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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Dec 28. 2021

모두가 망할 거라고 비웃던 영화를 만들겠다고 나서,

전 세계가 열광하는 블록버스터의 거장으로 우뚝 서다.

1944년 미국 캘리포니아주(州) 머데스토에서 태어났다. 참고로 머데스토는 미국에서도 높은 생활비 외에 높은 실업률을 보이며 긴 통근시간과 높은 범죄율 때문에 미국에서 살기 어려운 도시 워스트 10에도 자주 들어갔던 도시로 그다지 유복한 생활은 하지 못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어려서부터 영화나 만화에 열중하는 SF마니아였다. TV에서 방영된 옛날 영화나 활극은 물론 만화책을 좋아했다. 특히 TV 연속 활극 시리즈를 좋아했는데, 모험물이나 탐정물 등을 독립된 그 주의 스토리이지만 쭈욱 이어나가는 방식의 장편영화 형태의 일종으로, 이 방법은 나중에 그가 그의 작품을 제작하는데 그대로 활용되어 옛날 추억의 오마쥬 편집 방식으로 사용되었다.

 

고교시절에는 카 레이싱과 B급 SF 드라마에 빠져있었다. 당시만 해도 영화감독이 되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으며, 장래희망은 막연하게 카 레이서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1962년 고등학교 졸업 직전 교통사고를 당하게 되면서 그 꿈을 접고 뜬금없이 USC 영화학과(School of Cinematic Arts,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에 입학하게 된다.

미국의 영화감독이자 프로듀서, 각본가. 대표작으로는 《스타워즈》와 《인디아나 존스》시리즈가 있다. 두 작품의 프랜차이즈의 창작자로 억만장자의 대열에 올라섰으며 우리들에게 통칭, 조지 루카스라고 불리는, 조지 월턴 루카스 주니어(George Walton Lucas, Jr.)의 이야기이다.

루카스필름과 인더스트리얼 라이트 & 매직 그리고 스카이워커 사운드 등의 설립자이기도 하다. 2012년 루카스필름을 월트 디즈니 컴퍼니에 매각하기 전까지는 루카스필름의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였다. 2016년 11월 기준으로 그의 순자산은 47억 달러라 추산된 바 있다.

 

흔히 블록버스터 3대 거장 중 한 명(스티븐 스필버그, 제임스 카메론)이라 불리며, 현재 할리우드 최고의 부자들 중 한 명이지만, 영화를 감독(연출)하는 재능은 없다는 객관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세계관을 짜는 능력과 영화를 프랜차이즈 화하는 데 엄청난 재능을 갖고 특화했으며, 오늘날 할리우드의 특수효과와 CG 발달에 크나큰 영향을 끼친, 영화계 기술 혁신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다.

당시 동기들이 저 유명한 스티븐 스필버그와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였다. 현재의 지명도로 보거나 연출력으로 보면 어이가 없긴 하지만, 당시 학교에서 차기 유망주로 가장 주목을 받았던 것은 이들 중에서 바로 조지 루카스였다. 학창 시절, 단편 《전자 미로 THX 1138 4EB》를 원작으로 한 《THX 1138》(1971년)의 각본을 쓰고 감독하였다. 이 영화로 많은 상을 받고 워너 브라더스로부터 장학금까지 받게 되며 주목을 받게 된다.

 

1967년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프랜시스 코폴라의 <피니안의 무지개>(1968)에서 인턴으로 영화일을 시작한다. 그렇게 절친이던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와 함께 ‘아메리칸 조에트로프(American Zoetrope)’란 영화 회사를 설립하고, 대학 시절 좋은 평가를 받았던 습작 《THX 1138》을 극장판으로 다시 제작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처절하게 망해버리며 야심 차게 차렸던 회사, ‘아메리칸 조에트로프’를 좌초시키는데 큰 일조를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아메리칸 조에트로프를 나와서 만든 차기작 《청춘 낙서(American Graffiti)》(1973년)는 흥행과 비평 양면에서 엄청난 흥행을 거뒀다.

자신의 10대 시절인 1960년대 초 캘리포니아 머데스토에 영감을 받고, 새로 설립한 루카스필름이 제작한 이 영화는 비평과 흥행 모두 성공을 거두며 아카데미상에서 작품상을 포함한 5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단 75만 달러의 제작비로 무려 1억 2천만 달러의 수익을 올리게 된다.


장편 데뷔작의 실패로 회사도 말아먹고 잊힐 뻔했던 조지 루카스는 기사회생에 성공한다. 코폴라와 헤어져 자신의 회사인 루카스필름을 차리게 된 것도 바로 이때였다.

 

이 무렵부터 루카스는 자신이 머릿속에서 상상하고 있던 스페이스 오페라 영화를 만들 구상을 하기 시작한다. 그는 《청춘 낙서》를 통해 벌어들인 돈을 모두 쏟아부어 특수효과 팀인 ILM을 만들었고, 《스타워즈》를 만들기 위한 구상을 시작했다.

 

조지 루카스는 동화, 신화, 속편 영화들과 사회심리학 등을 철저하게 연구한 뒤에 《스타워즈》의 구체적인 구상에 들어갔다. 시작은 파시스트 악당이 세계를 지배하려 하고 민주적인 시민이 영웅이 되어 굴복시킨다는 공식을 따르는 평범한 스페이스 오페라였지만, 조지 루카스의 야심은 그 이상이었다.

하지만 스타워즈의 제작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조지프 캠벨의 저서 <영웅의 여정>에 언급된 일화에 따르면, 조지 루카스는 어린이 영화 대본 집필에 착수하면서 현대의 동화로 만들어 보겠다고 생각했다는데 정작 주변의 반응은 ‘너 뭐 하는 거냐? 이런 거 말고 사회적으로 의미가 있는 작업을 해라.’는 식으로 냉랭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조지 루카스는 진행 중이던 <지옥의 묵시록> 작업을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에게 넘기고, 자신은 《스타워즈》제작에 착수했지만 한동안 표류 상태로 영화 각본을 몇 번이고 뜯어고치기만 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조지프 캠벨의 저서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을 접하고 그 책에 자신이 쓰고 싶었던 내용이 있음을 깨닫고 조지프 캠벨의 다른 책들도 읽으면서 본격적으로 초점을 잡고 집필에 착수했다고 한다.

 

그러나 완성된 결과물인 시놉시스는 유치하기 짝이 없고 대본은 상당히 읽기 어렵게 쓰여 있어서 당시 모든 영화사에서 퇴짜를 맞았고, 오직 20세기 폭스에서 인맥을 통해 겨우겨우 쥐꼬리만 한 돈을 얻어낼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스타워즈란 영화는 생각 이상으로 엄청난 돈이 드는 프로젝트였고, 20세기 폭스에게 조금만 더 돈을 꿔달라고 조를 때마다 루카스 얼굴에 주름만 늘어갔다. 당시 제작진들의 증언에 따르면, 조지 루카스는 너무나도 수척하고 무기력해져 있어서 몇 주 동안 그 누구와도 말을 하지 않을 때도 있었다고 한다. 심지어 본인 말로도 이때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 실어증에 시달렸다고 전해진다.

 

그렇게 겨우겨우 완성한 스타워즈의 개봉 당일에도 본인은 이 영화가 망할까 두려워 흥행성적을 체크할 생각도 못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부인의 설득으로 함께 저녁을 먹으러 나갔는데 극장 앞에 장사진을 친 사람들을 보고 깜짝 놀라서 ‘도대체 무슨 영화를 보러 사람들이 이 난리를 피우지?’하고 궁금해서 가까이 가보니 《스타워즈》를 보러 온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참고로 내부 시사회 당시,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와 브라이언 드 팔마를 포함한 대부분의 영화 업계 종사자들이 비웃었지만, 절친 스티븐 스필버그만은 엄청난 대박이 될 거라고 예견했다고. 거기에다 당시 <미지와의 조우>의 음악 담당이던 그 유명한 작곡가 존 윌리엄스를 소개해주기까지 했다.

 

《스타워즈》의 제작비가 예상을 넘어서자, 조지 루카스는 제작사 20세기 폭스와 새로운 계약을 맺는다. 연출료 일부를 포기하는 대신 《스타워즈》의 캐릭터 상품과 속편의 권리를 따낸 것이다. 조지 루카스의 생각은 간단했다.

 

SF영화팬들은 우주선 모형이나 로고가 새겨진 T셔츠도 모으니까, 어느 정도 부수입을 올릴 수 있으리라는 계산이었다. 당시 20세기 폭스의 이사진들이 망할게 뻔한 이런 프로젝트에 손댄 것 자체가 멍청한 짓이라며 스타워즈 제작을 허락한 사장을 가루가 되도록 깠고, 어차피 망할 영화니 투입되는 돈이나 줄여보자고 판단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1977년 이래 《스타워즈》 관련 상품의 수익은 45억 달러를 넘었고, <보이지 않는 위험>을 다시 시작하며 펩시사, 장난감 회사 헤즈브로, 레고 등에 이미 어마어마한 판권료를 받기로 계약했다. 블록버스터를 만들어 바람몰이를 하고, 관련 상품을 팔아먹는 할리우드의 불가사리 전략은 조지 루카스의 제작비 때문에 코너까지 몰렸던 불가피한 작은 선택에서 비롯된 것이다.


조지 루카스는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이상이 담긴 《스타워즈》를 반드시 영화로 완성시키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스타워즈》가 흥행에서 실패한다면 폭스는 절대로 속편을 만들지 않을 것이고, 권리를 넘겨주지도 않을 것이 뻔했다. 조지 루카스는 자신이 판권을 소유해 이후 어떻게 되더라도 저예산 영화일지라도 애초 구상대로 《스타워즈》를 완성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의 걱정과는 달리 《스타워즈》 시리즈는 대성공을 거두었고, 할리우드는 《스타워즈》의 공식을 따라갔다. 블록버스터가 시작됐고, 예술보다 산업과 경영을 중심에 놓았고, 영화 자체보다 마케팅과 관련 상품에 열정을 쏟았다.

할리우드의 주요 타깃은 10대와 20대 초반으로 낮춰졌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단순한 이야기 구조와 볼거리에 치중하기 시작했다. “블록버스터는 이미 <국가의 탄생>에서 시작되었고 할리우드가 내 영화를 베끼는 것”이라고 해도, 태풍의 중심은 분명 루카스와 스필버그였다.

 

어쨌든 20세기 폭스사가 1,100만 달러의 제작비로 계약한 조지 루카스의 《스타워즈》는 SF영화 역사만이 아니라, 할리우드의 물줄기까지 바꾸었다. <제국의 역습>, <제다이의 귀환>의 시나리오를 함께 쓴 로렌스 캐스단은 “그것을 조지의 실수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그와 스필버그가 모든 스튜디오들의 영화에 대한 개념을 바꿔놓았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작품 자체보다 비즈니스가 더욱 중요해진 것”이라고 말한다. 조지 루카스의 실수인지 혜안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그의 시도가 할리우드의 지각변동을 가져온 원인인 것은 분명하다는 점이다.

절친 스티븐 스필버그와 함께

스타워즈의 후속작인 《제국의 역습》부터는 감독으로서의 일이 너무나 힘든 것임을 느꼈다며 감독직을 선배 감독 어빈 커슈너에게 맡기고 프로듀서로서 참여했다. 하지만 스타워즈 월드의 크리에이터로서 루카스의 영향력은 너무나도 엄청난 것이라, 사실상 감독보다 더 많은 일을 했다.

 

하지만 오리지널 3부작을 만들면서 조지 루카스는 자신이 생각하는 이미지를 영상으로 옮길 수 없다는 것 때문에 혼란스러웠다. 상상 속의 외계인을 마음대로 만들 수 없었고, 매트 촬영은 분명히 가짜처럼 보였다. 결국 조지 루카스는 나머지 3부작을 만들 조건이 성숙할 때까지 기다린다. 아니, 스스로 조건을 만들어낸다. ILM은 아카데미에서 시각효과상을 14번, 기술상을 12번 수상하며 할리우드의 특수효과 기술을 선도했다. 그리고 “ILM이 디지털 티 렉스를 만들어냈을 때… 드디어 지난 10여 년간 추구해온 수준에 도달했다는 것”을 알았고, 그렇게 기다리던 총 9부작이던 《스타워즈》의 4번째 작품 <보이지 않는 위험>의 준비를 마친다.

 

1994년 11월 조지 루카스는 3명의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돌아와 서재로 갔다. 그는 《스타워즈》를 쓸 때부터 가지고 있던 노란색 바인더에 <보이지 않는 위험> 시나리오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1996년 초 루카스는 ILM의 핵심 멤버들을 불러 무려 3500장의 스토리보드를 보여주었다. 전투 장면, 레이싱 장면, 행진 장면은 물론 수천 명의 캐릭터 모습까지 들어 있었다. ILM의 사람들은 거의 혼비백산했다. 하지만 조지 루카스는 모든 일을 철저하게, 차근차근 진행했다. 모든 캐릭터와 디자인은 직접 체크하며 완성했고 모형 제작까지 관여했다.

 

하지만 조지 루카스는 예술가보다, 사업 전체를 틀어쥐는 비즈니스맨 같은 느낌이 더욱 강하다. 조지 루카스는 한 편의 영화를 만드는 과정 전체를 관장하는 것은 물론 마케팅과 배급에도 전권을 쥐고 있다.

 

《스타워즈》를 제외하고 그의 커리어에서 대작이라 불리는 영화는 바로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가 있다.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는 스티븐 스필버그와 합작으로 만들어진 영화로 감독은 스필버그가, 프로듀서는 루카스가 맡았다. 사실 인디아나 존스의 아이디어와 스토리는 루카스가 혼자 만들었다고 한다. 하와이의 모래사장에서 둘이 모래성을 만들면서 놀고 있는 중 루카스가 인디아나 존스 이야기를 꺼냈고 스필버그가 단숨에 인디아나 존스를 영화로 제작하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인디애나 존스>의 시작, <레이더스>

2012년에 오래간만에 제작한 영화인 《레드 테일스》은 엄청난 제작비를 쓰고도 지루한 내용 전개로 흥행도 작품성 평가도 바닥을 달리게 되었다. 이 영화의 실패 이후, 영화 제작에 흥미를 잃었는지 ILM과 루카스아츠 등 계열사 일체를 포함한 자신의 제작사 루카스필름과 스타워즈 프랜차이즈, 인디아나 존스 프랜차이즈를 어마어마하게 저렴한 가격으로 평가되는 4조 원에 디즈니에 팔았다. 특히, 회사를 팔아서 얻은 4조 원을 모조리 사회 기부했다. 판권을 매각한 가장 큰 이유는, 어처구니없게도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세금을 피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본업이 영화감독인데 영화감독 일을 빼고 다 잘한다는 괴악한 평가를 받고 있다. 스타워즈 시리즈의 시작이자 그를 돈방석에 올려준 에피소드 4도 루카스가 감독, 편집한 1차 편집본은 차마 눈 뜨고 못 볼 정도로 조악한 물건이어서 전문 편집자 2명을 고용하여 간신히 다시 짜 맞춘 작품임은 이미 널리 알려진 뒷이야기이다. 연출 외에 각본을 스스로 짜는데, 대사가 상당히 단순하고 캐릭터들 관계가 어긋나는 부분들이 많아서 감독으로서의 자질이 의심받기도 한다.

하지만, 스타워즈 시리즈와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를 기획한 것에서 보이듯이 루카스는 사람들이 흥미를 느낄만한 스토리와 설정을 만드는 데는 그야말로 천재적인 재능을 가졌다.

그러나 이를 각본으로 구체화하는 능력이 없다는 것이 문제. 그래서인지 오더 66장면, 포드 레이스, 3편 마지막 장면, 거의 모든 라이트 세이버 전투들 등 루카스가 작가로만 활동했던 프리퀄들에서 가장 좋은 평가받는 장면들은 캐릭터들이 말없이 몸으로 보여주는 스펙터클이거나 분위기를 장악하는 한 두 마디 명대사인 경우가 많다.

 

90년대 들어서 루카스는 디지털 상영관 극장과 가정에서 영화를 디지털 다운로드 형식으로 본다는 아이디어를 최초로 현실화하였다. 즉, 영화 산업을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넘긴 장본인이다.

 

또한 루카스는 화질-음질에 대한 성향도 까다로워서 스카이워커 사운드를 설립하여 극장에서 보다 현실감 있게 소리를 전달하기 위해서 스테레오 시스템을 완벽하게 갖춘 극장에 THX라는 인증마크를 주는 THX 시스템을 만들었다. 참고로 THX 시스템이 적용된 첫 영화가 바로 <제다이의 귀환>이다.

 

THX 시스템은 1999년에 <보이지 않는 위험>을 위한 ‘돌비 디지털-서라운드 EX’라 불리는 새로운 디지털 사운드 시스템을 만드는 기초가 되었고, 이 기술은 홈씨어터 기기의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조지 루카스의 좌우명은 ‘열심히 일해라. 그리고 너 자신을 믿고 인내하라.’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말고 너 자신의 소리를 듣고 따라라. 그럼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다. 그것이 구식의, 진짜 미국인이다.”

 

모두가 그의 구상을 비웃고 완성되지 못한다고 할 때에도 그는 자신의 연출비를 깎아 다음 영화를 만들 수 있는 판권과 캐릭터 상품 권리를 보장받는 조건으로 영화 투자를 조금이라도 더 해달라고 영화사에 매달렸다. 나중에 그것이 대박이 나서 자신을 억만장자로 만들어줄 것이라는 도박이 아닌, 자신이 이루고자 했던 영화를 완성하고 싶다는 일념 하나에서 나온 구차하기 그지없는 협상이었다. 그러한 경험을 하고 난 조지 루카스에게는 확고한 믿음이 있다.

 

“인생에는 자신이 받아들여야만 하는 임무나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수행하기 위해서 힘든 일과 자기희생, 우정, 충성과 고상한 목적을 이루어내야 한다.”

 

그것은 바로 제다이가 되기 위해 먼 길에 나선 루크와 아나킨이 겪어야 했던 세월에 다름 아니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는 《스타워즈》를 만들 수 있는 기반이 되었던 청춘영화 《청춘 낙서(American Graffiti)》를 만들며 그가 영화사의 업적에 남을만한 일을 한 가지 한 것이 있다. 바로 엔딩 크레딧에 모든 제작진 이름들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전까지는 크레딧이 중요한 사람들만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이 영화에서 그는 모든 제작진 이름들을 올려주게 된다. 그가 없는 제작비로 힘들게 만든 영화였기에 제대로 돈을 줄 수 없었던 제작진들에게 감사의 뜻으로 그들의 이름을 전부 올리게 된 것이 그 계기였다. 그게 영화 만드는 모든 인물들의 고마움과 노고라는 좋은 의미로 번지면서 현재의 엔딩 크레딧이 되었다.

사실 조지 루카스는 어느 모로 보나, 천재가 아니다. 《스타워즈》시리즈의 제작자 릭 매컬럼은 “루카스는 평균적인 비전을 가지고 있다. 인디아나 존스《스타워즈》의 엄청난 성공이, 오히려 그를 혼란에 빠트릴 정도로”라고 말한다. 조지 루카스의 사춘기는, 자전적인 영화 <청춘 낙서>의 주인공과 똑같았다. 로큰롤과 자동차, 기계에 열광하고 여자애들 뒤꽁무니를 쫓아다니던 시절이었다.


스스로 ‘난 참 바보 같았다’라고 말할 정도로. 당시 조지 루카스는 영화에는 별 관심이 없었고, 단거리를 질주하는 자동차 경주에 열중할 뿐이었다. 심각한 사고는 그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91년 사망한 아버지와 조지 루카스의 관계는, 적이었지만 결국 포용하고 같은 길을 걷게 되는 《스타워즈》의 루크와 다스 베이더의 관계에 투영돼 있다. 어린 시절의 조지 루카스는 아버지를 싫어했지만, 결국 세상에 대한 태도는 아버지를 쏙 빼닮았다. 할리우드, 도박꾼, 은행가, 법률가들을 싫어하는 이유는 아버지의 보수주의의 영향이고, 탁월한 재정 감각 역시 아버지에게 물려받았다.

 

처음 영화 천재들 사이에서 인정받은 단편영화를 첫 장편영화로 만들었지만, 폭망 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그 처녀작이 SF 감독이라는 꿈을 놓치지 않게 해 주었다. 그래서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청춘영화 역시 그의 방탕했던 젊은 날을 그대로 스크린에 옮겼다. 당시 무명배우였던 인디아나 존스로 더 유명한 해리슨 포드는 그때부터 조지 루카스의 페르소나 역할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평생 꿈이었던 SF 대작 《스타워즈》를 완성하고 만다.


지금은 다 완성되었지만, 그의 머릿속에서만 있던 총 9부작 중에서 4,5,6편 만을 먼저 개봉하고 나서 그는 그 여세를 몰 수도 있었지만, 자신이 구상한 모든 것이 구현되는 기술이 완성되기까지인 1990년대까지 기다렸고, 기술력을 갖추고 나서 1,2,3편을 시작으로 나머지 6편을 완성시킨다. 그에게 《스타워즈》는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도구가 아닌, 평생에 걸쳐 완성시키고 싶었던 유일한 자신의 꿈이었던 것이다.

당신에게 그러한 꿈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당신이 하고 싶었던 것, 되고 싶었던 것, 그래서 궁극적으로 당신이 이루고자 했던 것. 하지만 당신은 자신의 성적이 안된다고, 집안 형편이 밀어줄 수 없다고, 혹은 그게 돈이 안된다고 어려서 치기 어린 꿈이었을 뿐이라며 접었을지도 모르겠다. 조지 루카스가 억만장자가 되기 위해 영화를 했다면 그는 지금의 전설이 되어 있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이루고 싶은 것을 끝까지 해내기 위해 노력해왔을 뿐이다. 부와 명예는 그가 그 꿈을 좇는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그에게 딸려온 것이었다.

 

당신에게도 당신의 꿈을 위해 당신이 정말로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인생을 걸 수 있을만한 용기와 배짱이 남아 있기를 바란다. 정년퇴직을 65세에 한다고 해도 100세 인생이면 35년을 더 살아야 한다. 대개 회사에 오래 근속했다고 하는 이들이 30년이면 어마어마하게 오래 일했다고들 한다. 요즘 공기관이 아니고서는 60을 넘기기도 어렵다고 한다.


그렇다면 당신이 잘할 수 있는 당신이 하고 싶은 그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어려서부터 꿈꿔왔던 것일 수도 있고, 당신이 우연치 않게 들어선 지금의 직장경험을 통해 전문가가 된 분야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그것에 당신의 꿈을 담아내고 싶은가이다.

 

당신의 꿈은 지금 어디를 향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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