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원장은 바뀌지 않았고, 검사 출신 여자 변호사를 비롯하여 두 명의 변호사 두 명의 기술사는 다른 인물들로 채워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이른바 대형 로펌에서 사회 공헌사업의 일환으로 시간을 채우러 온 변호사들은 그렇다 손 치더라도 기술사라고 앉아서 여전히 카톡과 재미있는 그림들을 보느라 정신없는 이들은 왜 그 자리에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꾸물럭 거리며 문제의 보상담당 박 과장이 거들먹거리는 걸음새로 명품 구두를 찍찍 끌며 자리에 들어섰다.
위원장이 먼저 말을 꺼냈다.
"아, 먼저 오늘 회의를 시작하기 전에 민원인께 한 말씀드리겠습니다. 지난번에 제가 말을 하려던 것을 조사관이 막았다고 문제를 제기하셨던 것 같은데, 제가 하려던 말은 같은 문제를 겪고 있는 52세대가 있으니 그 문제에 대해서 더 심각하게 생각해보고 조정을 하는 것이 어떻겠냐, 하는 제안 같은 것이었는데, 그건 사실이 내가 얘기를 해도 되고 안돼도 되는 문제였기 때문에 핵심적인 사안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니까 괜히 그런 걸로 문제를 삼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시겠죠?"
'당신이 뭘 조용히 덮자고 하자는 것인지를 도통 못 알아듣겠다.'
"자아, 민원인부터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면 하세요."
이번에는 아예 생각을 정리해서 적어간 편지가 있으니 그대로 낭독하겠다고 하고 작정하고 써간 편지를 읽어 내려갔다.
저는 3월에 이미 이곳에 와서 재정회의 심의라는 것을 거쳐본 경험이 있습니다. 제가 이미 결과 통지서라는 것을 받았음에도 왜 한 달 만에 다시 이곳에 왔는지에 대해 분명히 위원장님 이하 위원분들에게 확실하게 설명해드려야 할 필요성을 느껴 몇 마디 하고자 합니다.
분쟁조정위원회라는 것은 분쟁을 조정한다는 취지를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지, 재판정의 판사처럼 판결을 내린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처음 분쟁조정위라는 곳에 문제를 정식으로 제기하고, 심사관이라는 분이 처음 저의 집에 찾아왔을 때 저는 분명히 지금 여러분이 읽어보신 문건을 작성하고 설명하였습니다. 사실 그 문건에 차마 넣지 못했던 내용을 심사관에게 말했습니다. 그 사항들 중에서 핵심적이면서 심사관의 말 몇 마디에 삭제되고 묵살된 것들이 있고, 그것이 오히려 이 회의의 심리에서는 중요한 증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난번 심리에서도 위원장께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한 건물동을 케이크 자르듯이 6개 라인의 집들 중에서 2개 라인은 소음 분진 피해 등을 인정하여 보상을 하고, 4개 라인은 잘라버리는 경우를 보지 못했다고 한마디 하셨습니다. 그 말씀과 동시에, 이번에 대표로 분쟁조정위에 사안을 제기한 저희 집을 포함한 52세대가 같은 민원을 제기할 경우, 문제가 커진다는 것을 대형 건설사 담당자 측에게 확실하게 전달하시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담당 심사관이 당황한 얼굴로 벌떡 일어서 위원장님의 발언을 제지하는 것을 정면에서 목도하였습니다.
심사관은 처음에 저희 집을 방문하였을 때, 제 설명을 들고나서는 바로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다. 아무리 적은 보상금액이 결정된다 하더라도 곱하기 52가 된다는 뜻이지요? 제가 지금 바로 대형 건설사 측에 담당자에게 가서 이러한 상황에 대해서 따끔하게 이야기하고 합의를 제안하도록 하겠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심사관에게서 이후 일언반구 피드백은 없었습니다.
두 번째 전문가 교수라는 분과 대동하여 저희 집을 방문한 심사관은 처음 보였던 태도와는 완전히 사람이 달라진 것처럼 “어차피 엑셀에 기존 수치들을 모두 받아서 그것을 기계적으로 입력하여 나오는 계산치에 의거해서 보고서로 낼뿐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라는 말을 유독 강조하였습니다.
저 역시 여러 다른 단체나 위원회의 위원장 혹은 위원으로 활동한 바가 있습니다. 자신의 전문 본업이 있으면서 사회정의 구현 차원에서 봉사를 하신다는 의미로 시민참여 봉사 역할을 위해 이 일을 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심사관의 말에 따르면 어차피 당시 상황을 재현할 수 없기 때문에 당시 공사 주체에게 받은 공사일지와 그 데이터를 토대로 엑셀에 수치를 입력하여 계산할 뿐이라는 말을 5,6차례나 반복하며 강조하더군요. 그렇다면 여기 나오신 검사 출신 변호사나 전문가 교수이신 위원장은 이미 엑셀에 건설사의 뻔한 업무일지의 기록에 의거하여 수치를 계산한 것으로 끝나버리는 지극히 단순한 과정에 요식행위로 공정한 전문가인 시민들이 참여하여 분쟁을 조정한다는 하나마나한 쇼를 하고 있다는 의미일까요?
건설사에서 자신들이 기록한 업무일지의 수치들이 과연 명확한 것일까요?
객관적인 반증을 몇 가지 들어보겠습니다.
제가 관할 구청인 강남구청 소음측정 기동반에 연락을 취해 기동반들이 저희 집에 들어온 것이 무려 39차례입니다. 그런데 소음측정을 요청하기 시작한 것이 이미 2020년 9월부터라는 사실은 여러분이 보시는 문건에 교묘하게 빠져있습니다. 게다가 실제로 생활소음을 측정했던 것은 19차례에 지나지 않습니다. 39차례나 집까지 출동했는데 왜 19차례만 측정을 했을까요?
소음진동이 심해서 강남구청에 신고를 하면 소음측정 기동반이 제 때 오는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심지어 오전에 신고를 했는데, 공사가 다 끝나는 5시 반에 오는 경우도 적지 않았습니다. 소음이 심할 때에 딱 맞춰 소음팀이 와주는 경우는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특히 저희 아파트 단지는 들어오는 골목이 단 한 군데라 공사현장에서는 기동반의 차량까지 확인하고 차량이 움직이는 경우는 소음을 나누거나 일부러 낮추는 방법까지 쓴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강남의 재건축으로 부를 축적하는 대형 건설사 측은 실제 소음측정이 인정되는 횟수가 누적되면 공사가 중단된다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2020년 6월부터 문제를 제기했던 제 연락을 받은 담당자가 본사에 보상을 상신한다고 시간을 끌며 소음이 특히 심각했던 공사시기를 모두 넘기고 후안무치한 태도로 변모한 사실이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거실에서 tv를 보실 거라 생각합니다. 보통 저녁에 대형 TV로 뉴스를 볼 때 볼륨은 6~7 정도가 평균입니다. 관할 행정기관의 정식 소음측정기로 측정할 수 없다고 하길래, 제 핸드폰으로 거실에서 볼륨 10으로 틀어놓고 당일 뉴스 화면을 촬영한 것이 2020년 8월 일주일간 있었습니다. 뉴스의 내용을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의 강한 소음이 지속된다는 사실도 심사관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심사관은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관공서의 공식적인 소음측정 이외에는 어떤 것도 증거로 인정되지 않습니다.”라고 당당히 말했습니다.
공사가 발파까지 하며 시작된 것인 2018년 6월의 일입니다. 그런데 정식으로 관할 구청 환경과에 소음측정을 제시한 것은 2020년 9월부터입니다. 무려 39차례입니다. 아이들이 온라인 수업을 듣고 있는 가정에서 3개월가량의 시간에 40여 차례를 소음측정반의 직원들을 매번 들이고 그중에서 19차례나 소음측정기를 세팅하고 기다리고 철수하는 과정이 그리 쉬운 일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지난 3월 회의에서 현장 담당도 아니었던 사람이 대타로 나와 위원회의 위원께서 소음측정을 옥상이나 여러 장소에서 했냐고 묻자, 더듬거리며 그렇게 했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당시 회의록이 남아 있을 거라 믿습니다만, 제가 분명히 문제를 제기하고 2020년 2월에 동대표라는 자들과 담합을 한 이후에는 어떤 소음 조사도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강조하였습니다. 과연 심사관이 현대건설에서 그런 소음조사를 언제 어떻게 했는지 철저히 자료를 통해 확인했을까요? 심사관의 이상한 태도가 불안해서 결과보고서를 받기 전인 회의가 끝난 직후 전화를 걸어, “위원장님의 조정하시려는 사려 깊은 경고를 당신이 왜 임의로 제지한 것인가?”라고 하자 심사관은 말을 더듬으며 제대로 대꾸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다시 “결과를 내기 전에 건설사의 책임자급에게 지금 이런 식으로 문제를 덮으려는 현장 담당자를 추궁할 수 있는, 회사에 더 큰 손해를 끼칠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을 좀 더 적극적으로 알리고 그전에 사과와 사죄성 보상을 하도록 조정에 힘써달라.”라고 하자 그는 알겠다고 하고는 결국 아무런 피드백 없이 ‘제 청구를 기각한다는 결과보고서를 우편으로 날려 보내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바로 항의 전화를 하고 이제까지 회의 내용과 통화내용을 모두 녹취하였으니 녹취록을 작성하여 서울시 감찰부서에 적극 항의하겠다고 하자, 그제야 자신이 수습하겠다고 하질 않나, 감사와 상의하여 다시 회의 일정을 잡겠다고 하더군요. 오늘의 재심리가 잡힌 배경입니다.
건설사 측의 답변 내용을 조금만 살펴보더라도, 그 현장 담당자라는 자가 얼마나 일을 주먹구구식으로 해왔는지 앞뒤가 맞지 않는 모순된 변명을 하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문건에 보면 “피해보상 합의 당시 보상금이 제외된 세대는 각 동의 입주자 대표 동의를 얻어 작성이 되었으며, 그 후 이를 토대로 합의금도 지급이 되었습니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법률 전문가도 이 자리에 위원으로 함께 하고 계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만약 피해보상이 제외된 세대의 법적 권리를 각 동의 입주자 대표가 대신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말이나 됩니까? 그렇다면 그들은 왜 합의금을 지급받은 세대들에게만 민형사상 문제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문건을 받고 전세대에 받지 않은 것일까요? 굳이 의문을 제기하지 않더라도 누구나 알 수 있는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처음 제가 문제를 그 현장 담당자라는 자에게 했을 때, 그는 “이미 동대표와 합의가 끝났기 때문에 당신은 우리 회사에 보상을 제기할 수 없다.”가 첫마디였기 때문입니다.
노쇠하고 상황을 제대로 이끌지 못하는 입대위 대표라는 노인들과 적당히 담합하여 최소한의 금액으로 합의를 했다면서 본사에 자기 공을 상신하고 능력 있는 자라고 판단을 받았을 이 현장 담당자의 허술한 일처리에 대해 건설사본사 측의 책임자급되는 사람이 지금 52세대에 대한 손해배상 비용을 추가로 토해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을 알게 되면 그의 입장을 어떻게 될까요?
서울시 환경분쟁조정위원회의 심사관을 맡고 있는 사람이, 이러한 사실을 모두 전해 듣고서도 굳이 직접 촬영한 증거는 낼 필요도 없다고 하고, 합의는 애초에 글렀으니 는 말이나, 고 하질 않나,
소음이 발생할 때 바로 기동반이 달려와 제대로 소음을 측정한 것도 아니고 공사가 다 끝났을 즈음이라는 2020년 9월부터 측정한 소음이 65 데시벨에 육박한 증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2018년 폭파 시공이 있었을 때가 최고였을 거라는 둥의 설명을 반복하는 심사관을 보면서 제가 어떤 생각이 들었을지 여러분들도 뭔가 느끼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보통 아파트의 거실에서 볼륨 10으로 해놓고 보는 뉴스의 말소리마저 제대로 들리지 않을 정도라는 동영상 촬영이 증거력이 없다고 하면서 어차피 건설사 측의 업무일지에 나온 대로의 기계 수치만 엑셀에 넣어서 수치계산만을 인정하는 것이고 다른 것은 다 필요 없다고 하는 심사관의 말을 들으며 도대체 그럼 분쟁조정위는 왜 심리를 하는 것일까?라는 의문이 드는 것은 저만 독특해서 그러는 것일까요?
환경분쟁조정위원회의 방점은 ‘조정’에 있는 것이라는, 제 상식이 잘못된 것일까요? 심사관의 말처럼 사과고 나발이고 대형 건설사는 결국 자신들의 돈이 얼마나 더 나가고 안 나가고의 이익에만 움직이다고 한다면, 지난번 회의에서처럼 현재 부당하게 피해를 보상받지 못한 우리 동 52세대 중에서 저만 시끄럽게 소란을 피울 뿐이라고 믿고, 절대 52세대가 단체행동을 할 리가 없을 거라며 득의만만해하는 현장 담당자의 잘못된 행태를 지적하고 그 잘못에 일침을 가하기 위해 일반 시민의 눈높이에 맞춰 전문가들이 객관적인 판단을 하라고 이 위원회가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요?
저는 반드시 이렇게 심사관까지 움직여가며 금전적인 이득을 취하고 시민들을 기만하는 대형 건설사의 안일한 현장 담당자가 혼쭐이 나서 다시는 이런 기괴한 합의로 회사의 돈을 굳혔다고 능력을 인정받는 사례를 만들어주지 못하도록, 같은 시민이자 전문가이신 위원장 이하 위원분들이 현명한 판단을 내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검사 출신의 대형 로펌 변호사는 연신 나와 아이컨택을 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리액션을 해주었으나 다른 변호사는 여전히 문건을 이리저리 뒤집으며 펜을 돌리고 있었고, 기술사들은 여전히 핸드폰을 보며 심드렁한 얼굴로 시간이 흐르지 않는 것을 탓하는 얼굴이었다.
정곡을 찔렸던 것인지 위원장만이 약간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다 하신 거죠, 이제? 자아, 건설사 보상담당이었던 박 과장, 맞나요?"
"네."
"할 말 있으신가요?"
"네. 저희는 적법하게 다 입주자 대표회의랑 합의해서 보상이 나갔고요, 지난번 결과 통지도 보상이 나가지 않는 경우라고 받았습니다. 그래서 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시면 소송이나 그런 걸 해주셨으면 회사 입장에서는 참 편하겠습니다."
"그러면 회의를 굳이 두 번이나 할 필요가 있습니까?"
버럭 언성을 높이자 위원장 옆에 있던 기술사가 짜증 난다는 얼굴로 마이크에 입으로 대고 말했다.
"여기는 회의를 하는 곳이지, 무슨 민원을 듣는 곳이 아니에요. 일일이 자기 불편한 사항을 여기 와서 얘기하면 뭐 하자는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