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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Feb 04. 2022

도저히 상식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파격적인 전략으로..

전 세계가 두려워하는 로마군단을 공포에 떨게 한 전설의 장군이 되다. 4

지난 이야기.

https://brunch.co.kr/@ahura/755


한니발은 시리아로 가서 군사고문이 되었지만, 그곳에서도 일은 수월하게 풀리지 않았다. 처음 그를 맞이할 때까지만 해도 시리아 왕인 안티오코스 3세는 로마와의 전쟁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한니발을 귀빈 대접으로 환영했다.


그러나 안티오코스 3세는 정작 지상전의 명장인 한니발에게 해군 지휘를 맡기고 자신이 육군을 지휘하겠다고 전장에 나갔다고 양쪽 모두 로마군에게 대패하고 만다. <리비우스의 로마사>의 기록에 의하면, 안티오코스 3세는 처음에 한니발에게 독립된 군대를 주어 용병처럼 그의 도움을 받으려고 했었다. 그러나 아에톨리아 출신 신하였던 토아스가 로마를 상대로 승리하게 되기라도 하면 한니발은 왕에게 그 군대를 가지고 반기를 들 것이라며 반대했다.

결국 그 말에 현혹되어 안티오코스 3세는 계획을 철회했다. 실제로 당시 망명한 타국 장군이 군대를 지원받아서 그 나라에 반기를 드는 일이 전혀 없었던 것도 아니었던 관계로 한니발 정도라면 위협이 되기엔 충분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티오코스 3세의 결정적인 패착은, 지상전의 귀재였던 한니발을 해군에 배속시켜 그의 탁월한 지휘력을 무력화시켜버렸다는 것이었다. 물론 한니발이 지상전에서만 탁월하고 해상전에서 지휘력이 부족하거나 한 수준은 아니었다. 실제로 그는 훗날 비타니아 해군을 지휘하여 로마 해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두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주특기는 지상전이고 해상전은 부전공쯤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굳이 그와 같은 지상전의 불패신화 전설을 해군 지휘로 돌린 것은 어리석은 선택이라 비난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실제로 한니발이 시리아로 가서 군사를 지휘한다고 하자, 로마는 그를 두려워해서 스키피오의 동생을 사령관으로 뽑고 스키피오 본인을 동행시켜 파병할 정도로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 하지만 그렇게 만반의 준비를 하고 최정예를 끌고 와 맞닿뜨린 상대는 한니발이 아닌 안티오코스 3세였다.


안티오코스도 평균치는 되는 전투 지휘의 경력을 갖춘 유명한 왕이었고 인도 원정까지 직접 지휘했던 경험이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상대가 한니발의 전투를 교과서로 모든 전술과 전략을 흡수한 로마 역사상 가장 훌륭한 장군으로 뽑히는 스키피오와 무적 로마 군단이었다는 것이 그의 결정적인 판단 미스였고 불운이었다.

 

안티오코스 3세가 로마군과 대적하기 위해 준비했던 전력 자체가 부족한 것도 아니었다. 그는 마그네시아 전투 직전 한니발에게 그의 군대를 보여주며 조언을 구했다. 왕이 이 정도라면 로마군과 맞설 수 있겠냐고 한니발에게 묻자, 면밀히 살펴본 한니발은 “로마 놈들이 탐욕스럽지만 이 정도면 충분하고도 남는다.”라고 대답해 주었다.


안티오코스의 군대는 헬레니즘 팔랑크스 보병과, 로마 기병대를 능가하는 동방의 카타프락토이로 구성되어 있었다. 즉, 망치와 모루 전술에 쓸 ‘최강의 모루’와 ‘최강의 망치’를 준비해둔 것에 대한 전투 귀신 한니발의 객관적인 평가였다.

 

그러나 군대의 역량과 별개로 안티오코스 3세의 어설픈 지휘로 인해 셀레우코스군은 패배하게 되었다. 어설픈 지휘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안티오코스 3세가 처음 전투에서 로마군 기병을 격파한 뒤 로마군 보병 대열의 측면을 공격하는 전략의 기본을 무시하고 혼자서 신나 로마군 본진을 공격한 것 때문이다.

그렇게 2천 명 남짓한 수비대에게 반격을 당하자 제대로 싸워보지도 않고 전장에서 달아나버리는 추한 꼴을 보인다. 왕의 뒤를 따르던 카타프락토이 3천 명도 왕이 지휘를 포기하고 도망쳐버리자 그대로 전장에서 이탈해버렸다. 결국 지휘관의 부재에서 오는 혼란으로 인해 셀레우코스 군은 양 날개가 무너져버리면서 포위되고 섬멸당했다.

 

셀레우코스가 패망하자 한니발은 타국을 전전하며 다시 끝없는 도망자 신세를 다시 걷게 된다. 그는 우선 아르메니아로 도망갔다. 그런데 아르메니아 왕이 로마와 강화를 맺자 다시 비티니아로 망명한다. 한니발은 비티니아에서는 능력을 인정받아 장군이 되었고 비티니아 해군을 지휘하여 앞서 언급한 해전에서도 큰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로마의 세력이 어느덧 비티니아까지 미쳤다. 제2차 마케도니아 전쟁에서 활약했던 티투스 퀸티우스 플라미니누스가 비티니아에 망명했던 한니발을 잡기 위해 비티니아로 파견되었다.

 

이것이 원로원의 공식적인 지시를 받은 명령이었는지 플라미니누스의 독단에 의한 것이었는지는 어느 기록을 통해서도 확인할 길이 없다. 왜냐하면 당대에 플라미니누스의 행동이 조금 지나쳤다고 비판한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시 로마의 일에 원로원이 배후로 움직이지 않았을 리가 없다는 지적도 역사학사들에게서는 분분하다. 무엇보다 자신들에게 두려움을 심어줬던 한니발이라는 대상이 살려두어서는 도저히 자신들이 마음의 평안을 찾을 수 없을 것이라는 강박관념이 로마인들에게는 파다했기 때문이다.

결국, 비티니아 왕은 로마의 겁박에 한니발을 넘겨주는 데 동의하게 된다. 한니발을 체포되어 로마에 넘겨지기 전에 사망했다. 한니발이 죽은 정확한 연도와 죽은 이유는 자세히 알려지지 않다.


죽은 시기는 대체로 B.C. 183~181년 사이라고 추정하는데, 가장 신빙성이 있는 유력한 설은 자살이다. 한니발이 자신을 로마에 넘기겠다는 왕의 결정을 들은 직후 마르마라의 해안가에서 독을 마시고 스스로 생을 마감하였다는 일설이다. 그는 죽어가며 이렇게 소리쳤다고 한다.

 

“아, 카르타고여! 나를 용서해 다오!”

 

이처럼 한니발의 죽음에 대한 설은 후대의 인물인 플루타르코스가 특별히 정리할 정도로 로마 시대부터 논란거리였다. 한니발이 죽고 37년 뒤, 로마는 쇠락할 대로 쇠락한 카르타고를 치기 위해 나선다. 그리고 B.C. 146년, 카르타고는 역사 속에서 그 이름을 지우게 된다.


로마군은 도성 안의 모든 남자를 학살하고, 모든 여자와 아이를 노예로 잡아갔다. 심지어 나무와 풀까지 불사르고는 소금을 대량으로 뿌려, 다시는 풀 한 포기 자라지 못할 죽음의 땅으로 만들었다. 그들은 자신들을 구해줄 영웅을 타지에서 억울하게 죽게 만든 대가를 후대에까지 혹독하게 치르고 만 것이다.

한니발 장군의 3D 랜더링 복원 모습


유럽을 중심으로 전 세계의 유명세를 떨쳤던 로마 군단을 공포에 떨게 했던 유일한 명장, 한니발의 전설 같은 삶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전술했던 바와 같이 이 시리즈가 전쟁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한니발의 인생에 대해 집중하였으나 한니발의 인생을 명확하게 읽어내기 위해서는 몇 가지를 확인하고 공부할 필요가 있다.

 

먼저 카르타고가 로마에 비해 정말로 그렇게 찌질하기 그지없는 나라였던 것인가, 왜 그렇게 전쟁의 신, 한니발을 받쳐주지 못하고 바보 같은 짓을 했는지에 대한 의문부터 풀어보자.

 

B.C. 3세기, 카르타고는 지중해 세계의 초강대국이었다. 기원전 8세기에 페니키아 인들이 건설한(‘포에니 전쟁’의 ‘포에니’는 페니키아를 가리킨다) 카르타고는 지금의 튀니지 북쪽 해안의 카르트하다쉬트를 본거지로 해서 북아프리카 지중해 연안 서부, 이베리아, 몰타, 발레아레스 제도, 코르시카, 사르디니아, 시칠리아의 일부까지 지배했다.

당시 카르타고 예상도

오죽하면 서지중해는 “카르타고의 허락 없이는 바닷물에 손을 담글 수도 없다”는 말이 법처럼 통용될 만큼 완벽히 장악하고 있었다. 이들의 탁월한 해양 장악 능력은 무역선을 브리타니아(지금의 영국)와 서아프리카의 황금 해안까지 오갈 수 있게 할 정도로 발전했었다.

 

한편 농업도 발달해, 풍부한 밀 생산량은 무역을 하지 않아도 자급자족이 가능하게 해 주었을 뿐 아니라 상대적으로 빈곤한 유럽 중서부에 수출까지 할 수 있었다. 카르타고는 이런 막강한 국력을 믿고 동지중해까지 판도를 넓히려 했다. 그 시작으로써 서쪽 절반만 지배하고 있던 지중해 중부 시칠리아 섬의 나머지를 손에 넣으려 했다.


그러나 그 시도는 뜻밖에 연이은 암초에 부딪쳤다. 첫 번째는 그리스 국가 중 하나였던 에피루스의 왕이던 피로스였다. 카르타고는 피로스에게 패배하고 물러난다. 그다음 암초로 등장한 것이 로마였다.

 

로마는 B.C. 8세기경에 성립되어 삼니움, 갈리아 등 이민족과 대결해 가며 차차 세력을 넓혔고, B.C. 3세기에 이르러 마침내 이탈리아 반도 통일을 달성했다. 통일의 마지막 장애물은 바로 에피루스의 피로스였다. 그는 동지중해를 기반으로 서쪽을 정벌해 세계를 통일하려고 했다. 그리하여 이탈리아에 상륙해 로마를 매섭게 공격했으나 여의치 않았고, 그다음 원정에서 시칠리아의 카르타고를 무찌르고는 다시 로마와 겨루었으나 패퇴하고 그리스로 돌아갔다가 전사하고 만다.

피로스

피로스가 사라지자 지중해의 패권을 노리는 카르타고의 걸림돌이 사라졌다. 이에 카르타고를 막을 수 있는 세력이라고는 로마 뿐이었다. 당시, 로마의 국력은 카르타고에 비하면 약세였고, 특히 지상전이라면 몰라도 해전에서는 당시의 무적 카르타고 해군에 대적하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할 시절이었다.


그래서 로마 원로원도 동맹을 맺고 있던 시칠리아 동부의 도시들이 카르타고의 침략에서 구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과연 우리가 바다 건너 외국에서 싸워 이길 수 있을까?’하고 무척 망설였다고 전한다. 그러나 결국 원정대가 로마를 출발했고, 이로써 B.C. 264년 로마와 카르타고 사이에 제1차 포에니 전쟁이 시작된다.

 

의외로 카르타고 편이던 시칠리아 도시들이 배반하여 로마 편을 들어주는 바람에 로마군은 시칠리아에서 우위를 점하게 된다. 하지만 로마는 장기적으로 볼 때, 원정 전쟁에서는 해군력의 열세를 해결해야만 한다고 판단했고, 총력을 기울여 새 함대를 건조하게 된다.


당시 카르타고 함대의 규모에까지는 못 미쳤지만, 로마의 새 군함은 적함에 걸쳐 놓고 보병대가 돌격해 공격할 수 있는 적교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이 방식으로 카르타고 해군의 우수한 조함술을 따라잡을 수 있고, 바다에서도 로마의 장기인 백병전을 벌일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실전에서 그 시스템의 효과는 탁월했다. 로마는 B.C. 260년 시칠리아 북부 해안에서 카르타고 해군을 최초로 격파하는 성과를 거두게 된다. 이후 카르타고 본거지에 대한 공격에서는 정작 참패했지만, B.C. 241년, 다시 시칠리아를 무대로 벌어진 공방전에서 결국 승리를 거두게 되면서 제1차 포에니 전쟁은 로마의 승리로 끝난다. 로마는 이로써 카르타고에게 거액의 배상금을 받는 한편 시칠리아 전체를 차지하게 되었고, 여세를 몰아 사르디니아와 코르시카까지 손에 넣는다.


설명하지 않겠다고 했던 제1차 포에니 전쟁에 대해 왜 설명을 다시 하냐고 묻고 싶은가?


그것은 바로 왜 그렇게 한니발이 로마를 멸망시키겠다고 눈에 혈안이 되어 알프스 산맥까지 넘는 집념을 보였는지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강한 해군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제1차 포에니 전쟁에 어이없는 패배를 겪게 되는 과정에서 복수의 씨앗이 뿌려졌다. 전쟁이 한창이던 그때, 한니발에 앞서 시칠리아에서 용병대를 조직해 로마군을 집요하게 몰아붙여, 한때 로마를 패배 직전까지 몰고 갔던 카르타고 장군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바로 ‘하밀카르 바르카스’라고 했는데, 패전 후에 이베리아로 건너가 정복지를 넓히고 은광을 개발하기도 하며 카르타고의 손상된 국력에 어마어마한 보탬이 되었던 인물이었다.


그러던 중, 그가 B.C. 229년 그만 로마의 사주에 의해 허망한 암살을 당하는 일이 벌어진다.

그에게는 세 아들이 있었는데, 그 맏아들이 바로 한니발 바르카스였다. 맞다. 한니발의 아버지가 로마의 음모에 의해 억울한 죽음을 당했던 것이다.

 

하밀카르는 말귀를 제대로 알아듣지도 못할 나이의 어린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네가 자라면 반드시 로마를 멸망시켜야 한다. 신과 아버지 앞에 맹세하거라.”

 

즉, 어린 한니발에게 로마는 아버지가 반드시 멸망시키고 싶어 했던 나라요, 아버지를 죽인 원수나라였던 것이다. 그렇게 맹장으로 성장한 한니발은 B.C. 221년에 26세의 나이로 이베리아의 카르타고군 총지휘권을 손에 넣자, 이베리아 북부를 공략 중이던 로마와는 날카롭게 대치하게 된다.


로마는 지중해 연안의 도시 사군툼을 속령으로 선언하고, 카르타고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러나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던 혈기방장한 나이의 한니발은 사군툼을 공격해서 점령해버렸다. B.C. 218년의 일이었고, 이것으로 제2차 포에니 전쟁의 시작이 되었던 것이다.

 

제1차 포에니 전쟁 이래 본국 카르타고의 국력은 크게 쇠퇴하였다. 그 부분은 이미 한니발도 알고 있었다. 쇠퇴하기는 했지만 기본적인 군사력은 갖추고 있었다는 점을 감안했던 선전포고였다. 그래서 자신의 군대만으로 충분히 로마를 칠 수 있다고 판단할 지점에서 칼을 뽑아 든 것이었다.

한니발 장군

하지만 그가 간과했던 것은 전쟁이 군사력만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그는 전형적인 천상 군인이었다. 정치꾼이 아니었다. 그래서 카르타고 본국이 부패와 정쟁에 찌들어 있었다는 점이 전쟁에 얼마나 마이너스 포인트로 작용할 지에 대한 계산까지는 간과했던 것이다.


예컨대, 민간인과 군인의 구분이 없던 로마와 달리 직업군인 제도가 전통이던 카르타고에서는 어떤 장군이 혁혁한 공로를 거두면 민간인 정치인들의 의심과 질투의 대상이 되는 일이 많았으며, 같은 나라에서도 농업을 기반으로 하는 세력과 해상 무역을 기반으로 하는 세력 사이의 다툼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던 것이다.

 

군사력의 열세를 감안하기 위해 그는 발상의 전환을 통해 아무도 생각지도 못한 상식을 뛰어넘는 파격적인 전략을 구사했던 것이다.

 

1차 포에니 전쟁에서 ‘로마는 육군의 나라이고, 카르타고는 해군의 나라다’라는 기본적인 상식을 뒤집어 바다에서도 육지에서처럼 싸우는 방법을 개발하여 로마가 승리를 거둔 것을 학습하여, 이번에는 바다가 아닌 육로로 로마를 침공, 지상전으로 로마를 패배시키겠다는 것이 그의 전략이었다. 로마의 판단에, 카르타고군의 침입 경로는 서지중해로만 가능할 것이라는 상식의 허를 찔러 4만의 병력으로 피레네 산맥을 넘고, 갈리아를 통과, 다시 알프스 산맥을 넘어 이탈리아 북부로 침입한 것이었다.

그러나 카르타고는 이렇게 한니발이 만든 엄청난 전세의 우위를 지켜내지 못하고 끝내 패전했다. 한니발의 계획대로라면, 로마 본국이 혼란에 빠진 사이, 카르타고군이 로마의 외곽 식민지들을 병합해줬어야만 했다. 그 정도는 해줄 것이라고 계산했던 것이 허망하게 무너져버렸다.


카르타고는 바로 근처에 있던 시칠리아 섬조차 완전히 점령하지 못했다. 게다가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한니발을 지원했어야 할 병력조차도 카르타고 영역 방어에만 급급해서 히스파니아에 발이 묶여버리는 패착을 연이어 저질렀다.

 

몇몇 역사학자들은 한니발이 칸나이 전투 이후 바로 로마시를 공격하지 않은 것이 전략적 실책이었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그것은 전설의 명장, 한니발을 제대로 공부하지도 않고 무시하는 처사에 다름 아니다. 전술했던 바와 같이, 당시 로마시는 수도였던 만큼 엄청난 대도시의 규모였고 그만큼 성곽으로 견고하게 방어되고 있었다.


그곳을 뚫기 위해서는 공성전이 필수라는 것은 한니발이 모를 리 없었다. 즉, 주저한 것이 아니라 그 정도의 병력과 장비로는 도저히 대규모 공성전을 감당하기 무리라는 계산이 나온 것이었다.

 

한니발은 전쟁사에 있어 ‘전략의 아버지’로 불릴 만큼 전투의 여러 요소를 적절히 배합하여 자신이 지휘하는 군대가 가진 전투력의 몇 배나 되는 힘을 끌어내는 천재였다. 그만큼 리더십이 탁월했다. 이역만리의 적지에서 17년간이나 머무르면서도 대부분 용병으로 이루어졌던 한니발 군단에서는 전선을 이탈하거나 난동을 부리는 일이 없었다.

 

병사들과 함께 먹고 함께 자며, 자신의 이익은 손톱만큼도 생각하지 않고, 오직 적을 무찌를 생각에만 골몰해 있는 진정한 군인이던 사령관 한니발에 대한 존경심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었을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천상 군인이었을 뿐, 정치꾼이 아니었기에 썩은 정치에 의한 나라가 자신을 뒷받침해주지 못할 것을 계산하지 못했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그는 제대로 된 ‘나라’를 갖지 못했던 것이었다.

아무리 뛰어난 재능과 천재적인 능력을 노력에 의해 발휘하더라도 그 나라의 국민들로 대표되는 영향력과 정치력이 하나 된 힘으로 뭉쳐지지 않는다면 멸망하게 된다는 역사의 교육은 천재적인 명장, 한니발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한국인 수상자를 볼 수 없었던 피아노 콩쿠르에서 줄줄이 그랑프리를 차지하는 한국인 피아니스트들이 나오고, 말로만 듣던 아카데미 시상식에 한국 영화가 수상했다는 소식이 연이어 들려오고, 세계적 놀이공간이 되어버린 넷플릭스의 세계 순위에 한국의 드라마들이 연이어 성과를 올리고 있다고 한다. 어느 한 개인의 탁월함이 이루어낸 성과가 아닌, 전체적인 분위기와 수년간의 노력이 이제 천천히 꽃을 피워내는 것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문화와 예술분야에서도 이러할진대 과학기술분야는 또 어떠할 것이며 그 수많은 분야에서 전 세계의 무대에서 한국이 두각을 드러내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과 지원과 투자가 이루어져야 할지에 대해 우리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정치는 그런 것이다. 자기들이 잘 먹고 잘 살겠다고 설치는 법비들에 의해 오로지 자기 편을 위해 부정과 부패를 스스럼없이 저지르고 그 파인 공간에 다시 썩은 자기네들의 뿌리를 박으려는 인간들이라면 한니발의 성공을 즐거워하면서도 어떻게 지원해야 할지를 논의하지 못하고 있던 카르타고의 썩은 정치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최근 <인생에 실패했던 대가들의 이야기>로 묵혀두었던 로마인과 그 관련 인물들에 대한 방대한 이야기를 연재의 형식으로까지 몇 부작에 걸쳐 나눠 소개하면서 어떻게 수천 년 전 기원전에 있었던 실수들이 현대의 대한민국에서 똑같이 벌어지고 있는지 소스라치게 놀라 소름이 돋곤 한다.

 

한니발이 17년이나 조국을 떠나 연전연승을 거두고서도 물러날 수밖에 없었던, 그것도 조국에서 소환하겠다는 소식을 듣고 참담하게 돌아오던 심정과 독약을 마시며 자신의 평생 과업을 이루지 못한 그 억울함을 조국에게 미안하다는 절규로 대신했을 그 아픔이 당신에게는 느껴지는가?


얼마나 가슴이 찢어지도록 억울하고 속상하고 피가 거꾸로 솟았을까? 분명히 성공할 수 있었던 그 원대한 계획이 모조리 그 정치꾼들의 허망한 장난질에 무너져버리다니.

당신이 조직에 속해 있다 보면, 당신은 온 마음과 몸을 바쳐가며 일했는데, 조직이, 회사가, 상사가 정치꾼인 양 장난질을 쳐서 당신의 공을 가로채거나 그것도 부족하여 당신을 내쫓겠다고 누명을 씌우거나 음해하는 일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안다. 당신이 얼마나 피가 거꾸로 솟구칠 정도로 미쳐버릴 지경이었는지. 당신이 신이 아닌 다음에야 그들의 부정부패와 배신까지 계획에 넣어 전략을 수정할 수는 없었을 것임도 잘 안다. 그렇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아쉽고 뼈아픈 것이다.

 

역사를 공부하는 것은 반면교사를 통해 또 그러한 일을 저지르는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함이다. 만약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부정부패한 이들이 정치를 할 수 없도록 그들의 목을 쳐 선장이 배를 바르게 지휘할 수 있게 했다면, 조직에서 그저 줄만 잘 잡고 일은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술자리에서 혀만 놀리는 것으로 일관하는 것들이 승승장구할 수 없는 판을 만들어나갔다면 그럴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인간들은 어디에나 있고, 그것들을 일소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겠느냐 묻고 싶은가?


해봤는가? 처음 시작은 아주 작은 것에서 출발한다. 부정부패를 발견했을 때 그것을 저지른 자들을 일벌백계하기만 해도 비슷한 일을 벌이겠다는 자들은 절반으로 줄어들었을 것이다. 내 돈이 아니고 회사 돈이고 나랏돈이라며 횡령을 버젓이 하는 자들을 감시하지 않는 그 안일한 마음이 사회를, 당신이 속한 조직을 썩게 만드는 것이다.

당신의 실패가 지금은 소극적이고 범위가 작아 당신만의 실수이고 실패라고 여길지 몰라도 결국 사회구조적 문제는 반드시 당신의 발목을 잡게 된다. 지금 당신이 별 것 아니라면서 그들과 함께 형님 동생, 언니 동생하고 ‘우리가 남이가?’를 외치며 낄낄거리고 술잔을 부딪히는 그것들이 당신을 그리고, 당신 친구, 당신 가족, 당신 자식의 발목을 잡을 것이란 말이다.

 

사회는, 국가는, 갑자기 어느 한순간 썩어 무너지지 않는다. 조금씩 하지만 확실히 천천히 하지만 멈추지 않고 썩어 들어간다. 지금은 당신과 상관없이 당신의 눈에 보기에 멀찍이 떨어져 보이는 하나의 점일지 몰라도 그것은 곧 그렇게 퍼져올라와 당신의 다리를 타고 올라와 다리를 잘라야 할 지경이 될 수 있으며, 다리는 고사하고 온몸으로 잠식하여 당신을 집어삼킬 수 있단 말이다.

 

당신이 아무런 상관없이 뽑았던 그 군바리의 딸이 대통령을 하면서 문화예술계에는 블랙리스트라는 것이 버젓이 만들어졌고, 그들은 정치의 이름으로 그것을 통제하여 자기들 말을 잘 듣는 이들에게는 혜택을, 그렇지 않은 자들에게는 채찍을 선사했다. 그들은 멤버도 바꾸지 않고 그대로 빨간색을 둘러쓰고 지금 자신들이 전횡하던 시대로 되돌리려는 안간 힘을 법비 허수아비를 내세워가며 선동하고 있다.

 

문화예술계만이 아니다. 당신이, 당신과 상관이 없다고 착각한 그 모든 정치행위들은 당신의 생활에 아주 밀접하게 영향을 주었다. 나랏돈이라며 고위공무원들이 법인카드로 회의를 빙자하여 자기 돈으로는 절대 가지 않는 고급식당에서 척척 계산할 때, 그들이 계산하지 않는다.

경리를 맡은 당신의 딸, 당신의 조카, 말단 9급 공무원들이 그 잡무를 맡는다. 즉, 당신들은 그 부정부패를 바로 곁에서 함께 묵인하며 함께 식사하고 함께 독배를 든 것이다. 그 나랏돈은 다시 돌고 돌아 당신이 정작 어려울 때 나라 창고의 구멍을 내게 된다.

 

불세출의 영웅이 나오더라도 그 혼자서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진리는 이미 기원전에도 이렇듯 증명되었다. 보다 시대는 복잡해졌고, 더 세분화되어갔다.


하지만 세상 사는 방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한 영웅의 가슴 아프고 처절한 실패 이야기가, 결국 그 나라를 역사에서 지워버리고, 그 후손들의 씨를 말려버리게 된 것을 보고서도 당신이 아직 정신이 들지 않았다면, 도대체 더 무엇을 내보여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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