결과물이었다. 만화의 속도감을 올려줄 수 있도록 공부해서 토리야마에게 아이디어나 방식을 전수받으면 감이 좋아서 빠르게 캐치하여 모두 자신의 것으로 흡수한 것으로 유명하다.

예컨대,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으로도 유명한데, 스크린톤 등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먹칠과 펜화만으로 그림을 그리는데도 불구하고 입체감을 잘 살려내는 보기 드문 만화가로 인정받는다.

 

이 모든 성과는, 과거 1년간 500쪽 이상의 수많은 원고를 모두 폐기당한 경험으로부터 나온 능력 아닌 노력이다. 결론적으로 토리야마는 데뷔했을 때 이미 엄청난 양의 그림을 그린 것이다. 마치 <드래곤볼>에서 정신과 시간의 방에서 수련하여 자신의 한계를 극복해냈던 손오공의 모습에 다름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많은 이들이 그를 천재라고 일컫지만 기본적으로는 재능보다는 엄청난 연습과 노력으로 다져진 인물이다.

시간과 정신의 방에서 아들과 수련하는 손오공

당신이라면, 글도 아니고, 한 컷을 그리는 데만 해도 몇 시간이 넘게 걸리는 만화를 500쪽이나 되는 원고를 1년이 넘도록 데뷔도 못하고 돈을 받는 것도 아니고 마냥 퇴짜를 맞으면서 또 도전할 수 있었겠는가?

 

예를 들어 그가 자동차, 오토바이 등을 비롯한 기계 같은 사물을 묘사하는 능력에 대해 확실하게 인정받게 된 배경에도, 돈이 없던 시절 갖고 싶었던 물건을 그림으로 그리면서 만족하던 버릇 때문에 자연스럽게 수행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웃픈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또한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나와 들어간 디자이너로서의 일을 통해서도, 디자인으로 그림을 배웠기 때문에 전체적인 작화나 채색 등에서 균형 감각이 대단히 뛰어나고, 배경 등을 그리지 않아도 어색함이 느껴지지 않는 구성력과 디자인 실력을 갖게 되는 전화위복을 이뤄냈다.

 

<드래곤볼> 연재를 마치기까지 원시적인 방식을 사용하다가 연재가 마치고서 드디어 MAC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CG를 사용하기 시작한 이후부터는 흑백 만화의 작법도 매우 많이 바뀌었다. 기존 펜촉보다 마찰력이 적은 태블릿을 사용하게 됨에 따라 펜터치가 완전히 바뀌어, 드래곤볼 후반부의 직선적인 화풍이 아닌 곡선적인, 어찌 보면 토리야마 초창기 작품인 닥터 슬럼프에 가까운 펜터치를 보여주고 있다. 이후 나온 만화들을 보게 되면 끊임없는 진화를 보여주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의 가난이 그의 끊임없는 데생력을 키워주었고, 공고에 가서 디자인을 익힌 경험과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들어간 디자인 회사에서 익힌 감각이 전체적인 작화와 채색 등에서 균형감각을 키워줬으며, 작업을 하면서 봤던 성룡의 영화와 동양적인 액션들이 자연스럽게 맨손 격투와 그에 관련된 고전적인 동양 무술의 기본기를 스토리에 넣을 수 있는 자양분이 되었다. 그림에 대한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능력을 1년간 그림을 그릴 줄도 모르는 독자들의 시장 반응을 귀신같이 읽어내는 편집자의 밑에서 수행하며 길러냈다.

 

그가 겪었던 힘겨운 인생 곡절들은 결국 그가 대성공을 이루는데 어느 하나 빠짐없이 자양분으로 구석구석 작용하면서 그의 만화와 그의 인생이 전설이 되는 데 있어, 큰 역할이 되었다.


당신이라면, 이미 기업인도 아닌 만화가이면서 일본 내 납세자 TOP 10에 들 정도의 부와 명성을 가졌음에도 아이디어가 더 이상 없어 최상의 퀄리티를 유지할 수 없다며 연재를 과감하게 중단하겠다고 할 수 있었겠는가? 전설은 그다음이다. 당신이라면 이미 계속 재탕을 하면 욹어먹어도 충분할 작품이 있었음에도 그것을 뛰어넘겠다며 인기순위 15위의 치욕을 감당해가면서 다시 작품을 연구하고 이전의 자신이 그렸던 것과는 전혀 달라진,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었겠는가 말이다.

 

그가 전설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천재적인 재능이나 우연이 아니었다. 만화 <드래곤볼>을 보면 그의 인생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닥터 슬럼프>의 화풍처럼 작고 귀엽던 주인공 손오공에서 후반기의 완전한 액션물로 변신하며 성장한 멋진 손오공, 그리고 끊임없는 수련과 발전, 그리고 자신을 이겨내기 위한 새로운 적들과의 전투를 통한 업그레이드. 무엇보다 사람을 사랑하는, 자신이 지켜내야만 하는 사랑을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통해 계속해서 한계를 깨고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는 모습들을 보여준다.

당신에게 있었던 여러 가지 시련이나 어려움들이 당신의 성장을 방해하고 당신의 인생을 더 발전시키지 못하는 방해 요소였다고 비겁한 변명 따위 하며 살 생각하지 마라. 저마다 입장이 다를 수는 있겠으나, 어느 누구도 100% 만족스러운 인생 환경을 세팅하고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원하든 원치 않든 환경은 어려울 수 있고, 당신이 원하는 대로 인생이 술술 풀릴 리도 없다. 중요한 것은 그 환경이나 역경을 당신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며 그것을 어떻게 극복해내는가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저 가난해도 그것을 즐기고, 실패해도 웃으며 다시 툴툴 털고 일어나 제 갈길을 가겠다고 힘을 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아니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당신의 인생을 끊임없이 최선의 것으로 만들려는 노력을 해야만 한다. 그 노력이 당장 당신의 눈앞에 대단한 성과를 내주지 못할 가능성도 높다. 


토리야마의 부모가 공고를 나와 회사를 때려치우고 1년이 넘는 시간을 제대로 돈벌이도 못하며 만화만 그리며 만화가의 길을 가겠다고 했을 때, 2년 안에 성과를 얻어내지 못하면 그만두기로 했던 약속은 어찌 보면 너무도 서민적이며 부모 입장에서는 속이 터지는 일일 수 있다. 2년 안에 토리야마가 대성공은 고사하고 제대로 만화가로 데뷔나 할 수 있을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었다.


데뷔를 하고 최하위의 인기순위를 기록했을 때도 그는 상당한 좌절을 맛봐야만 했다.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던 그가 새로 연재를 시작한 <드래곤볼>이 다시 최하위의 순위를 기록했을 때, 현실로부터 도망가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렇지 않았고, 더 노력했고, 더 몰입했으며 더 자신을 그 한계상황에 던져 넣었다.


물론 그에게는 혹독한 트레이너이자 친구였던 토리시마가 있었다.

당신의 인생에 토리시마가 필요하다면, 언제든 내가 토리시마 역할을 해주마.


당신이 이제 고작 글을 얼마나 썼으며, 시험 준비를 얼마나 했다고 감히 힘겹다고, 내가 노력을 이렇게 했는데도 왜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못하느냐고 같잖은 원망을 입에 담는단 말인가?


전설이 될 수도 있을, 당신의 인생을 지금 그렇게 너무도 쉽게 폐기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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