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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Jun 22. 2021

환경분쟁조정위원회 -3

서울시가 '복마전'이라고 불리는 이유

지난 이야기

https://brunch.co.kr/@ahura/52

2호선 서울시청역에서 내려 덕수궁 돌담길이 있는 길로 들어가니 메시지에 보내준 시청 별관이 보였다.

이게 뭐라고 약간 긴장된 마음에 화장실에 들러 결의를 다지고 환경정책과 쪽으로 갔다.

젊은 남자 공무원이 명단 같은 것을 들고 물었다.


  "성함이? 오늘 환경분쟁조정위원회에 나오신 거 맞죠? 네. 여기서 잠시 기다리세요."


잠시가 아닌 10여분을 복도 의자에 앉아 있자니, 아까 젊은 남자 공무원이 쪼르르 와서 불렀다.


  "이제 들어가시면 됩니다."


긴 테이블을 기역자로 해서 가운데 앉아 있는 위원장으로 보이는 남자가 있고, 양쪽 옆으로 위원이라고 쓰인 종이에 각 두 사람이 나눠 앉아 있고, 그들의 말석에 문제의 서울시 조사관이라는 자와 또 다른 서기로 보이는 사람이 앉아 있었다.

회의는 회의록 작성을 위해 녹취를 하는지 낡은 소형 녹음기가 놓여 있었다.

건방지기 짝이 없는 대형 건설사 박 과장이라는 녀석의 얼굴을 이제야 보겠구나 싶었는데, 왜 왜소해 보이는 남자가 주섬주섬 내 옆으로 앉으며 자료 꾸러미를 풀었다.

위원장이 신원확인을 하는데 그가 말했다.


  "저는 보상담당을 했던 과장은 아니고요. 그냥 현장직원인데요. 회사에서 대신 나가라고 해서 나왔습니다."


  '뭐라고?'

 황당한 대답에 위원장이라도 뭐라고 할 줄 알았는데 아무런 대꾸도 없이 그들이 기계적으로 서류를 뒤적였다.


  "그러면 당시 상황이나 문제점에 대해서 제대로 답변할 수 있는 사람이 나온 게 아니지 않습니까?"

 

내가 참지 못해 한마디 지적하자, 좌불안석 표정의 조사관이라는 자가 일어나며 위원장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게요. 왜 박 과장이 직접 안 나온 거죠?"

 

미어캣처럼 두리번거리는 조사관의 눈빛이 위원장을 향해 간절한 사인을 보내는가 싶었는데, 위원장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그저 한 마디 툭 던졌다.


  "그 사람이 아니라 회사를 대표할 수 있는 사람이 나왔으면 된 거라고 봅니다."

  

위원장은 현직 교수였다.

회의에 오는 지하철에서 간략하게 확인한 바에 따르면, 서울대를 졸업하고 대기업에 연구직으로 취업했다가 서울권 그저 그런 대학에 교수로 전직한 전형적인 공돌이였다.

서울시 환경분쟁조정위원회 말고도 다양한 분야에서 소음이나 분쟁 관련 위원회가 열리면 초빙되는 이였다.


그 이유는 하나였다.

그의 전공이 공학적으로 그 소음과 분진 등등에 대한 것을 제어 계측하는 분야였기 때문이라는 것이 다였다.

위원으로 나온 이들도 2명은 변호사, 2명은 기술사였다.

기술사라고 나온 나이가 지긋한 남자들은 자료는 고사하고 핸드폰으로 카톡을 하거나 재미있는 기사를 보는지 회의 중간중간에 눈만 살짝 들어 자료를 보는 척할 뿐이었다.


"이미 대략적은 내용은 위원장 이하 위원분들께서 다들 알고 계시니까 특별히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면 하세요."


대단한 선심을 쓰듯 뭐가 불안한지 연신 미어캣처럼 위원장과 내 눈치를 번갈아 살피며 조사관이 말했다.


"내용에도 모두 적혀 있지만, 입주자 대표회의와 주먹구구식으로 합의를 하고 보상이 이루어졌다고 하는 건설사 측의 태도도 문제이고, 2019년 말에 합의와 보상이 이루어졌다고 한 다음 1년 내내 소음이 이어진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책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2020년 9월부터 측정한 측정치에서도 기준치를 넘는 것이 나올 정도였으니까요."


"그러게요. 나도 대강 봤는데, 이거 한 동을 케이크처럼 잘라서 1,2호 라인은 보상을 하고 3,4,5,6호 라인은 보상에서 제외하는 그런 측정은 어떤 기준에서 이루어진 것인가요?"


위원장이 특유의 심드렁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당시 제가 보상담당도 아니고 저는 그저 현장 직원이기 때문에 어떻게 보상이 이루어졌는지 과정이나 소음측정 방식 등등도 아는 게 없습니다."


"그럼 여기 뭐하러 나온 거죠?"


내가 물었다.


"아 그게, 회사의 과장님이 저보고 나가라고 해서요."


그의 눈치 없는 대답에 여자 변호사가 한심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물었다.


"원래 입주자 대표회의가 법적 청구권을 대신할 수 없다는 것 정도는 회사에서도 알고 있지 않나요?"


"아 저, 그게 저는 보상 쪽은 담당하고 있지 않아서요."


"아니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 회의를 한다고 하십니까?"


내가 짜증스럽게 위원장을 향해 한 마디 던졌다.


"자아, 민원인께서는 제가 말하라고 할 때 말씀하세요. 발언권 없이 말씀하시면 안 되고요. 어차피 이게 다 결과는 나와 있는 거니까요. 그런데 말입니다. 지금 내용을 보니까, 3,4,5,6호 라인이 민원인 세대 말고도 52세대나 돼요. 그러면 민원인에 대한 것뿐만 아니라 배상이 이루어지게 되면..."


그 순간이었다.


"위, 위원장님! 그런 말씀을 여기서 하시면 안 됩니다."


황급한 표정으로 조사관이라는 자가 위원장의 말을 막았다. 뭔가 대단한 비밀을 누설하는 실수라도 한 것처럼 위원장을 보며 손사래까지 치며 조사관이 그의 말을 막았다. 뭔가 그의 간절한 눈빛의 싸인을 봤는지 위원장이 '아, 음'하며 말을 끊었다.


여자 변호사가 무슨 싸인을 이어받았는지 어색한 분위기를 지울 듯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이건 그냥 확인차 묻는 건데요. 2018년도 7월에도 그 집에 사셨던 건가요?"


"아니요. 2019년에 이사 왔습니다만. 서류에도 그렇게 나와 있지 않나요?"


"네? 그러면 이거 내용이 달라지는데...."


조사관이 그 말을 이어받아 다시 말을 끊었다.


"사실 여기 공사장에서 폭파 시공을 했거든요. 시뮬레이션 결과로 보면 폭파 시공 때가 소음이 가장 커요. 그 이외에는 현장에 있질 않았으니까 시뮬레이션 값이 소음 수치를 초과하기에는 상당히 어렵거든요."


이번엔 시키지도 않은 부연설명까지 위원들을 바라보며 조사관이 주저리주저리 말을 이어갔다.


"그럼 어떻게 할까요?"


"민원인하고 회사 측은 특별히 할 말 없으시면 나가보세요. 우리끼리 결정하면 되겠네요."

위원장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렇게 회의를 끝내겠다며 두 사람을 내보냈다.


그게 다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무리 생각해봐도 조사관의 태도가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질 않았다.

돌아오자마자 그의 사무실로 전화를 걸었다.


"회의가 아직 끝나지 않아서요. 회의가 끝나는 대로 전화드리라고 전하겠습니다."


그리고 한 시간여가 지났을까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뭐 하자는 겁니까, 이게?"

"네?"

"아까 왜 위원장의 설명을 막았습니까?"

"네? 아 그건, 이 건과 상관이 없는 것을 말씀하시려는 게...."

"상관이 없어요?"

"회사를 압박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고...."

"장난합니까? 처음 우리 집에 와서 이야기 나눌 때 조사관께서 직접 말했던 내용이잖아요? 지금 민원은 나만 내지만 내가 보상이 결정되는 순간, 결국 51세대의 보상을 모두 해줘야 하는 결과가 생기니 그 부분에 대해 회사에게 확실하게 못 박고 그 전이라도 제대로 사과하고 협의보상을 하라고 종용하기로 한 거요."

"그건 으음...."

"그렇게 하겠다고 본인이 나한테 약속하신 거 아니었습니까?"

"일단 오늘 회의를 했으니까 3,4일 내로 결과 통지문이 나갈 겁니다."

"결과 통지문이 나오기 전에 그걸 해달라고 한 거 아닙니까?"

"회의까지 했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이제까지 당신이 나와 한 대화, 통화 모두 녹취되었습니다. 오늘 회의에서 보인 그 언행까지 포함해서 서울시에 정식으로 감사 신청해도 괜찮겠습니까?"

"네?"

"지금 눈 가리고 아웅 하자는 거예요?"

"아니 그게 아니라... 으음. 일단 조정 결과 통지문을 받아보시고."

"지금 하는 짓 보면 결과를 받아보는 게 무슨 의미가 있죠? 그전에 뭔가 조치를 취해달라는 거잖아요. 원래 분쟁조정위원회 아닙니까? 그럼 조정이 목적 아니에요?"

"그건 맞는데, 그게... 하여간 알아보겠습니다."


마지못해 우물쭈물 전화를 끊은 그에게서 다시 피드백 콜은 오지 않았다.

4일이 지나 도착한 조정결정문이라는 문건에는 두껍게 구구절절이 쓸데없는 수치계산이 나와 있고, 맨 앞장에 친절하게 '폭파 시공이 있던 2018년 공사 시작 전의 소음 이외에는 소음 수치가 넘는 시뮬레이션 값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2018년 거주하지 않았던 민원인에게는 보상해줄 의무가 없다.'라고 적혀 있었다.


어이가 없었다.

바로 전화를 다시 걸었다. 이번엔 핸드폰으로 직접 걸어 그가 직접 받았다.


"이게 뭡니까?"

"네? 아! 조정결정문을 받으셨나 보군요?"

"이거 도착하기 전에 뭔가 그쪽 회사에 고지하고 압박하고 합의를 조정하겠다고 한 사람, 맞나요?"

"아 그건 제가 바쁘고 정신이 없어서.... 하질 못했네요."

"나도 그럼 바쁘신 분 더 귀찮게 안 하고 그간 통화 녹취내용 파일로 정리해서 서울시에 감찰 민원 넣도록 하겠습니다."

"아! 잠시만요. 그러지 마시고, 제게 시간을 주시면 제가 건설사와 접촉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지금에서요?"

"조금만 시간을 주십시오."

"어떻게 할 건데요?"

그렇게 전화를 끊은 그는 1시간이 채 되지 않아 전화를 걸어왔다.

"제가 그쪽 법무팀 쪽이랑 연결을 해봤는데요. 이미 결과받았으니까 저한테 연락하지 말랍니다."

"지금 나랑 장난합니까? 나 같아도 그렇게 말하지요. 지금 이렇게 만들어 놓고 나서 뭘 어떻게 수습하겠다는 거죠?"

"만약 결과에 불복하시면 통지서 받으신 60일 이내에 환경부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회에 재신청을 해서 따져보시거나 직접 소송을 제기하실 수도 있고..."

"이봐요. 당신네는 뭐하고 지금 와서 나보고 소송을 하라는 거죠?"

"네? 그러니까 절차가...."

"그 절차 다 밟아드리리다. 그리고 당신에 대한 감찰 민원은 민원대로 진행하도록 하죠."

"아니, 그게 그렇게 하시면 제가 곤란합니다. 제가 다시 한번 아는 루트 통해서 여기저기 알아보겠습니다. 조금만 시간을 주십시오."


그렇게 그는 20분 간격으로 문자와 전화를 넣어가며, 자신이 서울시 조사관 업무를 하면서 알고 있는 그쪽 대형 건설사 측에 알아보았더니 이미 준공이 완료되어 현장 사무실이 없어져서 자신의 네트워크를 활용할 수 없다는 둥 이것저것 구차한 변명을 이어갔다. 그렇게 금요일 오후를 다 소진하고 나서 월요일 오전까지만 시간을 달라던 그에 전화가 온 것은 월요일 9시가 막 지났을 무렵이었다.


"제가 이 문제에 대해서 간사와 상의를 한 결과, 다음 달에 이 건을 가지고 재회의에 상정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극단적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마시고, 한 달 뒤에 회의에 나오시면 되겠습니다."


그의 스타일이 그런 것인지 그가 원래 그런 사람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는 그렇게 말하는 것으로 한 달을 일단 벌었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최소한 서울시에서 동일한 안건으로 재회의까지 상정했다고 하는데 이번에는 제대로 바로잡을 수 있겠지, 하는 바보 같은 기대에 나 역시 한 달 뒤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갔다.


4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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