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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Dec 20. 2021

스물두 살 되도록 춤 한번 춰본 적 없는 남자였는데도,

전 세계 무용계의 판도를 바꾼 세기의 스토리텔러로 인정받다.

1960년 런던 북부 해크니(Hackney)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 졸업 후 22살에 현대무용 교육기관인 라반 센터에 입학하기 전까지 정식으로 춤을 춰본 경험은 고사하고 무용이라는 것을 배워본 적도 없었다. 그 대신 그에게는 그만의 독특한 이력이 있었다. BBC의 기록보관소에서 직접 근무하면서 수많은 영화와 다큐멘터리를 통해 스토리텔링의 세계에 빠져들었고, 영국 국립극장의 서점과 극장 안내원으로 일하면서 연극과 무용 공연에 대한 관심을 꾸준히 키워나갔다. 


사실 어릴 적부터 영화와 뮤지컬의 광팬이었던 그는 50~60년대 영화부터 웨스트앤드에서 공연되는 다양한 뮤지컬까지 두루 섭렵하며 전통적인 무용 코스를 밟았더라면 결코 배우지 못했을 극적인 내레이션과 표현방식을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방식으로 습득하게 되었고, 이러한 경험이 그를 이제까지 전혀 볼 수 없었던 무용계의 독보적인 스토리텔러로 만들어준 원동력이 되었다.

1877년 모스크바 볼쇼이 극장에서 차이콥스키 작곡의 발레 <백조의 호수>가 초연된 이래 110년이 넘도록 아무도 하얀색 튀튀를 입은 가녀린 여성 백조들을 근육질의 남성 백조로 바꿀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갑자기, 가녀리고 여린 백조들이 발끝을 세우고 춤추는 장면을 맨발에 웃통을 벗은 채 깃털 바지를 입고 힘차게 춤추는 남성 백조들로 바꾸어 버렸고, 한 편의 동화와 같던 원작의 배경을 현대 영국 왕실로 옮겨 의례와 품위를 중시하는 왕실의 모습을 풍자했다. 또한 백조에게 사랑을 갈구하는 유약한 왕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동성애 논란까지 일으켰다. 초연 이후 영국 웨스트앤드를 넘어 세계 뮤지컬계의 각축장으로 불리는 브로드웨이까지 진출하며 세계에서 가장 롱런한 무용 공연으로 기록을 남긴 이 현대판 <백조의 호수>를 만든 매튜 본(Matthew Bourne)의 이야기이다.

그는 <Overlap Lovers>(1987), <Spitfire>(1988), <백조의 호수>(1995), <신데렐라>(1997), <The Car Man>(2000) 등의 댄스 뮤지컬들을 제작ㆍ안무ㆍ연출하며 예술감독 및 안무가 겸 연출가로 활동하였다. 이러한 작품들은 고전 발레를 새로운 형태로 바꾸어 예술적인 면과 대중적인 면에서 모두 성공했다는 평을 받았다. 


특히, <백조의 호수>는 1995년 영국에서 초연된 후, 영국 웨스트엔드와 미국 브로드웨이에 진출했고 유럽, 일본, 러시아, 호주 등 세계 전역에서 공연되었다. 매튜 본은 이 작품으로 1996년 영국 최고 권위의 연극상인 로렌스 올리비에 상과 1999년 토니상 뮤지컬 부문 최고 연출가상ㆍ안무가상을 수상했다.

 

2002년에는 AMP의 뒤를 이어 ‘New Adventures’라는 새로운 단체를 창단해 <호두까기 인형>과 <무언극>을 발표하였다. 또한 <메리 포핀스(Mary Poppins)>를 통해 로렌스 올리비에상 최고 안무가상을 수상한 바 있다.

1985년 라반 센터를 졸업하면서 매튜 본은 그간 본인이 체득한 영화, 연극에 대한 다양한 감성과 지식을 무용에 접목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얻었고, 1987년에 자신의 컴퍼니 ‘어드벤처스 인 모션 픽쳐스(AMP)’를 창단하며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다.

 

그는 이제껏 무용 공연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들도 누구나 뮤지컬이나 영화를 보듯 무용을 즐길 수 있게 만들겠다는 꿈을 실체화하는 작업에 돌입한다. 흔히 고전발레나 현대무용에서 볼 수 있는 정형화된 동작이나 추상적인 동작을 일체 배제하는 대신 발레, 현대무용, 뮤지컬, 영화, 탭 댄스, 사교댄스 등 이야기를 전달하는데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동작이나 표현법은 뭐든 마다하지 않고 적용했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작품은 ‘댄스 시어터(Dance Theatre)’ 또는 ‘댄스 뮤지컬(Dance Musical)’로 불리며 이전에 없던 새로운 장르로서 무용과 뮤지컬 팬 모두를 사로잡는 데 성공하게 된다.

처음 그가 영국 무용계에서 주목을 받게 된 것은 1992년 창작한 <호두까기 인형!>을 통해서였다. 제목에 붙인 느낌표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매튜 본은 차이콥스키의 고전 발레의 제목과 뼈대만 가지고 왔을 뿐 결코 그 이야기를 그대로 해석하지 않았다. 원작의 중산층 가정을 찰스 디킨스의 소설 <올리버 트위스트>를 연상하게 하는 고아원으로 옮겨 악랄한 고아원 원장의 박해와 우울한 환경 속에서도 꿈과 희망을 잃지 않는 소녀 클라라의 상상 속의 크리스마스로 그야말로 이름 빼고는 모두 바꿔버렸다. 


원작에 나오는 여러 나라의 민속춤은 무대를 꽉 채우는 커다란 케이크 위에서 춤추는 머쉬 멜로우, 봉봉, 과자 요정 등의 춤으로 새롭게 데코레이션 방식으로 교체했고, 보슬보슬 눈이 날리는 가운데 아이들이 좋아하는 귀여운 캐릭터들이 아이스 스케이팅을 타는 무대로 탈바꿈시켜 버렸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든 관객들을 환상의 세계로 안내했던 이 작품은 BBC를 통해 TV용 영화로까지 만들어져 영국 전역에 방송되었고, <호두까기 인형>의 새로운 전통을 만들며 지금도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런던 새들러즈 웰즈 극장에서 빠지지 않고 공연되고 레퍼토리로 자리 잡았다. 


그렇게 한번 자신의 스타일을 완성하고 자신감을 얻은 매튜 본은 바로 대표적인 낭만 발레 <라 실피드>를 스코틀랜드의 도시 글라스고우의 클럽을 배경으로 한 <하이랜드 플링>이라는 작품으로 개작하여 화제를 모으더니, 드디어 1995년 남성 백조들로 무장한 지금은 전설이 되어버린 유명한 <백조의 호수>로 무용계와 전 세계 문화계에 충격과 희열을 한꺼번에 안겨준다.

 

매튜 본은 이미 고전 발레를 새롭게 개작하는 것은 자신이 있었던 터였다. 그러나 그는 신중했다. 이 고전 대작 <백조의 호수>를, 자신의 삶에서 사랑을 가질 수 없었던 한 남자의 보편적인 욕망과 자아에 대한 이야기로 작품의도까지 완전히 바꿔버리는 대수술을 감행한 것이다. 

어머니인 여왕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신분이 다른 여자 친구에게까지 버림받은 왕자가, 스스로에 대한 무능함과 왕실의 답답한 삶에 염증을 느껴 목숨을 끊으려고 하지만 그 순간 호숫가에서 만난 남성적이고 강인한 백조를 통해 다시금 삶의 자신감을 찾게 된다. 그러나 결국 자신의 환상 속에서 사랑했던 백조를 통해서도 완전한 사랑을 얻지 못한 왕자는 비극적인 죽음을 맞게 된다.


매튜 본은 자신이 만든 이 독창적인 새로운 작품에서 백조들을 ‘힘과 아름다움, 그리고 자유’를 상징하는 존재로서 표현하고자 했다. 그는 어떻게 희고 아름다운 백조로부터 공격적이고 파워풀한 모습을 끌어냈느냐는 언론의 질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대답한 바 있다.


“어느 날 백조에 관한 다큐멘터리 필름을 보았는데, 새끼 백조를 지키기 위해 작은 낚싯배를 공격하는 장면을 봤고, 통상 백조하면 떠올렸던 우아하고 아름다운 면이 아닌 사납고 강한 이미지를 발견했다. 그리고 백조라는 창조물이 지닌 힘과 아름다움 그리고 거대한 날개는 하얀 튀튀를 입은 발레리나보다는 오히려 발레리노의 강한 근육을 자연스럽게 연상시켰다.”


매튜 본의 <백조의 호수> 맨발에 웃통을 벗은 채 깃털 바지를 입은 남성 백조들을 출연시킴으로써 발레계에 충격을 선사한 작품으로 두고두고 회자되어, 이젠 전설이 되어버렸다.

이 작품은 초연과 동시에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며 이제까지 세계 여러 나라에서 수여하는 30여 개의 상이란 상은 모두 휩쓸며 작품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인정받았고, 3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전 세계를 투어 하며 사랑받고 있다. 


또한 이 작품 초연 시 백조역을 맡았던 발레리노 아담 쿠퍼는 2000년에 제작된 스티븐 달드리 연출의 영화 <빌리 엘리어트>에서 빌리가 훌륭한 발레리노가 되어 무대를 뛰어오르는 장면에 직접 출연하여 화제를 모았던 그 인물이다. 

문화상품으로는 획기적으로 3D 영화로까지 제작되었다. 국내에서도 2003년부터 2010년 사이에 총 네 차례나 내한공연을 가질 정도로 인기를 모았으며 2005년에는 국내 한 대기업의 혁신을 내세운 기업 광고에 매튜 본의 새로운 도전의식이 부각되면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매튜 본 이후, 그의 충격이 가져다준 새로운 흐름이 브로드웨이에 흘러들어오면서 <무빙 아웃>, <컨택트> 등 대사 없이 춤으로만 스토리를 전하는 댄스 뮤지컬이 유행하게 되었지만, 그가 처음 작품을 만들 때만 해도 이러한 장르는 매우 낯설고 파격적인 시도로서 무용계 일각에서는 ‘해괴한 방식으로 정통 발레를 파괴하고, 고전 발레의 걸작을 뒤집는 안무가’라는 반감으로 좋지 못한 평가를 받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는 그런 편견을 자신의 스토리텔링과 아이디어로 깨뜨렸다. 그의 작품은 이제까지 어떠한 무용 공연에서도 느낄 수 없었던 극적인 긴장감과 생동감을 준다는 매력 때문에 단 한 번도 발레 공연을 보지 못한 이들조차 찾는 공연으로 유명하다. 매튜 본 작품의 매력에 대중들과 평단은 열렬한 지지를 보냈고, 한때 ‘무용계의 이단아’라 불리며 주류에 속할 수 없다고 견제당했던 매튜 본은 이제 명실공히 영국을 넘어 전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이고 성공한 안무가라는 평가를 받으며 자신이 만든 판의 중심에 서 버렸다.

그는 엄밀하게 말해, 안무가라기보다 <더 빌리지 보이스(The Village Voice)>지에서 평가했던 것처럼 ‘위대한 스토리텔러’에 속한다. 매튜 본의 손을 거치면 환상적인 동화나 소설 속 이야기는 전혀 다른 이야기로 탄생하여 그만의 오리지널 작품으로 전혀 다른 생명력을 얻게 된다. 


매튜 본은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Carmen)> 음악에 영화 <포스트 맨은 벨을 두 번 울렸다>의 내용을 접목하여 미국 서부의 한 정비공장을 배경으로 한 질투와 복수의 드라마 <카 맨(Car Man)>을 탄생시켰고, 팀 버튼의 영화 <가위손>을 새로운 작품으로 무대 위에 재현했으며, 프랑스 작가 샤를 페로의 동화 <신데렐라>를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영국을 배경으로 한 현대적인 러브 스토리로 탈바꿈하여 관객들을 새로운 이야기의 세계로 빠뜨렸다.

<신데렐라>

조셉 로지의 1963년도 영화 <하인(The Servant)>을 무대화한 <무언의 연극(Play without words)>에서는 분신을 통해 자신의 행동을 들여다보는 장치를 사용하는 실험적인 시도를 통해, 극의 긴장과 스릴러를 극대화시키는 방식을 구현했고, 오스카 와일드의 소설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을 가지고서는 원작의 사교계를 현대 영국 패션계로 바꿔,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과 쾌락을 위해 파멸해가는 인간의 욕망을 생생하게 그려내 고전의 새로운 재해석 달인으로 거듭났다.

<잠자는 숲속의 미녀>

2012년 말에 초연한 차이콥스키 음악의 <잠자는 숲 속의 미녀>는 원작에서 100년이나 흐른 시점에서 공주가 깨어나는 기발한 상상력을 발휘하여 심지어 그즈음에 유행했던 문화계의 뱀파이어 코드를 가지고 와 완전히 새로운 버전으로 각색해 7주간 전회 매진을 기록하며 이전까지 그가 세웠던 매표율을 갈아치우는 기염을 토했다.


매튜 본은 거의 모든 작품을 파격적으로 해석하기 때문에 새로운 작품이 창작될 때마다 이번에는 또 어떤 독창적인 스토리가 나올지에 대한 기대로 기존 팬들은 물론, 그를 전혀 알지 못하는 새로운 예비 팬들까지 설레게 만드는 타고난 이야기꾼으로 완전히 자리 잡았다.

 

이쯤 되면 궁금해진다. 그는 왜 굳이 뼈대가 필요하지도 않으면서 고전을 굳이 들고 와서 난도질하고 활용하는가? 


그에 대한 대답은, 그가 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위대한 스토리텔러인가하는 이유가 맞물려 있다. 그는 단지 기존의 스토리를 파격적으로 바꾸어 새로운 버전의 작품을 만드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가 고전 속 이야기를 가져와 활용하는 가장 큰 이유는 단지 뒤틀기 위한 밑감으로서의 재료나 이전 작품의 유명세에 묻어가기 위함이 아니라 기존에 고전을 통해 익숙해있는 이야기나 배경을 바꿈으로 인해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보다 더 공감할 수 있도록 작품에 현대적이면서도 전혀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고, 그렇게 현대인들에게 있어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캐릭터들을 통해 현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고민과 감정을 직접 작품 속에서 투영하게 하고자 함이다.

런던 대공습을 배경으로 긴박하게 사랑을 나누고 헤어져야 하는 연인의 이야기는, 동화 속의 <신데렐라>보다 훨씬 더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현실적 요소가 가미되고, 엄격한 왕실의 관습과 언론의 집요한 노출 안에서 진정한 자유와 사랑을 갈구하며 환상의 백조를 만들어낸 왕자의 모습은, 원작에서 마법에서 풀려나고자 왕자의 사랑을 필요로 하는 오데트보다 영국의 황실을 겹쳐 자연스럽게 연상하게 만드는 매튜 본식 마법을 풀어 지극히 현실적이면서도 더욱 보는 이로 하여금 심금을 울리는 폭을 높인다.

 

앞서 그가 안무가이기보다 스토리텔러라고 극찬한 것은 그의 특징을 말한 것이고, 엄밀히 그의 직업란에는 ‘안무가’라는 명칭이 묻는다. 대사 없이 무용으로만 이 모든 생생하고 박진감 넘치는 이야기를 전달하다 보니 그는 무용수들에게 더욱 세심한 연기력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러한 직접적인 표현방법과 더불어 매튜 본만의 무한 상상력은 이제까지 단 한 번도 무용 공연을 본 적이 없는 수많은 관객들을 극장으로 끌어들였고, 매튜 본의 작품을 통해 무용에 매력을 느낀 많은 관객들을 정통 고전발레와 현대무용의 팬으로까지 확장시켰다. 영국 왕실은 그의 이러한 공헌을 인정하여 ‘대영제국 제4급 훈작사(OBE)’를 수여하기도 했다.

 

“나는 작품을 만들 때 항상 관객을 생각한다. 어떤 관객들은 이전에 단 한 번도 발레 공연을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일 거고, 난 그들도 내 작품에 빠져들 수 있도록 만들려고 노력한다. 이러한 노력이 결코 작품의 질을 낮추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관객들이 이야기에 빠져들어 무언가 새로움을 느끼게 하고 싶다.”

 

이러한 그의 확실한 예술관을 통해 문화계에서는 ‘고전 발레’와 ‘현대 무용’, 이 두 가지만 존재했던 무용계의 지형을 매튜 본이라는 한 남자가 완전히 바꾸어 버렸다고 인정하고 있다.

댄스 뮤지컬 <가위손>

팀 버튼의 영화 <가위손>을 굳이 댄스 뮤지컬이라는 방식으로 바꿀 생각을 했던 것도 아주 단순한, 하지만 그만이 생각했던 아이디어에 부합했기 때문이다. 영화 속 주인공 에드워드는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말보다는 움직임을 통해서 표현하는 캐릭터였다. 그 영화를 보는 내내, 매튜 본은 이 영화야말로 자신의 작업 방식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캐릭터라고 여겼고 그의 파격적인 제안은 저작권의 계약을 일사천리로 이루어지는 것을 도왔다.

 

마지막으로 스토리텔러이자 안무가로서의 능력 말고도 그가 가진 마지막 화룡점정에 해당하는 능력이 있다. 오늘날 그가 이룬 독보적인 성공을 논할 때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그의 또 하나의 위대한 능력, 바로 음악에 대한 탁월한 이해이다. 


매튜 본에게 있어 음악은 작품을 만드는 가장 큰 동기부여이자 영감의 원천이다. 그는 새로운 작품을 구상하면서 거의 1년 이상 음악을 들으며 연구한다. 특히 발레 음악이나 오페라 음악처럼 본래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만들어진 음악은 그 자체에 이미 매우 탄탄하고 매력적인 스토리 라인을 가지고 있어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도 끊임없이 자신의 상상력을 자극한다고 그는 설명한다.

그의 작품에서 그만의 특징을 찾자면, 그가 옛날 영화에 대한 자신만의 아련한 추억들을 실제 장면에 투영시킨다는 점이다. 특히 <백조의 호수>의 Bar씬은 어릴 적 매튜 본에게 수많은 영감을 주었던 올드 무비 캐릭터들이 총출동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1968년작 <조지 수녀의 살해>와 1971년작 <샤프트>, 영화로도 만들어진 50년대 악명 높은 실제 갱스터 쌍둥이 형제인 크레이즈 형제, 60~70년대 인기 코미디 영화 시리즈 <케리온>에 출연했던 영국 여배우 바바라 윈저 등 50~70년대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악명 높은 사람들과 이들을 소재로 만들어진 영화의 주인공들이 10여 명이나 이 씬에서 등장한다.(공연을 몇 번 봐도, 이런 건 아는 사람 눈에만 보인다.) 


또한 <호두까기 인형!>에서 복화술사의 인형이 사람 크기의 남자로 바뀌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장면 역시 1945년작 영화 <악몽의 밤(Dead of Night)>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것에 다름 아니다.

 

그가 단순히 스토리텔러로서가 아니라 안무가로서 능력이 결코 기존 안무가들에게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자신의 창작 작품뿐 아니라 <마이 페어 레이디>, <메리 포핀스>, <올리버!>, <남태평양> 등 다수의 히트 뮤지컬 안무에 참여한 것으로 이미 충분히 입증된 바 있다.


당신이라면, 22살까지 춤이라고는 춰본 적도 없으면서 그 분야에 뛰어들어 매튜 본처럼 정점에 오를 자신이 있는가? 


앞서 살펴보았지만, 그는 먼저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와 뮤지컬 공연 등에 대한 충분한 즐거움의 요소를 자신만의 스타일로 즐기면서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를 생각하고 구상했고, 22살에 그것을 이루기 위해 반드시 춤을 배워야 하기 때문에 라반 센터에 입학한 것이었다. 


즉, 그는 자신이 댄서가 되기 위함이 아니라, 자신의 큰 계획에서 스토리텔러로서의 능력을 충분히 갖추고 나서 그것을 뮤지컬이나 무용공연을 만들기 위해서는 직접 춤을 배우지 않고서는 할 수 없다는 계산이 서서 라반 센터에 입학했다는 것이다.

 

22살에 늦게 시작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평생 하고 싶은 것을 이미 22살에 찾아서 그 계획은 마지막 정점으로 자신이 가장 취약했던 부분인 무용을 전공하기 위해 들어갔다는 말이다.

물론 모든 이들이 매튜 본처럼 모든 것을 계획하고 치밀하게 인생의 큰 그림을 그려낼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최소한 그가 계획했던 것처럼 순풍에 돛 단 배처럼 쭉쭉 처음부터 성공을 이뤄내지 않았다는 정도의 생각은 당신도 알 것이다. 누가 제대로 춤을 배워보지도 않은 안무가에게 공연을 맡길 것이며, 누가 그 우아한 <백조의 호수>를 발레리노만으로 무대에 올리겠다고 했을 때 투자를 하겠는가 말이다.

 

매튜 본은 그의 첫 장편 발레 안무작이던 <호두까기 인형!>의 재안무를 원작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맡아달라는 오페라노스(Operanoth)의 의뢰를 받고 떨리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 부담과 스트레스를 이겨내기 힘들었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새로운 도전의 기회를 결코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는 이 작품을 250번이나 직접 객석에서 관객들의 반응을 일일이 살피고 기록하며 수정과 보완을 해나갔을 정도로 필사적이었다.

당신 같으면 이미 무대에 올린 작품을 수정 보완하겠다고 무려 250회나 자신의 작품을 보는 관객들의 반응을 일일이 체크하며 고쳐나갈 수 있었겠는가?


그저 막연히 누군가 성공하면, 운이 좋았다거나 그의 부모가 금수저였다는 신포도 이론으로 당신의 신세를 포장하지 마라.

 

당신은 아직 당신의 글을 수백 수천번 고쳐본 경험도 없고, 공부를 하고하다가 눈을 뜬 채로 잠든 기억도 없으며, 몸을 단련하겠다고 멀쩡한 살이 터져나가며 근육을 키워본 적도 없고, 공부할 시간이 아까워 밥을 먹지 않고 살면 안 되나 고민해본 적도 없단 말이다.


당신이 지금 그 모양 그 꼴로 자기 신세 한탄만 하고 주저앉아 있는 것은 어느 누구의 탓이나 운명의 탓도, 시대의 탓도 아닌, 당신 자신이 자초하고 당신이 그만큼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뭘 새로 하자니 아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배워라! 입에서 신물이 나서 토가 나올 때까지 배우고 또 익혀라. 힘든가? 당신보다 더 힘든 상황을 이겨낸 자가 당신의 위에 있는 것에 대해 불만을 토로할 시간에 그 힘겨움을 이겨내라! 남들이 하는 만큼만 하고 남들이 하는 정도만 노력해서 남들보다 더 나아진 삶을 꿈꾼다는 것 자체가 도둑놈 심보 아닌가?


남들보다 더 하고, 남들보다 덜 자고, 남들보다 더 뼈를 깎는 노력을 하고서도 그들을 이기지 못할 가능성이 있는 게 현실이다. 그런데 지금 뭘 하고 있는가?


모든 사람들이 생각할 수 있는 것이라면, 의미가 없다. 당신만의 것을. 그것이 배어져 나올 때까지 쓰러지지 마라. 아니, 쓰러져도 또 일어나고 또 일어나라.


모든 전통 안무가들이 매튜 본을 욕할 때 그가 당당하게 했던 인터뷰 내용을 마지막으로 오늘의 이야기를 마친다.

 

“100년이 지난 뒤에도 내가 또다시 새로운 버전의 <백조의 호수>를 창조한 이유는 차이콥스키의 음악이 단지 박물관에 보존되고 있는 작품이 아니라 현재까지도 끊임없이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불어넣는 살아있는 예술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였다. <백조의 호수> 탄생 100주년과 차이콥스키의 불후의 천재성을 기념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이 어디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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