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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술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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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Dec 29. 2021

술의 기원 - 2

술을 본격적으로 마시기 전에

지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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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도 제조방식에 따라 숙취에 영향을 미친다?

기본적으로 증류주 계열은 숙취가 적은 편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그 까닭은 증류 과정에서 불순물이 크게 줄어들기 때문이다. 술에는 우리가 잘 아는 에탄올만 들어있는 것이 아니라 메탄올, 프로판올, 부탄올, 펜탄올 등의 다른 ‘1가 알코올’과 ‘2가 알코올’ 등도 미량이지만 포함되어 있다.


에탄올이나 부탄올 같은 짝수 알코올들은 비교적 숙취가 덜하고 신체에 가해지는 데미지도 적지만 메탄올로 대변되는 홀수 알코올은 숙취가 심하고 데미지가 큰 편이다. 화학을 좀 공부했던 이라면 알아듣겠지만, 증류 과정에서 이러한 물질들은 그 수치가 극적으로 줄어드는 양상을 보인다.

 

프랑스 속담 중에 “너무 취하면 기억이 빠져 죽는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과학적으로도 근거가 있는 말이다. 소위 말하는 ‘필름이 끊기는 현상’(블랙아웃 현상)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다 보면 알코올성 치매가 온다는 것은 이미 알코올 중독 연구자들에게는 아주 기본적인 사실이 되어 버렸다.

 

술을 마셔보지 못하거나 술을 물처럼 마시거나.

아메리카 원주민들 중 이누이트를 포함해 북아메리카에 거주하던 원주민들의 경우 술 문화라는 것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이들은 농경보다는 주로 수렵 생활을 해서 술을 만들 수 있는 재료를 구하기가 쉽지 않은 데다 이들이 거주하던 지역의 기후가 냉한대 기후라서 술을 발효시킬 온도를 유지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술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음주 문화 자체가 없었기 때문인지, 신대륙에 백인이 진출하며 교역품으로 가져온 술을 처음 접했을 때 그것을 ‘불-물(fire water)’이라 부르며 남용하던 그들은 몸은 망가져 버리고 신세를 망치는 이들이 제법 있었다 한다.

 

주변 환경 때문에 신선한 물을 마시기 힘든 경우에 물 대신 마시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몽골 같은 사막에서는 오아시스의 물은 기생충 때문에 마실 수 없고, 가축의 젖은 오래 보관하기 힘들었기 때문에 마유주같이 젖으로 담근 술을 마시기도 하였고 지대의 특성상 물에 석회가 섞여있는 경우가 많던 유럽에서는 맥주를 물 대신 마시기도 했다, 라는 썰이 있었으나 술을 좋아하는 주당들이 흘린 루머이고 진실은 좀 다르다.


마유주의 기원을 따져보면 다른 발효음식들처럼 술로 마시기 위해 들고 다녔다기보단 젖을 보관해둔 것이 자연스럽게 발효가 되면서 술로 된 것이라는 설이 오히려 자연스럽다. 물 대용으로 처음부터 술로 만들었다고 보기에는 그 분량도 그렇고 물처럼 마실 술이라면 어차피 액체이기 때문에 물이 훨씬 더 편하기 때문이다.

 

독일과 같이 맥주로 유명한 유럽의 지역들은 석회 섞인 물이 많은 지역적 특성 때문에 맥주가 발전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매우 많다고 하는 설도 근거가 박약하다. 중세 유럽에서는 실제로 귀족이든 평민이든 물도 많이 마셨다. 식사 때 맥주를 마신 이유는 첫 번째로는 일종의 ‘액체 빵’으로서의 섭취를 통한 영양 공급이 주목적이었으며, 두 번째는 맛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술의 가장 중요한 재료는 당연히 좋은 물이라는 점도 그러하다. 이후에 맥주를 구체적으로 분석할 때 말하겠지만 유럽의 맥주 제조지로 유명한 곳들은 수질이 좋은 지역인데 같은 위도에 위치한 다른 대륙에도 물이 좋아 맥주가 맛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선원들의 경우는 모든 음식물을 장기 보관해야 하는데 순수한 물은 금방 썩고 마실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렸기 때문에, 실제로 장기 보관을 위해서 물 대신 술을 마셨다고 한다. 또한 선원들에게는 고립되고 힘겨운 환경 때문에 술을 지급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때문에 뱃사람에 대한 선입견 중에는 늘 술냄새 풍기는 저급한 사람들이라는 직업적 인식이 유럽에서는 일반적이 것이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은 술을 기어코 만들어낸다.

마실 물과 곡물이 많이 충분한 축복을 받은 환경에서는 남아도는(?) 재료들로 인해 자연스럽게 술을 담가 마셨다. 술 마시는 걸 금지시키면 몰래 마실 정도로 일반화되었다. 어떤 상황에서든 술을 만들어 마시겠다는 인간의 노력은 극한 상황에서도 결코 포기를 몰랐다. 없으면 만든다는 불굴의 정신으로 술을 제조하는 양상을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는데, 특히, 죄수가 감옥에서 부식을 빼돌려 요강에다 술을 빚었다던가, 군대에서 과일이나 잼을 이스트랑 함께 병에 집어넣고 공기구멍을 뚫은 뒤 트럭 엔진 주변에 놔둬 발효시켜 만든 소위 정글 주스(jungle juice)를 마셨다던가, 잠수함 어뢰에서 빼낸 알코올을 압축한 빵으로 걸러 메틸알코올을 제거해 마셨다는 등의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술을 만들고 기어코 마셨다.


그래서 술은 그저 마시고 취하는 물건이 아니라 음식에도 자연스럽게 가미된다. 국물을 내는 요리에서 술을 넣고 끓이면서 재료의 잡내를 에탄올과 함께 날리는 것은 이제 요리의 기본으로 자리 잡았고, 술의 향을 불과 함께 날려 요리에 입히는 식으로 사용하기도 하고 포도주나 맥주를 그대로 국물 베이스로 삼기도 한다.

 

한국 전통 술 문화는 어떻게 자리 잡혔나?

‘술을 마시니 근력이 생기고, 묵은 병이 낫는다’고 하여 음주를 권장함은 옛 기록에서 흔히 보이는 주당들의 표어 같은 것이었다. 성호 이익의 『성호사설(星湖僿說)』에 <주재(酒材)>의 노인을 봉양하고 제사를 받드는 데에 술 이상 좋은 것이 없다고 하는 내용이나, 이덕무의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에 <이목구심서(耳目口心書)>의 ‘기혈(氣血)을 순환시키고 정을 펴며 예(禮)를 행하는 데에 필요한 것’이라 언급한 내용은 모두 술을 인간 생활에 필수적인 요소라고 긍정하며 언급한 내용에 다름 아니다. 그만큼 우리 민족은 술에 대해 용인의 범위가 컸고, 그만큼 선호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설날 아침에 차례를 마치고 마시는 찬술, 도소주(屠蘇酒: 나쁜 기운을 물리친다고 한다.)를 들고, 보름에 귀가 밝아진다는 이명주(耳明酒)를 마시며, 또 어른께 만수무강을 빌며 술로 헌수(獻壽)하는 것도 모두 건강과 장수를 바라던 뜻에서 비롯된 것이다.

 

술을 부정적으로 보는 이유는 술이 사람을 취하게 하여 정신을 흐리게 하기 때문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주정이 심하여 몸을 해치고 가산을 탕진하기도 하고, 임금으로서 주색에 빠져 나라를 망치는 일도 있었기 때문에 ‘망신주(亡身酒)’ 또는 ‘망국주(亡國酒)’라는 말이 생기기도 하였다.

 

우리나라 전통적인 술은 크게 탁주·청주·소주의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탁주는 예로부터 주로 농군들이 마시던 술이라 하여 ‘농주(農酒)’라고도 하고, 즉석에서 걸러 마신다 하여 ‘막걸리’, 그 빛깔이 희다고 하여 ‘백주(白酒)’라고도 한다.

 

청주는 탁주에 비하여 더 정성을 들여 빚은 고급술로 ‘약주(藥酒)’라고도 한다. 소주는 고려 이후 우리나라에 널리 보급된 술로 재래주 가운데 가장 독한 술이다. 그밖에 이양주(異釀酒)나 향양주(香釀酒) 등의 갖가지 특별한 술이 있었다.

 

한국에서는 어떻게 술을 만들기 시작했을까?

농경문화의 발달에 따라 곡물 생산량이 늘어나자 곡물로 술을 빚는 방법을 개발하게 되었다. 곡물로 술을 만들려면 우선 곡물의 녹말을 당분으로 바꾸고, 이것을 다시 알코올로 분해하는 두 단계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첫 단계인 녹말을 당분으로 바꾸는 반응은 처음에는 사람의 침에 의하여 행하여졌다. 침 속에는 전분 분해효소(澱粉分解酵素)인 프티알린이 있어 곡물을 입 속에 넣고 씹으면 녹말이 당분으로 분해된다.

 

조선시대 때, 유구(琉球)에 표류되었다 돌아온 제주도 사람이 유구의 풍속을 말하면서 “그곳에는 탁주가 없고 청주만 있다. 쌀을 물에 담갔다가 여자로 하여금 입에 넣고 씹게 하여 나무통에 뱉어내어 술을 만든다.”라고 하였다. 세조 때에 우리나라에 온 유구의 사신 보수고(普須古)는 이 술을 ‘일일주(一日酒)’라 하였고 『지봉유설(芝峯類說)』에서 미인이 씹어 빚는다는 뜻에서 ‘미인주(美人酒)’라 하였다. 오늘날 이 미인주는 주로 열대지방에서 만들어졌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위나라의 역사책인 『위서(魏書)』에서는 “물길국(勿吉國: 숙신·읍루)에서는 곡물을 씹어서 술을 빚는데 이것을 마시면 능히 취한다.”라고 한 것으로 미루어 고대 우리나라에서도 미인주와 유사한 술이 있었다고 짐작된다. 중요한 것은 ‘미인’이 아니라 쌀을 씹어 발효를 하는 방법을 활용하여, 이미 술 제조방식으로 자리잡기 시작하였다는 점이다.

 

삼국시대의 술 문화는 어땠을까?

고구려의 주몽신화(朱蒙神話)에서는, 유화(柳花)가 술에 만취된 상태에서 해모수(解慕漱)와 잠자리를 같이 하여 주몽을 낳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부족 국가 시대에 영고·무천·동맹 등과 같은 제천의식 때에 춤추고 노래하며 술을 마시고 즐겼다고 하니, 이때에 술을 빚은 것은 확실하지만 그 술의 종류와 성격은 알 길이 없다.

 

『삼국사기』 고구려 대무신왕 11년조에 ‘지주(旨酒)’라는 말이 나오고 『위지(魏志)』 「동이전」에서는 “고구려 사람은 발효식품을 잘 만든다.”라고 하였으며, 중국의 유명한 곡아주(曲阿酒)의 전설에도 고구려 여인의 사연이 얽혀 있어 구체적인 것은 알 수 없으나 중국과 비슷한 수준의 술 빚는 제조기술이 이미 발달되어 있었던 것만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또한 당나라의 시인이 “한 잔 신라주의 기운, 새벽바람에 쉽게 사라질 것이 두렵구나.”라고 읊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당시 우리나라 술의 명성이 중국에까지 알려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백제 사람 수수보리는 일본 왕 오진(應神) 때에 술 빚는 방법을 일본에 전하였다고 한다. 이때 일본의 왕은 “수수보리가 빚어준 술에 내가 취했네. 마음을 달래주는 술, 웃음을 주는 술에 내가 취했네.”라고 노래하였다. 당시 일본 문헌인 『연희식(延喜式)』에 실린 “술 여덟 말을 빚는 데 쌀 한 섬, 누룩 너 말, 물 아홉 말을 쓴다.”라고 한 기록으로 미루어 보아 수수보리가 전한 술도 누룩을 이용한 술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일본의 「쇼소원문서(正倉院文書)」에 청주·탁주·술지게미·예주(禮酒: 감주와 비슷한 술) 등이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삼국시대의 우리나라에도 이러한 종류의 술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다음 편은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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