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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의 조건 - 에필로그

끝나지 않은, 마지막 이야기

by 발검무적

지난 이야기.

https://brunch.co.kr/@ahura/816


“여보! 나 늦었어, 내 서류가방은?”


남편이 뭐라고 하는지 들리지 않는다. 여자가 갑자기 넋이 나간 사람처럼 TV 앞에 우두커니 섰다. 아이가 이리저리 다니다가 달려 나오던 남편과 부딪혔다.


“여보! 수은아!”


남편이 고함을 치고 나서야 여자는 자신의 앞에 펼쳐진 상황으로 돌아온다.


“응? 왜요?”

“애 오줌 쌌잖아! 뭘 그렇게 정신이 없어. 나 오늘 출판사 협의회 사람들하고 조찬 모임 있다고 했잖아! 당신 작품도 후보에 오른 거 알지?”

“알았어요. 이러다 정말 늦겠어요. 얼른 나가요.”


남편을 내보내고 아이의 기저귀를 갈면서도 여자는 아까 그 TV에 나왔던 여자의 모습이 뇌리에 남았다. 마녀는 하나도 변하지 않고 오히려 더 강력한 마력으로 무장하여 돌아온 듯 힘이 느껴지는 모습으로 진화해 있는 듯했다.

정말 다시 돌아왔구나, 마녀는.


“저는 문화 무역이라고 하는 것도 그렇지만, 문화를 그렇게까지 어렵게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일본 문화도 중국문화도 그렇듯이 상대적으로 열등한 문화 같은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글로벌화되어가는 시장에서 그들의 선진 시스템에서 배울 것이 있다면 오히려 충분히 배우고 가져올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들의 문화시장을 활용하거나 그 콘텐츠를 글로벌화할 수 있는 수 있는 창의적인 스토리텔러들이 많이 나와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서 설명드린 바와 같이 당연히 우리 문화에도 충분히 글로벌화할 수 있는 다양한 우리들만의 보물이 산재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는 훌륭한 두뇌와 창의적 스토리텔링을 가진 수많은 인재들이 있습니다. 여기 계신 여러분들도 제 의견에 동의하시리라 믿습니다. 이상으로 제 얘기를 마칠까 합니다. 긴 얘기, 지루하셨을 텐데 경청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요란한 박수소리에 여자는 흠칫 깊은 잠 속에서 빠져나온 것 같은 표정으로 그녀에게 박수를 보냈다. 그녀는 이미 미국과 일본은 물론이고 이제 커지고 있는 중국의 콘텐츠 시장에서도 그녀의 문학작품과 시나리오로 ‘새로운 문화코드 게릴라’라는 별명을 하나 더 달고 돌아와 있었다. 그녀가 한영원이라는 것은 아직까지 아무도 모르는 채였음에도 그녀는 또 다른 자신의 이름의 부캐를 그만한 역량으로 키워서 돌아온 것이다.


여자는 그녀와 함께 했던 추억과 그 추억의 장면들 안에서 함께 웃고 떠들던 모습들을 떠올리며 지난 5년여의 세월이 꽤나 길었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을 정도였다. 마녀는 충분히 변화, 아니 진화했으면서도 그때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고 느껴질 정도로 그대로였다.


오히려 그 세월 동안 나이 먹고 아이 엄마로 변해 버린 것은 자신 혼자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짧지 않은 5년여의 시간 동안 그녀가 정말 새로운 마력을 갖춘 마녀가 되어 돌아올 동안 자신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그리고 얼마나 많이 정체해있었는지 괜스레 다시 비교하게 되는 것을 부인할 수 없었다. 물론 자신도 몇 권의 소설을 더 냈고, 중견 소설가로 활동하면서 어느 정도 문단의 한 귀퉁이 자리를 차지하고는 있었지만 그녀의 진화와 화려한 컴백에 비하면 이건 상대할 수 있는 규모의 레벨이 아니라고 느껴질 정도였다. 그만큼 마녀는 화려한 그 어떤 조명보다 반짝이고 있었다.

난 혼자서 정체하고 있었는지도 몰라.

“수은 씨!


그녀의 귀에 익은 청량한 목소리가 들렸다 싶어 정신이 돌아왔다. 강연을 끝내고 난 상기된 그녀의 얼굴이 보였다. 강 연미는 이미 수은의 눈앞에 싱그러운 예의 그 미소를 담고서 웃고 있었다. 마녀의 모습은 그 자태는 싱그럽고 밝았다, 여전히.


“수은 씨!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하게 해요. 여전하네요, 그러고 있으니까. 훌륭한 소설가 선생님이라 뭔가 생각하는 모습도 다른 건가? 풋.”

“예? 아니에요. 소설가 선생님은요 무슨···”


그때 진행을 하는 측에서 한 남자가 달려와 그녀를 불렀다.


“강 선생님. 저어, 질문 시간도 있고, 책 사인회도 곧 시작해야 할 거 같은데, 준비 좀 부탁드릴게요.”

“알았습니다. 저기, 수은 씨! 절대 먼저 가면 안돼요. 오랜만에 같이 저녁이라도 해요. 나 할 말이 너무 많단 말이에요. 알았죠? 가면 안돼요. 오늘 정신이 없기는 한데 금방 다 끝날 거니까….”


남자에게 이끌리듯 사람들 사이로 사라진 그녀를 뒤로하고 사람들이 강단 앞쪽으로 하나둘 몰려나왔다. 그녀는 이제 다시 또 다른 이름으로 세상을 들썩이고 있는 듯했다. 수은은 그런 그녀의 모습이 왠지 모르게 흐뭇하고 맘이 뿌듯해지기까지 했다. 그녀가 어디에 있든 그녀는 마녀로서의 존엄을 잃지 않고 어떤 모습을 하고 있든 세상을 충분히 뒤흔들만한 마력을 가진 강력한 마녀라는 확신이 들었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뒤쪽으로 걸어 나오는데 익숙한 남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한 영원이었다.


그쪽에서는 수은을 아직 발견하지 못한 듯했다. 여자는 잠시나마 자신이 연정을 품었던 그의 모습을 보고서는 그 몇 년 전으로 자신이 돌아가는 듯하는 느낌이 들 것 같아, 그와 인사를 나누는 것까지는 피하기로 했다. 천천히 그녀를 향해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오늘 저녁은 굳이 그녀와 함께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하루 그에게 한 번쯤 양보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리셉션장을 빠져나오며, 그녀는 코끝이 시큰해지며 뜻 모를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 울컥하던 무언가를 생각의 형태로 길어 올렸다.

마녀는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힘이 강해야 하는 거라고. 그건 마녀에게 배운 유일하지만 아주 중요한 가르침이었다고.



재미있게 읽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전작 연재소설 <대만에 사는 악녀>가 3권 예정이었는데 5권으로 늘어나 버려 너무 무겁고 길게 연재된 듯하여, 너무 무겁지 않으면서 요즘 브런치에 많이 유행하는 톤의 초고를 찾아 다시 털어 연재해보았습니다.


초고라니, 눈치채셨나요?

맞습니다.

이 소설은 1994년 겨울 어느 날, 날씨가 좋으면 멀리 김일성 별장이 보이는 강원도의 화진포 콘도에 노트북을 들고 들어가 3박 4일 만에 털고 나왔던 이야기의 초고를 다시 만져가며 완성한 작품입니다.


사실 그때도 아무 생각 없이 머리를 좀 식히려고 떠난 것이었는데, 마침 떠나던 길에 배웅 나왔던 신촌 독수리 대학 89학년 국문학 전공 여학생이 있었던 터라, 그녀가 이런 사연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사소한 상상에서 출발하여 그저 쉬지 못하고 그 상상을 정리하여 써 내려갔던 장편이었습니다.

하루에 연재하는 양이 브런치에 연재되고 있는 그 어떤 소설들보다 분량이 많아 한번에 다 카피가 되지 않을 지경이었습니다만... 그래도 글을 읽는 분들 입장에서 A4 7장도 되지 않는 짧은 연재 분량이라면 감질나서 어디 읽겠습니까? ^^*


하여 19일 만에 두꺼운 장편소설 한 권을 또, 탈고합니다.

1994년에 써놓고 출판도 발표도 하지 않은 미공개 원고를 다시 털어 브런치에 가장 먼저 공개하는 것은 제 브런치에 글을 읽으러 오는 분들을 위한 특별한 배려 정도로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현재 매일 발행하고 있는 4편의 각기 다른 장르(새벽 <논어 읽기>, 점심 <인생에 실패한 대가들의 이야기> 저녁 <술 이야기> 밤 <장편 연재소설>) 중에서 가장 늦은 밤 시간에 올리는 소설의 공간에 다음 이야기를 무엇으로 삼을지 아직 정하지 못했습니다.


몇 가지 복안이 있긴 한데, 이 참에 재미있게 읽어주셨던 애독자 여러분의 생각을 들어보고 정해볼까 합니다.

첫 번째 후보, 이번 소설에서 등장했던 한영원의 신작 <그녀, 우츄프라카치아>


소설 속의 소설이랄까요? 한영원(강연미)의 새 작품으로 언급되었던 바로 그 작품입니다.

두 번째 후보, 장편 애니메이션 프로젝트의 원작 웹소설, <방상씨의 탈>


‘한국판 해리포터’ 정도로 소개하면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20년 전에 기획되어 본래 창비 어린이문고에 청소년 소설로 출간될 예정이었으나 너무 설명하는 듯한 톤이라는 편집자의 수정 제안을 거부하고 원고를 다시 가다듬으며 단행본에서 30권짜리 대작 시리즈로 판이 커지고, 당시에는 싹만 움트던 웹툰 시장과 창작 애니메이션 시장의 원작으로 커져 버렸습니다.


모 지자체와 현재 프로젝트(웹툰, 웹소설, TV용 애니메이션, 테마파크)를 준비 중인 작품으로 한국에는 왜 일본처럼 <귀멸의 칼날>이나 <주술 회전> 같은 액션 활극 애니메이션 대작이 나오지 않느냐는 시대적 물음에 답하는, 조금은 사이즈가 큰 이야기입니다.

세 번째 후보, 사회 부조리에 대해 적나라하게 화염병을 던지는 논픽션 고발 소설 <현역 목사 아동학대 은폐 사건>, 되시겠습니다.


이미 <누가 우리 사회를 좀 먹고 있는가?> 매거진을 통해 사건을 읽고 알고 계신 분들도 있으시겠지만, 그 사건의 전모를 다룬 사회고발 소설입니다.

네 번째 후보, 하드보일드 스릴러 소설 <무영자>.

뉴욕의 UN본부에 나가 있는 전직 대통령의 딸이자 국제통 아내와 함께 지내던 딸이 홋카이도 대사관 무관으로 지내고 있는 아버지에게 놀러 오면서 사건은 시작됩니다. 일본 적군파에게 딸이 납치되면서 이야기는 복잡하게 돌아갑니다. 본래 주인공인 아버지가 단순한 외교부 무관이 아닌, 전설의 암살 용병 교관이던 과거가 밝혀지며 아버지가 딸을 찾으러 직접 나서게 됩니다.

일본의 홋카이도 설원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국제 정세를 바탕으로 한 첩보 스릴러물입니다.

다섯 번째 후보, 작년 브런치 안데르센 패러디 중 한 편 <돌의 여왕> 16부작 드라마의 원작

소설의 형태로 쓰긴 하지만 16부작 드라마로 기획되었고 드라마화를 염두에 둔 작품이 될 것입니다. 궁금한 분들은 매거진 <다시 쓰는 안데르센 세계 명작>에 들어가 보시면 시놉시스를 보실 수 있습니다. 남해의 한 섬에서 만난 소년과 소녀가 운명의 격량을 헤치며 각자의 분야에서 최고가 될 때까지 엇갈린 운명을 헤치며 서로를 다시 만나게 되기까지의 이야기입니다.

사실 이 외에도 늘어놓으면 한도 끝도 없을 것 같아서 일단 다섯 개의 후보로 축약하였습니다.


어차피 모두 이 브런치 공간에서 최초 공개된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을 겁니다만...


소설을, 그것도 호흡이 긴 장편 소설을 읽지 않는 요즘 브런치의 세태와 그나마 한 편 연재 분량도 찔끔 A4 1,2장 정도의 짧게 쓰는 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글쟁이 입장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글 읽기를 하고 싶어 하는 애독자들과 함께 재미난 이야기의 세계를 펼쳐 나가보고자 합니다.

댓글에 가장 먼저 읽고 싶은 이야기를 꼽아주세요. 참고하여 새 연재의 순서를 잡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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